상위 문서: 가이아 제국

가이아의 역사
History of Gaia
[ 펼치기 · 접기 ]

개요

가이아 제국의 역사에 대한 문서.

알렉산드리아 2세 시대

기원전 187년 ~ 기원전 109년

이전 시대인 알렉산드리아 1세 시대에 브뤼스 제국 지역과 아르메노 왕국 지역을 탈환하며 클레이시아 대륙은 물론이고 이스톨리아 대륙까지 영향력을 확장한 가이아는 강력한 병력으로 영토에 대한 야욕을 품었고, 북부의 갈라트 왕국 지역까지 계속 진격하며 이스톨리아의 서부 일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기원전 183년에는 웨스티시아까지 영향력을 확산하기 위해 레트로폴리스 원정에 나섰고, 북쪽에 위치했던 노스웨스족과의 전투에서 대승하며 레트로폴리스 전역을 가져왔고, 본토로 귀환하면서 나머지 섬들까지 싸그리 정복에 성공했다.

보통 가이아 제국의 최전성기라 하는 이 지도가 바로 알렉산드리아 2세 시대의 지도다. 지도를 보면 레트로폴리스 전역부터 시작해서 길버트 섬, 갈라트 왕국 전역, 브뤼스 제국·아르메노 왕국(통상적으로 이르는 지금의 남서이스톨리아 지역) 지역은 물론이고 클레이시아이스톨리아의 남쪽 부속 섬들까지 정복한 것을 볼 수 있다.

상술했듯 알렉산드리아 2세 시대에 가이아 제국최전성기를 맞았다.[1] 저 지도 이후로는 가이아는 더 이상 영토를 확장하지 못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러한 가이아의 급격한 팽창에 이제 한계가 왔음을 인정하고 레트로폴리스폴리스에 건설한 요새에 군대를 주둔시켜 갑작스러운 침공을 방어하려 했다. 또한 예산 문제로 40개의 군단을 24개로 감축하는 등 병력을 줄이고 국가의 재정 관리에 큰 힘을 쏟았다.

알렉산드리아 2세는 가이아 제국을 전 대륙에 이르는 초강대국으로 성장시키고, 기원전 109년 숨을 거두었다.

조지프 시대

기원전 109년 ~ 원기 71년

알렉산드리아 2세의 사망 이후, 잘 굴러가던 가이아의 제정 체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알렉산드리아 2세가 구축해놓았던 지방분권제도인 총독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리도 멀고 가는 길도 험하며, 요새나 베이스는 커녕 군인 수백 명밖에 없는, 한마디로 중앙정부 소속 감찰관의 영향이 잘 미치지 않는 지역들인 길버트 섬이나 베스트 제도 같은 지역에서 총독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런 반란의 시도는 무려 가이아의 마지막 시대인 2차 루나 시대까지 이어진다.

1차 루나 ~ 샤를리아 시대

원기 71년 ~ 원기 312년

이 시기의 가이아 제국은 사실상 정복한 모든 지역에서 총독의 반란 시도 또는 피정복민들의 참정권 요구가 지속되었다. 피정복민으로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노예를 고용하는 부유층의 풀이 커지고, 자연스럽게 참정권을 요구한 것이다. 상술했던 길버트 섬은 물론이고 두 거대 요새가 위치해있는 폴리스, 레트로폴리스 지역에서도 참정권 요구는 이어졌다.

그렇다고 가이아가 공화정을 다시 도입하는 건 또 재고해봐야 할 문제였다. 22,000,000km2의 면적을, 그것도 세 대륙에 걸쳐있는 엄청나게 넓은 지역을 공화정 체제로 운영하는 것은 당대에는 고사하고 현재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정복한 지역을 하나둘씩 탈환당하기 시작했다. 279년 길버트 섬에서 철수하고, 서이스톨리아-스푸트니 제도-베스트 제도 지역을 순차적으로 탈환당한다.

2차 루나 시대

원기 312년 ~ 원기 475년

제2차 서이스톨리아 전쟁

전쟁 이후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구축

키오피 왕국의 침공, 최종 멸망

  1. 그 이후로는 아주 조금씩 쇠퇴하다가 2차 루나 시대에 직격타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