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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우휠 9편
작전준비

간단하게 파운드 케이크에 인스턴트 커피, 지역에서 만든 나물.. 뭐시기. 아렌은 그런 식단으로 대충 점심을 먹었다. 웃기게도 현지로 보급되는 라이프니츠의 신문은 식탁보로 사용되었고 그 아래에는 총통의 사진이 있었다. 사실 이것은 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나마도 호소니가 어떤 의미로 자유의 땅임을 시사하고 있었다. 본국에서의 숨막히는 분위기가 적어도 이곳에선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데..

"으... 근위대라니"

어느 병사가 중얼거렸고, 그것을 아렌이 들었다. 그래. 근위대는 조금 다르다. 그 충성심도.. 그리고 권한도

"병사. 누가 이런 식으로 물건을 낭비하랬지?"

시비가 붙었다. 그곳에는 꽤 고위 장교들도 많았지만, 근위대는 제법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안하무인이었다. 반델처럼 점잖은 사람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신사답지는 않다. 호소니 현지의 정착군 중에서도 제법 깡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이 전시법으로 들이밀면 짬이니 뭐니하는 것도 다 소용이 없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하도록, 그리고 자네. 자네도..."

"시끄럽구만 아주."

아렌은 대놓고 그들에게 말했다. 이마를 찡그리며 대놓고 반기를 드러낸다. 애초에 그녀는 그들이 신처럼 여기는 '총통각하'에게도 반박하는 사람이니 그런 아랫것들이 무서울 리가 없다.

"아.."

그리고 그 옆에는 반델이 있었다. 반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슬쩍 움직여서 가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반델. 솔직히 이야기해서, 내가 반델을 만나기 전까지 근위대는 저런 인상이었어."

"음..."

반델은 말을 아낀다.

"좋은 의미군요. 제 인격이 역시 빛난다는 의미입니까?"

"상처는 아주 다 나았나보네."

아렌은 은근슬쩍 군화로 반델의 발을 찼다.

"그렇지만 저는 근위대의 입장이 이해가 됩니다. 저런 행동이 근위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이지 않습니까."

"..."

이번에는 아렌이 말을 아꼈다. 우리는 그것을 현실의 말로 '융통성'이라고 부른다.

"작전회의는?"

"1시간 남았습니다. 참여자 명단도 있습니다. 이것도 드립니까?"

"워렛도.. 혹시 그 자리에 있나?"

"....회의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습니다."

"됐네 그럼." 아렌은 커피를 홀짝 마신다.

"이따 회의 때 워렛에게 6시에 만나자고 전해줘"

"예."

식사를 하면서 마음은 안정됐지만, 여전히 아렌에게는 많은 의문이 남아있다. 워렛이 아렌을 피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 오늘 회의가 끝난다면 시간 여유가 있을거고, 상관으로서의 명령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중장님.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길"

"작전과 전술은 다 준비가 되신겁니까? 만난지 꽤 됐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언급이 없으십니다."

"음.. 전술." 아렌은 머리를 긁적였다.

"머리 안감으셨습니까?"

아렌은 홀짝 마시던 커피가 입밖으로 흘렀다.

"반델.. 슬슬 말을 막하는 경향이 조금 있지 않나?"

"하하. 유머입니다."

"....."

점점 미쳐가는 모습이 보였다. 멀쩡한 허우대로 이상한 말을 늘어놓으니.. 그 의젓하던 모습이 점차 투명해지고 있다.

"3단계 정도로 나누어서 생각했는데, 말하자면 이렇지."

아렌은 탁상에서 눈에 띈 사탕 3개를 나란히 놓는다.

"첫번째는 돌파지. 오랜 시간 전선이 교착되어 있었다는 말은, 방어벽은 삼엄하지만 그곳을 돌파하면 후방엔 전혀 준비가 안되어있을 테니까."

반델이 끄덕인다.

"실제로 척후병들도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데모부르크군도 저희와 상황이 매우 유사하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새로 지원받은 장비는 주로 돌파에 특화된 병기들이야."

아렌은 나란히 늘어놓은 사탕들 앞에, 커피가 담긴 유리컵을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돌파시에는 병력을 분산시키는 게 아니라, 화력을 집중시키는 화력 교리로 작전을 수행하고"

그리고 놓은 커피를 그대로 밀어, 사탕들의 대열을 무너트린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보병들로 후방 병참선을 지켜줘야 해"

"적들이 우리 전술을 간파할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충분히"

아렌은 이번에는 대열을 바꾸었다. 사탕을 더 집어서, 사탕을 아까보다 더 촘촘히 늘어놓는다.

"데모부르크도 쌓아놓은 병참이 있을거고, 대전차 장비로 방어선을 정비할거야. 그럼 아마도, 방어진이 두터워지겠지. 하지만 전술의 핵심은 장비에 의존하는 게 전부가 아니야."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그건 바깥에서 다 이야기하면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

아렌은 조금 남은 커피를 다 마신다. 반델은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보자 어느새 주변의 군인들이 아렌과 반델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웃기게도 내적 친분이 쌓인 맥거만은 아예 뒤에서 팔짱을 끼고 듣고 있었다.

"중사는 우리를 너무 따라다니는 거 아니야?"

"듣다보니 재밌습니다!"
맥거만 중사는 늘 해맑았다.

"작전내용은 기본적으로 늘 대외비인데 조금 위험하지 않습니까?"

반델이 우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핵심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으니 괜찮아."

아렌은 자신이 먹은 쓰레기들을 종이봉투에 꾸깃꾸깃 집어넣는다.


회의실에는 여러 사단의 사단장들과, 참모장들, 그리고 모두의 중심에 아렌이 서있는다. 후방참모였던 아렌은 직접 현장에 있는 건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걱정은 없었다. 레이먼트 소장은 자신을 돕는다고 이야기 해놓았고 대부분은 그의 휘하다. 새로온 사단장들도 현지 사정에는 밝지 않을 테고, 자신이 작전을 주도한다고해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개요와 참고 사항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맥거만 중사가 첫번째 대상이었다. 병참 장교답게 현재 비공정으로 옮겨진 물자의 현황과 인력 현황 등을 상세히 정리하였고, 각 사단장들은 이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질문했다.

이번 작전에 참여한 인력만 하더라도 무려 3만명 규모다. 지원병력은 가히 1.5배였다. 총통이 이 전쟁을 끝내려는 의지가 분명해보인다.

이후 몇 사람 더 보고가 이어지고, 이제 아렌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 속내로 웃음이 나왔다. 작전을 사령관이 짠다니, 완전히 어폐가 있는 건 아니더라도 결재를 올리는 사람과 결재를 하는 사람이 동일인물이란 말이다. 아렌은 아까 반델에게 했던 설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하나, 적들은 교착된 전선을 중심으로 방어선이 형성되어있다. 그러니 방어선을 돌파하기만 한다면 후방에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다.

둘, 군함으로 옮겨진 장비는 전선 돌파위주의 중장비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자원 소모가 빠르므로 속도전으로 전선을 헤쳐야 한다.

셋, 병력들은 분산하지 않으며, 화력교리로 우세를 점할 수 있는 평지에서 전차전을 벌일 것. 그리고 후방에는 보병대대가 뒤따른다.

그리고 역시나 반델의 말처럼 사단장 중 한 사람의 질문이 이어졌다.

"사령관님. 이미 데모부르크 측에서 장비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보고받았는데, 이 점에 대해서 감안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생각한 방안은 이렇습니다."

넷, 혼선을 주기 위해서 주된 전투가 벌어질 장소로부터 가장 먼 두 곳에 소수의 양동작전을 펼친다.

다섯, 작전은 적들의 예상을 깨고 늦은 야밤에 진행한다.

여섯....

"근위대장님. 데모부르크 전선 후방에 민간인 지대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예. 보고 받았습니다."

"후방 침투로 교란작전을 수행하실 수 있는지 여쭤보겠습니다."

"특수전을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왜 근위대가 가장 위험한 임무를 도맡아야 합니까? 현지 전술부대도 있지 않습니까"

근위대장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반발하였다.

"총통께서 저에게 근위대대를 지원해주셨습니다. 맞지 않습니까?"

"그것은..."

할 말이 많아보였지만, 근위대장은 더 말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마지못해서 끄덕였다. 사실 그의 말이 완전히 틀리지도 않다. 그러나 아렌은 속내로 근위대대가 충분히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반델이 보여주는 모습이 그녀에게 그런 확신을 주었다. 또 레이먼트 소장의 말처럼, 결국 현지 부대들은 작전을 수행할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도 그랬다.

"추가적으로 발언하실 분 계십니까?"

고요했다. 그것이 긍정인지 부정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 마지막으로, 돌파 임무에서는 제가 합류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는 웅성거림이 크게 일었다. 그건 소장도 마찬가지다. 레이먼트 소장은 특히 극구 반대했다.

"일전의 헤반 사령관[1]께서도 야전에서 작전을 수행하시다 크게 다치셨습니다. 크게 실효가 있는 전략은 아닙니다."

"단순히 호기가 아니라, 제 판단으로 필요 하에 하는 일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렌이 극구만류에도 그렇게 말하자 그들은 별 말을 올리지 않았다. 이후 기나긴 회의가 끝나고, 그 시간 내내 뒤에서 아렌을 지켜보던 반델이 아렌에게 다가온다.

"중장님."

"왜"

"근위대대가 후방에서 특수전을 하는 임무, 다시 고려하실 수는 없습니까?"

아렌은 반델이 예상 외의 말을 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왜? 반델 자신이 근위대원이니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 반델은 아렌의 표정을 보고는 그녀의 의심을 거두려고 했다.

"단순히 편을 드는 게 아닙니다. 한번만 더 고려해주십시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미 결정한 사항이야. 됐어."

"..."

"소령이 항상 나를 옹호한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네."

"제가 아첨꾼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선, 알겠습니다."

벌써 시간은 5시 반이었다. 창밖에서는 노을이 졌다.

"반델. 오늘은 이만 퇴근해. 어차피 영내에서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고 약속도 있어서"

아렌은 반델의 어깨를 토닥였다.

"...알겠습니다."

아무리보아도 반델이 자신을 감시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렌은 도대체 반델의 정체가 무엇인지 점차 어려워졌다. 감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느슨하고, 연기라고 말하기에는 아주 자연스럽고, 근위대원이면서도 자신의 편을 들고, 또 그것이 완전히 아첨도 아니고, 아렌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대우를 하고 있다. 의심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수준으로.

"중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쉬어."

반델이 돌아가고, 아렌도 벗고 있던 외투와 군모를 벗었다. 땀을 닦고, 조금 편하게 검정색 셔츠만 입고 건물을 나왔다. 1층으로 내려오자, 그곳의 라운지에 워렛이 앉아있었다. 개방된 장소다.

"워렛 경. 왜 이런 곳에 앉아있지? 더 편안한 곳에서 이야기 나눌 생각인데"

"... 바깥이 편합니다."

아렌이 원하는 건 밀폐된 공간에서의 대화였다. 워렛은 왜인지 전혀 반응해주지 않는다.

"안에서 대화할 생각은 없나?"

"그닥 없습니다."

워렛은 그렇게 말하고 주변을 살폈다. 아렌은 낌새를 알아차렸다. 워렛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걸.

"배를 타고 건너와서 그런지 힘든 모양이네"

"맞습니다. 매우 힘듭니다."

"..."

동생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저를 이해해주십시오."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어. 굳이 그.."

"아니오"

워렛은 아렌의 말을 끊었다.

"저를 이해해주십시오."

"어..? 그래."

"가보겠습니다."

워렛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대로 사라졌다. 마치 대화를 피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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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렌 직전의 호소니 야전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