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락워크 드 레지스탕스
군사전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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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군에서 전향한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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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선은 실종/사망한 인물 / ♀는 여성 전향자, ♂는 남성 전향자

클락워크 드 레지스탕스 3등급 전향자
김수진
Kim Su-jin / 金殊珍
김수진 (2026년)[1]
출생 2001년 6월 7일(2001-06-07) (28세)
출생지 대한민국 울산광역시 남구
거주지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중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성별 여성
본관 성씨 전주 김씨
직업병 기갑병
가족 관계 부모
오빠
연인 관계 현상영
학력 비공개
종교 개신교
MBTI 비공개
소속 부대 (7기)
과거 소속 부대 청룡제2사단(제2기갑전투단)
복무 기간 2026년 4월 10일 ~ 2027년 12월 31일
과거 복무 기간 청룡제2사단(제2기갑전투단)
2023년 12월 29일 ~ 2026년 4월 10일
최종 계급
근무 클락워크 드 레지스탕스 울산본부
참전 청룡파-클락워크 전쟁
신체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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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cm
몸무게 45kg
혈핵형 A형
쓰리사이즈 B85(C컵) / W60 / H90
발 사이즈 240mm
시력 1.0(교정시력) / 0.8(교정시력)
성 생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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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감대
링크


김수진(金殊珍 / Kim Su-jin, 2001년 6월 7일 ~)은 클락워크 드 레지스탕스 소속 프라우다 연대의 기갑병과 군인이자 청룡제2사단 전향자이다. 마주치는 전차마다 파괴시켜 국군과 클락레에 청룡군의 미하일 비트만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생애

김수진은 울산광역시 남구에서 태어났다.

장래희망으로 육군장교를 지망했기에 밀리터리에 관심이 많았다. 학창시절 동기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에서 실시된 직업교육을 군인으로만 들었다고 하며 밀덕성향의 남학생들과 어울려다니는 밀덕소녀였다고 한다.

청룡파가 정국을 장악한 시점에 국군이 해산되면서 결국 육군장교의 꿈을 접어야 했으나 청룡군의 모병선전물에 넘어가 청룡군에 지원하여 기갑병과 교육을 받고 청룡사관학교 1기생으로 이수하여 청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청룡군 복무

청룡군이 보유한 전차 대부분이 국군이나 중동으로부터 얻어온 장비였기에 그녀 역시 K2 흑표에 탑승하여 청룡파-클락워크 전쟁 초반 기갑장비가 전무했던 클락레의 지상전투전력을 일정 부분 붕괴시키는데 일조했다. 이때부터 청룡군의 미하일 비트만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전쟁 중반기부터 청룡군에서 불어닥친 만성적인 물자부족으로 인해 청룡군 지휘부가 K2 흑표를 반격작전을 위해 모조리 예비자원으로 돌리거나 최우선 전투부대로 재배치시켜버리는 바람에 전향 몇 달 전부터는 중동에서 도입해 온 T-90에 탑승했다.

마주치는 클락레 전차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다녀서[1] 2024년에는 제2급 전투무공훈장, 2025년에는 제1급 전투무공훈장을 수훈받았다. 10대 격파시 주어지는 전차격파장까지 여러개 부착하고 있었다고 하며 당시에는 전투복에 붙은 자신의 훈장을 보고 만족스러워했다고.

2026년 1월 15일 청룡제2사단 제2기갑전투단이 선봉에 서서 인천을 공격했고 김수진도 부단장으로 참전했다. 클락레 측의 전차를 효과적으로 파괴하면서 청룡군 보병들의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하지만 클락레 측은 3사단 아이솔레이션 사단과 국군 8군단의 잔존 기계화 병력을 이용해 인천지역 탈환에 돌입했고 김수진 역시 맹렬하게 반격했지만 직후 국군의 공격으로 보급로가 차단되고 제2사단의 정예병력 절반이 인천에 포위됨과 동시에 위기를 맞게 되었다. 물론 포위망을 탈출하여 재정비한후 재반격할 수 있었지만 청룡군 지휘부에서 절대후퇴금지 명령을 내리고 제2사단 사단장 윤우인이 이에 동의하면서 탈출에 필요한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2월 15일에는 포위된 상태로 제2사단은 비전투인력까지 전투에 투입했음에도 전투가 가능한 병력이 21%까지 떨어지고 인천 외곽에서 포위되지 않았던 제2사단 잔존병력이 포위망을 뚫어 포위된 병사들을 구원하기 위해 공세를 펼쳤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김수진의 제2기갑전투단 역시 피해가 심각했는데 지휘관 전사에 겨우 7대의 전차만 남아있었고 그것도 3대는 엔진 및 부품 고장으로 가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김수진은 전차호위병력까지 모두 일선으로 나가있는 상황에서 더이상 전투다운 전투를 치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가동불가능한 전차를 이용해 진지를 구축하고 가동이 가능한 4대의 전차를 도시 곳곳의 보병지원용도로 돌려버렸다. 이후 잔존 전차들은 김수진의 명령에 따라 피해없이 클락레의 전차를 파괴했다.

2월 17일 클락레의 공격을 방어하던 중 클락레 대전차공격에 김수진이 타고 있던 전차가 피격되면서 전투불능이 되면서 본인을 제외하고 모두 전사했다. 본인은 겨우 살아남아서 전차를 빠져나왔는데 직후 클락레 병사들에게 발견되었으며 그들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되었다.

김수진은 서울포로수용소로 이송되어 수감되었으며 정신 치료와 감정 회복 치료 등을 통해 자신은 어느 정도 회복하고 나서야 청룡파에 몸 담았던 바보같은 본인을 깨닫게 되었으며, 결국 이를 통해 클락레 측으로 전향하기로 했고 2026년 4월 10일 프라우다 연대에 새롭게 창설되는 전차중대의 전차장으로 배치되었다. 전향자라는 특성 때문에 클락레 상층부가 전차중대의 중대장으로 임명되는 것을 반대했다.

전향 이후

4월 20일 프라우대 연대는 세종에서 발생할 전투에서 아군의 측면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고 세종시 외곽으로 이동했다. 5일 뒤 세종 전투가 발생하자 클락레의 보병들을 재창설된 청룡군 제2사단으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4월 25일 제1차 대전 전투에서 참전했지만 청룡군의 대전차병력을 앞세운 거센 반격에 본인도 전차피격에 오른팔이 부러져 죽을 뻔했고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후퇴했다. 이후 프라우다 연대는 재충전을 위해 국군 수도군단과 교대하고 세종시 외곽에서 휴식에 들어갔으며 김수진도 휴식을 겸해 치료를 받았다.

8월 23일 재충전을 끝낸 프라우다 연대는 다시 대전 외곽으로 이동하여 국군 수도군단과 연합하여 대전을 공격하였다. 청룡군의 전력이 상당히 약화된 상황이었기에 9월 2일 김수진이 이끄는 전차와 일부 보병들이 청룡군 제2사단 본부로 쓰이던 대전시청을 점령하며 승기를 잡았다. 곧바로 청룡군을 밀어붙였으며 9월 12일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2027년 3월 7일 휴전상태가 깨지며 클락레가 수도권 진공 작전을 펼쳤고 프라우다 연대도 경기도 지역으로 이동하여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프라우다 연대 전차중대장으로 진급했다.

전차중대를 이끌며 청룡군에게 공포를 안겨주었고 청룡군의 얼마 남지도 않은 전차들을 효과적으로 파괴했다.

동년 4월 15일 제1차 서울공방전에 투입되었으나 측면을 맡았던 국군 제1보병사단의 공격이 막히면서 후퇴했고 5월 12일 재공격을 감행해 김수진의 전차는 청룡군의 마지막 전차라고 불리는[2] 345호 전차와 356호 전차를 혼자 파괴하면서 청룡군의 기갑전력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6월 3일 종로구의 총통 관저 공격에 앞서 클락코 본부의 명령에 따라 전차의 진격을 중단시키면서[3] 김수진의 전쟁은 그대로 종결되었다.

전쟁 종료 후 클락코 창립자 겸 클락레 최상지휘관인 김주영에게 3등급 전향훈장(청룡군 및 친청룡파 군사에서의 전향)을 수훈하였으며 자신의 전차에서 포수 역할을 맡았던 현상영과 연인관계로 발전하였으며 대한민국 국군 재건위원회에 소속되어 클락레 소속 군인에서 대한민국 국군 소속으로 전출되며 꿈에 그려만 왔던 대한민국 육군 대위로 임관하였으며, 전쟁으로 인해 전차대대가 창설된 제50보병사단 소속 기갑대대 장교로 근무하고 있다.

상훈

  • 클락워크 드 레지스탕스 3등급 전향훈장(2027)

여담

각주

  1. 2024년 초반부터 2025년 중반까지 클락레의 전차승무원들은 훈련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2. 전차는 더 있었지만 모두 부품 부족으로 가동불능 상태였다.
  3. 총통관저에 숨어있는 청룡군 잔존 병력에 의한 전차손실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