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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大韓帝國
국기 국장
홍익인간 보국안민
(弘益人間 輔國安民)
이중제국 성립 이전 대아대전 이후
대한제국 대한민국 제1공화국
대일본제국 일본국
상징
국기
태극기
국화
벛꽃
황실 상징
이화문 (황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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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대조선국 건국
1850년 대한제국 선포
1902년 일본과 연합제국 결성

지리
수도
한성 (대한제국)
동래부 (사실상 행정수도)
최대도시
수도권
면적
220,748km²
위치
지구
동북아시아 한반도, 남만주 등
접경국
일본국, 트란스아무르 정부, 만주 자치령 등
인문환경
총 인구
약 5천만 명
공용어
한국어, 일본어 (법정 공용어)
공용 문자
한글, 한자, 가나 (법정 문자)
민족
한국인 92%
일본인 7%
그 외 1%
국교
국교 없음 (정교분리)
종교 분포
유교 23%, 불교 21%, 기독교 18%
신토 10%, 그 외 28%
군대
대한제국 육군 53만 명
해군 연합함대 10만 명
정치
정치 체제
사회자유주의
입헌군주제, 한국식 의원내각제, 단원제, 단일국가
국가 원수
융희황제 이척
행정 수반
한국 통감 이시영
여당
신민당
경제
경제 체제
국가주도 자본주의 계획경제
통화
제국 원(円)

개요

1392년 8월 5일에 태조 '무신' 이성계가 건국한 나라인 조선의 후신이다. 1850년 고조 이환이 백두산에서 환구단을 쌓아 환 제국과 명 제국의 뒤를 이은 적법한 동아시아의 유일한 천자국을 자처하며 건원칭제를 감행하였다. 1952년 기준 융희황제 이척이 대한제국의 3대 황제로서 통치하고 있다.

역사

1592년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열도를 통일하기 직전, 노부나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다이묘들이 폭주하며 조선을 공격하며 벌어진 '임진왜변'으로 인하여 잠시 조선과 일본사이의 교류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는 조선을 적으로 돌릴 생각이 전혀 없었고, 1603년 오다 막부가 수립되면서 조선에 통신사를 파견하며 교류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나 이미 임진왜변으로 조선은 상당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고, 일본 측 통신사는 문전박대를 받으며 도로 추방된다. 이로 인해 조-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1694년 청나라에서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지는 중화 패권주의 시대가 열린다. 청나라는 주변 조공국들의 국력이 체제를 위협할 만큼 신장되는 것을 매우 우려하여 주요 산업 기술들에 대해 모조리 금수조치를 취해버렸고, 청나라 함대가 인도양에서 태평양으로 오는 길목을 장악하면서 유럽산 문물이 주변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다. 그로 인해 조선과 일본 내부에서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고, 양국은 점차 청나라 패권을 무너뜨려야 할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청나라의 남아시아 장악과 인도양 진출로 이룩한 체제는 신흥 강국 미국의 통상 요구로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한다. 1798년 일본으로 미 군함이 개항을 요구하자 거절한 사건을 시작으로 수 백년간 끊겼던 조-일 양국의 관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였다. 1823년 조일 양국이 서로 협력하여 청나라의 산업 기계 대신 미국의 선진 문물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으며 수 백년간 정체되었던 기술이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그 즈음 조선이 태평양을 통해 양이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청 도광제는 1830년 "상국의 윤허도 없이 외국과 함부로 통상을 하였다"라는 명목으로 조선에게 사신단을 지속적으로 보내 압박을 하였으며 결국 1833년 겨울에 최종적으로 서양과의 모든 교역을 끊으라는 청의 최후통첩이 조선에게 전달되었다. 당시 조선국의 23대 국왕인 순조는 더 이상 오랑캐들의 미개한 행위를 참을 수 없었으며 약해진 청나라와 점점 강력해진 조선국의 힘을 바탕으로 그들의 최후통첩을 거절하였다. 이에 분노한 도광제는 25만의 군대를 동원해 1834년 조선을 공격하였으나 견고하게 건설된 압록-두만 참호선과 선진화된 교리, 그리고 기존의 무기 체계가 아닌 서양에서 들어온 신식 무기를 통해 청군을 격퇴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대한제국 선포

이 전쟁을 통하여 조선국은 자주독립과 청나라와의 동등권을 얻었으며 조선국 국왕은 대조선국 대군주라는 칭호로 변하였다. 그러나 전후에 조선 또한 막대한 희생이 있었는데 기존에 축적했던 무기와 국력이 1차 조청전쟁에서 4할가량 소진되었으며 이것을 복구하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들었다. 이때 오다 막부가 당시까지만 해도 비슷한 국력이었던 조선을 앞서고 나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1836년 순조가 사망하였으며 세자였던 이영이 즉위를 하였다. 그의 치세동안에는 전후에 혼란스러웠던 국내를 진정시키는데 총력을 다하였다. 이때 '김좌근' 같은 충신의 도움으로 부정부패와 구악을 일소하는데 성공하였다.

1849년 7월 조선의 24대 국왕이 사망하였다. 세자였던 이환이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으며 묘호는 '문조'로 결정되었다. 조부가 이룩하고 부친이 닦아놓은 조선국을 이은 25대 국왕인 이환은 1850년 1월 신하들과 유생, 그리고 민중들의 요구에 따라 백두산에서 연호를 광무로 하여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도광제는 길길이 날뛰며 전쟁을 선포하였으나 선포 후 한달만에 급사, 지휘부가 마비된 청군을 압도적으로 섬멸을 하여 간도와 대련 등 남만주의 주요 영토를 한국에게 넘겨주는 '심양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광무황제는 수십년간 대한제국을 통치하며 '새마을 운동'같은 개혁운동으로 한반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이후 한일제국 혼혈 황자인 이척이 1902년 대한제국의 2대 황제 순효황제 이철과 일본 메이지 덴노에게서 제관을 물려받아 이중제국이 수립되었다.

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