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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60년, 수도 소코(桑港)의 시내 |
아메리카 북태평양 연방(일본어: アメリカ北太平洋連邦, 영어: American North Pacific Federation), 약칭 북태평양 연방(일본어: 北太平洋連邦, 영어: North Pacific Federation)은 대일본제국이 미국과 캐나다 서부 지역에 세운 괴뢰국이다.
국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접하고 있다. 북극해의 보퍼트해에서부터 캘리포니아만까지 이어진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북태평양 연방이 멸망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해안선이었다. 동쪽으로는 캐나다 공화국과 미합중국, 남서쪽에는 멕시코 합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알래스카 부근으로는 일본 소유의 알류샨 열도와, 시베리아 추콧카가 있다.
1960-70년대 최고 호황기를 누렸으며 1962년 기준 GDP는 약 270억 달러 였다. 이는 대동아공영권 내에서 일본, 중화민국, 대만주제국에 이어 4위에 들어가는 규모이다.
역사
국호
공식 국호는 아메리카 북태평양 연방으로 이외에 미주북태평양연방(美洲北太平洋聯邦), 태평양 연방(太平洋聯邦)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사회에 거주하는 미국인들 한정으로 일본령 태평양국(Japanese Pacific State)으로 불리곤 한다.
건국
1945년 캘리포니아에 상륙한 일본은 1946년 1월 샌프란시스코를 점령한 후 알래스카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이어지는 괴뢰국 구상을 계획했다. 계획 과정 중 건국 초기의 만주국을 본떴으며 만주국과 닮은 점이 많은 국가이다. 샌프란시스코-뉴욕 조약이 체결된 후 1949년 9월 16일 아메리카 북태평양 연방의 수립을 선포했다. 수도는 샌프란시스코, 통감으로는 태평양 전쟁의 전쟁 영웅 타카기 소키치를 내세웠다. 북태평양 연방의 군대는 웨스트 코스트에서 나오는 경제력으로 광동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본의 보물 주머니가 되었다.북태평양 연방의 군대는 일본 본토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기술과 독자적인 개발로 만주제국이나 중화민국과 맞먹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제국군 소속 헌병대에게 북태평양 연방 내에서 자유로운 통치권을 갖고 치안 관리를 맡게 했다.
흑인봉기와 멸망
1970-80년대 흑인 공산주의 저항군의 테러 활동과 석유 파동 등 온갖 경제 위기가 닥쳐오면서 이를 빌미로 미국인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비밀리에 조직적으로 테러를 조장하는 세력의 준동과 함께 소요 사태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전국적인 혼란상을 타고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들은 더욱더 그 활동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제3차 중일전쟁과 검은 혁명을 신호탄으로 온갖 세력들이 난립하면서 북태평양 연방은 붕괴되어 내전이 일어났다. 이후 공산주의 세력에게 정부군이 패배하면서 북태평양 연방은 멸망했다.
경제
사회
인구
일본인 이주 정책
북태평양 연방의 인구는 대부분 백인과 일본인 이민자로 구성되어있다. 북태평양 연방 건국 이전부터 미국 내에는 이민자로 구성된 약 59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이 존재했다. 건국 이후 여러가지 이민 정책들이 시행되어 1949년부터 1960년 사이에 1000만 명의 일본인 이주를 계획하였으나 멸망 전까지 이주한 일본인의 수는 62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인종 차별의 강도
국가의 모토인 대화흥륭(大和興隆), 협화공영(協和共栄) 하에 일본인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대인의 존재를 용인하지만 사실상 이주한 일본인들의 지배 아래 백인과 흑인이 피지배층을 이루는 사회구조가 형성되었다. 대부분 일본계 시민이 더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리고, 경찰과 군대의 대부분이 일본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일본인이 이 나라에서 더 큰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흑인들에 대한 대우는 본래 유럽 국가나 미국과 다르지 않았다. 일본인 이주민들은 처음 보는 흑인들의 검은 피부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했다. 다른 인종보다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가장 많은 차별에 시달렸으며, 이는 후에 흑색 공산주의 저항군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조직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유대인 자치구?
삼국동맹이 와해된 후 일본 정부는 북미 대륙에서 독일의 노르다메리카 국가판무관부를 견제하기 위해 유대인 난민을 북태평양 연방으로 이주시키는 계획을 추진했다. 노르다메리카 국가판무관부와 미국, 캐나다 등 에서 박해를 피해 이탈한 유대인을 북태평양 연방으로 이주시켜 유대인 자치구를 건설 하려는 계획이었다. 계획은 성공적인 효과를 봤고 북아메리카에서도 유대인 적대 정책을 펼치던 독일은 이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북태평양 연방의 주 개편 과정에서 네바다 주에서 분리된 라스베이거스 주는 유대인 자치구를 건설하기 위해 분리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실제로 라스베이거스는 북태평양 연방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도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