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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미합중국(영어: United States of America, USA), 약칭 미국(영어: America)은 북아메리카에 존재했던 연방제 공화국이다.
1776년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건국된 미합중국은 1800년대 두각을 드러내며 영토를 확장했다. 1860년대에는 농업 중심의 남부와 산업화 중심의 북부 간에 노예제 확대 문제를 두고 미국 남북 전쟁이 일어났다. 북부가 승리하면서 노예제를 폐지하고 영구적인 국가 분열 사태를 막았지만 미국 내에서 인종 간의 갈등은 여전히 문제가 되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미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에 패배하면서 미국은 몰락했고, 전후 국토의 6할을 잃었다. 3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2차 세계 대전 당시 잃었던 고토 수복에 성공했고, 이후 미연합국이 출범하면서 전신이 되었다.
역사
설명 |
출처 |
정치
참고
비고(Obsidian)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뉴딜 정책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의 경제 정책 실패를 본 미국 국민들이 뉴딜 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화당이 의석 수를 대폭 늘리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고, 민주당 내에서도 남부 민주당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뉴딜 정책은 점차 동력을 잃어갔다.
결국 인기가 떨어진 루스벨트는 8년의 임기를 마치고 3선 도전은 무리라고 판단, 그는 194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대신 자신의 측근인 해리 홉킨스를 후보로 내세웠다. 하지만 접전 끝에 공화당의 온건파 토마스 듀이가 당선되었다. 듀이는 보수적인 정책을 추진했으나, 경제는 오히려 루스벨트 시절보다 더 악화되었고, 외교적으로는 고립주의를 강화하며 미국의 국제적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미국은 전쟁을 피하려 했지만, 전쟁은 미국을 피해가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과 약화된 영국과 소련, 그리고 여러 우연이 겹치며 미국은 힘겨운 싸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1944년 대선에서 듀이는 전쟁 중 지도자의 연속성을 내세우며 재선을 노렸다. 민주당은 제임스 A. 팔리를 후보로 선출했지만, 당내 진보파인 헨리 A. 월리스가 진보당을 창당하며 분열을 일으켰다. 결국 듀이는 근소한 차이로 재선에 성공했으나, 전쟁의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본토 상륙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며 그의 정권은 한계에 봉착했고, 이로 인해 듀이 정권 내 자유주의 온건파는 사실상 몰락하고 말았다.
1948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해리 S. 트루먼을 영입하며 공화당의 로버트 A. 태프트를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정치적 분열은 계속되었다. 좌파는 헨리 A. 월리스의 진보당으로, 남부 민주당 성향의 우파는 조지 S. 패튼이 이끄는 국민당으로 각각 갈라졌다. 독일의 상륙 이후 아이젠하워는 수도를 덴버로 옮기고 결사항전을 외쳤다. 하지만 1년 만에 테네시주의 주도 내슈빌이 함락되면서 반전 여론이 높아졌고, 1949년 독일과의 종전 협정[3]을 체결하며 미국은 결국 패전했다.
패전 이후, 미국은 급격한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 1949년, 트루먼은 패전의 여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임기 중 사임한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버튼 K. 휠러의 임기가 끝난 1952년은 혼란의 절정기였다. 이 선거에서 공화당의 에버릿 덕슨이 당선되었지만, 4개 정당 모두 선거인단을 확보하면서 미국의 전통적인 양당체제가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패전의 책임을 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은 서로를 비난했으나, 여론은 민주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1952년 당선된 에버릿 덕슨 대통령은 패전 이후 무너진 미국을 재건하려 했으나, 오히려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로 인해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이 틈을 타 군소 정당들이 힘을 모아 ‘주권연합’이라는 선거 연합체를 결성했다.
주권연합은 1956년 선거에서 헨리 M. 잭슨을 연합대표로 선출하여 대통령에 당선되며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어냈다. 이후 1960년 선거에서도 주권연합의 조지 월리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조지 월리스는 집권 후 전시 상황에 의한 선거 잠정 중단을 선포했고, 원래라면 1964년 11월 3일에 예정된 대선을 주권연합이 정말로 시행하지 않고 야당의 정치 활동을 제한하자 다수의 정부 요인이 민주당 출신인 오대호 지역 주들이 오대호 정부를 구성하며 연방 탈퇴를 선언했다.
외부 문서
- ↑ 이스트 코스트(East Coast) 지역은 전역이 국가판무관부에 합병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상징적인 일부 도시들은 독일식 명칭으로 개칭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로, 뉴욕(New York)이 노이 이오르크(Neu Iork)로, 워싱턴 D.C.(Washington D.C.)가 비스마르크슈타트(Bismarckstadt)로 개칭된 것이 있다.
- ↑ 임기 도중 사임
- ↑ 1949년 6월 동안 워싱턴 D.C.에서 일본측과 독일측이 영토 분활에 대해 협의했고, 최종 종전 확정 조약은 각각의 점령지인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 8월 13일, 생방송에서 공동으로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