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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침공 Battle of Iberi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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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1947년 8월 8일 ~ 1947년 9월 20일 | ||||
장소 | 이베리아 반도 | ||||
원인 | 대독일국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침공 | ||||
결과 |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항복 | ||||
영향 | 대독일국의 이베리엔국가판무관부 수립, 스페인과 포르투갈 정부의 망명 | ||||
교전국 | 추축국 | 스페인국 포르투갈 공화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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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추축국 | 스페인국 포르투갈 공화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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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500,000명 | 302,000명 | |||
† 표시는 사망 |
개요:이베리아를 향한 야욕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실상 승리를 이루어낸 독일은 아직 지중해의 연합국 세력을 경계하고 있었다. 특히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지브롤터 해협의 확보는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연합국인 이탈리아 왕국과 북아프리카에 있는 프랑스와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지역이었다. 지브롤터는 영국이 독일에게 패배한 이후 스페인의 군대가 들어서며 점령해 영토로 삼은 지역이었다. 1947년 7월 30일, 독일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게 두 국가가 보유한 식민지와 지브롤터의 양도를 요구했다. 그의 대가로 무상 차관을 제안했지만 형편 없는 수준의 금액인지라 사실상의 무상 양도에 가까웠다. 이를 국권 침해라고 여긴 스페인과 포르투갈 정부는 단호히 거절하며 독일과의 관계는 파탄났다.
개전:라코루냐 상륙
두 국가의 거절 의사를 확인한 독일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쟁을 선포했다. 8월 10일, 잉글랜드 왕국 함대의 도움을 받은 크릭스마리네는 이베리아 반도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라코루냐에 독일군이 상륙하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스페인군의 격렬한 저항에도 함대 포격과 공군의 지원을 받은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종식: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항복
아돌프 슈트라우스 장군은 포르투갈을 먼저 항복 시키고 스페인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8월 30일, 포르투가 함락되었고 9월 10일에는 리스본이 함락 되며 포르투갈이 항복했다. 포르투갈이 항복하자 피레네 산맥에서 대기하고 있던 독일군은 피레네 산맥을 넘기 시작했다. 개전 불과 3주만에 양면 전선을 형성하게 된 스페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고, 패색이 짙어진 9월 18일, 프랑코 정부는 모로코로 탈출하고 이어 20일에는 마드리드가 함락되며 스페인은 항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