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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國皇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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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國第36代皇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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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末代國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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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生 | 623年 | ||||||||||||||||||||||||||||||||||
百濟東原城 (現 朝鮮國東原道東原府) | |||||||||||||||||||||||||||||||||||
死亡 | 684年7月9日 | ||||||||||||||||||||||||||||||||||
朝鮮東原城 (現 朝鮮國東原道東原府) | |||||||||||||||||||||||||||||||||||
陵墓 | 朝鮮國東原道東原府進廣皇陵 | ||||||||||||||||||||||||||||||||||
在位期間 | 朝鮮國第36代皇帝 | ||||||||||||||||||||||||||||||||||
660年7月18日 ~ 684年7月9日 | |||||||||||||||||||||||||||||||||||
百濟末代國王 | |||||||||||||||||||||||||||||||||||
660年7月18日 ~ 678年5月17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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槪要
아사달의 제36대 황제.
부여 대부터 고구려 대까지의 추존 황제들과 백제의 추존 황제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초대 황제이며 현재까지도 쓰여지는 '아사달'이라는 국명을 정립한 황제이다.
백제멸망전 이후 아버지가 당나라에 끌려가고 국토를 유린당하던 백제를 기사회생케 하였으며 더 나아가 삼국을 통일하고 당나라라는 외세의 간섭을 물리쳐냈다. 이러한 위업을 인정받아 聖祖라는 묘호를 받게 되었다.
아사달인이 존경하는 위인 순위에서는 항상 Top5 안에 드는 인물이다.
生涯
623년, 강황제(의자왕)의 5남으로 새벌성(사비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631년 어린 나이에 무황제(무왕)에 의해 왜국으로 보내졌다. 그는 그곳에서 왜인 여성과 결혼하여 왜국에 정착하다 싶이 생활하였다.
百濟復興運動
660년 그가 일본에서 생활하던 당시 백제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결국 곰나루성(웅진성)의 성주 禰寔進이 강황제와 태자를 체포하여 당군에 항복하면서 백제의 중앙 세력은 멸망하였다. 이후 발생한 백제부흥군의 세력이 커지고 어느 정도의 안정이 확보되자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부흥군 세력은 왜국에 진광제의 귀환을 요청하였으며, 왜국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30년만에 백제 땅을 밟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