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본 월본의 시대 구분
明月
메이우

奛和
헤이와
永安
에이안

2020. 2. 11. ~ 2021. 09. 18.

개요

월본 월본국의 연호이자 시대 구분. 마루 국황이 월본의 제 48대 국황으로 즉위한 2020년 2월 11일부터 사용되었다. 제국선포 다이치 이래 6번째 연호이다. 2020년 2월 10일까지는 메이우 13월에 해당하고 동년 2월 11일부터 헤이와 시대에 해당한다.[1] 카페 개설날짜[2] 기준으로 이어지는 전자정부설립 기념일이 헤이와 5월에 포함되었다.

2021년 9월 마루 국황이 아라 친왕에게 양위를 선언함에 따라 헤이와 시대는 2021년 9월 18일을 끝으로 마무리되고, 9월 19일부터는 에이안 시대가 된다. 약 1년 6개월만에 연호가 바뀌는 것이다.

글자를 독음하면 '황화'이고 월본식 고유명사로 표기시에는 '헤이와'로 표기된다. 네이버 카페에서 진행된 연호의 순으로는 5번째이다. 연호 중 실제년도가 바뀌는 4번째 시대이다.[3]

정치

헤이와 시기는 침체기로부터 탈피하려는 시도가 여러 있었고 그에 따른 손실도 발생하였다. 메이우 사변의 피해자였던 구창모 전 총리가 복권하게된 시기이며 UVN과 결별하며 자립하게되는 시기이다.

  • 헤이와 시기 초반, 가이아 유니버스의 개장 기대로 대외활동이 활발했으나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 우렉시트 이후 전면 중단되었다.
  • 헤이와 시대와 동시에 하은우 정부가 출범했다. 전임 과도혁신내각에 이어 잠시 쉬어가는 시기를 표방하여 정치적 안정기를 가져왔지만 분위기는 극도로 무거워지고 또 다른 침체기가 찾아왔다. 일각에서는 안정화가 침체기를 불러일으켰다며 정치무용론과 무능론를 주장했다. 하은우 정부가 휴면령을 선포한것에 대해 일부가 극렬히 반대했다.
  • 민주우가 헤이와 2월에 돌연 복귀하여 월본민주당에 복당하여 당권을 장악하고자 하였고 한성훈 대표와 마찰을 빚었다. 이후 탈당하여 새로운시민당을 창당하였다.
  • 하은우 정부가 '휴면령 선포'에 따른 거센 반발에 직면하여 내각총사퇴와 국회해산을 하여 월본 정계가 다시 크게 주춤했다. 이로써 월본 정계에는 인사가 몇 남지 않게된다.
  • 휴면령으로 카페 관리의 효율화를 위해 제정복고[4]를 제안하였으나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여 철회되었다.
  • 하은우 정부 당시 가상국제연합(UVN)으로부터 양해각서를 제출하라는 권고안을 받았고, 이어 월본의 우려라는 문건[5]을 작성하여 파문이 났다.
  • 한성훈 정부에서는 창작인 출신답게 군사설정부터 만들면서 정치적 문제에 대해 탈피하여 다시 활동력있는 국가로 변모하였음을 보여주었다.
  • 민주우 정부에서는 월본의 과거사로부터 외교관계 정립하고자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민주우 총리는 당선 직후 첫 행보로 가상국제연합 지도부를 전격 회동하여 UVN의 가이드라인를 준수할것을 확답했다고 한다. 이후 604 조치로 지난 메이우 사변과 그에 관한 인물들을 총리령으로 제한하였다. 이 604조치로 인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민주우 총리는 지지율이 큰 폭을 하락하며 위기를 직면했다.
  • 이어 월본국 법률 카페북에 게시된 기피인물지정 리스트가 신원불상의 민원에 의해 게시중단요청되며 민주우 정부와 그 배후에 있는 가국련의 정책에 큰 반감이 생겼음을 증명하게 된다. 민주우 정부가 붕괴됨에 따라 일시 휴면령[6]을 선포하였지만 국황사가 수습을 시작하였다.[7]
  • 지난 정부의 과오였던 604조치를 해제하고 구창모, 이맹박 등 과거 인물들이 급히 귀국하여 국내 상황의 재건을 도왔다.
  • 국황사는 국가적 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가상국제연합이 주장하는 가이드라인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전격 사면을 발표하였다.
  • 대사면령에 의해 대거 유입되었고 선거도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지만 다소 급진적으로 거사를 치루는 것에 우려되기도 했다. [8]
  • 반국련 신흥 정부와 의회는 필리버스터를 통해 결국 헤이와 12월 18일 월본의 가상국제연합 탈퇴와 그의 지도부의 활동 제한을 선언하며 가상국제연합 가입 약 3년만에 UVN을 탈퇴하게 된다.
  • 가상국제연합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대체 인프라 확충을 위해 제이위키와 협력하게 되었고, 오록스 포럼과 협력을 맺게 되었다.
  • 헤이와 12월 23일 진연국과 합병 논의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졌고 철회되었다.
  • 나의재 내각에서는 국회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동맹을 체결했다며 논란이 일었고, 원로들의 조언을 무시하는 바람에 내각불신임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
  • 나의재 전 총리는 돌연 닉네임을 '박정희'로 바꾸고 쿠데타를 자행했다며 주장했지만 반발#로 인해 막을 내렸다.
  • 제11대 의원 총선거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주장[9]되었고 특별조사처에서 특정인물에 대해 용의자로 지목, 한성훈 후보가 검찰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지만 흐지부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성훈 변호인의 태도와 '검찰'의 법적근거가 명확하지 않음이 대립하여 한차례 논란이 되었다.
  • 결국 2주가 흘러 이해수 내각이 출범하였다. 갖은 사건과 논란 이후 이해수 내각, 이승배 대행내각, 구창모 내각을 거쳐 안정화가 이루어지는 중이며 2021년 7월 기준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 활동이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월본국의 정당 계보
헤이와~에이안 시대
(2020年 2月 12日 ~ 2022年 1月 21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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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외교

선거

프로젝트

사건/사고

인물

탄생한 인물

떠난 인물


  1. 월본에서의 연호 사용법은 실제의 1개월이 월본 연호 1월이다. '년'표기없이 월단위로 숫자가 올라간다.
  2. 월본국 전자정부 설립기념일은 매년 6월 5일이다.
  3. 1 17년 → 18년 : 다이세, 2 18년 → 19년 : 세이카, 3 19년 → 20년 : 메이우, 4 20년 → 21년 : 헤이와
  4. 매니저인 국황이 직접 카페를 관리하여 통치하는 일
  5. '월본 우려' 문건의 내용에는 수보로프, 타락여우 등 신상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명확히 하라는 지시문이 담겼다.
  6. 일시적 휴면령이라고는 하나 지난번과 다르게 무기한에 가까운 폐쇄령이었다.
  7. 국황사가 수습할 당시 하은우, 한성훈, 민주우 정부를 지나면서 서로의 진영을 내치고 내보내어 정계인사가 거의 없다시피하여 막막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던 와중 한성훈과의 대담에서 구창모와의 화해와 결합이 이루어졌고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8. 당시 국내상황은 UVN 가이드라인를 충실히 따랐지만 그만큼 활동하던 사람들이 없어지는 바람에 최대 위기를 겪게되었지만 UVN은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했으며, 또한 UVN도 과거와 다르게 개별가국 지원 중단과 태세전환으로 월본과 척을 지게된다. 이런 반감이 동시에 UVN 가이드라인 등에 조치되어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동조하게 되며 월본은 '탈국련'노선에 합류하게 된다.
  9. 이 선거는 구창모 신임 선관위 위원장이 주재로하여 네이버 폼 투표가 첫 도입한 선거로, 유권자에게 직접 투표소 접근권한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여 본인 명의로된 다른 네이버 계정도 또 접근이 허용된다는 허점을 노려 부정투표가 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