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634, 2024 - | CC-0



대일본제국 내각총리대신
[ 펼치기 · 접기 ]
메이지 시대
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이토 히로부미 구로다 기요타카 야마가타 아리토모 마쓰카타 마사요시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이토 히로부미 마쓰카타 마사요시 이토 히로부미 오쿠마 시게노부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토 히로부미 가쓰다 다로 사이온지 긴모치
제13대 제14대
가쓰다 다로 사이온지 긴모치
다이쇼 시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제17대
사이온지 긴모치 가쓰라 다로 야마모토 곤노효에 오쿠마 시게노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제21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하라 다카시 다카하시 고레키요 가토 도모사부로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야마모토 곤노효에 기요우라 게이고 가토 다카아키 와카쓰키 레이지로
쇼와 시대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와카쓰키 레이지로 다나카 기이치 하마구치 오사치 와카쓰키 레이지로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이누카이 쓰요시 사이토 마코토 오카다 게이스케 히로타 고키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하야시 센주로 고노에 후미마로 히라누마 기이치로 아베 노부유키
제37대 제38-39대 제40대 제41대
요나이 미쓰마사 고노에 후미마로 도조 히데키 스즈키 간타로
제42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나루히코 기도 고이치 하토야마 이치로 아오키 가즈오
제46대 제47대 제48대 제49대
기시 노부스케 후나다 나카 이케다 하야토 가야 오키노리
제50대 제51대 제52대 제53대
오히라 마사요시 다카기 소키치 후쿠다 다케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제54대 제55대 제56-58대
다나카 가쿠에이 다케시타 노보루 가네무라 슌에이
헤이세이 시대
제56-58대 제59-60대 제61대 제62-63대
가네무라 슌에이 오부치 게이조 하시모토 류타로 모리 요시로
제64-65대 제66대 제67대 제68대
아소 다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간 나오토
제69대 제70-72대
쓰키야마 아키히로 아베 신조
레이와 시대
제70-72대 제73대 제74-75대
아베 신조 오타니 시게미츠 기시다 후미오
인세이 · 헤이케 · 가마쿠라 · 무로마치
아즈치모모야마 · 에도 · 내무경

원로 · 부총리



다카기 소키치 관련 둘러보기 틀
[ 펼치기 · 접기 ]

대일본제국 제51대 내각총리대신
다카기 소키치
高木惣吉 | Takagi Sōkichi
출생 1893년 8월 9일
대일본제국 구마모토현 히토요시
사망 1979년 7월 27일 (향년 85세)
대일본제국 가나가와현 치가사키시
국적 일본
재임 기간 제51대 내각총리대신
1969년 9월 21일 ~ 1973년 2월 23일
서명
[ 펼치기 · 접기 ]
부모 아버지, 어머니
종교 불교
학력 일본해군병학교 (학사)
해군대학교 (석사)
소속 정당 대정익찬회
약력 제51대 내각총리대신

대정익찬회 총재

훈장 훈일등욱일대수장

금치훈장(1등급)

군사 경력 대일본제국 해군
1915년 ~ 1960년

개요

제독의 순만한 운전이, 일본이란 배를 다시 힘차게 나아가게 합니다.

다카기 소키치(高木惣吉)는 해군 제독 출신 일본의 제51대 내각총리대신이다.

상세

야스다 위기후나다 나카의 사임, 이어진 호국군 전쟁 등 악재 속에서 1969년 후쿠다 다케오에 의해 구원투수로 지명되어 1973년까지 총리직을 지냈다. 그는 개혁파로서 야스다 위기로 드러난 일본 사회 전반의 부패를 일소했고, 특고의 수사권 제한, 징병제 완화 등 각종 사회 해빙 조치를 단행했다.

결정적으로 1972년 제국 자유화를 단행해 대정익찬회의 통제 외의 범위에서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크게 증진시켰다. 또한 문화산업 역시 그의 대에서 거의 풀리다시피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사회분위기는 이전에 비해 확연히 개선되고 정상국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6년 불황의 극복을 위해 경제 전문가인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등용하여 경제정책에 힘을 쏟았다. 다카기는 자이바츠의 지나친 팽창을 경계하며 게이레츠에 힘을 실어주는 정책을 취했고 이를 통해 게이레츠가 자이바츠에 대항하는 힘을 얻으면서 경제의 자이바츠 독점 체제를 타파시켰다.

이를 통하여 1970년대 일본 경제가 다시금 고도성장의 가도를 달리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이 외에는 우생학 기반 법안인 국민우생법의 개정을 통해 이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냈다.

1973년 80세의 나이에 후쿠다 다케오에게 총리직을 물려주었고, 일본이 전성기를 꽃피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1979년 85세의 나이로 가나가와현에서 숨을 거둔다.

소속 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