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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제51대 내각총리대신 다카기 소키치 高木惣吉 | Takagi Sōkich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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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3년 8월 9일 |
대일본제국 구마모토현 히토요시 | |
사망 | 1979년 7월 27일 (향년 85세) |
대일본제국 가나가와현 치가사키시 | |
국적 | 일본 |
재임 기간 | 제51대 내각총리대신 |
1969년 9월 21일 ~ 1973년 2월 23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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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제독의 순만한 운전이, 일본이란 배를 다시 힘차게 나아가게 합니다. |
다카기 소키치(高木惣吉)는 해군 제독 출신 일본의 제51대 내각총리대신이다.
상세
야스다 위기와 후나다 나카의 사임, 이어진 호국군 전쟁 등 악재 속에서 1969년 후쿠다 다케오에 의해 구원투수로 지명되어 1973년까지 총리직을 지냈다. 그는 개혁파로서 야스다 위기로 드러난 일본 사회 전반의 부패를 일소했고, 특고의 수사권 제한, 징병제 완화 등 각종 사회 해빙 조치를 단행했다.
결정적으로 1972년 제국 자유화를 단행해 대정익찬회의 통제 외의 범위에서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크게 증진시켰다. 또한 문화산업 역시 그의 대에서 거의 풀리다시피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사회분위기는 이전에 비해 확연히 개선되고 정상국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6년 불황의 극복을 위해 경제 전문가인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등용하여 경제정책에 힘을 쏟았다. 다카기는 자이바츠의 지나친 팽창을 경계하며 게이레츠에 힘을 실어주는 정책을 취했고 이를 통해 게이레츠가 자이바츠에 대항하는 힘을 얻으면서 경제의 자이바츠 독점 체제를 타파시켰다.
이를 통하여 1970년대 일본 경제가 다시금 고도성장의 가도를 달리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이 외에는 우생학 기반 법안인 국민우생법의 개정을 통해 이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냈다.
1973년 80세의 나이에 후쿠다 다케오에게 총리직을 물려주었고, 일본이 전성기를 꽃피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1979년 85세의 나이로 가나가와현에서 숨을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