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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제40-42대 내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 東條英機 | Hidaki Doj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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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4년 12월 30일 | ||||||||||||||||||||||||
대일본제국 도쿄부 도쿄시 고지마치구 (現 대일본제국 도쿄도 치요다구) | |||||||||||||||||||||||||
사망 | 1950년 6월 25일 (향년 65세) | ||||||||||||||||||||||||
중국 남경시 남경역 | |||||||||||||||||||||||||
국적 | 일본 | ||||||||||||||||||||||||
재임 기간 | 제40대 내각총리대신 | ||||||||||||||||||||||||
1941년 10월 18일 ~ 1950년 6월 25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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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본의 정치인이며 1941년 10월부터 1950년 6월까지 제40-42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다. 그는 2차 대전에서 일본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으나 1950년 6월 25일 중국 난징에서 도조 히데키 저격 사건으로 허무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생애
도조 히데키는 1884년 12월 30일, 당시 도쿄부 도쿄시 고지마치구에서 도조 히데노리와 도조 치토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도조는 당시 육군과 연이 있던 아버지의 덕으로 1901년 육군사관학교로 입학하여 자신의 군사 커리어를 시작하였으며, 1905년 육군에 임관하였다. 그리고 그는 친화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력을 만들며 군 생활을 하다가 1931년 관동군 참모장으로서 이시와라 간지 등과 함께 만주사변을 주도하여 전 제국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아돌프 히틀러, 베니토 무솔리니 등과 함께 추축국의 3대 지도자였다. 그는 관동군 참모장이던 당시 1937년 지나 전쟁을 개전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을 시작으로 육군의 거두로 올라섰다.
도조는 지나전쟁의 공을 이유로 육군차관, 육군참모총장 등 육군의 수장으로서 고속 승진에 이르렀다. 그렇듯 큰 권력을 얻게 된 도조는 1941년 8월엔 모스크바가 함락된 소련의 뒤통수를 쳐서 극동을 점령하는 한편, 미국이 동남아와 소련 침공에 대한 금수조치를 취하자 대미 개전을 역설하였다.
그는 미국과의 긴장 상태를 이유로 1941년 10월 18일 문민 내각을 공식적으로 무너뜨리고 본인 스스로가 제40대 내각총리대신에 올라 다시금 군인내각인 도조 내각을 열었다. 그는 대미 개전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였고 결국 미군 전력을 빠르게 섬멸하자는 판단 하에 1941년 12월 8일 대동아전쟁을 시작하였다.
진주만 공습에서 항모 전파, 유류 저장고 파괴 등 미국에게 천문한적인 피해를 입히며 시작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은 빠르게 전쟁의 승기를 잡아갔고, 동남아를 모두 점령한 남방작전을 개시하고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으로 쐐기를 박았다.
이후엔 여러 차례 미군의 반격으로 위기를 맞이하나 큰 전황의 판도는 변하지 않았고, 1945년 7월 4일 독일이 미 본토를 원자폭탄으로 타격함으로서 미국이 항복하자 일본은 승전했고 그는 대동아전쟁의 영웅이 되었다.
이후 1946년 2월에 군을 전역하고 대정익찬회 소속으로서 도쿄도 제3구에 중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41대 총리대신으로 취임했다. 그는 1947년엔 중국을 굴복시켜 도쿄 조약으로 대동아공영권을 완성했고 1948년엔 도조 독트린으로 아시아의 일본 패권을 확립하였다.
1949년엔 치시마 열도에서 일본의 핵개발을 지켜보며, 그는 그야말로 일본인들에게 신으로 떠받들어지는 수준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렇게 영웅으로서 편안한 말년을 보낼 것만 같던 도조는 운명의 장난을 당하게 되었는데, 1949년 11월 왕징웨이가 사망하자 도조가 위로차 1950년 6월에 중국을 방문하였다. 이때 난징에서 천궁보를 만난 뒤 베이징으로 올라가는 열차에 타는 와중 중국인 청년 우쳰잉에게 중국침략의 원흉으로 몰려 저격당하고 만다.(도조 히데키 저격 사건)
도조는 병원으로 옳겨졌음에도 그대로 사망했고, 그의 나이 65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