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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일 (화) 01:29 판
욱일승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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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제국 제91대 부총리대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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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제국 제53대 합동참모의장 히라오케 고지로 平桶子次良 | ᡥᠠᡴᠰᡝᠨ ᠊ᡟ᠊ᡠᠯᡤᡝᠣᠰᡭᡳᠨ | |
본명 | 히라오케 고지로 ( 학센 율루거신 (ᡥᠠᡴᠰᡝᠨ ᠊ᡟ᠊ᡠᠯᡤᡝᠣᠰᡭᡳᠨ) |
출생 | 1996년 6월 11일 (25세) |
대동아제국 만슈 기쓰린현 가카무치 | |
국적 | |
재위 | 진왕 |
2020년 10월 5일 ~ (1년 2월 3주 6일, 453일) | |
재임 | 대동아제국 전쟁대신 |
2019년 11월 12일 ~ 2020년 1월 5일 | |
대동아제국 정보대신 | |
2019년 11월 12일 ~ | |
대동아제국 합동참모의장 | |
2020년 1월 1일 ~ | |
대동아제국 총무대신 (부총리대신) | |
2020년 1월 1일 ~ | |
작위 | 장창공(長昌公)2020 진왕(秦王)20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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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동아제국의 제53대 합동참모의장이자 제91대 총무대신(부총리대신).
선치제에 못지 않은 책략가 스타일의 정치인으로, 15세에 입대한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쳐 23세에 중장에 올랐고 선치 반정 때에도 만슈와 조센 지역 군인들을 이끌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선치 반정 당시 개혁파 군부의 수장이었으며 선치제 즉위 이후에는 선치제의 숙청 명령을 군에 하달하여 이를 실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현재도 선치제에 다음 가는 실질적인 권력 서열 2순위로[1] 국정 운영 전반을 막후에서 조정하고 있다. 선치 반정 당시의 공적을 인정받아 대동아제국 최초로 평민 출신의 왕작 서임자가 되었다.
아이신가쿠라 류자키, 다테바야시 류노스케, 가와바타 겐타로와 더불어 대표적인 만주계 야마토인 출신 군인이다.
생애
유년기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1996년 6월 11일 만슈 지역 기쓰린현의 한 소도시에서 태어났으며, 집안은 그렇게 잘 살지도 못 살지도 않는 평범한 평민 중산층 가정이었다고 한다. 이후 2008년 군 교육을 받기 위해 만슈를 떠나 조센현 모토야마시에 위치한 니시쿄 사관학교에 입학하였고, 2011년 졸업하여 군에 입대하였다.
군인 시절
2011년 니시쿄 사관학교를 졸업한 이후 곧바로 소위로 복무를 시작하였다. 만슈 지역의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유능한 능력을 여러번 보인 결과, 진급이 굉장히 빨랐는데, 2012년 대위로 진급하였고, 1년 이후에 소령으로 진급했다. 2014년 중령으로 진급하였고, 2016년 준장, 2017년 중장으로 진급하여 유례가 없는 초고속 승진 루트를 밟았다. 특히 군사 작전 수행 능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대신 체술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군 내부에서의 정치에서 상당한 능력을 보였는데, 자신에 반대하는 군인들은 갖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배제시키는 한편 다른 군인들을 자신에게 동참하게 하여 점차적으로 만슈와 조센 지역의 군을 자신의 편으로 끌여들었다. 이후 자신의 파시즘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개혁파 군부를 조직하여 군의 주류였던 보수파 군부의 중년 장교들과 대항하는 청년 장교파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 파벌에는 다테바야시 류노스케, 아이신가쿠라 류자키 등 후일 선치 반정으로 정부의 요직을 참여한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히라오케 고지로 자신도 선치반정 이후 정치계의 실세로 군림할 수 있었다.
선치 반정 당시
자신의 휘하 부하로 있던 다테바야시 류노스케가 선치제의 개인 호위 업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다테바야시 류노스케의 중제로 선치제와 만났고, 선치제를 개혁파 군부로 끌어들이는데까지 성공하였다. 이후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군사 정변을 기획하면서 다테바야시 류노스케, 아이신가쿠라 류자키, 가와바타 겐타로, 다카노 요시마사와 함께 핵심 책무를 맡았으며 그중에서도 선치제와 더불어서 군사 쿠데타를 기획하고 조정하는 리더의 역할을 맡았다.
2019년 선치 반정이 일어났을때 만슈와 조센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자신의 군대를 이동시켜 손쉽게 정부군을 제압하였고 만왕 아이신가쿠라 스즈메까지 포로로 잡는데 성공하였다. 전선이 일본 열도 내에 한정되었을때 현장 지휘는 가와바타 겐타로에 맡겼으며 자신은 만슈와 조센, 그리고 지나 지역에서 잔존 보수파 군부를 진압하는 역할을 맡았다. 2019년 11월 정부군이 항복한 이후 그는 임시적으로 전쟁대신, 정보대신의 직을 맡았고, 2020년 1월 전쟁대신직을 다테바야시 류노스케에게 넘겨주고 정보대신의 직은 유임되었다. 또한 합참의장직을 부여받았고, 계급은 중장에서 원수로 승진, 신분도 평민에서 공작으로 상승하였다.
2020년 10월, 다테바야시 류노스케 원수와 함께 선치 반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을 인정받아 왕작에 봉해졌으며 이는 평민 출신으로는 최초이다.[2]
신정부 내에서의 활동
현재
성향
선치제와 같은 두뇌파, 리더형 정치인으로 사실상의 내각 내 1인자로 활동하면서 지난 2년간 여러가지 치적을 남겼다. 전반적인 성향은 호전적이면서 개혁적이다. 온건한 팽창론자의 대표주자로 소련에 대한 압박을 중시한다.
반면 모든 황국신민들이 같은 권리를 누려야한다는 일부 개혁파 인사들의 의견에는 부정적이며 더 나아가 민중들의 정치 참여 역시 거부하는 엘리트주의자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회주의나 자유주의와 같은 반황실적 사상에도 반대하며, 이를 탄압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나 정보대신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제국 내의 거의 모든 사상범들에 대한 불관용 원칙을 내세우고 있으며 일부 황실 회의적인 보수주의자들까지 처벌하고 있다.
강력한 군정 통치 지지자이자 군국주의자이다. 대장대신 역시 충분히 군인이 맡을 수 있음을 강조하며 경제에 있어서 중요한건 참모이지 리더라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문민통치파의 지지를 얻기 위한 선치제 및 다테바야시 류노스케의 지시로 대장대신은 관례대로 문민 관료에게 돌아갔다.
선치제를 거의 숭배에 가까울 정도로 지지한다. 원래 종교는 다른 만주계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티베트 불교였으나 선치 반정 이후 황제를 숭배하기 위하여 국가신토로 개종하였다. 개혁파 군부를 이끌때 성향은 온건한 공화주의에 가까웠지만, 선치제와 만난 이후에는 완전한 강경 황실주의자로 선회한 상태이다. 이렇게 된 시점은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2019년 8월 전후라고 한다.
평가
긍정적
부정적
개인사
여담
각주
- ↑ 계급 상 더 높은 다테바야시 류노스케는 선치제의 호위역할이기에 실권은 히라오케 고지로가 가지고 있다.
- ↑ 다테뱌아시 류노스케는 남작가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