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여몽 관계) |
||
281번째 줄: | 281번째 줄: | ||
몽골과 부여는 역사적으로 여러 관계를 맺어왔다. 12세기에는 몽골의 고려 침입으로 고려가 몽골의 조공국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공민왕의 개혁으로 몽골 탈피 정책이 시행되고, 몽골이 몰락하여 현재의 몽골 고원으로 밀려나자 양국간의 교류는 다시금 적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 황실이 만주로 도망친 틈을 타, [[왕축 왕조]]에 속하는 [[복드 칸]]이 몽골의 독립을 이뤄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복드 칸은 몽골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하였으나, 내부적으로 소비에트군의 지원을 받은 [[허를러깅 처이발상]]과 [[담딘 수흐바타르]]가 계속 권좌를 흔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복드 칸은 1924년 [[부여]]에게 SOS를 쳐, 적군으로부터 몽골 지역을 보호하게 하였고 자신은 스스로 부여의 신하가 되었다. | 몽골과 부여는 역사적으로 여러 관계를 맺어왔다. 12세기에는 몽골의 고려 침입으로 고려가 몽골의 조공국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공민왕의 개혁으로 몽골 탈피 정책이 시행되고, 몽골이 몰락하여 현재의 몽골 고원으로 밀려나자 양국간의 교류는 다시금 적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 황실이 만주로 도망친 틈을 타, [[왕축 왕조]]에 속하는 [[복드 칸]]이 몽골의 독립을 이뤄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복드 칸은 몽골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하였으나, 내부적으로 소비에트군의 지원을 받은 [[허를러깅 처이발상]]과 [[담딘 수흐바타르]]가 계속 권좌를 흔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복드 칸은 1924년 [[부여]]에게 SOS를 쳐, 적군으로부터 몽골 지역을 보호하게 하였고 자신은 스스로 부여의 신하가 되었다. | ||
1931년 [[복드 칸]]이 사망한 이후 왕축 왕조가 단절되자, 몽골은 [[보르지긴 오복]]을 복원하여 [[보르지긴 왕조]]라는 이름으로 카간직을 맡게 하였다. 1935년에는 [[세종 (부여)|세종]] 황제가 보르지긴 왕조로부터 카간직을 넘겨받고, 보르지긴 오복들에게 공작 작위를 부여하면서 완전한 몽골의 통치자가 되었다. | 1931년 [[복드 칸]]이 사망한 이후 왕축 왕조가 단절되자, 몽골은 [[보르지긴 오복]]을 복원하여<ref>이때 무슨 근거로 복원하느냐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현대에 들어서는 단지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ref> [[보르지긴 왕조]]라는 이름으로 카간직을 맡게 하였다. 1935년에는 [[세종 (부여)|세종]] 황제가 보르지긴 왕조로부터 카간직을 넘겨받고, 보르지긴 오복들에게 공작 작위를 부여하면서 완전한 몽골의 통치자가 되었다. | ||
1940년대 이후, [[소련 (부여)|소련]]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자 소련과 바로 국경을 맡댄 몽골은 더더욱 안보상으로 중요해졌다. [[부여황제군]]이 몽골에 원래 주둔하고 있었지만, 현재와 같은 2만명 주둔이 이뤄진 것은 1940년대 이후의 일이다. 몽골 역시 부여로부터 많은 물자와 무기를 공급받아, 소련이 부여를 침공하였을때 대비할 수 있는 1차 방어 기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다만 1992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부여)|러시아]]가 부여와 동맹국으로 발전한만큼 현재에는 몽골이 예전과 같은 안보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 |||
현재에도 [[부여 황실]]은 몽골 카간직을 세습하고 있으며, 보르지긴 오복들은 상원 의장들을 세습하면서 실질적인 몽골의 국가 원수로서 몽골을 통치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몽골 내에서 의견이 8:2 정도로 엇갈린다.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그래도 부여가 몽골의 경제 발전을 도와줬기 때문에 좋아한다. 상류층에서도 부여가 보르지긴 왕족을 비롯하여 청나라 시대에 거의 무너진 몽골의 귀족들을 보호하고, 국방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호의적인 의견이 많다. 반면 [[몽골사회당]]과 같은 야당의 경우 부여가 몽골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고 있다면서 어느정도 거리를 두자는 의견을 표방한다. | |||
[[분류:부여/해외 설정]] | [[분류:부여/해외 설정]] |
2022년 4월 28일 (목) 22:30 판
![]() |
---|
ⓒ Communist 1968, 2022 | CC-0 |
![]() | ||||||||||
[ 펼치기 · 접기 ]
|
대몽골국 大蒙古國 | ᠶᠡᠬᠡ ᠮᠣᠩᠭᠣᠯ ᠤᠶᠯᠤᠰ | ||||||||||||||||||||||||||||||||
---|---|---|---|---|---|---|---|---|---|---|---|---|---|---|---|---|---|---|---|---|---|---|---|---|---|---|---|---|---|---|---|---|
![]() | ||||||||||||||||||||||||||||||||
![]() |
||||||||||||||||||||||||||||||||
국기 | 국장 | |||||||||||||||||||||||||||||||
ᠮᠥᠨᠬᠢᠶᠨ ᠡᠡᠨᠲ ᠭᠦᠷᠡᠨ 영원의 제국 | ||||||||||||||||||||||||||||||||
상징물 | ||||||||||||||||||||||||||||||||
| ||||||||||||||||||||||||||||||||
역사 | ||||||||||||||||||||||||||||||||
• 청나라로부터 독립 1911년 12월 29일 • 대몽골국 성립 1924년 11월 26일 | ||||||||||||||||||||||||||||||||
지리 | ||||||||||||||||||||||||||||||||
[ 펼치기 · 접기 ] | ||||||||||||||||||||||||||||||||
인문환경 | ||||||||||||||||||||||||||||||||
[ 펼치기 · 접기 ] | ||||||||||||||||||||||||||||||||
정치 | ||||||||||||||||||||||||||||||||
[ 펼치기 · 접기 ]
| ||||||||||||||||||||||||||||||||
경제 | ||||||||||||||||||||||||||||||||
[ 펼치기 · 접기 ] | ||||||||||||||||||||||||||||||||
단위 | ||||||||||||||||||||||||||||||||
[ 펼치기 · 접기 ]
| ||||||||||||||||||||||||||||||||
외교 | ||||||||||||||||||||||||||||||||
[ 펼치기 · 접기 ] | ||||||||||||||||||||||||||||||||
ccTLD | ||||||||||||||||||||||||||||||||
.mn | ||||||||||||||||||||||||||||||||
국가 코드 | ||||||||||||||||||||||||||||||||
496, MNG, MN | ||||||||||||||||||||||||||||||||
![]() |
위치 |
---|
개요
동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
명목상 입헌군주제를 표방하고 있으나, 영연방 왕국과 마찬가지로 부여 황제가 몽골 카간을 같이 겸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공화제 국가이다. 실질적인 권한은 보르지긴 왕조가 세습하는 상원 의장과, 하원에서 임명되는 내각 국무총리대신이 쥐고 있다.
역사
정치
외교
여몽 관계
몽골과 부여는 역사적으로 여러 관계를 맺어왔다. 12세기에는 몽골의 고려 침입으로 고려가 몽골의 조공국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공민왕의 개혁으로 몽골 탈피 정책이 시행되고, 몽골이 몰락하여 현재의 몽골 고원으로 밀려나자 양국간의 교류는 다시금 적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 황실이 만주로 도망친 틈을 타, 왕축 왕조에 속하는 복드 칸이 몽골의 독립을 이뤄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복드 칸은 몽골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하였으나, 내부적으로 소비에트군의 지원을 받은 허를러깅 처이발상과 담딘 수흐바타르가 계속 권좌를 흔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복드 칸은 1924년 부여에게 SOS를 쳐, 적군으로부터 몽골 지역을 보호하게 하였고 자신은 스스로 부여의 신하가 되었다.
1931년 복드 칸이 사망한 이후 왕축 왕조가 단절되자, 몽골은 보르지긴 오복을 복원하여[1] 보르지긴 왕조라는 이름으로 카간직을 맡게 하였다. 1935년에는 세종 황제가 보르지긴 왕조로부터 카간직을 넘겨받고, 보르지긴 오복들에게 공작 작위를 부여하면서 완전한 몽골의 통치자가 되었다.
1940년대 이후, 소련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자 소련과 바로 국경을 맡댄 몽골은 더더욱 안보상으로 중요해졌다. 부여황제군이 몽골에 원래 주둔하고 있었지만, 현재와 같은 2만명 주둔이 이뤄진 것은 1940년대 이후의 일이다. 몽골 역시 부여로부터 많은 물자와 무기를 공급받아, 소련이 부여를 침공하였을때 대비할 수 있는 1차 방어 기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다만 1992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부여와 동맹국으로 발전한만큼 현재에는 몽골이 예전과 같은 안보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현재에도 부여 황실은 몽골 카간직을 세습하고 있으며, 보르지긴 오복들은 상원 의장들을 세습하면서 실질적인 몽골의 국가 원수로서 몽골을 통치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몽골 내에서 의견이 8:2 정도로 엇갈린다.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그래도 부여가 몽골의 경제 발전을 도와줬기 때문에 좋아한다. 상류층에서도 부여가 보르지긴 왕족을 비롯하여 청나라 시대에 거의 무너진 몽골의 귀족들을 보호하고, 국방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호의적인 의견이 많다. 반면 몽골사회당과 같은 야당의 경우 부여가 몽골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고 있다면서 어느정도 거리를 두자는 의견을 표방한다.
- ↑ 이때 무슨 근거로 복원하느냐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현대에 들어서는 단지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