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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황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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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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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황제
扶餘 皇帝 | ᠪᡠᡥᡠ ᡥᡡᠸᠠᠩᡩ
Emperor of Korea
파일:대한제국 용보.png
부여 황제의 용보(龍補).
작위 황작(皇雀)
현직 융정제 / 제8대
재위 2019년 11월 17일 ~
관저 대조선국 천경특별시 경복궁 (법궁)
지위 부여의 국가 원수
부여황제군 원수
현인신
초대 태조 태황제

개요

부여황제. 부여국가원수이다. 현 황제는 융정제.

황실 전범에 따라 부여 황제는 자동적으로 몽골 카간라오스 국왕 작위를 겸하여 재위한다.

상세

현재의 부여 황실은 1813년부터 이어져왔다. 부여 황실 전범에 따라 부여 황제의 적장자가 황위를 계승하도록 되어있지만, 불안정한 황실의 내부 권력 투쟁으로 인하여 실제 적장자가 합법적으로 황위를 계승한 사례는 드물다.

현대 선진국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전제군주적인 권한을 부여받는 황제이다. 영국 국왕 등 다른 국가의 군주들은 대부분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의 법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하지만, 부여 황제는 실제 정치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가령, 헌법 9조에서 부여 황제는 육해공군을 통제한다고 되어있는데, 이 때문에 문민통치가 이뤄지지 않아 황제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군부 인사들을 데리고 국정 전반에 손을 대는 것이 현재로서는 당연시되어있다. 가끔씩 군부의 성향이 바뀌는 쿠데타가 일어나곤 하지만, 이마저도 부여 황제의 지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에 가깝다.

당연히 능력이 부족한 황제라면 자연히 그 권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으므로, 극히 치열한 부여의 황실 내부 권력투쟁에서 약한 황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능력 있는 후계자가 능력이 없는 황제나 다른 후계자를 밀어내고 권력을 차지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부여는 전제군주제 국가이면서도 암군이 얼마 없는 양상을 보여왔다.

위상


부여 황제 직속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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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조 부여황제국은 황제 폐하가 통치하며, 모든 권력은 황제로부터 나온다.
제3조 황제는 신성하며 침해해서는 아니된다.
제4조 황제는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하고, 이 헌법의 조항에 따라 이를 행한다.
제9조 황제는 육해공군을 통수한다.

부여에서 황제는 단순한 국가 원수로서의 의미를 가지지 않으며, 살아있는 신(現人神; 현인신)이자 국가 그 자체(國體)로 여겨진다. 부여의 헌법에서도 황제의 신성불가침성과 통치권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부여의 황제는 부여 내에서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존엄한 위치로 간주되어지고 있다.

황제는 법 위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황명은 일반 법은 물론 헌법보다도 위에 있으며, 황제의 명은 곧 국가의 명으로 여겨져 이에 대한 불충은 반역죄로 사형으로서 다스릴 것을 법에서 명시하고 있다.

또한 불경죄 역시 존재하여, 황제와 황실을 비방하는 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최대 20년형까지 처해질 수 있다. 운이 좋아야 5~10년형을 받으며, 반역죄에 각종 정치 사범에게 붙을 수 있는 죄 항목을 붙여 사형까지 시키는 일도 빈번하다. 실제로 국제 인권 기구에 따르면 황실 비방으로 사형당하는 정치범의 수는 매년 최소 수백에서 최대 수천에 달할 것이라고. 외국인의 경우에도 얄짤없이 처벌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외교적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이를 위해 부여의 핵심 동맹국들이라고 할 수 있는 극동집단안보기구의 가입국과는 이미 부여 내에서 황제를 비방한 자국민의 신변을 부여 황실에게 맡긴다는 내용의 각서를 채결한 상태이다.

공식적으로 공화주의 정당이 금지되어있을 정도로 정치계에서도 이런 불경죄가 적용된다. 자유민주당 등 대부분의 야당들은 공식적으로 근황주의를 내걸고 있으며 최대 야당인 동아사회당도 명목상으로나마 공화주의를 배격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교적 부여 황실에 대한 불만이 많은[1] 젊은 층들은 트위터와 같은 익명 사이트를 이용하여 황실을 비판하기도 한다. 일부 반황실인사들은 미국, 인도 등 부여의 영향력이 적게 미치는 국가로 망명하여 민주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의 인기

부여라는 나라가 원래 강대국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여년간 황제들의 전제군주적 리더쉽을 통하여 미국에 버금가는 세계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부여의 국민들이 부여 황제에게 보내는 존경심과 지지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소련의 정보국에서도 "부여 황제에 대한 부여 국민들의 지지도는 진실이다"라는 내용의 첩보를 보낼 정도였다.

공식적으로 여론조사가 실시된 적은 없지만, 서방 언론의 대략적인 추정에 따르면 40대 이상에서 황제를 지지하는 여론은 95% 이상이며 그 밑의 세대에서도 7~80% 이상이 황제를 지지하고 있으리라고 짐작된다. 비교적 반중앙정부 독립 여론이 강한 일본과 같은 지방에서도 황제의 지지도는 굉장히 높다.

오죽하면 부여 내에서 반황실 집회가 열리면, 경찰이 파견되는 이유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시위대를 린치하는 시민들로부터 시위대를 안전하게 연행하기 위함일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고 있을 정도이다. 물론 부여 경찰은 폭력적인 시위 진압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래나 저래나 시위대가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제정당을 비롯한 군부 세력에 대한 피로감이 어느정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권 및 진보계열 인사들마저 친황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부여 내에서 공화주의 실현이란 매우 요원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비판 및 논란

역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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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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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태조 태황제 광종 연황제 신종 융황제
제4대 제5대 제6대
영종 인황제 세종 선황제 인종 창황제
제7대 제8대
헌종 성황제 융정제
추존
시조 · 장조 · 고조 · 현조 · 세조
고조선 · 부여 · 원삼국 · 고구려 · 백제 · 가야
신라 · 탐라 · 발해 · 후삼국 · 고려 · 조선
황태자 · 상황 · 제후왕
대수 시호 묘호 연호 즉위 퇴위
1 태황제 태조 개건(開建) 경래(景來)
→ 희(熙)
1813년 7월 20일
(33세)
1839년 9월 23일
(56세, 붕어)
2 연황제 광종 지화(至和) 연(硏) 1839년 9월 24일
(22세)
1870년 5월 4일
(53세, 붕어)
3 융황제 신종 보원(寶元) 수익(受益) 1870년 5월 5일
(26세)
1914년 6월 15일
(70세, 붕어)
4 인황제 영종 희녕(熙寧) 욱(頊) 1914년 6월 16일
(54세)
1920년 9월 16일
(60세, 붕어)
5 선황제 세종 선륭(善隆) 영은(永恩)
→영(永)
1920년 9월 17일
(20세)
1970년 10월 20일
(70세, 양위)
6 창황제 인종 강건(强建) 준경(峻慶) 1970년 10월 21일
(50세)
2007년 11월 30일
(87세, 붕어)
7 성황제 헌종 순헌(舜獻) 양희(梁熙) 2007년 12월 1일
(32세)
2019년 11월 16일
(44세, 양위)
8 미정 융정(隆貞) 선치(善治) 2019년 11월 17일
(16세)

여담

  1. 물론 상대적으로 많을 뿐이지, 절대적으로는 이 역시 소수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