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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Deutsches Armee | |
창립일 | 1871년 1월 18일 |
국적 | |
편제 | ![]() ![]() ![]() |
충원방식 | 징병제 |
징집연령 | 18세 이상 |
예비군 | 독일 국방대 독일 국민군 |
지휘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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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독일어: Deutsches Armee 도이체스 아르미[*]) 혹은 아르미(독일어: Armee 아르미[*])는 1871년 1월 18일, 독일국 선포와 함께 프로이센 육군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군사조직이다. 라이히의 구성국들의 군대로 이루어진 독일 육군과 빌헬름 2세의 통치 아래서 증강된 독일 황립해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창설된 독일 황립공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르미는 독일 황제를 최고 군통수권자로 하며, 독일 국가군무부가 삼군을 통솔하고 사무 업무를 담당한다. 현대 참모 체계의 원형이 되는 국가로 대장군참모라 불리는 일련의 참모본부 체제를 지니고 있다. 대장군참모는 오직 개인의 지적 능력을 중심으로 편성되며, 대장군참모장이 이들을 총 지휘한다. 대장군참모는 아르미의 각군대를 전담하는 최고육군사령부(OHL), 최고해군사령부(OML), 최고공군사령부(OLL)를 휘하에 두고 있다. 각 최고사령부의 수장으로써 육군사령관, 해군사령관, 공군사령관이 존재한다.
명칭
도이체스 아르미는 라이히의 군대(독일어: Armee 아르미[*])를 칭한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독일 육군과 독일 황립해군이 별도로 존재했으며, 이를 묶는 통일된 단체는 대장군참모만이 유일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독일 황립공군이 독일 공군전력에서 독립하여 3대 군이 됨과 동시에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최고육군사령부와 최고해군사령부의 의견 마찰로 인한 작전 불이익을 이유로 통합된 지휘체계를 갖춘 현대적인 독일군이 탄생한다.
역사
프로이센 주도의 통일 이후 프로이센이 주도한 라이히의 군대도 마찬가지로 프로이센 육군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육군(독일어: Heer 히어[*])은 헌법에 따라 프로이센을 비롯한 바이에른, 작센, 뷔르템베르크의 군대로 이루어진 연합체였다. 이들은 독립된 부대명과 지휘체계를 갖추었으나, 전시의 경우 프로이센의 라이히의 지휘를 받았다. 1920년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해체되고 오스트리아가 라이히에 가입하면서 기존 4개 왕국의 군대로 조직된 육군은 5개의 군대의 연합체가 되었다. 황립해군(독일어: Kaiserliche Marine 카이저라이헤 마리네[*])의 경우 헌법에서 구성국들의 해군 창설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통일된 지휘체계를 지니고 창립되었다. 때문에 국가당국에는 군대와 관련된 행정부처가 존재하지 않았던것과 달리 황립제독부가 따로 존재했다. 황립해군은 빌헬름 2세 치기부터 본격적인 확장이 이루어졌다. 황립제독부는 국가해군청이 되었으며, 5차례의 함대법이 제정되면서 영국을 이은 세계 2위의 해군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해군의 팽창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이 되었으나, 라이히가 승전하면서 영국이 최종적으로 해체가 됨으로써 황립해군은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보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