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변화)/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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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대는 "만약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면?"을 바탕으로 제작된 시즌제 대체역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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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서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의 과정을 나타낸 하위 문서입니다.
외환 위기와 제15대 대통령 선거

1997년 1월 23일, 정태수의 한보그룹이 부도 처리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고, 동남아시아에서 일어난 외환 위기가 한국 재계에 큰 타격을 입으며 여러 재벌들이 줄줄이 부도를 맞았다. 김영삼은 구제금융 신청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IMF의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하지만, 정태수는 공금횡령과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되었고 이후 재계, 정계 인사들도 한보그룹에 관련된 비리 수사가 이루어진다. 그 때 김현철이 한보 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면서 구속된다.

정치권에서는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차기 대선에 착수한다.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김대중이 후보로 선출되었고,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이 선출되었지만 이인제가 경선 결과에 불복해 국민신당을 창당하며 삼파전으로 확대된다. 자유민주연합은 국민회의와 손을 잡은 것을 토대로 11월 3일 'DJP연합'이 성사시키는가 하면 김종필을 국무총리로 임명시키고, 의원내각제 개헌을 1999년 12월 이전까지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선거 결과 김대중이 44.36%, 이회창이 31.65%, 이인제가 22.20%로 김대중이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물론 중도 포섭을 시도한 김대중의 공이 컸지만, 각 후보의 '선거 광고'가 선거의 판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김대중은 선거 광고를 통해 신세대 표심을 잡아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지만 이회창의 '승리의 노래'는 변화당의 당가와 흡사하다는 논란이 제기되어 낙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진보정당의 등장

1996년 의원 꿔주기로 과반 의석을 얻은 신한국당 의원들이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면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주도로 총파업을 강행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두 번째로 일어난 대규모 총파업은 정부의 지지율 하락과 경제적 차질로 이어졌고 이후 노동법 문제에 대해 야당과 함께 영수회담을 진행했지만 무의미한 합의로 끝나고 만다. 그렇게 개정된 노동법으로 인해 실직가장, 명예퇴직,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가 생겨나면서 노동 환경은 후퇴하고 만다.

그러던 중 민주노총과 시민단체들이 장외투쟁과 총파업만으로는 정국을 바꾸기 힘들다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권영길 위원장의 주도로 진보정당 창당에 나섰다. 그렇게 시작된 창당 운동은 결실을 맺어 건설국민승리21을 창당되었고, 이후 '민주노동당'으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15대 대선에 출마할 당시에는 PD 계열이 반발했고, 진보층의 대다수가 김대중을 지지함에 따라 그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한편 상당수는 독자적으로 청년진보당을 창당했으나 1999년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다.

낙천·낙선운동의 등장

민주당계 정부 출범 이후 정치 개혁과 언론 개혁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자, 2000년 1월 12일 '2000년 총선 시민연대'를 발족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개혁 운동에 뛰어든다. 이들은 대대적인 낙천·낙선 운동을 주도했고, 지난 총선에서 제4당으로 부상한 변화당도 이들을 지지하며 그 목소리를 높였다. 변화당은 정치권의 '철새' 행보를 비판하는 동시에 유세에서도 낙선 운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는데,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가 이들을 이용해 선거를 유리하게 활용했다며 비판을 가했다.

여러분은 지금 변화의 시대 시즌 1을 보고 계십니다. 본 세계관은 '변화의 시대'의 공식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