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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 제국 є๓קเгє ๏Ŧ ςєภՇгเค 중앙 민족의 대연합 제국 ﻮгคภ๔ ยภเ๏ภ є๓קเгє ๏Ŧ ςєภՇгเค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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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리아교 합병 후 최대 강역 | ||
1064년 ~ 1538년 | ||
센트리아교 합병 이전 | 세인트루이스 왕국의 침공 이후 | |
키오피 왕국 | 알바키아 왕국 | |
리버티아 왕국 | ||
부다페시아 왕국 | ||
사칠리아 왕국 | ||
역사 | ||
1064년 센트리아교 합병 12세기 이스톨리아 교역 차단 실행 1284년 아르카신 사변 1291년 반센트리아 혁명 1371년 쇄국 선언 1526년 알바키아 왕국 독립 1538년 세인트루이스 왕국의 남중 제국 침공, 멸망 | ||
위치 | 남중이스톨리아 전역[1] | |
수도 | 세르아바르 -> 리옌 -> 세르아바르 | |
정치 체제 | 제정 체제 | |
국가 원수 | 황제 (1064년 ~ 1184년) 센트리아 대성군 (1184년 ~) | |
면적 | 8,560,000㎢ | |
언어 | 센트리아어 | |
민족 | 남중족 (알바키아족, 셀레우로스족[2], 부다페시아족, 사칠리아족)[3] | |
국교 | 센트리아교 | |
주요 황제 | 아르나우 1세 아르나우 3세 파울러 1세 | |
주요 대성군 | 제스토 루이지애나 아르카신 디오판토스 마르카 슈테판 | |
현재 국가[4] | ![]() ![]() ![]() ![]() ![]() ![]() ![]() ![]() |
개요
중앙 민족의 대연합 제국(ﻮгคภ๔ ยภเ๏ภ є๓קเгє ๏Ŧ ςєภՇгเค), 통칭 남중 제국(є๓קเгє ๏Ŧ ςєภՇгเค)은 1064년 센트리아교 합병부터 1538년 세인트루이스 왕국의 남중 제국 침공까지 남중이스톨리아 전역에 걸쳐 약 500년 간 존속했던 국가이며, 동시에 키오피 왕국을 정신적으로 계승하며 중세 종말 후 남중족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사력과 국력을 가진 나라로써 대항해시대 초반 남이스톨리아의 패권국 자리에 올랐었던 국가이다.
국호
정식 국호는 중앙 민족의 대연합 제국(ﻮгคภ๔ ยภเ๏ภ є๓קเгє ๏Ŧ ςєภՇгเค)이나 너무 긴 탓에 당시에는 주로 중앙 제국이라 불렀다. 따라서 영문명은 직역하면 중앙 제국, 중부 제국 정도 되는 "Empire of Centria"인데, 이상하게도 현대에 들어서는 중앙 제국이 아니라 남중 제국이라고 불리는 편이다. 당장 이 문서의 제목도 남중 제국이다. 이러한 명칭의 괴리는 센트리아교의 중체사상과 관련이 있다.
당시 센트리아교는 키오피 왕국 등을 중심으로 남중족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는 중체사상이 주류였으며, 그 이전에도 북이스톨리아의 존재는 알고 있긴 했지만 그 중에서도 북부인 지금의 화이트랜드 지역은 사람이 살고 있긴 하나 남이스톨리아에게는 미개척지였기에 실제로 중심이라고 믿을 만 했다. 그러나 긴 기간동안 남중족 그 자체였던 키오피 왕국이 멸망하고 남중 제국을 제외해도 페로시마 왕국, 라트비아 왕국, 레스코피아 왕국으로 분열되면서 황족과 성직자들은 몰라도 일반 국민들은 서서히 중체사상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항해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중체사상을 완전히 부정시키는 대사건, 신대륙 웨스티시아의 발견이 발생하면서 황족들마저 이를 부정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남중 제국을 무너뜨린 황족과 성직자 간의 갈등의 시작이었다. 모든 것의 시작, 아르카신 사변도, 그로 인한 반센트리아 혁명도, 쇄국 선언도 모든 게 중체사상이 근본적인 이유였다.
이스톨리아를 북서, 북동, 남서, 남중, 남동으로 나누는 체계가 만연해진 현대에 이 제국을 중앙 제국, 중부 제국으로 그대로 두는 것은 충분히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고 그렇게 이 제국의 이름은 남중 제국이 된 것이다.
역사
혼란기와 센트리아교 합병
키오피 왕국이 남서이스톨리아 대반란으로 패망에 가까워지고 있을 시점, 그 이전부터 고대 삼분열 시대와 셀레우로스 왕국 시절부터 뿌리깊이 내려져온 남중족 간의 갈등은 극도로 심화되었다. 가장 큰 요지는 바로 센트리아교의 존폐 여부였다. 친센트리아 세력인 알바키아족과 셀레우로스족은 성인 제스토를 중심으로 소수민족 단위의 수많은 분파로 나눠져있던 센트리아교를 하나로 병합하고 키오피 왕국을 계승하는 통일된 중앙의 대제국을 건립하자고 주장하였으며, 반센트리아 세력인 페로시마족, 셀레우로스족 일부(라트비아, 레스코피아)는 큰 명분도 정통성도 없는 센트리아교의 정교분리 또는 완전 폐지를 주장하였고, 키오피 왕국 이전 고대 시기처럼 다시 각자의 왕국으로 분리되자고 주장하였다.
친센트리아와 반센트리아, 통일과 분열 사이에서 두 세력 간의 입지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고, 1084년 키오피 왕국이 리스본 제국에게 처참하게 무너지자 두 세력은 각자의 의견을 실제로 실행하게 된다. 반센트리아 세력은 각각 페로시마 왕국, 라트비아 왕국, 레스코피아 왕국을 세우며 정교분리를 선언하였고,[5] 반면 친센트리아 세력은 수많은 종파로 나눠져있던 센트리아교를 하나로 통합시켜 국가의 근간으로 삼았고, 바로 이 사건이 1064년의 센트리아교 합병이며, 동시에 주류 민족이었던 알바키아족과 셀레우로스족이 이를 바탕으로 세운 키오피 왕국을 계승하는 통일된 중앙의 대제국이 바로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남중 제국인 것이다.
교역 차단과 사상적 통합, 근세의 패권국
키오피 왕국의 계승과 통합된 센트리아교를 기반으로 한 남중 제국의 막강한 정통성은 정치·경제·사회 등 제국의 모든 영역에 깊이 침투했다. 특히 자신들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자처하는 중체사상이 이러한 정통성에 큰 역할을 했다.[6]
초대 황제 아르나우 1세는 황권과 신권의 조화를 통한 진정한 의미의 통일된 국가를 만들고자 하였다. 기본적으로 중체사상을 국가의 주요 관념으로 삼고 이를 일반 시민들에게도 전파하려 노력했으며, 당시 센트리아 대성군이자 성인 제스토와도 국정에 대해 많은 의견을 주고받았다. 아르나우 왕조 자체가 뿌리깊은 센트리아교 집안이었기에 효과가 더욱 컸던 것도 있다.
2대 아르나우 2세는 아버지의 영향을 깊게 받아 역시나 황권과 신권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제국의 수도 세르아바르에 센트리아 대성당과 황궁을 나란히 마주보게 설치하기까지 했고,[7] 수도를 중심으로 한 효율적인 지방 통치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 시기 대성군 루이지애나는 기존의 임시 경전과도 같았던 루시디아의 서 대신 완전한 형태의 경전인 센트리아경을 편찬하였다. 이렇게 사상적 통합과 나름대로의 통치 기반까지 갖춘 남중 제국은 본격적으로 외세와의 교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3대 파울러 1세는 업적과 별개로 제국 역사상 최고의 중체사상 신봉자라고 평가받으며, 즉위와 동시에 친센트리아, 친제국적인 강경한 정책을 펼쳤다. 수많은 정책들(센트리아 외 타 종교 완전 철폐, 중원교 설치[8], 군사력 증강, 호구 조사 실시(세금 기반 확충) 등)을 펼쳤으나, 이 모든 것을 묻어버린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바로 남서이스톨리아와 남동이스톨리아의 교역을 원천 끊어버린 사건이다. 즉 남서쪽의 폴리네시아 왕국-부르비아 왕국-북아르메노 왕국-멘부르크 제1왕국과 남동쪽의 라트비아 왕국-페로시마 왕국-레스코피아 왕국-로망시아 왕국-리스본 제국-세인트루이스 왕국 간의 교역을 완전히 끊어버린 것이다. 육지로는 당연히 막혔고 그렇다면 바다 쪽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북쪽 스푸트니 제도 부근은 원체 항로 폭이 좁고 북쪽 국가들이 북이스톨리아 대혼란의 긴장 상태로 인해 군사력을 많이 배치한 상태여서 교역 차단 이전에도 잘 이용하지 않아 적은 병력으로도 커버가 가능했고, 완전히 빙 돌아가는 화이트랜드 항로는 당시에 온도가 너무 낮아 제대로 개척되지 않았으며 마지막 남은 대남 제도 항로는 증강해놓았던 해군 병력의 반 이상을 동원하여 교역을 차단했다. 당연히 당시 강대국에 속했던 폴리네시아 왕국이나 리스본 제국은 격하게 분노했으며, 리스본 제국은 실제로 침공까지 계획했었으나 대무장 정책 이전이라 군사력이 밀릴 것이라는 예측이 있어 실행되지는 못했다.
황권 피탈 사태, 신권의 팽창
쇄국 선언, 외교적 고립과 내부 분열
알바키아의 독립과 세인트루이스의 침공, 멸망
정치
황제
대성군
사회
종교
언어
민족
각주
- ↑ 페로시마 왕국, 라트비아 왕국, 레스코피아 왕국을 제외한 남중이스톨리아의 전역을 차지했다.
- ↑ 라트비아 왕국과 레스코피아 왕국 등이 있었기에 셀레우로스족 전체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 ↑ 부다페시아족과 사칠리아족은 당시에는 분리되지 않은 셀레우로스족의 일부였으며, 남중 제국 멸망 후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며 개별 민족으로 분리되었다. 사칠리아족의 경우 남중족 계통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
- ↑ 전성기 기준.
- ↑ 레스코피아의 경우는 센트리아교 자체를 금지하는 강경한 정책을 펼쳤다.
- ↑ 기존에도 존재하던 수많은 센트리아교의 종파 중 하나였으나, 합병 과정에서 주요 사상으로 채택되었다.
- ↑ 대성당을 재건축했다.
- ↑ 쉽게 말하면 그냥 센트리아교 교육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