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청종합예술대학

갈라드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월 15일 (일) 16:15 판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대한한림원 산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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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종합예술대학
北青藝術大學
Bukcheong University of Arts
교훈
상징 슬로건
교색
국가 대한국
분류 한림원대학
개교 1937년 3월 16일 (85주년)
북청예술학교
창립자 고대길, 이인성, 이상, 현용균
총장 제11대 김선영[1] (정인공주)
사무총장 제23대 임서은
주소 서울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173
성경 성경광역시 봉천구 대조로 13
평양 조선성 평양광역시 유경구 강변로 77
죽림 대만성 죽림시 오송구 목관로 5
삼아 해남성 삼아시 길양구 유림항대로 63
재학생 학부 8,843명(2022)
대학원 2,891명(2022)
교직원 3,569명(2022)

개요

대한국한림원대학. 미술, 음악, 무용등 다양한 예술 분야 및 체육 분야에 대해 교육하고 연구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상세

1942년 한성부에서 제주 출신 도선사이자 사업가인 고대길과 화가 이인성, 현용균이 설립한 북청예술학교가 모체이다.

고대길은 1886년 제주에서 태어나 항해사로 활동하다 도선사로 전업한 1930년 물류업체 ‘대광해운‘을 창업했고 서해, 남해안 물류를 장악하며 큰돈을 벌게 되었다. 평소에 예술에 관심이 있던 그는 이인성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며 그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평소 동료들과 함께 아뜰리에를 운영하던 이인성이 유럽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현용균에게 미술학교 설립을 제안, 여기에 문학가 이상이 참여하고 고대길이 자금을 대주면서 1937년 북청예술학교가 설립되었다. 명칭은 현용균의 고향인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따왔다.

종로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 삼림빌딩을 사들인 그들은 ‘20초만에 사람 그리는 법’, ‘떠나간 연인도 돌아오게 만들 아름다운 글 작법’ 같은 눈길을 사로잡는 홍보 문구를 통해 상당한 수의 신입생을 모집하였고 학교 운영은 꽤나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1년 몇개월도 지나지 않아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터지면서 학교는 심양부(現 성경)로 옮겨가게 된다. 하지만 전시상황이 지속되며 신입생은 크게 줄었으며 고대길도 전쟁통으로 인한 손해를 메우려 돌아다니다 병을 얻어 1943년 사망하면서 학교는 사실상 문을 닫게된다. 그러나 전쟁중 이인성과 이상이 온갖 방법으로 학교를 홍보하며 대중에게 북청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1946년 황실이 후원을 시작하면서 학교는 처음 열었을 때보다 규모가 더 커지고 체계화된다. 미술 개인교습소에 가까웠던 곳이 정말 학교로 성장하게 된 것.

예체능에 관심이 많아 황실 지원으로 여러 예체능 학원을 설립한 세조 황제는 여타 황실 소속 예술학교를 북청예술학교 이름으로 통합하기로 결정, 1949년 현재의 북청종합예술대학으로 이름이 바뀐다. 사실 원로 화가들이 운영하던 이름있는 미술학교는 꽤나 여러곳이 있었지만 굳이 북청의 이름이 선택된 것은 도전적인 젊은 화가들이 운영하던 것이 세조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 제4대 만옹왕 예성왕의 장녀. 모든 한림원대학의 총장은 명예직으로 황족이나 제후왕가의 일족, 고위 귀족이 맡는다. 실제 대학 행정 실무는 부총장이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