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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10.5pt; | 부황: [[무종 (동방)|무종 장황제]], 모후: 신현장황후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10.5pt; | 부황: [[세조 (동방)|세조 무황제]], 모후: 신현장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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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동방)|대한국]] 제5대 황제.'''
'''[[대한국 (동방)|대한국]] 제5대 황제.'''
= 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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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지치(無爲之治)'''. [[한러전쟁 (동방)|혼란]][[의화단 운동 (동방)|스러웠고]] [[12.10 운동|온갖]] [[아시아 태평양 전쟁|굴곡진]]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던 [[양종 (동방)|선]][[무종 (동방)|황]]들의 치세 이후 평화롭고 안정적인 한국의 6,70년대를 이끈 황제. 이 시기 한국은 전쟁이 가져온 피해를 모두 수복하였고 소련과 대치하며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기 시작한 때였다. 무종의 카리스마와 정치적 활약을 통해 초법적으로 유지해나가던 황제의 전제적 권력이 완전히 의회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국민당 (동방)|국민당]]의 장기집권으로 정치적 안정성이 높은, 그야말로 안정되고 평안한 시대였다. 한마디로 군주가 통치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알아서 굴러가는 ‘무위의 도’가 실현된 시기인 것이다. 이런 무위지치는 [[강종 (동방)|강종]] 치세인 90년대 후반까지 이어지다가 동남아발 경제위기의 여파로 한국 경제도 덩달아 휘청이며 끝났다.
'''무위지치(無爲之治)'''. [[한러전쟁 (동방)|혼란]][[의화단 운동 (동방)|스러웠고]] [[12.10 운동|온갖]] [[아시아 태평양 전쟁|굴곡진]]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던 [[양종 (동방)|선]][[세조 (동방)|황]]들의 치세 이후 평화롭고 안정적인 한국의 6,70년대를 이끈 황제. 이 시기 한국은 전쟁이 가져온 피해를 모두 수복하였고 소련과 대치하며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기 시작한 때였다. 세조의 카리스마와 정치적 활약을 통해 초법적으로 유지해나가던 황제의 전제적 권력이 완전히 의회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국민당 (동방)|국민당]]의 장기집권으로 정치적 안정성이 높은, 그야말로 안정되고 평안한 시대였다. 한마디로 군주가 통치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알아서 굴러가는 ‘무위의 도’가 실현된 시기인 것이다. 이런 무위지치는 [[강종 (동방)|강종]] 치세인 90년대 후반까지 이어지다가 동남아발 경제위기의 여파로 한국 경제도 덩달아 휘청이며 끝났다.


선종은 선황들처럼 막강한 전제 권력을 보장받은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 무종 같은 카리스마로 권력을 휘어잡는 타입도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탓에 화려한 대외행사를 자제하며 조용한 서생의 삶을 영위했으나 평화로운 시기의 황제였던 덕에 무위의 도를 실현한 황제로 존경받고 있다.
선종은 선황들처럼 막강한 전제 권력을 보장받은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 세조 같은 카리스마로 권력을 휘어잡는 타입도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탓에 화려한 대외활동을 자제하며 조용한 선비의 삶을 영위했으나 평화로운 시기의 황제였던 덕에 무위의 도를 실현한 황제로 존경받고 있다.

2021년 8월 23일 (월) 22:51 판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대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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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5대 황제
선종 익황제 | 宣宗 翼皇帝
묘호 선종(宣宗)
시호 안강헌수명신환정평유서효익황제
(安康獻修明神桓正平裕徐孝翼皇帝)
칸호
ᠴᠡᠪᠡᠷ ᠬᠢᠴᠢᠶᠡᠩᠭᠦᠢ

체베르 히칭기
출생 1912년 2월 16일
대한국 길림부 목단강시
사망 1978년 1월 8일 (65세)
대한국 천도부 평안궁 명정전
능묘 임릉(林陵)
재위 대한국 황태자 겸 조선왕
1924년 5월 11일 ~ 1961년 3월 9일
대한국 황제
1961년 3월 10일 ~ 1978년 1월 8일
연호 순화(淳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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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全州)
이(李)
효(効)
부모 부황: 세조 무황제, 모후: 신현장황후
부인 헌성익황후 송씨
자녀 강종 문황제외 1녀

개요

대한국 제5대 황제.

치세

무위지치(無爲之治). 혼란스러웠고 온갖 굴곡진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던 들의 치세 이후 평화롭고 안정적인 한국의 6,70년대를 이끈 황제. 이 시기 한국은 전쟁이 가져온 피해를 모두 수복하였고 소련과 대치하며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기 시작한 때였다. 세조의 카리스마와 정치적 활약을 통해 초법적으로 유지해나가던 황제의 전제적 권력이 완전히 의회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국민당의 장기집권으로 정치적 안정성이 높은, 그야말로 안정되고 평안한 시대였다. 한마디로 군주가 통치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알아서 굴러가는 ‘무위의 도’가 실현된 시기인 것이다. 이런 무위지치는 강종 치세인 90년대 후반까지 이어지다가 동남아발 경제위기의 여파로 한국 경제도 덩달아 휘청이며 끝났다.

선종은 선황들처럼 막강한 전제 권력을 보장받은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 세조 같은 카리스마로 권력을 휘어잡는 타입도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탓에 화려한 대외활동을 자제하며 조용한 선비의 삶을 영위했으나 평화로운 시기의 황제였던 덕에 무위의 도를 실현한 황제로 존경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