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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나라 그림|베트남 공화국 국기.png}} '''베트남''' - 응우옌 왕조에서 시작되어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된 베트남은 대전쟁 중인 1916년 [[베트남 반란]]을 일으켜 [[베트남 독립국|독립 정부]]를 세웠고, 이에 프랑스의 공격이 시작되자 삼국 동맹국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독립 정부는 약 4개월 간의 전투 끝에 패전했고, 결국 독립 정부 인사들이 프랑스군에 항복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 일부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망명 정부를 세워 명목을 유지했으나, 아메리카 전쟁 직후 독일군에 의해 해산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호찌민 역시 지하 활동을 펼치다 1955년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이 때문에 베트남에서도 반프랑스 감정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PLB 선언 이후 베트남을 포함한 인도차이나 지역은 자치권을 부여받았지만 여전히 인도차이나의 독립 여론이 높다는 점에서 현재까지 독립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정당과 프랑스와의 관계 강화를 지향하는 보수주의 정당이 대결하고 있다. | * {{국기나라 그림|베트남 공화국 국기.png}} '''베트남''' - 응우옌 왕조에서 시작되어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된 베트남은 대전쟁 중인 1916년 [[베트남 반란]]을 일으켜 [[베트남 독립국|독립 정부]]를 세웠고, 이에 프랑스의 공격이 시작되자 삼국 동맹국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독립 정부는 약 4개월 간의 전투 끝에 패전했고, 결국 독립 정부 인사들이 프랑스군에 항복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 일부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망명 정부를 세워 명목을 유지했으나, 아메리카 전쟁 직후 독일군에 의해 해산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호찌민 역시 지하 활동을 펼치다 1955년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이 때문에 베트남에서도 반프랑스 감정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PLB 선언 이후 베트남을 포함한 인도차이나 지역은 자치권을 부여받았지만 여전히 인도차이나의 독립 여론이 높다는 점에서 현재까지 독립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정당과 프랑스와의 관계 강화를 지향하는 보수주의 정당이 대결하고 있다. | ||
* {{국기나라 그림|필리핀 식민 정부.png}} '''필리핀''' - 필리핀은 본래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1898년 미국과의 전쟁으로 식민지를 포기할 때까지 약 300년 간 지배했다. 카스티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필리핀을 통치하려는 과정에서 필리핀의 에밀리오 아기날도에 의해 독립 선언문을 발표하였고 미국은 필리핀에서 한 발 물러났다. 하지만 필리핀은 아기날도의 후신으로 [[조셉 S. 파이노이스]]의 공포 정치가 터지며 위기가 고조되다가 1915년 암살된 후 아기날도 내각의 인사들과 함께 임시 정부를 차렸다. 그러나 필리핀은 1917년 삼국 연합국에 의한 폭격과 전투로 피해를 입었고, 1918년에는 [[마닐라 전투]]에서 패배하여 영국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전쟁이 끝나자 필리핀은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1946년 자치권을 부여하며 최초의 자치 의회를 설립할 수 있었으나 이 과정에서 필리핀 국민주의 성향의 국민당이 다수당이 되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촉구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결국 영국은 필리핀 총독을 교체하고 여당인 국민당을 금지시키는 등 정치적 탄압을 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무소속으로 대통령이 되며 강경 친영적 행보를 보이게 되고, 금지되었던 국민당을 합법화시키는 대신 마르코스의 사당인 인민단결당의 관제야당화를 추진해 독재 정권을 펼쳤다. 그 후 1986년 피플 파워 혁명으로 물러났고 1992년 단일 후보였던 미리암 데펜서 산티아고가 당선되며 총독 교체와 함께 민주 정권을 재건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몇 번의 대선을 통해 정통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가면서 집권하다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좌파 포퓰리스트인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총리에 취임하는데 성공해 보수정당인 국민당과 사실상 진보정당을 맡고 있던 인민개혁당과 자유당에 큰 타격을 입히며 큰 화제가 되었다. | * {{국기나라 그림|필리핀 식민 정부.png}} '''필리핀''' - 필리핀은 본래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1898년 미국과의 전쟁으로 식민지를 포기할 때까지 약 300년 간 지배했다. 카스티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필리핀을 통치하려는 과정에서 필리핀의 에밀리오 아기날도에 의해 독립 선언문을 발표하였고 미국은 필리핀에서 한 발 물러났다. 하지만 필리핀은 아기날도의 후신으로 [[조셉 S. 파이노이스]]의 공포 정치가 터지며 위기가 고조되다가 1915년 암살된 후 아기날도 내각의 인사들과 함께 임시 정부를 차렸다. 그러나 필리핀은 1917년 삼국 연합국에 의한 폭격과 전투로 피해를 입었고, 1918년에는 [[마닐라 전투]]에서 패배하여 영국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전쟁이 끝나자 필리핀은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1946년 자치권을 부여하며 최초의 자치 의회를 설립할 수 있었으나 이 과정에서 필리핀 국민주의 성향의 국민당이 다수당이 되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촉구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결국 영국은 필리핀 총독을 교체하고 여당인 국민당을 금지시키는 등 정치적 탄압을 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무소속으로 대통령이 되며 강경 친영적 행보를 보이게 되고, 금지되었던 국민당을 합법화시키는 대신 마르코스의 사당인 인민단결당의 관제야당화를 추진해 독재 정권을 펼쳤다. 그 후 1986년 피플 파워 혁명으로 물러났고 1992년 단일 후보였던 미리암 데펜서 산티아고가 당선되며 총독 교체와 함께 민주 정권을 재건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몇 번의 대선을 통해 정통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가면서 집권하다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좌파 포퓰리스트인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총리에 취임하는데 성공해 보수정당인 국민당과 사실상 진보정당을 맡고 있던 인민개혁당과 자유당에 큰 타격을 입히며 큰 화제가 되었다. | ||
* {{국기나라 그림|900px-Flag of Thailand.svg.png}}{{여백|0.15em}}{{국기나라 그림|시암제국 국기.png}} '''태국''' - | * {{국기나라 그림|900px-Flag of Thailand.svg.png}}{{여백|0.15em}}{{국기나라 그림|시암제국 국기.png}} '''태국''' - 태국은 아유타야의 몰락 이후 1767년 톤부리 왕조를 세우며 태국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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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6일 (토) 11:5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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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제국 The Three Empires | |||||||||||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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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환경 | PC (크롬), 모바일 | ||||||||||
저작권 | CC-0 (퍼블릭 도메인), | ||||||||||
영향을 받은 매체 | Communist 1968 등 | ||||||||||
틀 설계자 | WARSAW | ||||||||||
상징 컬러 | 검정 (#000000) |
개요
세 개의 제국(The Three Empires)는 와르샤와의 세 번째 장편 세계관이자, 첫 대체역사 세계관이다.[1]
2021년 8월 28일 새로운 세계관 연재를 위해 구상을 시작하였으며, 기본 설정이나 구상이 어느 정도 완성된다면 연재할 때 매우 편해질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연재일은 2021년 10월 16일로, 어나더어스가 휴재된 10월 15일 다음 날에 연재를 시작하였다. 첫 번째 세계관인 어나더어스가 판타지를 합친 혼합 장르이고, 두 번째 세계관이었지만 완결된 라 레지스탕스가 디스토피아 장르라면, 이 세계관은 영국, 독일, 프랑스가 각각 식민지 개척과 독립, 전쟁 등을 통해 세계를 분할시키며 현재까지 존속되는 대체역사 장르라고 볼 수 있다. 조만간 어나더어스처럼 음악이나 문학 등으로 장르를 확장할 계획이지만 국가 + 전쟁 + 정치 + 외교의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세 개의 제국이란 명칭은 당연히 세 개의 나라가 제국인 것에서 비롯되었다.[2] 작중에서 영국과 독일, 프랑스는 현재까지 초강대국이자 식민제국으로 성장하고, 반대로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의 나라들은 삼국에 분할된 채로 설정되었으며 세 나라 모두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목적을 이유로 각각 자국의 국제 기구를 가지고 있지만 유엔이나 국제 연맹같은 단일 국제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주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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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 전쟁 -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와 영국, 신성 로마 제국 등이 이끄는 대프랑스 동맹이 격돌한 사건. 프랑스 혁명 이후 권리장전을 통해 공화국이 출범했지만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프랑스는 통령정부가 세워지고, 이에 프랑스의 폭주를 막기 위해 영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전쟁을 선포한다. 하지만 프랑스는 강력한 군사력을 키워나가며 유럽의 대부분을 쓸어나갔고, 영국은 대륙봉쇄령과 반전 운동으로, 독일은 틸지트 조약과 프로이센의 분열로 타격을 입는다. 그러다 러시아 제국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프랑스가 모스크바 근처까지 진격한 가운데 러시아도 항복을 선언하면서 프랑스는 유럽을 제패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 페르시아의 확장과, 남하 정책 등을 이유로 아프가니스탄과 동맹을 맺어 러시아를 공격한 사건. 러시아가 남하 정책을 펼치면서 페르시아까지 세력을 떨치려 하였으나 카자르 왕조가 러시아의 팽창을 반대하게 되면서 1809년 아프가니스탄과 동맹을 맺어 러시아에 선전 포고를 한다. 초반에는 러시아가 우위를 접하고 있었으나, 1810년 러시아 침공을 감행한 프랑스로 인해 점차 불리해지며 페르시아가 반격에 나섰으며 결국 러시아가 큰 타격을 입고야 만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전쟁은 계속되었으나 1815년 8월 항복을 선언하고 캅카스 일대와 중앙아시아 지역 일부를 빼앗겼다.
- 영란 협정 - 영국이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사기 위해 1828년 네덜란드와 협정을 맺은 사건.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영국은 유럽과 무역을 할 수 없어 경제 타격을 입었지만 식민지 확대를 위해 아시아와 남아메리카로 진출하게 되었는데, 그 때 인도네시아에서 확장 중이던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사기 위해 동인도 총독을 만나 동인도의 모든 이권을 영국령 동인도 회사에 넘기는 협정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이후 인도네시아까지 확장된 동인도 회사는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통해 독점적 해상 무역을 이끌게 된다.
- 국민주의·자유주의 운동 - 프랑스 제국이 몰락하고 독일 통일의 기회를 주게 된 사건.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대륙 봉쇄령과 함께 영국을 막기 위하여 무역 활동에 집중했는데, 대륙봉쇄령으로 인한 경제 위기는 유럽을 포함하여 프랑스에 타격을 입었고, 결국 나폴레옹 2세가 즉위함에 따라 프랑스의 내부 개혁과 경제 회복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이후 대륙봉쇄령은 폐지되었지만, 식민지들은 여전히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에 국민주의와 자유주의를 토대로 독립을 요구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1848년 국민국가를 토대로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자는 국민주의, 자유주의 운동이 중앙유럽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독일에서의 3월 혁명, 이탈리아에서의 10월 혁명, 바르샤바 혁명이 유명한 운동으로 불리고 있다. 이 운동 이후 프랑스는 유럽에서의 식민지와 동맹국을 잃었지만 독일이 통일의 기회를 주게 되는 원인이 된다.
- 티베트 혁명 - 영국의 지원을 받은 티베트군이 청나라로부터 독립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청나라의 위기를 가져온 사건. 오스만 제국 이후 강대국으로 부상한 페르시아를 막기 위해 영국은 1852년 티베트에 혁명을 일으킨 후 독립시키며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2년 뒤 영국의 지원으로 티베트 독립군이 청나라를 공격하며 마침내 독립에 성공했는데, 청나라와 영국 간의 갈등은 이 사건 이후 커졌다. 그러나 제2차 아편 전쟁으로 청나라는 굴욕을 당하고야 만다.
- 크로이스 혁명 - 보나파르트가가 몰락하고 새로 떠오른 크로이스 장군에 의해 프랑스를 장악한 사건. 나폴레옹 3세 퇴위 이후 제국파의 위상은 추락했으며 동시에 부르봉의 지지를 받는 왕당파와 자유주의 세력의 지지를 받는 공화파로 갈라지며 충돌하게 된다. 그 때 프랑스의 지휘관인 장 알렉산드르 크로이스에 의해 1868년 쿠데타를 벌이며 양 세력을 진압시키고 새로운 프랑스 황제가 되었고, 이를 크로이스 혁명이라 부른다. 이후 크로이스는 알렉산드르 1세로 즉위했고, 1896년 알렉산드르 2세가 즉위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 독일의 통일 - 남독일과 북독일로 나뉘던 독일이 통일된 사건. 프랑스의 자치권을 보장받았지만 1848년 3월 혁명의 성공으로 독립한 이른바 양독은 오스트리아 제국과 독일 연방을 결성시켰으나, 1862년 북독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철혈 연설을 통해 국력을 회복하기로 한다. 이후 1866년 독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를 격파하고, 다음 해에 쾨니히스베르크 왕국을 차지하며 남독일과의 합병에 승인, 마침내 1870년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 아프리카 분할 - 아프리카가 영국, 프랑스, 독일에 의해 완전히 분할된 사건. 아프리카의 식민지 개척은 15세기 포르투갈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후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 후발주자가 나서서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그러다 1810년대부터 영국이 남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개척을 시작하고, 프랑스도 알제리를 중심으로 개척에 나섰는데 1882년 이후부터 이러한 활동이 가속화되었다. 그 때 독일이 1890년대부터 아프리카 분할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삼국의 식민지 경쟁이 시작된다. 물론 파쇼다 사건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충돌한 적이 있었지만 화친 조약으로 끝났으며, 독일의 영프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콩고를 식민지로 삼은 것을 토대로 종단을 주장한 영국은 결국 프랑스를 따라 횡단 정책으로 교체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 대전쟁 이후 영구적인 분리주의 운동에 맞서 싸워야 하는 과제로 남게 되었다.
- 대전쟁 - 삼국 동맹 vs 삼국 연합, 두 세력이 맞붙은 사건. 영국과 프랑스의 앵글로-프랑스 동맹과 미텔오이로파 계획을 추진하려던 독일, 그리고 또 다른 강대국인 러시아가 유럽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1900년대 초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과 비밀 조약을 통해 자기 편으로 들어오려 하였고, 독일은 러시아를 막고자 영프 동맹과 교섭을 시도하였다. 그러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삼국 동맹 참여를 구실로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러 마침내 삼국 연합과 삼국 동맹 간의 대전쟁이 발발한다. 약 11년 간 걸친 전쟁 끝에 삼국 연합국은 승리하였으며, 삼국 동맹국은 사실상 패배하며 결국 영국, 프랑스, 독일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 아메리카 전쟁 - 본격적인 삼국 경쟁 시대의 시작을 알린 사건. 영국은 영연방, 프랑스는 대프랑스 연합, 독일은 경제 공동체인 미텔오이로파를 결성하며 세력 다툼이 시작되었는데, 그 때 마지막 근거지였던 아메리카를 두고 영토 경쟁에 나섰다. 1934년 6월 삼국은 아메리카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독일은 멕시코를 공격하여 북진을 시도했으며, 1938년 2월 캐나다와 멕시코, 카리브해를 통해 미국을 공격하여 수도인 워싱턴 D.C.를 함락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아메리카도 자연스레 삼국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는데, 이 때부터 본격적인 삼국 경쟁 시대를 촉발시킨 원인이 되었다.
- 반삼국 운동 - 영프독으로부터 식민지 독립과 자유주의, 공산주의 운동을 벌인 사건. 아메리카 전쟁 이후 삼국 경쟁 시대를 촉발시켰지만, 삼국의 통치에 반발한 국민들은 자유와 권리, 그리고 식민지 독립을 위해 반삼국 운동이라는 대규모 운동을 전개한다. 처음에는 식민지 독립과 자유주의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1950년대 이후부터는 각국의 공산주의 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공산주의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고, 1960년대 이후에는 강경파인 흑표당으로 대표되는 흑인 권리 운동까지 이어지며 1969년 PLB 선언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세 나라 모두 가만히 있을 순 없었고 대규모 군사 명령과 가혹한 탄압을 통해 세력을 줄이려 노력하였지만, 1962년에는 가장 먼저 인도에 자치권과 자치 의회 설립을 허용하는 등의 결과가 나오다가 1969년 PLB 선언으로 완전히 성공하였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식민지 독립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들었고,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운동이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나라 개요
자세한 내용은 세 개의 제국/국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역사
분기점
자세한 내용은 세 개의 제국/분기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항목 참조.
세력
런던 | 입헌군주제 | ||
베를린 | 입헌군주제 | ||
파리 | 입헌군주제 |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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