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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미영전쟁]]의 전시 총리 === | === [[제2차 미영전쟁]]의 전시 총리 === | ||
=== 두번째 총리 임기 === | === 두번째 총리 임기 === | ||
1865년 여름 들어, 미국은 캐나다의 일부 섬들을 제외하고 영국군을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쫓아냈으며 평화 조약만을 남겨둔 사실상의 승전 상태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전시 총리로서의 임기가 끝났음을 주장하는 [[보수당 (신대륙)|보수당]]의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거국내각의 해체와 조기 총선을 요구하였다. [[186년 미국 총선]]은 너무나도 링컨이 속한 자유당에 유리한 총선이었다는 점에서 페어 플레이를 요청한 것이다. 링컨은 결국 평화 조약을 한달 앞둔 8월 20일, 총리직을 사퇴하고 부총리인 [[앤드루 존슨 (신대륙)|앤드루 존슨]]을 총리로 올린 뒤 자신은 부총리 자리로 불러났다. 1865년 12월 20일, 앤드루 존슨은 황제 [[리처드 2세 (신대륙)|리처드 2세]]의 동의를 얻고 의회를 해산하였으며 [[1866년 미국 총선]]이 실시되게 된다. | |||
정권 탈환을 예견한 보수당의 기대와는 달리, 선거 판세는 "전쟁 영웅"인 링컨에게 극도로 유리하게 기울었으며 1월 말의 총선에서 링컨이 이끄는 [[자유당 (신대륙)|자유당]]은 350석 중 '''291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어냈다. 이는 현재까지도 단일 정당이 거둔 승리중에서는 가장 큰 승리중 하나로 남아있다. | |||
링컨은 2월에 총리로 재지명되면서 총리직에 복귀하였다. 2차 임기 도중에는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실시되지 못했던 1기 총리 시절의 공약을 추진하는데 대부분의 임기를 보냈다. 그는 파괴된 북부 지역의 대도시를 재건하기 위한 [[국가재건부]]를 설립하였으며 이 부처는 이후 [[주택건설부]]로 개편되어 현재까지 남아있게 된다. 또한 북부를 대신할 서부의 도시들의 건설에 투자하였으며 [[브록빌 조약]]으로 미국의 수중에 떨어진 캐나다 식민지의 미국화도 빠른 속도로 추진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무시되어왔던 노동자와 흑인들의 보통 선거권을 인정하여 [[1870년 미국 총선]]부터 세금 5달러 이상을 내야 투표에 참여할 수 있던 기준을 3달러로 낮췄고 흑인들의 참정권과 피선거권도 인정했다. 당연히 보수층에서는 반발이 거셌으나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게 된 많은 노동자와 흑인들은 링컨 총리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 |||
=== 말년의 노동운동 === | === 말년의 노동운동 === | ||
== 평가 == | == 평가 == |
2022년 6월 30일 (목) 15:17 판
ⓒ Communist 1968, 2022 | CC-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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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25·27대 총리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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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02년 2월 12일 |
캐롤라이나주 켄터키 호젠빌 | |
사망 | 1881년 6월 30일 (향년 79세) |
캘리포니아 준주 오레건 포틀랜드 | |
재임 기간 | 제25대 총리 |
1860년 1월 20일 ~ 1865년 8월 20일 | |
제27대 총리 | |
1866년 2월 13일 ~ 1870년 2월 23일 | |
초대 노동권리청장 | |
1873년 5월 30일 ~ 1879년 12월 4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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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미국의 정치인. 제25·27대 총리를 역임하였다.
평생을 인종 평등과 노동자 인권 운동에 투신하였으며 제2차 미영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설적인 정치인이다. 역대 모든 총리중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피에르 트뤼도와 더불어 가장 고평가받으며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순위에서도 미국의 국부라 할 수 있는 조지 1세와 1위를 다툰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높은데, 우익 진영에서는 제2차 미영전쟁 당시의 영웅적인 전시 총리로서의 역할을, 좌익 진영에서는 종종 미국 사회주의의 시초로 여겨지는 그의 노동 운동을 주목하며 각기 다른 분야에서 두루 그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생애
낙선으로 점철된 초기 정치 인생
총리로 당선되다
제2차 미영전쟁의 전시 총리
두번째 총리 임기
1865년 여름 들어, 미국은 캐나다의 일부 섬들을 제외하고 영국군을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쫓아냈으며 평화 조약만을 남겨둔 사실상의 승전 상태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전시 총리로서의 임기가 끝났음을 주장하는 보수당의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거국내각의 해체와 조기 총선을 요구하였다. 186년 미국 총선은 너무나도 링컨이 속한 자유당에 유리한 총선이었다는 점에서 페어 플레이를 요청한 것이다. 링컨은 결국 평화 조약을 한달 앞둔 8월 20일, 총리직을 사퇴하고 부총리인 앤드루 존슨을 총리로 올린 뒤 자신은 부총리 자리로 불러났다. 1865년 12월 20일, 앤드루 존슨은 황제 리처드 2세의 동의를 얻고 의회를 해산하였으며 1866년 미국 총선이 실시되게 된다.
정권 탈환을 예견한 보수당의 기대와는 달리, 선거 판세는 "전쟁 영웅"인 링컨에게 극도로 유리하게 기울었으며 1월 말의 총선에서 링컨이 이끄는 자유당은 350석 중 291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어냈다. 이는 현재까지도 단일 정당이 거둔 승리중에서는 가장 큰 승리중 하나로 남아있다.
링컨은 2월에 총리로 재지명되면서 총리직에 복귀하였다. 2차 임기 도중에는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실시되지 못했던 1기 총리 시절의 공약을 추진하는데 대부분의 임기를 보냈다. 그는 파괴된 북부 지역의 대도시를 재건하기 위한 국가재건부를 설립하였으며 이 부처는 이후 주택건설부로 개편되어 현재까지 남아있게 된다. 또한 북부를 대신할 서부의 도시들의 건설에 투자하였으며 브록빌 조약으로 미국의 수중에 떨어진 캐나다 식민지의 미국화도 빠른 속도로 추진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무시되어왔던 노동자와 흑인들의 보통 선거권을 인정하여 1870년 미국 총선부터 세금 5달러 이상을 내야 투표에 참여할 수 있던 기준을 3달러로 낮췄고 흑인들의 참정권과 피선거권도 인정했다. 당연히 보수층에서는 반발이 거셌으나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게 된 많은 노동자와 흑인들은 링컨 총리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