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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시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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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톨리아사
주요국들은 볼드체.
- 폴리네시아족 (폴리네시아, 로부터 독립한 브뤼셀로)
- 아르메노족 (아르메노, 하인리히멘, 멘부르크)
- 제노바족 (제노바, 오슬리아, 두 국가의 시초는 같았으나 현재는 분열 상태.)
- 남중족 (리버티아, 라트비아, 유토피아, 알바키아, 페로시마)
- 리스본계 (리스보니아)
- 세인트루이스계(남동족) (세인트루스 연방)
- 에든버러계 (에든버러, 부다페시아, 사칠리아, 페스코피아)
- 로망시아계(외침족) (로망샨, 몰도비)
고대
이스톨리아에서 처음으로 도시 문명이 창궐한 지역은 지금의 리스보니아, 이스톨리아 동남부 리스본족들의 리스본 문명이었으며, 이후 폴리네시아 지역의 고대 폴리네시아와 북이스톨리아 전 지역을 아우르는 고대 갈라트가 창궐하며 '이스톨리아 주요 3대 문명'이 성립되었다.
기원전 19세기부터 철 제련 기술이 신속하게 전파되었으며, 이는 14세기 고대 리스본인들이 더욱 더 발전시키며 완전한 철 제련 기술이 이스톨리아에 정착되었다. 한편 갈라트인들은 문명의 영향반경을 넓혀 동이스톨리아의 리스톤족을 정복시키며 북이스톨리아 전역에 영향을 주게 된다.
남서이스톨리아의, 여러 도시국가로 나뉘어져있던 고대 폴리네시아는 기원전 800년경 두 개의 큰 도시국가인 브뤼스와 페르티아 진영으로 분열된다. 이 시기의 도시국가를 '파트리움'이라고 한다. 파트리움들은 방어를 위해 세운 성벽을 중심으로 마을이 이루어지면서 형성되었으며, 처음에는 왕정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국가 자체의 생산력이 증가하고 기존의 신분층이 붕괴되어가기 시작하면서 평민들이 참정권을 요구하게 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파트리움들이 공화정으로 넘겨가게 되었다.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는 관계에 있었던 브뤼스와 페르티아는 기원전 464년 브뤼스-페르티아 전쟁을 통해 브뤼스가 페르티아를 정복하며 폴리네시아 세계는 통일되었다.
한편, 폴리네시아 옆 아르메노족들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과 내정 분열 끝에 기원전 316년 파르탄 1세 세력에 의해 통일국가인 아르메노 왕국이 건립된다. 이 시기 남중이스톨리아 세계의 남중족들도 차차 도시국가들이 성립되기 시작한다.
- 고대 가이아의 침입
압도적인 병력과 무장술로 나일리아 반도를 제외한 클레이시아 전역을 차지한 고대 가이아는 공화정 출범 이후인 기원전 195년 서이스톨리아 전쟁을 일으킨다. 비록 통일은 하였으나 남아있던 페르티아 세력과의 내전 등으로 결속력을 잃고 있던 폴리네시아는 단 2년 만에 멸망하고야 말고, 아르메노 왕국은 끝까지 저항했으나 가이아의 압도적인 병력에 버티지 못하고 기원전 189년 정복당했다.
이후 기원전 187년 제정 건립 이후에도 가이아 제국은 함대를 이끌고 스푸트니 제도와 베스트 제도를 시작으로 고대 갈라트의 세력권까지 침입하며 영향력을 넓혀갔다. 남서이스톨리아 지역을 가이아가 지배하며 이 지역의 문화가 쇠퇴하기 시작한 사이, 정복당하지 않은 남중이스톨의 남중족과 남동이스톨의 고대 리스본, 세인트루스 왕국 등은 자신들만의 문화를 펼쳐나가며 성장을 거듭했다.
중세
- 가이아의 쇠퇴, 남중족을 중심으로 한 키오피 왕국의 성장
223년, 남중족의 통일 국가인 키오피 왕국이 건립되었다. 키오피 왕국도 여느 강대국과 다름없이 처음에는 작은 도시국가였으나, 점차 남중족들의 다른 도시국가들을 무너뜨리고 영향력을 넓혀가면서 남중이스톨리아 세계의 강대국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3세기부터 가이아 제국이 쇠퇴하기 시작하며 클레이시아 세계와 남이스톨리아 세계는 가이아 제국과 키오피 왕국의 양분할 체제로 이어져간다.
349년 가이아 제국은 폴리네시아족과 아르메노족과의 제2차 서이스톨리아 전쟁으로 인해 남아있던 이스톨리아 지역에서 전부 철수하게 된다. 5세기 키오피 왕국은 잠시나마 독립했던 폴리네시아족과 아르메노족을 '다시' 정복하고 클레이시아 본토로 진격하여 475년 가이아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킨다. 키오피 왕국은 클레이시아는 물론이고 이스톨리아에까지 패권국 자리를 쟁취한다.
그러나 수많은 민족들을 정복한 키오피 왕국은 얼마 가지 않아 수많은 민족들의 저항과 독립 투쟁을 맞게 된다. 거기에 더불어 나일리아 왕국의 두 차례의 침공으로 인하여 키오피 왕국은 클레이시아 철수 후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1085년 끝내 멸망한다. 남이스톨리아는 물론이고 북이스톨리아 지역에까지 영향을 펼쳤던 초강대국 키오피 왕국의 멸망은 수많은 국가의 독립과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야기시키며 근세 이스톨리아 세계가 대항해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의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키오피 왕국의 멸망으로 인해 광복하거나, 독립한 국가는 다음과 같다.
근세
근세의 이스톨리아는 하나의 단어, 대항해시대로 요약할 수 있다.
근세 이스톨리아는 키오피 왕국의 멸망으로 인해 수많은 민족들이 한순간에 독립하면서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같은 남중족인 멘부르크 지역도 엘리트 왕국과 멘부르크 제1왕국으로 분열되었으며, 가장 심각한 아르메노족은 부르비아 왕국, 북아르메노 왕국, 서남중국으로, 남중족은 남중 제국, 라트비아 왕국, 페로시마 왕국, 레스코피아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키오피 왕국의 세력권이 아니었던 남동이스톨리아도 외침족인 로망시아족의 침입으로 로망시아 왕국, 세인트루이스 왕국, 리스본 제1제국으로 분열되었다.
로망시아 왕국은 비록 남동이스톨리아 북부를 침공하며 정착했으나 아직 내부 정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스톨리아 각지를 떠돌아다니다 드디어 정착한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즉, 당시까지는 폴리네시아 왕국, 남중 제국, 리스본 제1제국 등에 밀리는 2류 국가였다는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정리가 된 후, 2류 국가에서 벗어나 전 세계에 큰 영향을 주고 싶었던 로망시아 왕국은 (물론 세력 증폭만이 아닌 향신료나 다른 요인들도 많았다) 신대륙 개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 자신이 신대륙의 위치를 알고 있다며 여러 국가에 지원 요청을 했으나 모두 거절당한 아스페리노 델피에로라는 탐험가가 있었고, 당시 로망시아의 국왕이었던 로망시아 2세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델피에로에게 지원을 해주었고, 델피에로는 1차 항해를 떠난다.
1차 항해에서 델피에로는 아스페리노 섬을 발견하고, 그 뒤에 신대륙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로망시아 2세에게 보여준다. 그렇게 델피에로는 함선 15척과 1,000명의 선원들을 이끌고 아스페리노 섬을 지나, 엄청나게 큰 땅을 발견한다. 그 땅의 이름은, 웨스티시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