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마검록의 등장술문. 사대사좌 중 일동. 중원총화무련中原總和武聯과 대중화본류무방大中華本流武邦을 합쳐서 이르는 단체.

2차세계대전 종류 이후 국공합작이 끝나야하나 전략의 문제로 양쯔강을 중심으로 국공일선이라는 조약이 이루어진다. 한국대전이 이어진 이후에도 만주에 남은 구 일본군 세력을 일소하지 못한 북중국(공산중국)과 미국과 불편한 동맹관계를 잇게 된 남중국(금민중국)으로 인해서 중화권의 술문, 무파들은 대거 혼란에 빠진다.

결국 과거의 세력분포와 성향을 모두 포기하고 남북으로 갈라진 지리적 위치에 맞추어서 결집하게 된게 무련과 무방의 두 곳이다. 다만 70년대 북중국-소련의 분쟁, 베트남-남중국 전쟁 등을 겪으면서 두 중국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급격하게 가까워지고 홍콩 반환을 계기로 자유 방문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결국 이 시기 갈라져있던 두 무련과 무방은 약 50년만에 하나로 합쳐지게 된 것이다.

특징

흔히 말하는 중원의 거의 모든 무학을 다 보유하고 있다. 정사황 뿐만 아니라 일제침략기에 이러서는 세외 세력도 모여서 어떻게든 세를 이어가려고 긍긍했던 처지인지라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이전의 성향과 다르게 급속하게 대부분의 무파들이 친해졌다. 또한 곤륜과 금오로 대표되는 선술[1]과 속세에 남아있던 방술을 아우르며 현대 논리학 체계에 기반한 새로운 선술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게다가 원래부터 무파들이 이르는 심법이라 함은 술무병진의, 그 자체로 무법이면서도 술법으로 기능한다는 최고 수준의 사상유도기관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자랑이다.

그리고 위 두 과정과 남은 무파들이 비전을 모두 모아서 무련과 무방에 기증한 터에 무련과 무방에서는 굉장히 최적화 되고 범용화 된 무법과 이를 보조해줄 수 있는 공격형 선술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여전히 무파 자체의 수가 많아서 무기별로 1종 혹은 2종씩 정리하여도 수십가지나 되는 무법들이 존재한다는 문제와 함께 술법쪽에서 모자란다는 점이 크다. 본디 선술이라는 것 자체가 공격성이 크지 않고 방술과 합쳐져도 이는 크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 문제는 19c들어서 은주 시대 유적지가 발견되면서 신화시대의 술법이 몇개 발견되면서 다소 해결되었으나 본질적인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이를 토대로 속성력 자체를 다루는 술법과 이를 숏컷화 시킨 부적술을 통하지만 공격성 면에서 서방이나 다른 사대와 비교하기엔 모자라다. 이 중 난립하는 무기술과 심법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2000년대에 무련방에서는 정오를 초빙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정오와의 악연

정오는 이 시절부터 서현류 소속이지만 무파 사이에서 더 유명한 아웃사이더였다. 무련방[2]은 그의 천재적인 무법에 대한 자질과 분석능력을 높이사서 무련방의 꿈인 무법 통합의 연구를 맡긴다. 이 때 정오는 3가지 조건을 들었다.

  • 모든 무련방의 서적에 대한 제한 없는 열람
  • 자신을 위한 무기 한 체
  • 계약이 만료되면 자신이 지명하는 상대와의 대결

이 세가지 조건에 대해서 1,2번은 허락하나 3번은 계약이 만료됨이 아니라 연구가 완료되는 때로 지정하여 무련방은 이를 받아들인다. 1차 한중분쟁 직전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무련방이 자랑하는 위신등선爲神登仙의 무이다.

하지만 무련방에서는 위신등선의 무가 정오의 손에 들어가는걸 막기 위해 연구가 완료되기 전 계약을 스스로 파기하고 정오의 손에 들어간 자료를 파기하려고 한다. 자세한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과정에서 무련방의 수뇌부가 거의 괴멸, 당대 무련방주를 역임하고 있던 무련주를 격살했다. 이후 무련방에 직접 쳐들어가 남은 연구자료를 모조리 불태우고 남은 결과물만을 무련방에 전해주었다.

1차 한중분쟁의 원인이 이 때문이라고 지목하는 학자도 있을만큼 동북아 초상학계에 엄청난 파란을 낳은 사건이며 사대사좌 중 일동一東이라 불리던 무련방은 이로 인해서 가라앉고 그 자리를 일정회세천회가 꿰차게 된다.

무련방의 무법

  • 오악검
  • 팔황무결
  • 구주신창
  • 천하패도류
  • 기타 다수

위신등선의 무

남아있는 위신등선의 무는 불완전하다는게 중론이나 정오가 실전에서 사용하는걸 보면 아마 에테리얼라이즈에 이르는 요령과 그 사용법에 대한 부분만이 빠졌을 뿐 무술, 무법으로서의 형태나 심법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기본적으로 위신등선의 무 자체가 무련방의 다양한 무법을 모아서 범용성 높은 하나의 무법으로 다시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위에 언급된 검도타술 등과 연동된다.

위신등선의 무가 기존의 무술과 다른건 무술의 행동을 근육과 신경계의 반응이라는 기초하에 이를 코드화하여 패키징하는데 있다. 따라서 갈수록 경량화되고 출력에 의존하게 된 구법의 심법(사상유도기관)과 다르게 현대술법의 주류인 무겁고 자동화된 데이터베이스에 기초화한 팩토링 작업을 거친다. 이 과정과 행동의 패키징을 통해서 반사적이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손에 넣고 또한 혼백심체에 이 과정을 새겨넣음으로서 패키징한 행동 그 자체를 다시 사상유도기관에 리팩토링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의 반복을 통해서 혼의 정보량이 복잡, 다양화되면서 암호화되고 백은 다양한 움직임에서 다양한 속성을 손에 넣어 그 크기를 키울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방법은 정오가 만들어낸 다른 무파인 전무류기천무극검류에서도 보이고 심지어는 염마술류인 네야에서도 정신의 패키징이라는 형태로 보이는걸 보아서는 그의 이론이라고 추정된다. 또한 정오의 위신등선 혹은 위신등선의 축을 이루는 정오의 기초이론과 이 열화판 위신등선이 다른 점은 바로 이 패키징과 팩토링 코드화의 연결점에 있다. 정오의 경우 이러한 패키징을 구별하여 무심과 유심의 형태를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게 되어있다. 일반적인 위신등선의 사용자는 이를 제대로 행하지 못한다. 정오는 위신등선을 통해서 자신의 이론을 완성하고 에테리얼라이즈를 이룩하였고 자파의 원수이며 동시에 비전을 가지고 있는 정오는 무련방의 최대 척살목표이다.

분파

원래도 여러 유파들의 연합회였던 두곳이 뭉친터라 분파, 분회들이 굉장히 많다.

  • 중원총화무련中原總和武聯, 북련
  • 대중화본류무방大中華本流武邦, 남방
    • 구룡회(구룡성회, 구룡문, 구룡파)
      구룡성채를 중심으로 발달한 분파. 근접무술, 암살술, 총 그리고 일반 사물을 이용한 격투술에 특화되어있다.,
  1. 봉래는 더 동쪽. 한국과 일본을 아울렀으나 무령왕릉 건설 이후 내룡이 끊기고 점차 음양도로 발전해나가면서 봉래는 한반도만을 이르게 되었다.
  2. 1999년 무련과 무방은 공식적으로 앞으로 미래를 함께 해나가는 과거의 친척이라는 선언으로 통합되었다. 내부적으로는 무련과 무방의 두개 조직이 병존하는 형태이지만 공식적으로는 한 소속이다. 이 99년은 양 중국이 미래 선언을 한 것과 같은 것으로 정부와 무련방 사이의 커넥션에 대해서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