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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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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통칭 '''대한''' 혹은 '''제국주의 한국'''은 신미개혁을 시작으로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그 식민지들을 통치했던 제국주의 열강이다. 1875년 7월 3일부터 1945년 4월 4일까지 유지됬으며, 대일본제국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근대화에 성공한 유이한 국가였다. 현대까지 아시아 북부와 시베리아 일대에 남아있는 영향력을 끼쳤으며, 이후 헌법의 개헌으로 기존의 제국 체제가 붕괴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 '''대한제국''', 통칭 '''대한''' 혹은 '''제국주의 한국'''은 신미개혁을 시작으로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그 식민지들을 통치했던 제국주의 열강이다. 1875년 7월 3일부터 1945년 4월 4일까지 유지됬으며, 대일본제국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근대화에 성공한 유이한 국가였다. 현대까지 아시아 북부와 시베리아 일대에 남아있는 영향력을 끼쳤으며, 이후 헌법의 개헌으로 기존의 제국 체제가 붕괴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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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
=역사= | =역사= | ||
===극동의 여명=== | ===극동의 여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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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비백산한 의원들을 구타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유혈사태를 일으키며 소위 '학도백의단'은 점점 의회 건물 앞으로 진격해 갔으며, 결국 단체로 열광한 상태로 문을 파손시키고 강제로 건물 내부로 진입하였다. 문제는 이 당시 영친왕 이은이 시찰을 위해 의회로 나와있었다는 점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의원들에게 행해진 폭력을 영친왕이 말리던 도중, 상당히 과격한 학생 하나에게 구타를 당한 뒤, '''난간에서 떨어져 의회장 좌석에 추락사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졸지에 황족 하나가 정부 집권당에게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 정계는 당일날 발칵 뒤집혔고, 당일 새벽 6시 의회장을 장악한 김창암 세력에게 군부의 절반 정도가 충성 포기를 선언, 김창암 정권을 쿠데타 세력으로 간주하면서 서서히 불안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 혼비백산한 의원들을 구타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유혈사태를 일으키며 소위 '학도백의단'은 점점 의회 건물 앞으로 진격해 갔으며, 결국 단체로 열광한 상태로 문을 파손시키고 강제로 건물 내부로 진입하였다. 문제는 이 당시 영친왕 이은이 시찰을 위해 의회로 나와있었다는 점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의원들에게 행해진 폭력을 영친왕이 말리던 도중, 상당히 과격한 학생 하나에게 구타를 당한 뒤, '''난간에서 떨어져 의회장 좌석에 추락사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졸지에 황족 하나가 정부 집권당에게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 정계는 당일날 발칵 뒤집혔고, 당일 새벽 6시 의회장을 장악한 김창암 세력에게 군부의 절반 정도가 충성 포기를 선언, 김창암 정권을 쿠데타 세력으로 간주하면서 서서히 불안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 ||
문제는, 아직 김창암이 국내의 민주세력을 모두 쫓아내지는 못한 상황이었다는 점. 여기에 당시 유력 황족이었던 | 문제는, 아직 김창암이 국내의 민주세력을 모두 쫓아내지는 못한 상황이었다는 점. 여기에 당시 유력 황족이었던 양연군 이연과, 민주계의 거두였던 우남 이승만이 합작, 민주세력과 군에게 김창암을 몰아낼것을 요청하는 동시에 반 김창암 세력을 결집시키기 시작하자, 모 아니면 도라고 판단한 김창암의 지시에 의해 이범석을 따르던 육군들이 다른 육군들에게 발포하면서, 한국 역사상 가장 작지만 중요한 내전인 한성 내전이 발발하였다. | ||
===제국의 끝=== | ===제국의 끝=== | ||
그러나, 황족을 죽였다는 김창암 세력의 이름표는 그 무게가 막심했다. | 그러나, 황족을 죽였다는 김창암 세력의 이름표는 그 무게가 막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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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 =의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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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 =식민지= | ||
{| class="wikitable" style="width:100%;text-align:center;border:2px solid #2b2678" | | |||
| colspan="3" width="100%" style="background: linear-gradient(#0f0a4a 30%, #2b2678);color:#fff" |[[파일:다이칸.png|40px|border]]<br/> '''대한제국의 식민지 · 자치령 및 조차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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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width="20%" style="background:#2b2678;color:#fff;" | '''해당지역''' | |||
| colspan="1" width="60%" style="background:#2b2678;color:#fff;" | '''명칭''' | |||
| colspan="1" width="20%" style="background:#2b2678;color:#fff;" | '''담당기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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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width="20%" style="background:#58538f;color:#fff;" | '''북만주''' | |||
| colspan="1" width="60%" style="background:#fff;" | [[파일:무궁한 만주.webp|30px]] [[만주한치시기 (아침해의 원유관)|{{color|#0d173b|만주}}]] | |||
| colspan="1" width="20%" style="background:#fff;" | [[만주총독부 (아침해의 원유관)|{{color|#0d173b|만주총독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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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width="60%" style="background:#fff;" | [[파일:몽고총독부.webp|25px]] [[몽고주 (아침해의 원유관)|{{color|#0d173b|제국 몽고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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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width="60%" style="background:#fff;" | [[파일:눈꽃심볼.png|30px]] [[연해주 공동자치령 (아침해의 원유관)|{{color|#0d173b|연해주 자치령}}]] | |||
| colspan="1" width="20%" style="background:#fff;" | {{color|#0d173b|연해총관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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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width="20%" style="background:#2b2678;color:#fff;" | '''기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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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width="20%" style="background:#58538f;color:#fff;" | '''칭다오''' | |||
| colspan="1" width="60%" style="background:#fff;" | {{color|#0d173b|청도}} | |||
| colspan="1" width="60%" style="background:#fff;" | {{color|#0d173b|청도 행정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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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3" width="20%" style="background:#58538f;color:#fff;" | * 자치령은 1920년대 괴뢰국으로 <ref>연해주 자치령에서 극동 공화국으로, 극동 공화국에서 러시아 차르국으로 변환.</ref>승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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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3" width="20%" style="background:#58538f;color:#fff;" | '''[[대한제국의 괴뢰국 (아침해의 원유관)|괴뢰국]] · [[대한제국군의 군정청 (아침해의 원유관)|군정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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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
=현대의 평가= | =현대의 평가= | ||
한국 내에서 대한제국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복잡미묘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래도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편이다. 이런 평가에는 대한제국이 추축국으로서 아시아 지역의 파시즘<ref>전간기의 대한제국은 현대에도 평가가 복잡한 일본과 다르게 확실하게 파시즘 국가로 평가받는다. 이탈리아처럼 황제는 최소한의 명분과 권력만 가지고 실질적인 지도와 국가정책등을 유일한 정당의 지도자이자 총리를 대체한 제국대호국경이 전부 집행하는 구조였기 때문.</ref>과 군국주의의 선봉에 섰고, 시베리아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인명피해를 야기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내전이 나 수뇌부가 한 번 갈아엎어졌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당대에는 아시아의 주요 강대국 중 하나였지만, 만주족의 동화를 명분으로 만주 지역에 경찰통치를 시행하는 등 극단적 집단주의를 내세우며 인권과 같은 현대적 가치를 무시하였기 때문에 현재에는 평가가 나쁘다. | 한국 내에서 대한제국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복잡미묘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래도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편이다. 이런 평가에는 대한제국이 추축국으로서 아시아 지역의 파시즘<ref>전간기의 대한제국은 현대에도 평가가 복잡한 일본과 다르게 확실하게 파시즘 국가로 평가받는다. 이탈리아처럼 황제는 최소한의 명분과 권력만 가지고 실질적인 지도와 국가정책등을 유일한 정당의 지도자이자 총리를 대체한 제국대호국경이 전부 집행하는 구조였기 때문.</ref>과 군국주의의 선봉에 섰고, 시베리아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인명피해를 야기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내전이 나 수뇌부가 한 번 갈아엎어졌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당대에는 아시아의 주요 강대국 중 하나였지만, 만주족의 동화를 명분으로 만주 지역에 경찰통치를 시행하는 등 극단적 집단주의를 내세우며 인권과 같은 현대적 가치를 무시하였기 때문에 현재에는 평가가 나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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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정도의 차이긴 하지만, 당시 한국은 가장 가까운 동양권 나라인 일본을 개화의 모델 중 하나로 삼았던지라 의외로 비슷한 면들이 많이 존재한다. 주로 동아시아적인 가치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따오기의 기여가 상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한국의 근대시기 한자어 용어(재벌, 경제 등) 중 일본에서 들여온 것들이 꽤 보이는 편이다. 실제로 19세기, 20세기 그리고 현재까지 두 나라의 관계가 상당히 좋은편이기도 했고, 지리상 가깝다는 점과 비슷한 외교적 상황 등이 이러한 교류를 촉발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 10년 정도의 차이긴 하지만, 당시 한국은 가장 가까운 동양권 나라인 일본을 개화의 모델 중 하나로 삼았던지라 의외로 비슷한 면들이 많이 존재한다. 주로 동아시아적인 가치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따오기의 기여가 상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한국의 근대시기 한자어 용어(재벌, 경제 등) 중 일본에서 들여온 것들이 꽤 보이는 편이다. 실제로 19세기, 20세기 그리고 현재까지 두 나라의 관계가 상당히 좋은편이기도 했고, 지리상 가깝다는 점과 비슷한 외교적 상황 등이 이러한 교류를 촉발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 ||
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했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만주라는 거대한 땅이 있어서 농민들의 생활수준은 더 높은 편이었고<ref>당시 한국 농민의 생활수준은 중화민국, 소련, 이탈리아, 일본보다 높고 프랑스 바로 아래인 수준이었다. 다만 이건 만주로 건너간 농민들이 주를 이루는지라, 본토에서 계속 농사를 짓던 이들은 일본 농민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빈곤한 생활을 이어갔고, 오히려 세력다툼에서 가격이 싼 농산물 상당량을 들여오는 만주쪽 농민들에게 밀릴 때였다. 때문에 1920년대 대공황 이후 문자 그대로 궁지까지 내몰린 농민들이 만주로 대거 상경하기도 했었고, 이 과정에서 만주인들은 다시 자신들의 토지를 강탈당했다.</ref>, 전통적인 이유로 군주의 권한이 일본보다 강해서 한국 정치는 황제의 의사가 상당히 | 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했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만주라는 거대한 땅이 있어서 농민들의 생활수준은 더 높은 편이었고<ref>당시 한국 농민의 생활수준은 중화민국, 소련, 이탈리아, 일본보다 높고 프랑스 바로 아래인 수준이었다. 다만 이건 만주로 건너간 농민들이 주를 이루는지라, 본토에서 계속 농사를 짓던 이들은 일본 농민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빈곤한 생활을 이어갔고, 오히려 세력다툼에서 가격이 싼 농산물 상당량을 들여오는 만주쪽 농민들에게 밀릴 때였다. 때문에 1920년대 대공황 이후 문자 그대로 궁지까지 내몰린 농민들이 만주로 대거 상경하기도 했었고, 이 과정에서 만주인들은 다시 자신들의 토지를 강탈당했다.</ref>, 광무시대까지는 전통적인 이유로 군주의 권한이 일본보다 강해서 한국 정치는 황제의 의사가 상당히 중요했었으나, 결과적으로 광무제의 공신들을 휘어잡을 카리스마를 융희제가 이어받지 못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일본과 그닥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했다. 다만 그 흔적이 오늘날에도 일부는 남아있어서, 한국 황실의 경우 일본 황실과 같은 권한보다는 이탈리아의 구 사보이아 왕가, 영국왕실과 좀 더 비슷하다는 평가가 많은 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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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아침해의 원유관]][[분류:아침해의 원유관/국가]] | [[분류:아침해의 원유관]][[분류:아침해의 원유관/국가]] |
2024년 4월 10일 (수) 02:1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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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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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및 사상 ]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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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해주 자치령에서 극동 공화국으로, 극동 공화국에서 러시아 차르국으로 변환.
- ↑ 1922년 3월 2일 즉위
- ↑ 1944년 기준.
- ↑ 다만 중국의 압도적인 인구수 때문에 초기 순나라때처럼 공식적인 무역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지는 않았다.
- ↑ 민간에겐 단발을 장려하기는 하였으나, 유교적 사상을 존중해 강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공직에 임명되는 이들은 반드시 서양식 의복을 착용할 것이 명시되었다.
- ↑ 요시다 쇼인의 이론에 따르면 부산에서만 그쳤던 조선 침략을 다시 재개하여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이 당시 조슈 파벌의 주장이었는데, 예상 외로 한국이 일본이 손을 대기 전부터 변화에 대처를 잘하는 모습을 보이자 조슈 내에서도 한국을 바로 치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이 늘어난 것이 한몫했다.
- ↑ 당시 순나라는 가뜩이나 전통적으로 조선의 번국 자리가 진실로 자신들에게 있는지도 애매한 상황에서,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조선이 서양식 관복을 입고 동등한 외교관계를 요구하는 대한국으로 변모하자 사절의 조정 입장 자체를 금하는 등의 강경대처를 보여줬다.
- ↑ 속어로는 귀족이라는 말도 꽤 널리 사용됬다.
- ↑ 다만, 이는 여전히 가세 자체는 비대했던 세도가들도 포함됬다. 예를 들어 안동 김문의 유력자였던 사영 김병기는 김병기 후작으로 봉해졌고(시호:문충공(文忠公))다. 물론 사실상 안동김씨의 정치적인 기반이 사그러든 상태였기에, 더 이상 작위를 이용하여 권력을 찬탈하려고 시도하는 등의 음모는 없었다.
- ↑ 적어도 현실주의적인 행보와 조선 시대부터의 친선관계로 인해 친한적인 정서가 강했던 송나라와는 다르게, 순나라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은 시장에 한국 물건을 풀어 어지럽히고 자신들을 핍박하는 백인, 일본인과 별 다를 바 없는 착취자였다. 때문에 의화단의 난 당시 피해를 보게 된 것.
- ↑ 연해주 자치령에서 극동 공화국으로, 극동 공화국에서 러시아 차르국으로 변환.
- ↑ 전간기의 대한제국은 현대에도 평가가 복잡한 일본과 다르게 확실하게 파시즘 국가로 평가받는다. 이탈리아처럼 황제는 최소한의 명분과 권력만 가지고 실질적인 지도와 국가정책등을 유일한 정당의 지도자이자 총리를 대체한 제국대호국경이 전부 집행하는 구조였기 때문.
- ↑ 당시 한국 농민의 생활수준은 중화민국, 소련, 이탈리아, 일본보다 높고 프랑스 바로 아래인 수준이었다. 다만 이건 만주로 건너간 농민들이 주를 이루는지라, 본토에서 계속 농사를 짓던 이들은 일본 농민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빈곤한 생활을 이어갔고, 오히려 세력다툼에서 가격이 싼 농산물 상당량을 들여오는 만주쪽 농민들에게 밀릴 때였다. 때문에 1920년대 대공황 이후 문자 그대로 궁지까지 내몰린 농민들이 만주로 대거 상경하기도 했었고, 이 과정에서 만주인들은 다시 자신들의 토지를 강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