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신질서의 황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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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 16일, [[일본 (신질서의 황혼)|일본]]에서 치러진 중의원 의원 총선거. 투표율은 1.4% 내린 75.7%를 기록했다.
1997년 5월 16일, [[일본 (신질서의 황혼)|일본]]에서 치러진 중의원 의원 총선거. 투표율은 1.4% 내린 75.7%를 기록했다.
== 과정 ==
== 과정 ==
이 선거는 매우 혼란한 배경속에 치러졌다. 1997년 2월 12일 체결된 [[일미태평양평화조약]]이 대미 굴욕조약이라는 비난을 받고 이것이 [[반미투쟁]]으로 비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당은 심각하게 민심을 잃어버렸고, 자유당 내에서마저 내각 비토가 급증한 끝에 3월 25일 [[가네무라 고스케]]는 사임했다.
이 선거는 매우 혼란한 배경속에 치러졌다. 1997년 2월 12일 체결된 [[일미태평양평화조약]]이 대미 굴욕조약이라는 비난을 받고 이것이 [[반미투쟁]]으로 비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당은 심각하게 민심을 잃어버렸고, 자유당 내에서마저 내각 비토가 급증한 끝에 3월 25일 [[오부치 게이조]]는 사임했다.


후임 총리를 [[하시모토 류타로]]가 이어받아,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선언하게 되었다. 하시모토는 이 선거를 통해 평화조약에 대한 신임여부를 묻겠다고 말하며 사실상 배수진을 쳤다. 그래서 붙여진 총선의 명칭도 '''신평화 총선(新平和総選)'''.
후임 총리를 [[하시모토 류타로]]가 이어받아,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선언하게 되었다. 하시모토는 이 선거를 통해 평화조약에 대한 신임여부를 묻겠다고 말하며 사실상 배수진을 쳤다. 그래서 붙여진 총선의 명칭도 '''신평화 총선(新平和総選)'''.

2024년 4월 17일 (수) 22:10 판

Destiny634, 2024 - | C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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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大日本帝国第43回衆議院総選挙
1999년 7월 20일
44회 중원선
(밀레니엄 총선)
투표율 75.7% ▼ 1.4%p
선거 결과

정당 지역구 비례 총합 비율
일본사회당 232석 39석 271석 41.7%
일본자유당
공명당
160석 28석 218석 33.5%
23석 7석
일본국민당 112석 22석 134석 20.6%
남방의당 3석 3석 6석 0.9%
조선관민회 3석 2석 5석 0.8%
무소속 16석 - 16석 2.5%

개요

この選挙を通じて国民に対米条約の評価を任せます。 新平和秩序と新日本の始まりに、ともに進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
이 선거를 통하여 국민께 대미조약의 평가를 맡기겠습니다. 신평화 질서와 신일본의 시작으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중의원을 해산하며

1997년 5월 16일, 일본에서 치러진 중의원 의원 총선거. 투표율은 1.4% 내린 75.7%를 기록했다.

과정

이 선거는 매우 혼란한 배경속에 치러졌다. 1997년 2월 12일 체결된 일미태평양평화조약이 대미 굴욕조약이라는 비난을 받고 이것이 반미투쟁으로 비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당은 심각하게 민심을 잃어버렸고, 자유당 내에서마저 내각 비토가 급증한 끝에 3월 25일 오부치 게이조는 사임했다.

후임 총리를 하시모토 류타로가 이어받아,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선언하게 되었다. 하시모토는 이 선거를 통해 평화조약에 대한 신임여부를 묻겠다고 말하며 사실상 배수진을 쳤다. 그래서 붙여진 총선의 명칭도 신평화 총선(新平和総選).

하지만 선거 초기에서부터 분위기는 자유당에게 매우 처참했었다. 사회당은 자유당 보수 정권의 대미 외교, 나아가 외교정책 전반이 심각한 실패였음이 입증되었다며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여론조사상으로도 자유당이 크게 밀리고 국민당과도 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하는 형국이 계속되자 사회당 내에서는 이번 총선을 통한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를 가득 품게 되었다.

국민당의 경우 평화조약 개정을 들고 나오며 자유당의 보수 유권자들의 표는 상당수가 국민당으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거 결과, 자유당은 예상대로 참패했다. 사회당이 무려 40석의 의석을 늘려 271석을 기록해 제1당으로 부상하였고, 자유당은 188석의 제2당이 되어 공명당을 합해도 사회당 집권을 막을수 없는 수준까지 추락하였다.

국민당도 평화조약 개정을 주창하며 많은 보수표를 새로 획득, 134석으로 이전 대비 45석 가량의 의석을 늘리는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사회당은 집권을 확신하고 우에하라 위원장은 내각 구성을 준비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당 집권을 두고볼수 없던 두 보수당 자유당과 국민당이 뭉치게 되었다. 두 보수당 사이에는 이견이 존재했으나, 하시모토가 총리직을 모리 요시로에게 넘기는 대신 내무성, 외무성, 척무성읗 비롯해 내각의 3분의2를 자유당계가 가져가는 합의 타결을 이뤄 보수 연정이 성사되었다.

이로서 자유당 - 국민당 연립정권으로 의석 322석으로 겨우 사회당을 누른 채 6월 22일 모리 요시로 내각이 출범했다. 동년 11월 22일, 두 정당은 보수합동을 통해 자유민주당을 창당하여 보수세력이 단일 정당으로 결집하게 되었다.

선거 고시

해산일

해산명

  • 보국 해산

공시일

투표일

개선수

  • 650석

선거제도

  • 불구속 명부 비례대표제
  • 비밀투표, 단기투표제

선거권

만 20세 이상의 일본 국민

피선거권

만 25세 이상의 일본 국민

유권자

200,700,870명 (남성 : 100,565,475명, 여성 : 100,135,395명)

결과

정당별 득표율

정당 및 대표 지역구 비례대표 합계 비고
득표 의석 득표 의석 의석 증감
우에하라 야스스케 58,797,125
38.7%
232석 56,973,959
37.5%
39석 271석
41.7%
+41 제1당
일본사회당
하시모토 류타로 42,996,347
28.3%
160석 41,325,112
27.2%
28석 188석
28.9%
-86 제2당
일본자유당
모리 요시로 30,538,042
20.1%
112석 29,626,458
19.5%
22석 134석
20.6%
+46 제3당
일본국민당
칸자키 다케노리 6,988,805
4.6%
23석 11,850,583
7.8%
7석 30석
4.6%
-2 제4당, 연립여당
공명당
다카하시 이라키 2,278,958
1.5%
3석 4,254,055
2.8%
3석 6석
0.9%
0 제5당
남방의당
오카무라 야스이 2,734,750
1.8%
3석 3,342,472
2.2%
2석 5석
0.8%
-1 제6당
조선관민회
무소속 7,292,666
4.8%
16석 - - 16석
2.5%
- -
합계 151,930,558. 550석 151,930,558. 100석 650석 원내 6당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