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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도도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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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都)
東京都 (とうきようと)
도쿄도 | Tokyo Metropolis
도기(都旗) 문장(紋章)

지도를 불러오는 중...

부청 소재지 도쿄시 신주쿠구 니시신주쿠2초메 8-1
국가 일본
지역 간토 (수도권)
최대도시 도쿄시
면적 1,431.08km2
하위 행정구역 23구 26시 5정 8촌[1]
인구 15,105,098명[2][3]
인구밀도 8,032.28명/km2
GDP(명목) $1조 4,488억 3,568만
1인당 GDP $95,917
시간대 GMT+09:00
부지사 도민 고이케 유리코
(小池百合子, 3선)
부의회
(127석)
도민 38석
자민 38석
공명 23석
입헌 20석
유신 1석
무소속 7석
중의원
(27석/650석)
자민 18석
입헌 8석
공명 1석
참의원
(12석/384석)
자민 5석
입헌 4석
공명 2석
유신 1석
상징 도화 왕벚나무
도목 은행나무
도조 붉은무리갈매기
ISO 3166-2 JP-13
도메인 .tokyo.jp,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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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도쿄도(東京都)일본의 수도이자, 일본 최대, 아시아 최대, 세계 최대의 도시로 꼽히는 매트로폴리스이다.

인구는 약 1,510만 명이고,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은 약 4,600만명으로서 세계 최대의 도시권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수도권은 세계 최대의 교통 인프라를 형성하고 있고, 세계에서 다국적 대기업의 본사가 가장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먼 과거에는 무사시노쿠니의 도시마군(豊島郡)이었지만, 11세기 헤이안 시대 후반부터 에도라고 불렸다. 전국 시대까지는 작은 해안 마을이었으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세우게 되었고, 간척과 함께 도시를 세우고 상업을 발전시키면서 일본의 핵심 도시가 되었다. 당대에는 계속 에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869년 에도를 일컬어 도쿄라 한다는 조서(江戶ヲ稱シテ東京ト爲スノ詔書)를 내려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역사

에도시대 이전

간토평야의 대부분은 원래 바다였지만, 여러 강이 모이며 퇴적물이 잔뜩 쌓여 생긴 충적 평야가 넓어지면서 지금의 간토 평야가 되었다. 이 때문에 중세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갯벌에 습지가 많아 사람이 살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관동 지방에 중심지를 두었던 가마쿠라 막부후호조씨도 간토 평야를 피해 지금은 도쿄 근교의 산지를 낀 소도시인 가마쿠라오다와라에 자리잡았는데 이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도쿄만 일대보다 사가미만 일대가 더 발달했고 이러한 지형이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과거 율령국무사시노쿠니(武蔵国)의 도시마군(豊島郡)으로 역사 속에 간간이 이름이 등장했고 이미 7세기에 센소지가 건립되기도 했으나 근세 이전 도쿄(에도)는 습지가 가득한 일개 농어촌 깡촌이었고, 변방인 간토 지역의 중심지조차 도쿄가 아닌 구 막부의 고도(古都) 가마쿠라와 후호조씨의 본거지 오다와라였다. 그나마 15세기 오타 도칸이 이 부근에 에도성을 건설하긴 했다.

에도 시대

도쿄가 본격적으로 일본 역사의 중심지로 등장한 시기는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연 이후이다. 이 시기 간토 평야는 이미 충분히 퇴적되어 비옥하면서도 일본 열도에서 가장 넓은 평야 지대가 되었다. 열도의 중간 위치에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이었지만,[4] 지역민들이 호전적이고 독립적인 기질이 강한 데다가 과거에 바다였던 저지대 특성상 침수 피해가 잦아[5] 농업 산출량이 적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관개하여 일본의 중심으로 가꾸었다.

이에야스는 먼저 치요다 구에 에도성의 기반 공사를 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방사상(달팽이 모양) 수로를 건설하고 이 수로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의 도시계획을 수립해 수문을 만들고 다리로 연결하며 강대한 방어력과 넓은 시장과 부속부지를 갖춘 도시로 개발해 이후 에도막부가 3대에 걸쳐 꾸준히 계획대로 에도를 건설한 끝에 3대째에 완성되었다.

도쿄도 일대는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8세기에는 인구 130만에 달하는 대도시로 성장하는데, 이는 동시대의 다른 수도를 능가하는 압도적인 인구 밀도였다. 인구만 보면 영국 하노버 왕조의 수도 런던,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수도 파리, 심지어 청국의 수도 베이징마저 능가하는 수치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설명이 있지만, 학자들 다수는 고온 다습한 기후 조건 덕에 쌀 농사를 집약적으로 지을 수 있었고 상업이 발달했음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또한 에도의 경우 참근교대라는 기형적인 제도를 통해 인구를 유지한 측면도 있었다.

에도 시대에 수로 구조를 믿고 지나치게 조밀한 상태로 확장시킨 도시 구조가 메이레키 대화재를 불러왔다고 판단한 막부는 대화재 이후에는 소화반을 준비하고 곳곳에 방화공터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화재에 대응할 수 있게 후속 조치를 갖추며 더욱 도시를 확대해갔다.

대일본제국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으로 대정봉환, 왕정복고로 천황의 권력이 강화되자 1869년 일본 황실은 에도를 '동쪽의 수도'라는 의미에서 도쿄(東京)로 개칭하고 궁궐을 도쿄로 옮겼다. 이때 정부는 천도를 명시하지는 않고 도쿄에 대비해 교토를 '서쪽의 수도'인 사이쿄(西京)로 칭했기에 명목상으로 도쿄와 교토 모두 일본의 수도였다. 하지만 일본 황실은 이때부터 즉위식 등 특별한 행사가 없는 한 교토에는 거의 체류하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도쿄 1극 체제'가 형성되었다. 이어 요코하마-도쿄 철도 부설을 시작으로 항구 요코하마와 도시 도쿄가 일본 근대화의 중심축이 되며 인구는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20세기에 들어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광역 도시권 중 하나로 성장했다.

이후 일본이 일청전쟁일러전쟁에 연이어 이기고 대만과 조선을 병탄해 일본제국의 규모가 크게 신장한 뒤엔 조선인 등 식민지인들도 자리를 잡아 아시아 최대의 도시로까지 평가될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성장하던 중인 1923년, 규모 7.9~8.2인 관동대지진으로 대화재가 일어나, 목조 위주였던 건물들이 크게 손실되고 사망자 10~14만여 명이 발생하는 사상 최악의 재해를 겪었다. 피해는 일본 전체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였고 잠시 최대 도시의 지위를 오사카에 뺏기기도 했지만, 복구 과정에서 더욱 근대적인 도시로서 재건되는 계기도 되었다.

현재 도쿄의 모습은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일본이 근대 건물들을 기반으로 하고 현대적 건물들을 지어올리면서 나타났다. 버블 경제 시대에는 많은 빌딩이 들어서게 되었지만 버블 이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었고, 2000년대 이후 들어 미나토구 등 도심이 재개발되면서 롯폰기 힐스, 도쿄 미드타운 등 현대식 마천루들이 건설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도쿄는 또한 전후 조선인과 대만인 등 구 식민지 출신자들이 열도로 이주하면서 유입되어 오사카에 이어 조센계 주민이 2번째로 많은 (약 8.2%) 지역이다.

정치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치고는 보수세가 약한 지역이었지만, 우경화가 심화된 2010년대 이후부터는 전체적으로 볼때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에 속한다.

민주화 이후 1990년대까지는 중의원이나 참의원 선거에서 사회당을 위시한 혁신계 우세 지역이었고, 2009년 총선 이전까지도 몇몇 선거를 제외하면 혁신계가 강세였던 구역도 많았다. 다만 자민당의 득표율도 아주 낮지는 않아 제법 점유율을 차지했다.

하지만 2009년 이후로는 보수 우세로 기울어져 대부분 구역에서 자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다만 2016년에는 반아베 자민당 탈당파인 고이케 유리코가 도지사에 당선된다.

행정구역

도쿄도 구부

도쿄시


일본 다른 도시들의 들은 전부 일반구인데, 도쿄 23구는 자치구이다. 23구는 각각 독립된 자치구로, 도쿄도 산하 시정촌을 포함하여 다른 도도부현의 시정촌과 같은 지위를 인정받기 때문에 구청장과 구의원을 구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다. 일본의 도시 중에서 시민이 자치구장을 직접 뽑는 것은 도쿄 23구가 유일하고, 23구 각 영문 표기도 Ward가 아닌 City다.[6] 도쿄도의 중심지이며, 일본인들이 특별한 언급 없이 '도쿄'라고 하면 이 23구 지역을 의미한다. JR 히가시니혼에서도 '都区内パス'가 있는데 바로 여기서 따온 것이다.

1943년 도쿄부가 도쿄도로 개편되며 도쿄시가 폐지되었을 당시 도쿄시의 구는 35개구였으나[7] 1947년 3월 15일에 22개로 통폐합되었고, 같은 해 8월 1일 이타바시구에서 네리마구가 분구되어 현행 23개구가 되었다.

23구는 원래는 특별지방공공기관이었으나, 2001년 법 개정으로 보통지방공공기관이 되었다.

타마 지역

타마 지역

서쪽으로 갈수록 산지와 녹지가 많아진다. 타마 지역 전체가 23구의 배후지인 셈이지만 타치카와나 하치오지 등의 도시들은 타마 지역 내에서 중심지 역할을 한다.

도쿄도 소속이지만 도쿄 23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행정적으로도 도쿄 23구와는 구분되고, 일상생활에서도 도쿄 23구와는 다른 지역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 지역은 본래 가나가와현이었다가 1893년에 도쿄에 편입되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도쿄의 상수원을 도쿄도 관할로 두기 위한 것이라는 설, 혹은 가나가와현과 함께 자유민권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던 곳이라 당시 일본 정부가 자유민권운동을 약화하기 위해 가나가와현에서 분리한 것이라는 설 등이 있다.

도쿄도 도서부

도쿄도도서부


도쿄에서 남쪽으로 수백~수천 km 떨어진 태평양 해상의 도서 지역인 이즈 제도오가사와라 제도도 행정상으로 도쿄도 관할이다. 이 섬들이 도쿄도로 묶인 이유는, 에도 막부 시기 이즈 제도의 항로가 대체로 행정구역상 이즈 반도와 이어져 있긴 했지만 경제력이 없던 이즈 반도보다는 에도(현 도쿄)와 교류가 더 활발했기 때문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즈 제도는 1868년 니라야마현에 편입된 이후 아시가라현, 시즈오카현을 거쳐 1878년 도쿄부로 이관되었다.

일본의 최동단인 미나미토리시마, 최남단인 오키노토리시마[8]가 모두 이곳에 속한다.

경제

2014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도쿄 수도권의 경제 규모 GDP(국내총생산)는 1조 8600억 달러로 세계 1위를 차지하였다. 현재 GDP가 1조 달러가 넘는 도시권은 일본 수도권과 뉴욕 도시권밖에 없고, 2018년 기준 2조 달러에 달한다. 1인당 GDP도 9만 달러 중후반 가량으로 6만달러 초반 정도인 일본 전체에 비해 엄청난 수준이다. 다만 인구빨이 있는만큼 뉴욕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긴 하다.

금융 분야에서는 뉴욕의 뉴욕증권거래소에 이은 세계 2위의 증권 거래소인 도쿄증권거래소가 있다. 덕분에 도쿄 마루노우치는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 중 한곳에 해당한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제조업 공장들이 가장 많이 활성화된 도시 중 하나이며, 21세기에 들어 첨단 산업이 가장 발전한 도시 중 하나에 속하기도 한다. 문화 산업적으로도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글로벌 만화 산업의 성지로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아키하바라가 이곳에 있고, 게임 산업, 소프트웨어 산업 등도 발달했다. 다국적 기업들의 본사 역시 가장 많이 밀집된 도시다.

교육

  1. 도쿄도의 구는 특별구이다.
  2. 추계 인구 2024년 1월 1일 기준
  3. 이중 도쿄시의 인구는 약 1,020만명 수준이다.
  4. 단, 현재 홋카이도까지 차지한 형세와 달리 에도 막부 이전의 일본은 홋카이도를 완전히 병합하지 못했고 도호쿠 역시 조센반도의 간쿄 지방 이상가는 변방이었음을 고려하면 전근대 최적의 입지였다고 보긴 어렵다. 태평양 중심인 현대와 달리 대륙과의 교섭이 중요했던 전근대에 간토는 너무 구석진 곳에 있었다. 하지만 막말 무렵 홋카이도를 넘어 사할린 남부, 쿠릴 열도까지 영토를 확장한 이후에는 확실히 일본의 지리적 중심지가 되었고 이러한 연유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수도를 도쿄로 옮겼다.
  5. 과거에 바다였다가 메워진 충적 평야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침수다.
  6. 당장 일본의 지방자치법 283조에서도 특별구의 공직선거법상 선거를 인정하고 있다.
  7. 1889년의 15구에서 확장된 것
  8. 오키노토리시마의 지위가 섬이냐 암초냐에 대해 논란이 많긴 하지만, 이는 EEZ의 기점으로 인정되느냐의 문제일 뿐 일본이 점유하고 있는 영토로는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