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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불가리아 차르국(불가리아어: Царство България / Tsarstvo Bŭlgariya)은 1908년부터 1961년까지 존재했던 동남유럽 발칸반도 내륙에 위치한 군주주의 체제 국가이다.
역사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당시 총리 게오르기 쾨세이바노프가 이끄는 불가리아 정부는 중립을 선언하였다. 정부는 전쟁 말까지 이를 유지할 방침이었으나, 제2차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 상실한 영토의 회복, 그리고 인접국에 점유된 불가리아인 거주지 확보라는 목표 아래 비군사적 방식의 영토 확대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불가리아의 전략적 지정학적 위치는 양 진영으로부터의 압력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1940년 2월 15일, 케세이바노프가 사임하고 친독 성향의 보그단 필로프가 총리로 임명되었다. 9월 7일, 불가리아는 추축국의 중재로 크라이오바 조약을 체결하여 남부 도브루자 지역을 루마니아로부터 회복하였다.
1941년 3월 1일, 불가리아는 공식적으로 삼국 동맹에 가입하여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의 동맹국이 되었다. 이에 따라 독일군이 불가리아 영토에 진입하였고, 그리스 왕국과 유고슬라비아 왕국 침공 작전을 위한 전초기지로 사용되었다. 전쟁 승리 이후 불가리아는 그리스 트라키아 전역과 마케도니아 대부분을 점령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불가리아는 영국과 미국에 선전포고하였으나, 국내 친러 정서를 고려하여 소련에 대한 선전포고는 거부하였다.
이 시기, 보리스 3세는 국왕 권력을 전면적으로 강화하였고, 국내 정당 해산, 의회 기능 약화, 반체제 인사 체포를 통해 일인 군주제 기반의 권위주의 체제를 확립하였다. 왕립 경찰과 군은 '민족통합' 정책 아래 소수민족 동화와 국내 통제 정책을 강화하였으며, 불가리아 정교회는 국왕 권위를 강조하는 이데올로기 기구로 기능하였다.
불가리아는 전후 독일의 유럽 내 승전과 함께 사실상의 '승전국' 대우를 받았고, 점령 지역인 마케도니아와 서트라키아에 대한 실효 지배를 강화하였다. 경제적으로는 독일 중심의 라이히스웰스의 경제권인 '그로스라움 콘티넨탈오이로파'에 편입되어 농산물, 석탄, 노동력을 제공하며 제한적 자급 체제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수입 의존도와 무역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국내 산업 발전은 제한되었다.
1950년대에 들어 독일 금융권의 불안정이 심화되자, 불가리아 국내 경제는 빠르게 악화되었다. 물자 부족, 농민 불만, 노동자 파업 등의 현상이 빈발하였으며, 사회적 균열이 점차 가시화되었다.
보리스 3세는 고령과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퇴위를 거부하였으며, 왕태자 시메온은 상징적 역할에 머물렀다. 개혁 요구는 왕실 주도로 무마되었고, 총리 콘스탄틴 무라비에프, 도브리 보질로프를 비롯한 보수 관료들은 민생 악화의 책임을 외부에 전가하며 정치적 억압과 언론 통제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경색된 체제 아래에서, 1940년대 숙청 이후 지하로 은신한 반체제 연합체 조국전선은 비밀리에 재결집하였다. 조직은 좌익 군장교 모임 즈베노, 중도좌파 성향의 불가리아 농민연합, 생존 공산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1957년 이후 전국 대학가, 병영, 지방행정구 등에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 수도 소피아에서는 반정부 낙서 및 지하 출판물 유통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였으며, 이는 체제 균열의 초기 징후로 간주되었다. 왕실은 이를 '외부 선동'으로 판단하고 긴급치안법령을 도입, 강경 대응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개혁파와 중립주의자들은 정치적 영향력에서 배제되었고, 조국전선은 비폭력 개혁의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판단하였다.
1961년 9월 4일, 조국전선과 연계된 기계화 부대 및 공군 장교단은 수도 소피아에서 통신, 방송국, 정부 청사를 장악하였다. 9월 6일, 프로브디프 방면 제3 사단이 항명하며 사태는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9월 7일, 수도군 사령관이 항복하면서 정변은 사실상 완결되었다.
9월 9일, 보리스 3세는 공식 퇴위 성명을 발표하였으며, 왕태자 시메온은 외국 대사관을 통해 해외 망명을 시도하였다. 왕실 측근 다수는 구금되었으며, 특별인민재판에 회부되어 국가반역 혐의로 기소되었다.
조국전선은 국가정상화위원회를 구성하여 과도정부를 출범시켰고, 동년 12월 국민투표를 통해 군주제 폐지가 가결되었다. 이로써 1908년에 수립된 불가리아 차르국은 54년 만에 소멸하였으며, 헌정 체제는 공화제로 이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