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차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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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차르국
1908년 10월 5일 ~ 1961년 9월 12일
국기 국장
이름
공식 명칭 불가리아어. Царство България(Tsarstvo Bŭlgariya)
영어. Tsardom of Bulgaria
중국어. 保加利亚王国(bǎo jiā lì yà wáng guó)
한국어. 불가리아 차르국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리라
(불가리아어: Богъ е съ насъ)
단결은 힘
(불가리아어: Съединението прави силата)
역사
성립일 1950년 11월 6일
해체일 1961년 9월 12일
전신 정체성상 전신
불가리아 공국
지리적으로 통합된 국가(지역, 집단)
루마니아 왕국/도브루자 남부 1940년 9월 13일
유고슬라비아 왕국/바르다르 마케도니아 1941년 4월
유고슬라비아 왕국/코소보 1941년 4월
그리스 군정청/바르다르 마케도니아 1941년 4월
그리스 군정청/트라키아 1941년 4월
후신 정체성상 후신
불가리아 독립공화국
주목할 만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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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 1950년 11월 6일
인문 환경
수도 소피아
국교 불가리아 정교회
공용어 불가리아어
데모님 불가리아인
총인구 약 6,000,000명 1936년 집계
경제
화폐 불가리아 레프
경제권 그로스라움 콘티넨탈오이로파 1952년 2월 2일 ~ 1961년 9월 12일
정치
독립성 주권국
지도자 국가 수반 제1대 - 페르디난드 1세 차르 1908년 10월 5일 ~ 1918년 10월 3일
제2대 - 보리스 3세 차르 1918년 10월 3일 ~ 1961년 9월 9일
정부 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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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 알렉산더르 말리노프 총리 1908년 10월 5일 ~ 1911년 3월 29일
제2대 - 이반 게쇼프 총리 1911년 3월 29일 ~ 1913년 6월 14일
제3대 - 스토얀 다네프 총리 1913년 6월 14일 ~ 1913년 7월 17일
제4대 - 바실 라도슬라보프 총리 1913년 7월 17일 ~ 1918년 6월 21일
제5대 - 알렉산더르 말리노프 총리 1918년 6월 21일 ~ 1918년 11월 28일
제6대 - 테오도르 테오도로프 총리 1918년 11월 28일 ~ 1919년 10월 6일
제7대 - 알렉산더르 스탐볼리스키 총리 1919년 10월 6일 ~ 1923년 6월 9일
제8대 - 알렉산더르 찬코프 총리 1923년 6월 9일 ~ 1926년 1월 4일
제9대 - 안드레이 럅체프 총리 1926년 1월 4일 ~ 1931년 6월 29일
제10대 - 알렉산더르 말리노프 총리 1931년 6월 29일 ~ 1931년 10월 12일
제11대 - 니콜라 무샤노프 총리 1931년 10월 12일 ~ 1934년 5월 19일
제12대 - 키몬 게오르기에프 총리 1934년 5월 19일 ~ 1935년 1월 22일
제13대 - 펜초 즐라테프 총리 1935년 1월 22일 ~ 1935년 4월 21일
제14대 - 안드레이 토셰프 총리 1935년 4월 21일 ~ 1935년 11월 23일
제15대 - 게오르기 쿄세이바노프 총리 1935년 11월 23일 ~ 1940년 2월 16일
제16대 - 보그단 필로프 총리 1940년 2월 16일 ~ 1943년 9월 9일
제17대 - 도브리 보질로프 총리 1943년 9월 10일 ~ 1944년 6월 1일
제18대 - 이반 바그리아노프 총리 1944년 6월 1일 ~ 1944년 9월 2일
제19대 - 콘스탄틴 무라비예프 총리 1944년 9월 2일 ~ 1944년 9월 9일
제20대 - 키몬 게오르기에프 총리 1944년 9월 9일 ~ 1946년 11월 27일
제21대 - 도브리 보질로프 총리 1946년 11월 28일 ~ 1950년 4월 14일
제22대 - 콘스탄틴 무라비예프 총리 1950년 4월 15일 ~ 1961년 9월 4일
왕실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1908년 10월 5일 ~ 1961년 9월 9일
여당 DP 1908년 10월 5일 ~ 1911년 3월 29일 | 1918년 6월 21일 ~ 1918년 11월 28일 | 1931년 6월 29일 ~ 1934년 5월 19일
NP 1911년 3월 29일 ~ 1913년 6월 14일 | 1918년 11월 28일 ~ 1919년 10월 6일
PLP 1913년 6월 14일 ~ 1913년 7월 17일
LP 1913년 7월 17일 ~ 1918년 6월 21일
BZNS 1919년 10월 6일 ~ 1923년 6월 9일 | 1944년 9월 2일 ~ 1944년 9월 9일 | 1950년 4월 15일 ~ 1961년 9월 4일
DA 1923년 6월 9일 ~ 1931년 6월 29일
군대 불가리아군

개요

불가리아 차르국(불가리아어: Царство България / Tsarstvo Bŭlgariya)은 1908년부터 1961년까지 존재했던 동남유럽 발칸반도 내륙에 위치한 군주주의 체제 국가이다.

역사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당시 총리 게오르기 쾨세이바노프가 이끄는 불가리아 정부는 중립을 선언하였다. 정부는 전쟁 말까지 이를 유지할 방침이었으나, 제2차 발칸 전쟁제1차 세계대전에서 상실한 영토의 회복, 그리고 인접국에 점유된 불가리아인 거주지 확보라는 목표 아래 비군사적 방식의 영토 확대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불가리아의 전략적 지정학적 위치는 양 진영으로부터의 압력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1940년 2월 15일, 케세이바노프가 사임하고 친독 성향의 보그단 필로프가 총리로 임명되었다. 9월 7일, 불가리아는 추축국의 중재로 크라이오바 조약을 체결하여 남부 도브루자 지역을 루마니아로부터 회복하였다.

1941년 3월 1일, 불가리아는 공식적으로 삼국 동맹에 가입하여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의 동맹국이 되었다. 이에 따라 독일군이 불가리아 영토에 진입하였고, 그리스 왕국유고슬라비아 왕국 침공 작전을 위한 전초기지로 사용되었다. 전쟁 승리 이후 불가리아는 그리스 트라키아 전역과 마케도니아 대부분을 점령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불가리아는 영국미국에 선전포고하였으나, 국내 친러 정서를 고려하여 소련에 대한 선전포고는 거부하였다.

이 시기, 보리스 3세는 국왕 권력을 전면적으로 강화하였고, 국내 정당 해산, 의회 기능 약화, 반체제 인사 체포를 통해 일인 군주제 기반의 권위주의 체제를 확립하였다. 왕립 경찰과 군은 '민족통합' 정책 아래 소수민족 동화와 국내 통제 정책을 강화하였으며, 불가리아 정교회는 국왕 권위를 강조하는 이데올로기 기구로 기능하였다.

불가리아는 전후 독일의 유럽 내 승전과 함께 사실상의 '승전국' 대우를 받았고, 점령 지역인 마케도니아와 서트라키아에 대한 실효 지배를 강화하였다. 경제적으로는 독일 중심의 라이히스웰스의 경제권인 '그로스라움 콘티넨탈오이로파'에 편입되어 농산물, 석탄, 노동력을 제공하며 제한적 자급 체제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수입 의존도와 무역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국내 산업 발전은 제한되었다.

1950년대에 들어 독일 금융권의 불안정이 심화되자, 불가리아 국내 경제는 빠르게 악화되었다. 물자 부족, 농민 불만, 노동자 파업 등의 현상이 빈발하였으며, 사회적 균열이 점차 가시화되었다.

보리스 3세는 고령과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퇴위를 거부하였으며, 왕태자 시메온은 상징적 역할에 머물렀다. 개혁 요구는 왕실 주도로 무마되었고, 총리 콘스탄틴 무라비에프, 도브리 보질로프를 비롯한 보수 관료들은 민생 악화의 책임을 외부에 전가하며 정치적 억압과 언론 통제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경색된 체제 아래에서, 1940년대 숙청 이후 지하로 은신한 반체제 연합체 조국전선은 비밀리에 재결집하였다. 조직은 좌익 군장교 모임 즈베노, 중도좌파 성향의 불가리아 농민연합, 생존 공산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1957년 이후 전국 대학가, 병영, 지방행정구 등에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 수도 소피아에서는 반정부 낙서 및 지하 출판물 유통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였으며, 이는 체제 균열의 초기 징후로 간주되었다. 왕실은 이를 '외부 선동'으로 판단하고 긴급치안법령을 도입, 강경 대응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개혁파와 중립주의자들은 정치적 영향력에서 배제되었고, 조국전선은 비폭력 개혁의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판단하였다.

1961년 9월 4일, 조국전선과 연계된 기계화 부대 및 공군 장교단은 수도 소피아에서 통신, 방송국, 정부 청사를 장악하였다. 9월 6일, 프로브디프 방면 제3 사단이 항명하며 사태는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9월 7일, 수도군 사령관이 항복하면서 정변은 사실상 완결되었다.

9월 9일, 보리스 3세는 공식 퇴위 성명을 발표하였으며, 왕태자 시메온은 외국 대사관을 통해 해외 망명을 시도하였다. 왕실 측근 다수는 구금되었으며, 특별인민재판에 회부되어 국가반역 혐의로 기소되었다.

조국전선은 국가정상화위원회를 구성하여 과도정부를 출범시켰고, 동년 12월 국민투표를 통해 군주제 폐지가 가결되었다. 이로써 1908년에 수립된 불가리아 차르국은 54년 만에 소멸하였으며, 헌정 체제는 공화제로 이행되었다.

정치

참고

비고(Obsidian)

외부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