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동군연합 알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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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왕국
1939년 4월 12일 ~ 1969년 8월 23일
국기 국장
이름
공식 명칭 알바니아어. Mbretënia e Shqipënisë
이탈리아어. Regno d'Albania
영어. Kingdom of Albania
중국어. 阿尔巴尼亚王国(ā ěr bā ní yà wáng guó)
한국어. 알바니아 왕국
속칭 이탈리아 동군연합 알바니아(알바니아어: Mbretëria Shqiptare në bashkim personal me Italinë)
F.E.R.T.
역사
성립일 1939년 4월 12일
해체일 1969년 8월 23일
전신 정체성상 전신
알바니아 왕국
지리적으로 통합된 국가(지역, 집단)
유고슬라비아 왕국/제타 바노비나 서부 1941년 4월 6일
유고슬라비아 왕국/바르다르 바노비나 서부 1941년 4월 6일
후신 정체성상 후신
알바니아 왕국
주목할 만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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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 1939년 4월 12일
인문 환경
수도 티라나
국교 로마 가톨릭
공용어 알바니아어
이탈리아어
데모님 알바니아인
총인구 약 1,700,000명 1940년 집계
경제
화폐 알바니아 프랑가 1939년 4월 12일 ~ 1941년 6월 6일
이탈리아 리라 1941년 6월 6일 ~ 1969년 8월 23일
경제권 스페라 에코노미카 1949년 2월 6일 ~ 1969년 8월 23일
정치
독립성 이탈리아 제국의 동군연합
지도자 국가 수반 제1대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황제 1939년 4월 12일 ~ 1949년 3월 5일
제2대 - 움베르토 2세 황제 1949년 3월 5일 ~ 1964년
정부 수반 제1대 - 셰프쳇 뵈를라치 총리 1939년 4월 12일 ~ 1941년 12월 4일
제2대 - 무스타파 메를리카-크루야 총리 1941년 12월 4일 ~ 1943년 1월 19일
제3대 - 에크렘 리보호바 총리 1943년 1월 19일 ~ 1943년 2월 13일
제4대 - 말리크 부샤티 총리 1943년 2월 13일 ~ 1943년 5월 12일
제5대 - 에크렘 리보호바 총리 1943년 5월 12일 ~ 1945년 9월 8일
제6대 - 테픽 음보르야 총리 1945년 9월 8일 ~ 1949년 2월 28일
제7대 - 콜 비브 미라카이 총리 1949년 2월 28일 ~ 1949년 5월 23일
제8대 - 테픽 음보르야 총리 1949년 5월 23일 ~ 1969년 8월 4일
왕실 사보이아 왕가 1939년 4월 12일 ~ 1964년
여당 PFSh 1939년 4월 12일 ~ 1941년 12월 4일 | 1941년 12월 4일 ~ 1943년 1월 19일 | 1943년 1월 19일 ~ 1943년 2월 13일 | 1943년 2월 13일 ~ 1943년 5월 12일 | 1943년 5월 12일 ~ 1945년 9월 8일 | 1945년 9월 8일 ~ 1949년 2월 28일 | 1949년 2월 28일 ~ 1949년 5월 23일 | 1949년 5월 23일 ~ 1969년 8월 4일
군대 이탈리아 왕립군

개요

알바니아 왕국(알바니아어: Mbretënia e Shqipënisë), 또는 이탈리아 동군연합 알바니아(알바니아어: Mbretëria Shqiptare në bashkim personal me Italinë)는 발칸반도 서부에 1939년부터 1969년까지 존재했던 이탈리아의 보호국이자 동군연합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이탈리아군의 침공으로 기존의 독립 왕정이 붕괴되었으며, 이후 알바니아 파시스트당(PFSh)을 기반으로 한 위성정권이 수립되었다. 국왕직은 이탈리아 사보이아 왕가의 군주가 겸임하였으나, 실제 통치는 총리 중심의 과두체제로 운영되었다.

역사

1939년 4월 7일, 이탈리아 제국조구 1세 치하의 알바니아 왕국을 침공하였고, 국왕은 그리스로 망명하였다. 4월 12일, 이탈리아 황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알바니아 왕위를 겸임하였으며, 이탈리아 당국은 파시스트 정권을 수립하고 셰프쳇 뵈를라치를 초대 총리로 임명하였다. 이후 파시스트당 조직과 이탈리아 자문기구를 중심으로 일당 체제가 정비되었다.

1941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해체 이후, 코소보 및 북서 마케도니아 일부 지역이 알바니아에 병합되었고, 이는 대알바니아 구상의 실현으로 간주되었다. 이 시기 무스타파 메를리카-크루야가 총리직을 승계하였으며, 민족주의와 파시즘 결합 노선이 강화되었다.

1943년, 이탈리아는 발칸 정책의 재조정 과정에서 알바니아 내 자치권 일부를 재허용하였다. 이에 따라 총리 교체가 빈번히 이루어졌지만, 기본적인 친이탈리아 노선과 파시스트 구조는 유지되었다. 이 시기 파시스트 민병대는 치안 유지 및 반공 작전의 주체로 부상하였고, 국가 통제 체계의 핵심 수단으로 기능하였다.

1945년 9월 8일, 이탈리아 정부는 알바니아 내 질서 재정비와 장기적 안정화를 명분으로 테픽 음보르야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그는 알바니아 파시스트당의 창립자이자 초대 총서기로, 이탈리아와의 전략적 공조 하에 독자적 권위주의 체제를 수립하였다. 일시적 사정으로 인한 공백기에 콜 비브 미라카이가 총리직을 대행하였으며, 음보르야는 1949년 5월 복귀 이후 20년간 실권을 유지하였다.

1969년 6월 19일, 독일페터 작전을 통해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항복을 받아내자, 전선은 곧 알바니아로 확전되었다. 알바니아 내에서는 국지적 저항이 일부 발생하였으나, 전반적 전력 열세와 이탈리아의 묵인으로 인해 같은 해 8월 23일, 조건 없는 항복이 선언되었다.

정치

참고

비고(Obsidian)

제1대 - 프란체스코 자코모니 총독 1940년 9월 5일 ~ 1943년 8월 25일
제1대 - 알베르토 파리아니 총독 1943년 8월 25일 ~ 1946년 9월 8일

외부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