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카이스-알로니아 전쟁

제 1차 카이스-알로니아 전쟁
The Kaniasla War
기간 2620년 4월 5일 – 2621년 2월 3일
장소 카니아슬라 전역
원인 테이그 연방 재건 연합 위원회의 체제 전복 성공
연방 재건 연합의 카니아슬라 통일 야욕
알로니아 황실 내 갈등
레이아 황녀의 재건 연합 지원
교전국 및
교전 세력
카이스 공화국
에이신 합중국
알로니아 신민공동연합제국
카이스 공화국 국군
에이신 합중국 평화유지군
일부 알로니아 제국 신민군
테이그 연방 재건 위원회
지휘관 아텔리스 에이사가
스텐 네피
벡 서미어
아서드 글래스
걸터 베이튼
필리스 스타머
병력 2.1×10^16명
1.14×10^16명
1.25×10^16명
피해 4550조명 사망
1050조명 사망
1.05×10^16명 사망
결과 테이그 연방 세력 괴멸
카이스 영토 증가
영향 유적 경쟁의 시작
에이신의 쇄국정책 폐지
레이아 제정 출범

개요

제 1차 카이스-알로니아 전쟁은 2620년 4월 5일 제국군이 암호명 '테그사모'라는 사전 계획에 따라 미브레인선 전역에 걸쳐 카이스를 공격하여 발발한 전쟁이다.
2621년 2월 3일 종전 선언이 있기 까지 10개월간 전투가 이어졌다.

이 전쟁에서 최초로 전 우주에 전설적인 초고대 문명으로 여겨지던 그리네이트의 존재가 실제로 나타났기 때문에 제 1차 카이스-알로니아 전쟁은 전후 유적 경쟁의 시작을 대표하는 사건들 중 하나로 평가된다.

배경

테이그 연방이 붕괴된 후 카니아슬라에는 여러 군벌들이 통합전쟁을 벌여 규모를 키워갔다. 통합전쟁이 끝날 무렵인 24세기에 카니아슬라에는 카이스 공화국알로니아 신민공동연합제국만이 남아 대치를 이어나갔다. 두 거대세력간의 충돌에 엄청난 사상자가 나올것을 우려한[1] 에이신 합중국카니아슬라의 허리를 관통하는 미브레인선을 설정했지만, 미브레인선의 기준이 되는 2천개의 천체와 인공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천체인력에 의해 위치가 조금씩 바뀌자 두 세력은 기준의 모호성을 두고 국지전을 벌였다.

두 세력은 언젠가 카니아슬라를 통일하려는 목표는 가지고 있었지만, 정당한 명분도 갖지못하고 전쟁 준비나 여론이 제한적인 상태에서 통일을 밀어붙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수백년의 시간이 흐르자 두 세력의 통일에 대한 관심은 점차 떨어졌고, 에이신의 바람대로 두 국가는 각자의 길을 걸어갈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알로니아 제국레이아 황녀와 누구도 살아남았을것이라 생각 못하던 테이그 연방 재건 연합에 의해 빗나가게 된다.

2148년 7월 27일을 기점으로 테이그 연방 재건 연합위원회는 알로니아 혁명군과의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하고 해체되었다. 그러나 일부 듀카사상에 반대하는 세력과 연방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세력이 연합해 테이그 부흥 운동이 비밀리에 전개됐다. 대략 3세대에 걸쳐서 테이그 부흥 운동은 알로니아 정계와 카이스 시장에 숨어들어 기틀을 마련하고 테이그 연방의 부활을 준비했으며, 최종적으로는 약화된 두 국가를 정치적 수단과 무력으로 전복시키고 테이그 연방을 부활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재건 연합은 카이스에서 경제활동으로 자금을 벌어들이는 동시에 제국의 영주들을 포섭하여 지방에서 군사력을 점점 키워갔으며, 제국군 중앙 지휘부에도 조금씩 테이그 재건 연합 출신 인사들로 자리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한편 알로니아 황실에서는 역사 연구에 몰두하던 제 2황녀 댄크리스 레이아레이넥스와 함께 감염전쟁 수준의 우주적 재앙의 재발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초입자 감염현상을 인위적으로 일으킨 세력이 존재하며, 테이그 연방의 소실된 기술력과 유물, 유적을 연구하고 카이스 공화국과 연합하여 재앙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대 기술 연구에 관심이 없던 자룬 황제는 황녀가 음모론에 빠졌다며 주장을 무시했고, 수십번의 요구를 모두 거절당한 레이아는 황제를 왕좌에서 끌어내릴 생각까지 하게 된다.

테이그 연방 재건 연합이 무시하지 못 할 정도로 성장한 것을 알아차린 레이아는 재건 연합의 쿠데타를 지원해 황제를 제거하고, 카이스와의 전쟁을 유도해 재건 연합까지 없앤 다음 황제의 직위와 알로니아 제국을 손에 넣을 계획을 세운다.

전쟁 발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테이그 연방 재건 연합의 테이그 부활 계획이었다. 재건 연합 위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구 연방의 영토였던 카니아슬라 전역을 지배하는것이었고, 알로니아 제국군을 이용해 전쟁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

2619년, 레이아의 지원 아래 U8 정상회담에서 재건 연합의 테러로 황제 댄크리스 자룬은 중상을 입는다. 현장을 지켜보던 레이아 황녀는 재건 연합 출신인 제국 총관사 필리스 스타머에게 긴급 통치를 지시했고, 스타머는 황제의 권한을 가지며 알로니아를 장악한다. 스타머의 통치에 반발했던 황태자와 황녀들은 드레사 행성에 유폐됐고, 레이아 역시 황녀인지라 시네츠 은하단으로 쫓겨났다. 그후 제국은 급속도로 부활운동 출신 인물들로 행정 체계가 재편성되고, U8 회담 중무장 테러사건의 배후로 사건 당일 회담에 참석하지 않았던 카이스 공화국을 지목해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전개

알로니아의 침공 및
국군의 후퇴

4월 5일 카이스 표준시각 4시, "테그사모"라는 작전명 하에 알로니아는 전면적인 카이스 침공을 개시하였다.
미브레인선에 설치된 카이스의 워프 감지 레이더에는 대규모 함대 신호가 포착되었고, 미브레인선 근처에 있던 카이스의 접경지대 은하는 바로 제국군의 대규모 침공을 받는다.

개전초기 2주동안 카이스가 방어에 성공한 행성은 단 하나도 없었다. 부실한 방어엔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 두가지가 꼽혔는데, 내부적으로 카이스의 방어태세부터가 문제였다.

대규모 침공이 있기 훨씬 전부터 미브레인선에서는 산발적인 국지전이 발생했다. 미브레인선이 설정된 후 200년간 국지전이 없던 해는 없었지만, 2619년 알로니아 제국에서 테이그 재건 세력의 쿠데타가 성공한 후 더욱 국지도발과 국지전이 잦아졌다. 그때문에 카이스는 4월 5일의 침공 역시 무게 있는 도발 또는 경고 수준으로 여겼다.

잦은 국지전때문에 카이스 국군은 지칠대로 지쳤고, 그 상황에서 국군 지휘부는 1개월분의 대규모 휴가령 조치를 취한다. 가뜩이나 카이스 국군은 짧은 복무기간과 제한적인 모병 기준때문에 병력이 부족했는데, 휴가령 조치라는 악수와 겹쳐져 결국 침공 당일인 4월 5일에 남아있던 국경 방어선의 병력은 평시의 37%뿐이었다. 지휘라인도 거의 부재중이어서 대규모 군대에 지시를 내릴 방법이 없었다.

외부적으로는 국군과 제국군의 장비차이가 심한게 문제였다. 카이스는 통합전쟁이 끝나고 200년동안 평화에 취한채 경제발전에만 노력을 기울였다. 국군의 군대 수준은 24세기에 머물러 있었으며, 감염전쟁, 통합전쟁때 사용했던 구 연방의 성능 좋은 장비들은 유지보수가 제대로 안돼 심각한 노후화를 겪었다. 총기는 녹슬고 전차의 엔진은 수명이 다해 기동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반면 제국군은 감염전쟁때 사용된 우주를 구원한 병기 타이가톤을 수천만대 넘게 보유하고 있었으며, 연방의 병기를 보수 및 개량, 신형무기 개발 및 실전배치, 군제 개편, 전술 연구 등을 지속적으로 한 끝에 카이스를 4개월만에 정복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르렀다.

제국군이 타이가톤 기갑부대를 앞세워서 진격하자, 보병 밖에 없던 카이스의 국경 수비대는 난리가 났다. 개인화기의 화력으로는 장갑에 흠집도 못냈고, 중기관총, 기관포, 대전차미사일을 배치해서 사격해도 타이가톤의 가장 얇은 장갑조차 관통하지 못했다. 폐기 직전인 주력전차와 자주포를 재생시켜서 동원해도 관절부를 무력화 시키는게 한계였다. 움직임이 무력화된 타이가톤에 전폭기 전대를 출격시켜 특수탄두를 명중시켜야만 비로소 한 기를 잡을까 말까한 수준이었다.

그 정도로 제국군과는 비교도 안되게 열악했던 국군은 제국군에게 무참히 격파당했고, 4월 28일 카이스는 수도 캐터런 행성계를 점령당한다. 수도까지 함락당하자 뒤늦게 군수체제를 가동하고 민간 상선도 군함으로 개조해 함대에 집어넣는등 국군은 발악을 시작하게 된다.

심지어 병력들의 소집이 늦어지자 전선 근처에 있던 고등학생들 마저도 조건에 맞으면 징병시켜 학도의용군으로 참전시키게 했을 정도다. 국군의 입장으로는 군사학교와 사관학교 생도들을 실전에 투입시킨것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일반고 학생들이 훨씬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에이신 합중국 참전

동원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음에도 제국군의 진격을 멈출 수 없게 되자, 대통령 아텔리스는 에이신 합중국에 도움을 요청한다. 4월 29일, 에이신의 파병이 결정되자, 카이스는 이를 악물고 버티는 상태에 돌입하면서 방어작전과 지연작전을 7월까지 3개월간 반복하게 된다.

카이스는 200년간 카니아슬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통합전쟁에 평화유지군을 개입시켜 카이스알로니아의 전면전을 억제할 만큼의 군사력을 가진 에이신에게 나름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소규모 은하단을 지배하는 국가 치고는 기술력이나 군사력, 경제력 등이 상당했고,[2] 2만년전 온 우주를 들쑤시고 다니던 테이그 제국도 에이신은 건드리지 않았다. 에이신 또한 다른 종족의 문제에 개입하는것을 극도로 꺼려했지만, 개입하기만 하면 순식간에 문제를 종결시킬 정도의 힘을 보여줬기 때문에 카이스의 에이신 평화유지군 참전 소식에 대한 기대는 엄청났다.

파병이 결정 된 에이신은 카이스와 가장 인접한 영토인 비질리온 은하에 연합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2주 후인 5월 12일, 비질리온 은하에서 출발한 헤르팀스 특수임무부대가 카이스에 도착한다.

헤르팀스 특임대는 제국군의 특수정찰 기갑부대의 진군을 막기 위해 나소 은하계의 행성들에 방어진지를 설치한 뒤 전투에 임한다. 그러나 특임대는 기대와 달리 엄청난 손실을 입고 나소 은하에서 퇴각한다.

에이신 평화유지군의 장비나 개인전투력이 우주 정상급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나소 방어선에 투입된 헤르팀스 특임대는 워낙 급조된 부대였고, 전력의 대부분은 보병이었으며, 카이스 국군과 마찬가지로 타이가톤에 대응할 만한 무기체계가 충분하지 않았다.

통합전쟁 당시 알로니아와 카이스의 기갑부대를 효과적으로 억제한 수단은 에이신 해군의 강습전함들이었으며, 대부분은 당시 퇴역을 앞두거나 폐선을 재생시켰었던 것이기 때문에 2620년에 이르러서 급파 가능한 함대는 없었다. 결국 보병부대와 소규모 경전투함 부대만 투입됐고, 제국군 보병과 전차 상대로는 승리를 거뒀지만 타이가톤을 저지할수 없었다.

나소 전투에서 에이신의 참전 사실을 알게된 제국군은 전쟁이 지속될 수록 불리해질 것을 생각해 진격 속도를 높인다. 이전까지는 전선을 형성하고 점령지를 완전히 점령한 뒤 진격을 이어나갔지만, 이때부터 케이바라 엔진이 탑재된 함선들을 중심으로 진격 군단을 편성해 연합군의 방어선을 무시하고 진격한다.

워프 엔진이 탑재된 함선들의 워프만 방어 가능했던 워프재커 시스템 방어선이 진격군단에 의해 무의미하게 되자, 연합군의 후퇴도 가속화된다. 케이바라 엔진을 무력화 시킬수 있는 로프커터 시스템이 개발 및 방어선에 설치되기까지 연합군은 계속 밀리게 된다.

노드칸 공허 방어선

7월초에 들어서 연합군은 방어선 건설을 거의 포기했다. 제국군의 전략이 케이바라 엔진이 탑재된 함대를 주축으로 빠른 공세를 지향하게 되면서, 연합군에게 재래식 방어선 구축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고, 최대한 진격 군단을 추적하고 직접 위협을 제거함으로서 억지로 진격 속도를 늦춰야만 했다.

케이바라 엔진이 탑재된 함선의 성간이동을 차단하려면 로프커터 시스템이 필요했는데, 이미 에이신에서 연구개발이 거의 완료된 방어체계였지만, 시스템 설치에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걸리고 연료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로프커터 시스템이 적용된 방어선 구축 계획이 계속 지연됐다.

로프커터 시스템을 설치할 적절한 위치를 조사하고 실제 건설하기까지는 약 2달이 소요됐다. 그동안 카이스는 센, 유스트, 서사트를 잃게 된다. 카이스의 영토 90%가 점령당한 상태였고, 테즈노를 제외하면 루아멧[3] 프골리가 카이스 최후의 영토였다. 그밖으로는 은하간 공허뿐이라 도망칠 곳도 없었고, 결국 프골리와 유스트, 센, 서사트의 경계인 노드칸 공허에 로프커터 시스템을 설치하기로 한다.

로프커터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제국군의 진격은 멈췄고, 그때부터 노드칸 공허에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된다. 로프커터와 워프재커 시스템을 파괴하기 위한 공방전이 하루에 수십번씩 발생했으며, 방어선 속에서 워프를 하다 손상을 입은[4][5] 함선 함대를 수리할 거점을 점령하기 위해 공허속 얼마 없는 행성계와 천체를 두고 격렬한 전투가 발생했다.

3개월간의 지연전으로 시간을 벌면서, 카이스 국군에게도 신형무기를 대량 생산 및 배치할 틈이 생겼고, 에이신 평화유지군도 오랜기간 봉인시켰던 강력한 군사장비들을 재생산 및 배치하면서 7~8월에 노드칸 공허 방어선에 이르러서는 제국군의 진격이 더욱 어려워졌다.

방어선에서 전투가 지속되자 알로니아 제국군은 공세종말점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스 영토의 90%를 점령한 상태에서 카니아슬라 통일을 포기할수 없었던 제국군은 후방에 있던 병력들까지 모조리 끌어와 노드칸 방어선 전투에 갈아넣는다.

연합군도 마냥 난공불락의 요새를 건설한것은 아니었기에 남아있는 카이스 영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제국군의 공격을 방어했다. 한 곳이라도 뚫리면 그 루트로 제국군이 물 밀듯 쏟아져 들어올 것이었고, 제국군의 워프 거점이 될 수 있는 행성들을 모두 찾아 방어병력을 배치해야 했다. 조사과정에서 감염전쟁 당시 버려진 행성계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전선에 있는 병력을 빼내 그곳을 방어하기는 무리였고, 국군과 함께 지연전을 수행해온 수많은 학도병 여단을 배치시키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학도병들이 제국군을 상대로 우수한 전투성과를 보이자 학도병을 공격 작전에 써먹기 위해 KSTAR가 창설된다.

도쿠스 전투

상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노드칸 방어선에서 전투가 지속되던 8월 말, 제국군에게 드디어 돌파구가 생긴다. 8월 23일, 노드칸 공허의 행성계 도쿠스에서 워프재커 라인을 구성하고 있던 장치중 하나가 기술적결함을 일으키며 작동을 정지했고, 그로인해 입자 장벽이 무력화 되며 제국군 함대가 지나갈 틈이 생겼다. 워프재커 수리가 지연되자 제국군도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전자전 공격으로 카이스의 대응을 최대한 지연시키고 돌파계획을 세웠다.

틈이 생겼지만 제국군이 점령한 행성과 카이스 행성계 사이에는 간격이 너무커 한번에 워프하는것은 불가능했고, 그 중심에 있는 도쿠스를 완전히 점령해야했다.

도쿠스를 점령하기 위해 알로니아 해군 제5군 전력의 90%가 도쿠스를 점령하기 위해 집결한다. 이어서 해군 본대 3군과 4군이 도쿠스 주변 행성계와 은하계로 이동해 투입을 대기하고 있었다. 총 15군 2250전단으로 구성된 제국 해군의 20%가 도쿠스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고 있었으며, 도쿠스 방위군도 국군 본대에 지원을 요청해 정예함대의 26%를 증원받는다.

티스코 특수부대는 제국군 점령지에 침투하여 도쿠스로 투입될 제국 해군 3군과 4군을 선제타격하고 유입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도쿠스 점령 작전에 제국 해군 448전단이 투입됐으나, 3,4군의 도착이 늦어지자 5군 전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5군 함대 사령관은 도쿠스 침공을 개시한다.

8월 30일, 알로니아 해군 제5군과 카이스 해군 제9함대가 교전을 시작한다. 열악한 장비때문에 계속 후퇴와 지연전을 반복하던 이전과는 다르게 카이스 해군은 제법 체계를 갖췄고, 도쿠스에서 그 변화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전투는 워프재커가 있는 세르미구 행성의 궤도에서 3일동안 치뤄졌다. 양측이 원거리에서 화포, 레일건과 대함 미사일을 난사하고 레이저와 미사일로 요격하는 장관이 연출됐으며, 워낙 전투의 규모가 컸던지라 세르미구 지상에서도 날아다니는 레일건 포탄과 미사일을 맨눈으로 관측할수 있었다고 한다. 지상군 사령관이 말하길 일주운동 사진을 실시간으로 보는줄 알았다고.

3차례 전투 끝에 카이스 정예함대는 제국군 총 3군 330전단을 상대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힌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손실이 상당했으며, 그럼에도 카이스의 방어를 뚫지 못해 추가적인 증원을 요청하게 된다.

유일한 돌파구가 사라질 것을 우려한 제국군 총사령부는 전선 후방에 있던 함대까지 도쿠스로 진격시키라 명령하고, 참모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무시하고 카이스 점령지를 관리하던 함대들까지 도쿠스로 이동한다.

아인시온 강습작전과
연합군의 반격

연합군 사령부는 제국군이 어느정도 한계에 달했다는것을 알고 노드칸 공허를 둘러싼 포위를 뚫으려고 했지만 공격 측 방어 측 모두 중간에 아무 별이나 행성도 없는 공허를 건너 상대편을 공격하기엔 어려움이 컸다. 그에 관한 해법으로 아서드는 제국군의 후방을 칠것을 제시한다.

아서드는 적 후방으로 강습작전을 감행해 적을 가두는 방식으로 전황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제국군이 무리한 진격을 통해 억지로 늘려놓은 빈약한 보급로로 현재의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보급선을 잘라버리면 침략군 전체가 와해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제국군의 노드칸 전선까지의 대규모 물량 보급로인 성간철도는 필연적으로 센트럴을 통과했고, 이는 곧 아인시온이 보급선을 완전히 끊을 최적의 위치임을 의미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통합전쟁 억제군 사령관 당시 미브레인선 내 제국군과 국군을 몰아내고 충돌억제를 시키는 임무를 담당했고, 이를 위해 2345년 6월, 그는 평화유지군을 아인시온으로 파견해 이를 달성하고 그 자료를 체내 메모리 드라이브에 보관하고 있었다. 즉 이미 대군을 아인시온으로 들여보냈던 경험이 이미 있었기에 강습작전을 실시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겐호프 등을 제외하면 커다란 공허 밖에 없는 노드칸 방어선 주변의 지형은 보급로가 끊어지면 기갑 중장비를 몽땅 버리고 몸만 빠져나오기도 힘들어지므로, 매우 비효율적인 후퇴를 강요할 수 있었다. 은하단 규모에서 이동하기엔 느린 워프엔진 탑재 함선으로 공허를 횡단하는건 거의 불가능했고, 케이바라 엔진이 탑재된 함선으로도 전력을 보존하면서 퇴각하기엔 무리였다.

평화유지군 사령부와 국군 사령부는 도쿠스 전투가 일단락된 시점에서 피아 전력차가 완전히 역전, 제국군이 작전한계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고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킬 강습작전을 준비한다.

8월 공세에 실패한 제국군이 작전한계점을 무시하고 곧장 9월 공세를 벌이던 9월 초, 연합군은 공허 내 은하단과 공허 건너편 은하단을 잇는 보급 요충지 행성계 수십개를 동시 점령한다. 이날 걸터 베이튼 장군은 스텐 네피 국군 총사령관에게 예고 없이 찾아와 아래와 같은 명령을 내렸다.

국군 중에서 가장 믿고 있는 30개 군단을 골라둘 것
학습능력과 작전 이해도가 우수한 병사들
10만 명의 리스트를 준비해 둘 것
반제국 무장단체 및 경찰 간부들을
예비병력 리스트에 포함할 것

스텐 네피는 기밀에 부쳐진 강습작전의 존재를 모른채 대규모 정예병력을 보급로 점령하는데에나 차출하면 방어선이 약화될 것을 우려했다. 네피는 명령을 이행하기 어렵다며 국군 6개 군단과 노스포드 부대, 티스코 부대, KSTAR 병력의 45%까지만 보내겠다고 걸터 장군에게 전한다.

걸터는 계속해서 요구한 병력의 100%를 보낼것을 요청하지만 네피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병력 지원을 지연시켰고, 작전 개시 일주일 전인 9월 8일이 되어서야 정보를 공유하고 뒤늦게 부랴부랴 병력을 증원했지만 65%에 미치지 못했다.

9월 15일, 아인시온 강습 작전이 감행된 이후 프골리 지역에서 동진이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노드칸 방어선 근방에 진지를 만들어놓은 제국군이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강습작전 소식이 전달된 후 제국군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전선이 붕괴되는 것을 파악한 알로니아 측에서는 강습작전으로 인해 거의 모든 보급선이 절단되었으므로 제국군에 전원 후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9월 28일 카이스가 탈환되었으며, 10월 20일에는 노드칸에서부터 북진하던 국군과 강습군이 드디어 만나기에 이르렀다. 11월 1일, 국군은 미브레인선을 넘어 진격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아인시온 강습 작전을 참고.

아인시온 강습 작전에는 평화유지군들과 국군 17개 군단, 노스포드, 티스코 특수부대, KSTAR 전군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아인시온 강습작전 직전에 수행된 에이트나 대형 통제소 탈환 작전에 평화유지군 중령 세르핀 헤르팀스의 지휘 하에 KSTAR 소속 페르, 블로이 등의 학도병들과 국군 특수부대들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양동작전을 위해 겐호프 강습 작전도 개시되었으며 부실한 준비와 함께 학도병을 주축으로 한 미숙련 병력이 투입되었지만 소수 KSTAR의 지휘아래 큰 피해없이 목적을 달성한다.

아인시온 강습작전 자체는 제국군의 허를 찔러서 손쉽게 달성되었으나 제국군이 후방에 있던 거의 모든 부대를 끌어모아서 센트럴 방어전에 투입했기에 카이스 탈환은 9월 28일에나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타머가 장교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노드칸 전선의 1급 부대들은 극소수만 센트럴 방어전에 투입하는 바람에 결국 연합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센트럴이 점령됨으로써 보급선이 거의 완전하게 잘리고 만다.

황권 회복 전선 참전

한편 2619년 U8회담 테러 사건 이후 필리스 스타머에게 통치권을 공짜로 주고 통수를 맞은[6] 레이아는 2620년 9월부터 본격적인 권력 탈환에 나선다.

전쟁초기에 레이아는 연방 재건 세력의 군사력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카이스 국군을 이기지 못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잘해봐야 캐터런계의 문턱까지 갔다가 제대로 훈련된 카이스 국군에게 얻어맞고 붕괴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카이스 국군은 예상보다 훨씬 형편없었고, 진짜로 연방이 부활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레이아는 5월 말 부터 시네츠에서 급히 알로니아 왕조를 부흥시킬 군사력을 소집한다. 전쟁 전부터 시네츠에 영지와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던 레이아는 어렵지 않게 대규모 군대를 조직했으며, 9월달에 아인시온 강습작전이 성공해 연방 재건 세력의 군대가 거의 붕괴되자 황권 회복 전선이라는 명칭하에 제국의 수도 파리온 은하단으로 진격한다.

구 연방의 장비들을 재생시키고 개량해 무장한 연방 재건 세력의 제국군과 달리 황권 회복 전선의 군대는 현대전의 교리에 맞게 설계된 차세대 군함들과 장비들을 레이아 소유 군수공장•조선소에서 지속적으로 생산했기에 훨씬 강력했다. 병사 개인의 전투력도 신형 아머를 보급받은 황권 회복 전선이 우세했으며, 고등 군사교육을 받은 황제 호위군단을 가진 레이아가 압도적이었다.

9월에 황권 회복 전선이 참전하기 이전부터 레이아의 군대는 카이스 영토에 있는 유적을 조사하기 위해 조금씩 소규모 병력을 파견했는데, 연방 재건 세력의 지휘하는 제국군과는 장비 도색등에서 더 밝은 흰색을 사용하는 등 차이가 있었다. 이때 레이아의 군대 존재를 몰랐던 카이스 국군은 제국군 중에서도 흰 도색을 한 부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밝은 흰색 톤의 적군이 보이면 무조건 퇴각하라고 평가했다.

10월 들어 황권 회복 전선이 본격적으로 참전하자 연방 세력의 제국군은 거의 무너져내렸다. 동서 양쪽에서 황권 회복 전선과 연합군이 밀고 들어왔으며, 이미 대부분의 병력은 노드칸 방어선 전투에서 격전을 벌이다가 아인시온 강습작전 때문에 포위 섬멸당했다. 후방을 지키던 병사들마저 황권 회복전선에 투항하거나 동화되어 자신들을 치러 오고 있었다. 이때 연방 세력에게 남은 영토라곤 200년 전부터 연방 재건을 염원했던 일부 극성 지지 지역과 파리온을 제외하면 전무했다.

11월 21일, 제국군 총사령관 필리스 스타머는 '피로써 제국을 사수하자'는 방송을 내고 남아있는 모든 병력을 파리온에 집결시킨다.

혜성 작전

카이스 국군 사령부는 첩보작전과 제국군 포로들에게서 수집한 정보를 통해 제국군이 황권 회복 전선과 연방 재건 세력으로 갈라졌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황권 회복 전선이 카니아슬라 동부를 장악하기 전에 약해진 연방 세력의 제국군을 전멸시키고 통일을 이루고자 한다.

에이신 중앙 정보국에선 이미 황권 회복 전선이 카니아슬라 동부 대부분을 장악했다는 정보를 파악하고 미브레인선 동부로 진격하려면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통일에 미쳐있었던 카이스 국군은 평화유지군이 가지 않겠다면 단독으로라도 돌파하겠다며 혜성 작전 계획을 수립한다.

초기계획은 미브레인선 전역에서 동부로 진격을 개시함과 동시에 전쟁의 주범인 필리스 스타머가 있을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모두 공략해 스타머를 생포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연방 부활 세력의 항복을 받아내 빠르게 카니아슬라 동부를 장악한 뒤 황권 회복 전선의 양보 아래 카니아슬라 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황권 회복 전선이 카니아슬라 동부 대부분을 장악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최대한 빠르게 필리스만 생포해 전후 협상의 카드를 확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카이스는 스타머를 황권 회복 전선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혜성 작전 초기에 국군이 점령한 미브레인선 동부 영토를 할양하라고 압박할 계획이었다. 레이아 역시 전쟁 책임을 필리스에게 떠넘기고 전쟁 배상이나 영토 양보 요구를 피하고 내란수괴를 처벌함으로써 자신의 지도력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기에 양측 모두가 필리스를 노리게 된다.

12월 3일, 아인시온 강습 작전에 투입됐던 카이스 병력이 파리온으로 직행, 노드칸 방어선에서부터 제국군을 밀고 올라온 국군이 미브레인선을 넘어 동부로 진격을 개시한다. 이미 파리온 방면을 제외한 연방 세력측의 제국군은 지휘체계가 거의 붕괴됐고, 손쉽게 국군은 동진하며 알로니아의 영토를 점령한다. 파리온쪽을 향하는 혜성부대 역시 사리온 권역에서의 산발적인 저항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파리온으로 가는 길을 막을 제국군이 없었다.

12월 18일부터 연방 세력 잔당을 소탕하던 황권 회복 전선 역시 파리온으로 진격을 명령했으며, 카이스 국군이 더이상 동진하지 못하도록 방어선을 형성한다. 이 시점에서 국군의 진격은 거의 멈췄고, 파리온을 향하는 혜성부대만이 진격을 이어나갔다.

국군 지휘부에서 진격 중지 명령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국군 부대와 황권 회복 전선간의 충돌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연방 세력의 제국군과의 교전을 비교했을때 황권 회복 전선의 전력은 비상식적으로 강했다. 국군은 그동안 군수체제를 변경해 군의 규모를 증폭시키고 막강한 신형 무기들을 대거 실전배치, 에이신의 고급 군사장비를 지원받아서 전쟁초기와는 비교도 안되게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화력, 방어력, 기동성, 지휘통제 등 모든 면에서 국군이 열세였다.

개개인의 전투력으로나 장비 성능만으로는 이긴 적이 없었고, 대규모 병력을 몰아넣어야 황권 회복 전선이 퇴각하는 선에서 끝났다. 레이아의 제국군은 몇 번의 무력시위로 국군이 자신들의 점령지를 빼앗자, 크만텔라 은하 전투에서 정면으로 충돌해 영토 수호의 의지를 밝힌다. 이 전투에서 국군이 상당한 손실을 입고 퇴각하면서 파리온 방면의 주력 혜성부대를 제외한 국군 병력의 진격이 멈춘다.

나중에 가서야 다형 유적 기술이 적용된 함대와 기존 재래식 전력이 맞붙었기에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구도가 형성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마음만 먹었다면 황권 회복 전선군은 카이스의 군대를 초토화 시킬수 있었지만, 카이스 국군의 수적 우위를 압도할 만큼의 전력을 짧은 시간안에 생산해 내는것은 불가능 했기 때문에 충돌을 피했던것으로 보인다.

파리온 방면의 주력 혜성부대만이 황권 회복 전선과 조우하지 않고 연방 세력 제국군을 각개격파해가며 오직 필리스 스타머 생포만을 위해 진격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1월 11일에 파리온 은하단의 중심, 제국의 수도 은하인 가이만트 은하계에 도달했지만 이미 황권 회복 전선이 가이만트 은하 수복작전을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파리온에서 만큼은 남은 연방 세력 제국군이 모두 결집한 만큼 이전처럼 쉽게 무너지진 않았고, 치열한 공방전의 연속이었다.


혜성 작전이 한창 진행 중인 12월 말, 유적 경쟁의 중요사건 중 하나로 평가되는 리곤 은하 공략작전이 시행된다. 국군 주력 혜성부대가 가이만트 은하로 진격하던 중인 12월 20일, 뜬금없이 에이신 중앙 정보국에서 리곤 은하의 리고르 데이터베이스에 전쟁에 중요한 정보가 잠들어있다며 데이터베이스 습격을 요청했고, 적의 심장부로 진격하는 중에도 중요한 정보라는 말을 무시할 수 없었던 주력 혜성부대는 KSTAR 일부 부대를 선발하여 리고르 데이터베이스 습격작전을 명령한다.

리고르에서 제국군과의 교전 끝에 동면해있던 그리네이트미카리를 구출하면서 유적 경쟁이 물위로 떠오르게 된다.

종전

1월 25일에 국군의 혜성부대가 제국의 수도 행성계인 타리프에 먼저 진입했지만, 제국군의 극심한 저항에 수도 행성 테이그까지 도달하는데에 시간이 걸렸고, 1월 31일 레이아의 군대 역시 타리프에 도착한다. 양측은 행성계의 외곽부터 방어를 격파해갔고, 2월 1일 오후 혜성부대와 레이아의 군대가 동시에 테이그에 도달한다. 두 세력 사이 교전은 없었지만, 레이아가 먼저 필리스를 체포해버린다. KSTAR 소속 커스 블로이가 필리스 스타머를 발견한건 레이아가 스타머를 체포한지 30분 뒤였고, 그가 끌려가는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제1차 카이스-알로니아 전쟁 종전 선언문


2621년 2월 3일, 테이그 수도궁

위대한 알로니아 제국의 황제 폐하를 섬기는 모든 충성스러운 신민들과, 전 우주의 정의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선언을 발표한다.

오늘, 우리는 반역자 필리스 스타머를 체포함으로써, 알로니아 제국을 혼란에 빠뜨린 반란이 완전히 진압되었음을 선언한다. 반란 세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의 야망은 무너졌다. 제국의 질서는 확고히 회복되었고, 황제 폐하의 통치는 더욱 굳건해졌다.

이에 따라, 알로니아 제국의 영토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군사적 충돌을 즉시 중단할 것을 명령하며, 이 전쟁에 관여했던 모든 세력 또한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야 할 것이다. 제국의 질서를 방해하려는 어떠한 세력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며, 알로니아의 정당한 통치에 대한 도전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카이스 공화국은 이 선언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제국의 안정과 평화를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전쟁의 재발을 원하지 않으며, 카이스 또한 불필요한 충돌을 지속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알로니아 제국은 그들이 이성적이고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기대한다.

제국은 흔들리지 않는다. 황제 폐하의 의지는 변함없으며, 우리의 미래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오늘의 선언은 그 시작일 뿐이며, 진정한 질서와 평화가 자리 잡을 때까지 제국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제국 황권 회복 전선 최고 사령관 댄크리스 레이아

2월 3일, 레이아는 스타머를 체포한 후 곧바로 종전선언을 때려버린다. 위 선언문은 제국의 권위 확립, 카이스에 대한 외교적 압박, 군사적 경고를 포함한 정치적 선언의 의미가 포함되어있다.

반란이 완전히 진압되었으며, 황제의 권력이 더욱 강화되었음을 강조하는 동시에 카이스가 알로니아의 평화를 존중해야 한다며 초기 혜성작전의 목적에 대한 은밀한 경고를 포함한다. 전쟁을 끝내지만, 제국의 질서를 방해하는 세력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함으로서 알로니아 영토 내에서 국군의 군사행동을 제한시켰다.

어떤 협상도 없이 레이아가 통보식의 종전을 선언하자 카이스측에선 즉각 반발 했다. 그러나 크만텔라 은하 전투에서 레이아 지휘하의 제국군의 위력을 실감한 국군은 감히 선언문을 무시하고 제국군과 충돌할 용기가 없었다.

미브레인선을 넘은 국군 병력들은 철수하진 않았지만 위치 사수 명령을 끝으로 더 이상의 공격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종전을 선언했다고는 하지만, 군대는 어디까지 철수시켜야 하는지, 국경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어떤것도 합의 하에 정확하게 결정된 것이 없었기에 양측은 혼란상태에 놓였다.

종전 선언이 발표되고 24시간 후, 알로니아와 카이스, 에이신 군의 최고 사령관들은 회담을 통해 임시로 비무장 완충지대를 설정하기로 했다. 미브레인선 부터 카이스가 진격한 위치에 이르기까지 알로니아 서부 영토 일부가 완충지대로 설정됐다.

영향

인명피해

전쟁 기간 동안 카이스알로니아를 합쳐서 약 10.5×10^16명[7] 가까이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평화유지군 사망자도 1050조명에 이르는 등 10개월이라는 기간에 비해 사망자가 매우 많다. 27세기 카니아슬라의 인구가 105경명 정도이니 이 전쟁으로 인해 죽은 사람만 해도 전체 인구의 5%정도.

전쟁의 대부분 기간이 카이스에서 이뤄진 만큼 카이스의 사상자 비율이 높으며, 대부분의 사상자가 전쟁초기 제국군의 무차별 궤도 폭격 작전으로 인해 발생했다. 거주 목적으로 개척된 도시 행성과 은하계는 물론 교육 목적으로 사용되는 학원 행성까지 군사력으로 징집될 소지가 있다며 폭격을 하고 상륙해 학살을 저질렀다.[8]

정치적 영향

정치적으로는 종전 이후 레이아가 자신의 반대파를 숙청, 탄압하는 확실한 대의명분을 얻으면서 권력이 공고화되는데 엄청난 공헌을 하게 되었다. 이전부터 200년동안 끈질기게 살아남아 제국의 골칫거리였던 테이그 재건 세력은 완전히 붕괴됐으며, 레이아는 정권을 쥐어잡고 본래 목적이었던 유적 연구와 군사력 강화, 카이스와의 외교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카이스에서는 레이아가 전후 회담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에 실패했다는 인식과 수많은 사상자를 남긴 전쟁의 고통때문에 알로니아 제국에 적대감을 갖게 되었다. 결국 제 126대 대통령 선거에서 아텔리스 에이사가는 연임에 실패하고 극단적인 반제국 기조를 내세운 리버리프 카이스 당의 리어 데이서가 카이스의 차기 대통령이 된다.

반제국 정서를 등에 업고 새로운 카이스의 대통령인 데이서는 레이아의 모든 회유책에 부정적이었다. 공동 유적 조사는 백지화 됐고, 알로니아와의 교류를 중단했으며, 헌법상 카이스의 영토인 카니아슬라 동부를 레이아의 알로니아 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군사적 변화

카이스 국군의 폭발적인 전력 증강을 불러왔다. 200년동안 국방부 예산을 환경부 예산보다도 적게 편성한 카이스 정부가 전쟁이 시작한지 3달도 안되어 국가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자, 긴급하게 2621년 예산안에 국방부의 비중이 확 늘어났다.

30년동안이나 지연되던 차기 전투함 사업들이 강제로 진행되었으며, 혜성 작전이 시작될 쯤엔 150년 가까이 굴리던 함대의 주요전력 중 60%가 신형 전투함으로 대체되었다. 방어력이 형편 없다고 지적받던 보병 장구류도 섬유 전투복에서 전신 방탄 강화복으로 대부분 교체됐다.

한편 알로니아 제국군은 고위 장성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연방 세력계 장성들이 전쟁이 끝난 후 대다수 처형당하면서 지휘 능력이 부족해졌다.

국경에서는 비무장 완충지대가 설정되면서 군대를 배치할 수 없게 되자 양측에서는 각각 민정경찰과 민경부대라는 군사경찰을 조직해 국경을 지키게 했다. 경찰이라고는 하나 정규군에게 경찰 신분을 부여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름에 맞지 않게 구축함부터 전함까지 무지막지한 전력을 굴려댔다.

에이신의 무장해제 압박과 4.26 정상회담이 이뤄지면서 고화력 장비와 병력은 점차 철수했다. 그러나 국경이 텅 비어있는걸 지켜볼 수 없던 양측은 그 전부터 민유사 소년 연맹KSTAR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유적 조사단체라며 최전방에 배치시키고 총기는 물론 군함까지 넘겨주면서 완충지대는 소년병들의 전쟁터가 되어버린다.

신기술 개발 가속화

유적 경쟁 시작

해외에 미친 영향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두 세력이 충돌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본 수천개의 우주 국가들은 전쟁 내내 눈에 불을 켜고 어느측이 이기는 중인지를 자세히 지켜봤다. 에이신 정도를 제외하면 은하와 은하 사이를 건너다니는 것이 매우 어려운 기술임은 물론, 은하단 여러개를 수십일만에 왔다갔다하는 케이바라 엔진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었기에 전황이 어떻게 변하는지 정보를 수집하는 것 조차 속도가 매우 느렸다.

에이신은 초기에 무력충돌을 억제하는데 실패하면서 국방력 강화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전쟁이 애매하게 끝나버리면서 고요한 우주를 유지해야 한다는 평화유지군의 목표 달성에 실패하자, 에이신 사회 내부에서는 미지의 외계 문명의 눈에 띄었으며 또다시 침공받을 가능성이 생겼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괜히 파병했다는 소리까지 돌아다니는 가운데 영령관 시르도먼 에리튼은 '어차피 이렇게 된거 그냥 쇄국정책 풀어버리고 유적 기술 연구해서 정면으로 외계세력에 맞서자'고 했고, 수십만년동안 폐쇄 돼 있던 에이신이 극히 조금씩이나마 대외활동에 나서기 시작한다.

특히 전쟁 이전 부터 에이신 중앙 정보국에선 다형 유적 기술의 존재를 인식해왔으며, 다형 유적 기술 연구 후발주자인 카이스와 협력관계를 맺고 알로니아의 유적 기술 수준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책 덕분에 미카리가 리곤 은하 공략작전에서 구출되고, KAIST[9]에 빠르게 합류하여 모든 유형의 유적 기술 연구를 전례없는 속도로 가속화시킨다.

  1. 실제 이유는 따로 있다. 에이신 합중국/역사 문서 참고.
  2. 에이신과 테이그 민족이 처음 조우했을 당시, 에이신은 자신들은 초은하단 급으로 확장하는 대신 적은 수의 은하단을 효율적으로 운영한다고 소개했다. 에이신이 발견 된 뒤로도 별도의 외교적 교류를 꺼려했기 때문에, 에이신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많지 않았다.
  3. 카이스의 행정구역 단위. 대한민국으로 치면 도에 해당한다.
  4. 워프재커가 적용된 방어선은 입자들의 거대한 장벽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안에서 워프를 할시 입자와 부딪혀 막대한 운동에너지로 인해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5. 원래라면 워프를 통해서는 절대로 워프재커 방어선을 뚫을수 없지만, 함선에 자기력 실드를 둘러 워프재커의 입자와 충돌을 조금이나마 회피할수 있다. 그래도 완전히 피하는것은 아니기때문에 함선에는 상당한 손상이 가해진다.
  6. 당연히 예상했지만 재건 연합이 카이스와 전쟁을 일으켜 자멸하도록 내버려뒀다.
  7. 10경 5천조명
  8. 실제로 카이스는 학도병들을 소집한것도 모자라 특수부대 목적으로 굴리는 KSTAR까지 창설했으니 아주 틀린말은 아니다.
  9. Kais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카이스 과학 기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