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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과테말라 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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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1월 13일 ~ 1991년 12월 2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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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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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내전 배경과 원인
과테말라 내전은 1960년부터 1991년까지 약 36년 동안 이어진 장기적인 분쟁으로,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적 불평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모든 자산이 독일의 크루프 아그(Krupp AG)에 무상으로 인수되었고, 이로 인해 크루프는 과테말라에서 강력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1951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호아신 아르벤스는 농지 개혁과 토지 재분배 등 사회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고, 이는 크루프 아그 소유의 토지 국유화 시도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개혁 시도에 독일은 반발하였고, 결국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 군부를 지원하고 독일 국방군을 직접 파견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아르벤스를 축출하고, 과테말라의 정치적 상황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아르마스 군부의 쿠데타 이후, 모든 개혁 정책이 철회되고 군부 독재에 의한 정치적 억압이 강화되었다. 특히, 토지 문제와 인종차별이 심화되고, 농민들에 대한 불리한 토지 정책이 재정되면서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60년 11월 13일, MR-13이 크루프 아그 과테말라 지부를 습격하면서 본격적인 무장 항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과테말라 노동당(PGT)과 다른 반군 조직들이 이에 합류하면서 내전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URNG는 이후인 1982년에 여러 반군 조직들이 통합되면서 형성되었다. URNG는 내전 후반부에 반군의 주요 조직으로 성장하며 저항을 이끌었다.
내전의 전개와 종전
내전은 과테말라 정부와 여러 반군 조직 간의 오랜 충돌과 게릴라 전투로 진행되었다. 정부군은 독일의 지원을 받으며 반군을 억압했고, 반군 조직들은 일본의 지원을 받으며 저항을 이어갔다. 과테말라 농촌 지역은 전투의 주요 무대가 되었으며,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정부의 내부적인 지지 약화와 반군의 저항이 지속되면서 과테말라 정부와 반군 사이에 평화 협상이 진행되었다. 결국 1991년 12월 29일, 당시 호르헤 세라노 엘리아스 대통령은 정권 이양을 결정하고, 평화 협정을 체결하면서 내전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후 과테말라 혁명연맹정부가 수립되었으며, 기존의 과테말라군은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