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중국 인민해방군 홍콩 투입 모의 사건 (영광이 다시 오길)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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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상황을 알리는 서울신문 기사 현 홍콩 공화국 정부가 공개한 해당 문건[1] 시치야오 씨가 공개한 해당 문건의 표지와 목차

개요

2020년 2월 경 중국 정부가 격화되어가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홍콩에 인민해방군을 투입을 시도한 사건으로 중국의 몰락과 홍콩의 독립에 도화선 역할을 한 사건이다.

진행

문건 공개 이전

문건 공개 이전부터 홍콩 민주화 운동이 장기화·격화되어 감에 따라 시위에 대한 탄압이 더욱 더 강경해져갔고 이에 따라 중국이 인민해방군을 투입 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홍콩 내외에서 주장되었으나 이때까지는 단순한 추측에 불과했으며 중국 정부가 미국 등 서방권의 눈치를 봐서 정규군인 인민해방군의 투입은 자제 할 것 이라는 의견이 주류였다. 그러나......

시치야오 씨의 문건 공개[2]

현지 시각으로 2020년 2월 25일 5시 경 모바일 메신저 Bridgefy의 민주화 시위대 단체 채팅방에 위의 문건 사진과 함께 장문의 글이 올라오게 된다. 해당 글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중국 국무원이 홍콩 행정부에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시위 투입 허가를 요청하였으며 최소 2주에서 최대 1달 이내에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투입 될 거란 것이였다. 해당 내용은 얼마 가지 않아 타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까지 전달되었고 결국 홍콩의 주요 민주파 정당인 민주당, 공민당 등에게도 전달되게 되었다.

민주파 정당들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안건의 존재를 공론화 시켰고 홍콩 행정부의 해명을 요구하였으며 곧이어 외신에까지 이 소식은 전달되었다. 가장 먼저 영국의 BBC가 해당 소식을 보도하였으며 이후 CNN, NHK, KBS등의 방송국에서도 보도가 뒤따랐다. 홍콩 행정부는 초기에 이 소식을 부인하였으나 다음날 오후 13시 경에 홍콩 행정부 청사 내의 한 공간에 있는 모습과 함께 해당 문건의 일부 페이지와 해당 문건이 탁자에 쌓여있는 모습, 그리고 해당 인물의 공무원증이 함께 공개됨으로써 중국 정부와 홍콩 행정부가 인민해방군을 투입하려 했다는 사실이 기정 사실화 되었다.

물론 이는 엄연히 홍콩의 일국양제를 파괴할 수 있는 행위였기 때문에 민주파 세력은 물론 일부 온건 건제파 세력 또한 홍콩 행정부 및 중국 국무원을 비난하였다.

홍콩 행정부의 문건 공개

민주파와 본토파 세력은 물론 일부 온건 건제파 세력까지 비난에 합세하자 크게 놀란 홍콩 행정부는 2월 27일 15시 30분에 기자회견을 열고 해명에 나섰다. 해명의 요지는 해당 사진은 모두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였다. 그러나 해외에서 전문가들을 동원해 조사해본 결과 모든 사진에는 어떠한 합성이나 편집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시진핑 당시 국가주석의 사인이 발견되면서 결국 29일에 홍콩 행정부는 해당 문건의 존재를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주요 내용

  • 홍콩 전역에 계엄령 선포
  • 홍콩 시위대 무력진압[3]
  • 홍콩 보안법 재정
  • 홍콩 입법회 해산, 행정부 무력화
  • 중국식 언론 통제 및 검열 도입(황금방패)

문제점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당시 홍콩의 최고 입법기관인 홍콩 입법회가 사실상 정회중이였다는 사실이였다. 즉 홍콩 시민의 민의를 대변하는 입법부의 동의 없이 중국의 지령을 받은 행정부 단독으로[4] 중국군을 풀고 계엄령을 선포하려 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홍콩 민주주의와 이의 근본인 일국양제를 박살 낼 수 있는 안건홍콩 시민의 동의 없이 집행하려 했다는 것으로 사실상 일국양제와 민주주의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해당 문건은 간체자와 영어로만 이루어져 있었는데 홍콩은 중국 본토에서 통용되는 간체자가 아닌 대만에서 사용하는 정체자를 사용하는데 이를 두고도 홍콩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일부 존재했다.

반응

민주화 시위대 측

민주파

우치와이 당시 홍콩 민주당 대표는 "일국양제는 죽었다."라며 홍콩 행정부와 중국 정부를 비난했다.

앨빈 양 당시 공민당 대표는 "중국 정부의 이러한 행위에 몹시 실망했다."라며 중국 정부에 실망과 유감을 표했다.

폴 치머만 당시 공공단업연맹 대표는 "중국 정부의 추악한 민낯이 들어났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하였다.

조슈아 웡 당시 데모시스토 비서장(사무총장)은 "은 우리를 존중해 줄 생각이 없으며 우리는 미래를 위해 그들과 싸워야 한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게시하였다.

본토파

클라우디아 모 당시 홍콩본토 공동대표는 "특별행정구 정부는 더 이상 우리를 대변 하지 않고 대변 할 수도 없으며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하였다.

친중파 측

캐리 람 당시 홍콩 행정장관은 초기에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라며 해당 사실을 부인하였으나 이후 문건의 존재를 시인하였다.

당시 집권 여당인 민건련스태리 리 대표는 논평을 유보하였다.

펠릭스 청 당시 자유당 대표는 친중파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라며 중국 정부를 비판하였다.

레기나 입 당시 신민당 대표는 "폭도 진압을 위한 계엄령 선포는 당연하다."라는 망언을 하여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았다.

중국 정부 측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주석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홍콩에 인민해방군을 투입하려던 시도는 없었으며 중국 정부는 일국양제를 존중한다."라며 문건 및 관련 내용을 전면 부인하였다.

서방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중국은 선을 넘었으며 이제 그들에게 남은것은 응징뿐."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우리정부는 외교부를 통해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투입은 옳지 못하다."라는 애매모호 한 성명을 발표하였으나 개입사실이 확실해진 29일 이후에는 "일국양제는 존중되어야 하며 중국 정부의 이런 행위가 심히 우려스럽다."라는 비난성명을 발표하였다.

일본은 중국을 강력히 비난하였다.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은 "중국 정부는 홍콩 민주화 투사들에 대한 탄압을 즉시 중단해야 하며 대만은 홍콩과 함께 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또한 28일에는 동중국해 일대에서 무력시위를 감행하였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중국 정부는 일국양제 및 중영공동선언의 내용을 존중해야 하며 홍콩 시위대에 대한 탄압을 중단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유럽 연합 또한 중국을 비난하였다.

여파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 정부 및 홍콩 행정부에 대한 홍콩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으며 결과적으로 홍콩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더 크게 만든 셈이 되었다. 또한 당시 민주화 세력 내에서 온건 민주파 세력이 강경 독립세력(본토파)로 교체되었으며 홍콩인들이 중국인임을 거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후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와 전력난이 뒤따르며 시진핑 정권 붕괴의 단초가 되었다.

같이보기


  1. 현재에는 홍콩 공화국 정부 지하 문서보관고에 보관되어 있다.
  2. 당시에는 익명으로 공개됨
  3. 시위대 내에 프락치를 심어 계엄군을 공격하도록 유도 한 뒤 이를 명분삼아 진압하려 했다.
  4. 홍콩 특구의 행정부는 행정장관 이하 모든 고위 관료들이 중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취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