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영광이 다시 오길)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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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홍콩 독립 운동
反對逃犯條例修訂草案運動
2019 Hong Kong anti-extradition bill protests
거리에 집결한 시위대.
날짜
2019년 6월 9일 ~ 2024년 9월 15일
장소
홍콩특별행정구 전역
상세
원인 일국양제 불이행
범죄인 인도법안 발의
목적 고도의 자치 보장 → 완전한 독립[1]
참여 인원 약 37만 명
시위 당사자 홍콩특별행정구 구민
홍콩 행정부
중국 정부
주요 인물 우치와이
클라우디아 모
캐리 람
시진핑
결과
홍콩 자치령 출범[2]
시진핑 조기퇴임
신사회주의헌법 발의
민주화 운동의 상징 흑양자형기
홍콩 시내에서 시위중인 시민들

개요


유튜브에 노출 되었던 Freedom Hong Kong 광고

홍콩 시위관련 다큐맨터리

시위곡 영광이 다시 오길
10년 후 초등학생들이 홍콩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조슈아 웡 당시 데모시스토 비서장(사무총장)

저는 경찰과 맞서거나 파괴를 하려고 거리로 나서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정부의 잘못에 항거하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이 자기네 정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I don't take to the street to clash with police or to destory. i'm here to protest what's wrong with the government. People should not be afraid of their governments. Governments should be afraid of their people.

뉴욕 타임즈 홍콩의 마지막 편지 中

反對逃犯條例修訂草案運動[3] / 反送中大遊行[4] / 2019 Hong Kong anti-extradition bill protests

2019년 6월 9일부터 2024년 9월 15일까지[5]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에서 진행 되었던 대규모 민주화 시위이다.

원인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영국 정부는 일국양제, 항인치항[6], 고도의 자치 보장 이 세가지 조건을 전제로 하여 반환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홍콩 통제와 탄압은 반환이후 점차 거세져만 갔으며 시진핑 정권의 등장 이후로는 홍콩 자치의 근간인 일국양제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만이 누적 되던 와중에 범죄인 인도법안으로 인해 홍콩 시민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

민주화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의 기본적인 요지는 홍콩 내에서 범죄를 일으킨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 해야 할 점은 중국은 고도의 권위주의-전체주의 독재국가라는 것이다. 즉 중국공산당을 비난하는 발언을 한 정치인이나 사회·인권 운동가를 합법적으로 중국으로 송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미 암암리에 중공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본토로 끌려가 고문을 받은 사실이 폭로 된 상황에서 인도법안이 통과되면 사실상 홍콩 내 범민주파 세력은 질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범죄인 인도의 최고 결정권자가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의 수반인 행정장관 이라는 것 또한 큰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홍콩 행정장관은 친중파가 절대 다수 일 수 밖에 없는 홍콩 입법회에서 중국 공산당이 낙점한 후보 중에 한 명을 선출하는 구조이기에 중공의 지령을 받은 친중파가 멋대로 민주파 세력을 탄압하는데에 악용 될 수 있기 때문이였다.

경과

3월 31일 최초 시위 이후로 시위 참가 인원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참가 계층도 남녀노소, 심지어 기업인들도 참가하고 있다. 또한 시위도 홍콩섬에서 구룡반도를 포함한 홍콩 전역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분기별 경과

2019년

2분기

2019년 6월 9일에 최초로 홍콩 경찰 추산 25만, 주최 측 추산 103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거센 시위의 열기로 인해 캐리 람 행정부가 법안 처리 연기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법안의 완전한 철패를 선언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중국공산당이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스티븐 로 경무처장 명령으로 고무탄과 최루탄이 발사되어 16세 학생이 머리에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7] 여론에 불을 지르는 행위가 이어지자 입법회등 주요 정부 건물이 포위당하고 200만의 시위대가 운집하는 등 분위기가 고조되는 추세이다.

3분기

2019년 3분기는 7월 1일에 홍콩 입법회가 점거 당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입법회를 점거한 시위대는 본회의장에서 영국령 홍콩 국기를 휘날리는 등의 행동을 하였으며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자 결국 익일에 점거를 해제하였다. 시위가 장기화 되는 가운데 캐리 람 행정장관이 법안의 사망(Dead)를 선언하였으나 철회(Withdraw)를 선언하지 않은, 즉 말장난에 불과하기에 시위대는 시위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중국 본토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삼합회와 정치깡패들을 동원한 백색테러가 실시되었으며 총파업이 진행된 와중에도 캐리 람 행정장관은 강경론을 굽히지 않았다. 8월 12일에는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점거하면서 공항 기능이 마비되었고 불매운동 등으로 규모를 키워나가는 가운데에 미국이 공개적으로 중공 당국을 비난하며 미중관계가 악화되었다. 이후 인간 띠 잇기등의 평화집회로 국면이 전환되었으나 경찰의 최루탄 발사와 물대포, 실탄 발사등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폭력시위가 재발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26일부터 평화시위로 돌아왔다. 8월 30일에는 조슈아 웡과 아그네스 차우 등의 여러 민주화 운동가들이 체포된 가운데 다음날인 31일에 최루탄과 형광 물대포를 이용한 유혈진압이 자행되었다.

9월 2일에 홍콩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가 합세한 대규모 동맹휴학이 일어났으며 직장인들이 합세한 총파업이 일어났다. 9월 4일에는 시위대의 숙원중 하나이자 시위의 주 발생원인이었던 홍콩 송환법이 캐리 람 행정장관에 의해 정식적으로 철회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캐리 람 행정장관이 해당 법안 철회가 중공 지도부의 양해와 존중 하에 이뤄졌으며 송환법 철회를 제외한 나머지 4개 사안은 어느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하자 범민주파 야당진영은 캐리 람의 송환법 철회를 거부했다.

이후 캐리 람 행정장관은 시위대에 '대화'를 제의하였으나 오히려 모욕 섞인 비난만을 들어야만 했고 오히려 9월 20일에 국제엠네스티에 의해 홍콩 경찰의 인권탄압 실태를 공개되며 더더욱 입장이 난처해 졌다. 국제앰네스티에 의하면 체포된 시위대에 대하여 고문과 폭력이 자행되고 있으며 전기고문 및 성고문 협박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러한 경찰의 반 인륜적 행위와 캐리 람 행정부의 고압적 태도로 인하여 오성홍기와 중공 당기를 불사르고 시진핑과 마오쩌둥의 사진을 짓밟는 등 반중 색채가 강해졌다.

4분기

10월 3일 부터 10월 5일에 걸쳐서 캐리 람 행정장관과 홍콩 행정부가 사실상의 계엄령인 긴급조치의 발동과 시위대의 복면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인 복면금지법의 실시를 선언한 가운데 중국 인민해방군이 공개적으로 홍콩 시내로 진입하는 등[8]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고 있다. 이에 10월 15일에는 미국 하원 본회의에서 하원의원 435명의 만장일치로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 홍콩 시위진압 금지법, 홍콩 인권 상황에 대한 중국 규탄 결의안이 가결되며 미국의 중국압박이 더욱 거세졌다. 미국에 압박에 부담을 느낀 것인지 10월 23일에 테레사 쳉 법무장관이 홍콩 입법회에 출석하여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안)을 공식적으로 철회하였다.

11월 1일, 중국공산당이 홍콩에 대한 전면통제 의사를 밝히며 홍콩 시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분노한 시위대가 신화통신 건물을 공격해 파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으며 사망자가 늘어나고 홍콩 경찰의 16세 소녀에 대한 집단 성폭행 의혹이 붉어지고 경찰이 3파 투쟁[9] 시위진압 와중 가슴을 조준하고 실탄을 발포하는 등 시위대의 분노에 기름을 붇는 행동이 다수 일어나 시위대의 반중, 반정부 여론이 한층 더 강해졌다. 그런 와중 주 홍콩 인민해방군이 '도로 청소'를 명목으로 홍콩 행정부의 동의 없이 투입되며[10] 사실상의 무력시위를 단행하자 여론이 더욱더 악화되었다.

11월 18일에는 휴교령이 내려진 가운데에 교통 요충지인 홍콩이공대학에서 농성하는 학생들과 시위대에 대한 경찰측이 최후통첩을 날렸으나 학생들은 유서까지 작성하고 항전의 뜻을 밝혔으며 홍콩 전역의 대학들이 일제히 시위에 들어갔다. 이후에도 홍콩 행정부는 타협다위는 없다는 듯 강경파인 크리스 탕을 경찰청장에 취임시키는 행보를 보이자 11월 20일에 미국 상원이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을 통과시티고 다음날에 미국 하원이 해당 법안의 재의결해 통과시키는 등 미국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또한 21일에는 '함께 점심 먹기' 시위가 일어났다.

11월 24일에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가 실시되었으며[11] 선거 결과 범민주 388석 vs 친중파 58석으로 민주파가 압승을 거두었다. 11월 27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위대 지지를 발표하였으며 다음날에는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에 서명하여 공식적으로 법안이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에 마음이 조급해진 홍콩 경찰측이 이공대 내부로 진입하였으나 이미 이공대 내에 있는 모든 시위대는 이미 탈출한 뒤였으며 결국 29일에 봉쇄를 해제하였다.

12월 1일, 민주화 시위대와 경찰측의 충돌이 경찰측의 수류탄 발포로 인해 재개되었으며 홍콩 경찰이 시위진압에만 신경쓰고 정작 강력 범죄에는 대응하지 못하는 치안 공백 상태가 지속되자 캐리 람 행정장관이 민심 수습책을 발표하였다. 캐리 람 행정부에 대한 만심이 폭락하였음에도 캐리 람 본인에 대한 탄핵안은 찬성 26 대 반대 36으로 부결되어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12월 7일에서 8일에 이틀에 걸쳐서 세계 인권 선언 기념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으며 이는 규모가 축소되었음에도[12] 12월 10일 세계 인권 선언 선언일 당일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12월 4일 미국 하원의 신장 위구르 인권법 통과로 인해 미국의 압력이 더욱 거세졌으나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캐리 람 지지선언을 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에 코웃음 치듯 시진핑이 마카오를 방문한지 이틀 째 되는 날인 12월 19일에 미국 하원 외교위가 티베트 인권법안 통과시키며 시진핑에게 엿을 먹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시위대의 요구를 전면 거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12월 24일과 25일에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으며 홍콩 경찰측은 이제 관광객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시위대에 총구를 겨누는 등 막장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2월 30일과 31일에도 신년맞이 시위가 대규모로 이어졌다.

2020년

1분기

2020년 1월 1일에 연초부터 약 100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신년맞이 시위가 열렸으며 이는 이틑날까지 이어졌다. 또한 1월 2일부터 19년에 선출한 범민주파 구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월달 초부터 중국 본토에서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퍼지는 일명 우한 폐렴이 확산되기 시작하고 1월 7일에는 홍콩 내에서 의심환자가 나오는 등 괴질에 의한 시위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한편 중국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중 하나인 대만에서 1월 11일에 정부총통 선거[13]와 입법위원 선거[14]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범록 진영의 민주진보당이 압승을 거두고 차이잉원 총통이 재선하면서 중국의 근심이 깊어져 가고 있다.

우한 폐렴이 홍콩 내에서 확산되면서 점차 시위가 힘들어 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사실상 홍콩 방역에 손을 놓은 모습을 보이자 1월 29일 홍콩의 민주파 진영 의료업계 종사자 노동조합 소속 15,000여명은 "홍콩 정부가 중국으로의 전면적인 국경 봉쇄 및 중국인의 전면적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을 경우 2월부터 총파업 및 반정부 시위에 들어가겠다"고 경고했다.

2월달 초부터 이어진 우한 폐렴의 대유행으로 인해 대규모 시위가 사실상 거의 사라졌으나 그 대신 중국 당국의 무책임한 방역조치와 캐리 람 행정부의 홍콩-중국 국경이 지속적인 개방에 분노한 의료진 9,000여명의 총파업이 반정부 시위로 발전하였으며 중국(본토)인 입국금지 조치등을 요청하였으나 묵살당했다. 캐리 람 행정부가 경제 부양책을 내놓았으나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2020년 2월 25일 현지시각 오후 5시경,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시위 무력진압 시도를 담은 문서가 모바일 메신저 Bridgefy를 통해 유출되어 홍콩 시위대에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이는 홍콩 행정부 내의 내부고발자에 의한 행위인 것으로 보이며 유출된 내용에 의하면 중국 국무원이 홍콩 행정부에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시위 투입 허가를 요청하였으며 최소 2주에서 최대 1달 이내에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투입 될 거란 사실에 홍콩 내외를 가리지 않고 큰 충격을 주고 있다.

2월 26일,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시위 무력 진압 시도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대규모 집회가 감행되었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약 67만에 달하는 시위대가 운집하였으며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인해 17명의 사상자와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또한 범민주파 진영 외에도 일부 온건 건제파(친중파) 진영까지 해당 안건을 비난하는 모습에 홍콩 당국과 중국공산당이 적지않게 당황한 모습이다. 홍콩 당국은 문건 유출 초기에 해당 문건의 존재를 부인하였으나 현지시각 당일 오후 1시경에 홍콩 행정부 청사 내의 한 공간에 있는 모습과 함께 해당 문건의 일부 페이지와 해당 문건이 탁자에 쌓여있는 모습, 그리고 해당 인물의 공무원증이 함께 공개됨으로써 중국 정부와 홍콩 행정부가 인민해방군을 투입하려 했다는 사실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2월 27일에도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에 홍콩 행정부와 캐리 람 행정장관은 2월 27일 현지시각 15시 30분에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문건이 완전히 조작되었다는 내용의 해명에 나섰으나 현지시각 21시 50분에 미국정부가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조사하여 본 결과 그 어떠한 조작의 흔적조차 없었다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결정적으로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서명이 발견되어 홍콩 당국의 해명이 거짓임이 들어났다. 이러한 정부의 거짓말에 28일 시위에는 90만에 달하는 시위대가 몰려들었으며 결국 홍콩 행정부는 29일 해당 문건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3월 1일에는 코로나 19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분노한 시위대 120만 명이 홍콩 전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시위를 일으켰으며 민주파 지지세가 강한 샤틴구 일대에서는 경찰이 일시적으로 통제권을 빼앗기고 역으로 밀리는 일이 일어났다. 홍콩 현지언론에 따르면 이번 사태에 대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매우 분노하였으며 강경진압을 명령했다고 알려졌다.

3월 8일부터 실탄과 물대포, 그리고 소규모 장갑차까지 동원된 경찰의 강경진압이 실시되어 민간인권전선 추산 120여명의 사상자와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강경진압에 대해 크리스 탕 보안장관은 "폭도들로 인해 선량한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으며 그들로 인해 생기는 사회 혼란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여 많은 이들의 빈축과 분노를 샀다. 3월 10일 시위에서 일부 시위대의 투석과 화염병 투척이 목격되었다.

3월 중순부터 시위의 과격화가 눈에 띄게 진행되었다. 대다수의 시위대에서 죽창과 화염병, 사제 투석기 사용이 목격되었으며 일부 대규모 시위에서는 경찰측에서도 사상자가 나올 정도의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17일 현지시각 오후 5시경 시위대 지지를 다시한번 선언함과 동시에 중국 정부와 시진핑 국가주석을 미친 개, 마약 중독 깡패 등으로 지칭하며 맹비난 했다. 또한 그 여파로 인해 중국 증시가 4% 가량 급락하였다.

3월 20일, 시위대 약 17만 명과 홍콩 경찰이 홍콩 입법회 청사 앞에서 대규모로 충돌하였다. 해당 시위에서 시위대는 사제 대포와 화염병, 죽창등을 동원하였으며 경찰측은 이에대해 사정없는 물대포 발사로 대응하였다. 현지시각 오후 3시경, 홍콩 입법회 시위에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난 사실이 현지 매체를 통해 확인되었다. 민간인권전선 등의 발표에 따르면 시위가 격화되던 와중 경찰 2명이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아 기절하자 일부 경찰이 실탄을 발포했고 결국 이로 인해 부상자 2,000여명, 사망자 103명에 이르는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났다고 현지매체는 전했다. 반면 경찰 측은 시위대 부상자 12명, 경찰 부상자 5명으로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3월 21일 뉴욕 시간 오전 11시경 미국과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이 중국에 대한 강경 경제제재를 발표하였다. 같은날 우리시간으로 오후 5시에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과 유럽연합이 공동으로 중국에 대한 SWIFT 퇴출을 선언하였으며 그 여파로 인해 중국 증시가 34% 가량 급락하였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이에 대해 "이는 미국과 서방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선전포고"라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다음날인 22일에는 대만과 일본, 콜롬비아가 대중 SWIFT 퇴출을 선언하였으며 23일에는 한국과 남아공, 인도 그리고 인도네시아등의 국가가 이에 동참하였다.

중국에서 뱅크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현지 매체가 보도하였다. 3월 27일에 중국이 동중국해 일대에서 무력시위를 감행하였다. 중국 정부가 3월 29일 대중 제재 동참국들에 대한 역제재를 선언하여 우리 기업 상당수가 피해를 입었다. 3월 3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제재에도 중국은 끄떡없다"라며 자국의 경제 상황을 포장하였으나 위안화 환율이 28일 부터 31일 까지 1달러당 7.72위안 수준으로 폭락하여 웃음거리가 되었다.

2분기

4월 3일 중국 정부가 미국을 제외한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과 한국, 대만, 인도네시아에 대해 금수조치를 선언하였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유감을 표명하였다. 코로나 19의 대유행과 경찰의 유혈 진압으로 인하여 홍콩 내부의 보건의료 상황이 매우 열악해진 것으로 드러나 많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으며 홍콩 민주파 소속 정치인들은 의료업계 종사자들에게 일시적인 무상진료 및 치료를 호소하고 있다. 코로나 판데믹과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홍콩 민주화 운동의 불길은 꺼질 줄 모르고 계속 불타오르고 있으며 4월 11일 시위에서 역시 100만명 이상의 시위대가 모여 집회를 이어나갔다.

4월 13일 홍콩 행정부에 의해 통금령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홍콩 시위대는 이를 무시하였다. 자유 아시아 방송에 따르면 호주산 석탄에 의한 금수조치로 인해 중국인들이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상당수의 중국 공장이 가동을 중지한 것으로 들어났다. 또한 중국의 해외 제재로 인하여 삼성, BMW등 해외기업의 중국 공장이 연이어 문을 닫거나 해외로 이전하면서 중국의 실업률이 큰폭으로 상승하였다고 한다. 4월 중순부터 서방세계의 대중제재로 인하여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일본 이외에도 상당수의 원자재 공급지가 막혀버려 물류대란이 촉발되었다.

4월 23일에 공무원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홍콩 증시는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고 폐쇄되었다. 코로나 19와 대중 경제제재로 인해 전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4월 25일에 트럼프 미 대통령은 제재 해제 가능성을 일축하고 제재 연장을 발표했다. 4월 27일 중국 위안이 달러당 8위안으로 폭락하였다.

5월 2일에는 홍콩 입법회에서 긴급조치 및 통금령 해제를 두고 표결이 있을 예정이었으나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로 인해 무산되었다. 5월 11일 자유 아시아 방송이 비밀리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 내의 시진핑 지지율이 60% 아래로 폭락하였음이 확실시 된다고 한다. 5월 13일 공청단 소속 후춘화 부총리가 시진핑을 우회적으로 비판하여 큰 파장이 일었다. 5월 19일 레기나 입 신민당 대표가 중국 본토 방송에 출연하여 시위대를 바퀴벌레라고 비난하자 분노한 시위대에 의해 신민당 당사가 전소될 뻔했으며 당사 내부의 기물이 상당수 파손되었다. 5월 21일 홍콩 행정부 홈페이지가 해킹당했다.

5월 22일에 캐리 람 행정장관이 천다오샹 주 홍콩 중국 인민해방군 사령관에게 지윈을 요청하였으나 당연하게도 시위대의 반발이 더 심해지는 악영향을 초례했으며 다음날 홍콩 섬 일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홍콩 섬 일대의 경찰력이 붕괴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5월 26일 홍콩 행정부 및 친중파 입법위원들이 신계의 윈롱구 일대로 도피했다. 5월 29일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전인대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해 "무능하다"라는 어조를 쓰며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6월 4일 천안문 항쟁을 기념하여 대규모 집회가 구룡반도와 홍콩섬 일대에서 열렸다. 6월 10일 구룡반도 일대의 경찰력이 80% 이상 붕괴되었다는 소식이 현지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으며 미국이 대중 경재제재를 강화하였다. 6월 22일 홍콩 경찰이 장갑차를 동원하여 구룡반도 일대와 홍콩 섬의 주요 거점을 탈환하는데에 성공했다.

3분기

중국공산당의 지방 장악력이 상당히 붕괴되었다는 자유 아시아 방송의 보도가 7월 8일에 있었다. 7월 16일 왕양 정협 전국위원회 주석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사회, 경제정책을 비난하였으며 이로써 중국내의 정치투쟁이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인하여 홍콩 내의 대규모 시위가 눈에띄게 줄어들었으며 홍콩 내의 의료체계가 붕괴 위기에 몰렸다고 홍콩 BBC가 전했다. 홍콩 행정부가 의료체계 붕괴를 막기위한 홍콩-중국 국경의 전면 봉쇄를 선언하였으며 시위대에 일시적 휴전을 제의하였다. 7월 24일 시위대와 행정부, 야권의 임시휴전이 선포되었으며 민간인권전선과 홍콩 야권은 중국군의 투입 금지를 조건으로 8월 한달간의 시위중단을 선언하였다.

중국 정치위기로 인해 코로나 19 확진자 관리가 재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자유 아시아 방송이 보도하였다. 8월 8일 국제앰네스티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 당국이 지지율과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하여 시민들을 집안에 강제로 가택연금 시키고 매우 부실한 배급과 지원이 이루어 지고있다고 한다. 홍콩과 가까운 광둥성 선전시에서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소규모 시위가 일어났다고 하며 일각에서는 중국공산당의 리더쉽과 시진핑 정권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8월 19일 전인대에서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회 주석이 시진핑 주석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에 대한 국가인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현지시각 8월 25일 오후 4시경 백악관이 전했다.

중국 정치투쟁의 여파로 인해 중국공산당이 분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미국 정부가 전했다. 9월 7일 시진핑이 실각하였다는 주장이 파룬궁 계열 언론 대기원시보에 의해 제기되었으나 다음날 미국 CIA가 공식적으로 부정했다. 중국의 정치위기와 홍콩 시위대의 선전(善戰)으로 티베트,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의 지역에서도 산발적인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신장 지역의 이슬람 무장독립 단체인 동튀르키스탄 이슬람 운동과 세속주의 성향의 세계 위구르인 회의 등 위구르 민족독립단체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홍콩 행정부가 홍콩 내의 코로나 환자가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4분기

10월 6일, 시진핑이 중공 중앙위원회 총서기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아직 중국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유지한다고 한다. 중앙군사위 주석 > 중공 총서기 > 국가주석 순의 실질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직책상 시진핑이 당의 지지는 잃었으나 아직 군내 강경파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석 할 수 있다. 당 총서기 대행으로 왕치산 국가부주석이 선출되었으나 허수아비라는 견해가 많다. 홍콩 행정부가 선거법 개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10월 15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남화조보)가 보도했다. 홍콩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선거법 개정안이 현지시간 10월 21일 오전 11시 30분경 입법회에서 민주건항협진연맹 소속의원 7명에 의해 발의되었다. 주요 내용은 지역구 의석의 축소와 중선거구제 도입이다.

현지시각 11월 3일 오후 1시경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법제사법위원회 1차 심의가 홍콩 입법회 본회의장에서 시작되었으나 민주파 의원들의 거센 반발과 입법회 청사를 포위한 시위대의 입법회 진입 시도등으로 인해 11월 5일로 연기되었다. 선거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사 구룡반도 일대에서 열렸으며 약 33만명이 운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민건련, 신민당 등 건제파 정당 소속 의원 13명을 제재했다. 경찰을 동원한 11월 5일 선거법 1차 심의에서 민주파(29석) 의원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건제파(37석[15]) 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법안이 통과되었다. 2차 심의일은 11월 21일로 정해졌다. 이번 선거법 개정안에 대하여 대만의 뤼슈롄 전 부총통은 "홍콩 시위대와 점진적인 타협을 하는 척 하며 민주파의 세를 줄여놓고 다시 정권을 독차지 하려는 술수"라고 평가했다.

현지시각 11월 21일 오전 11시경 10만명 가량의 시위대가 입법회 청사 앞으로 몰려들었으며 의원들이 입장해야 할 오후 2시 경에는 약 51만의 시위대가 운집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무슨일인지 건제파 소속 입법위원 대다수가 입법회 청사로 모이지 않고 있으며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현지시각 2시 41분 친중파 입법위원들이 입법회 청사가 아닌 홍콩 북부에 위치한 북구(베이구)의 구정부 청사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현지시각 3시경 친중파 의원 36명에 의해[16] 선거법 개정안이 2차 심의를 통과하였다. 분노한 홍콩 시민들에 의해 입법회 청사가 공격당했으며 정부기관에 여러 건의 방화시도가 있었다고 현지언론이 보도하였다.

12월 1일 민간인권전선과 범민주파 6개 야당이[17] 투쟁재개 및 캐리 람 행정장관에 대한 불신임을 선언하였다, 즉 캐리 람을 행정수반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중고등학생들의 수업거부가 재개되었으며 일부 자영업자들이 철시하였다. 영연방과 유럽연합이 홍콩 행정부를 공동으로 규탄했다. 17일 홍콩 항만의 노동자들이 파업하여 부두의 기능이 마비되었다. 중국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회 주석이 홍콩 행정부를 옹호했다. 12월 29일 새해맞이 시위가 시작되어 약 60만 명의 시위대가 운집하였으며 31일에는 71만으로 불어났다.

2021년 ~ 2022년

21년 전반기

1월 1일 새해 시위에 약 90만에 달하는 시위대가 운집하였다. 홍콩 행정부에 반대하는 건제파 무소속 입법위원 2명이 자유당 입당을 선언하였으며 본래 친중정당이던 자유당의 중도화가 점점 가속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1월 10일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본회의 최종표결이 이루어졌으며 몸싸움, 국회공성전등의 격렬한 의원간의 분규가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자유당을 제외한 건제파 의원 35명의 찬성으로 과반 동의가 성립되어 선거법 개정안이 공식적으로 효력을 갖게되었다. 선거법 개정에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가 3일 연속으로 지속되고 있다. 1월 20일 조 바이든이 제46대 미국 대통령으로의 업무를 시작하였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계획이 지금 당장은 없다."고 밝혔다.

범민주파 진영 정당들이 공무원 및 근로자들에게 파업을 호소하였다고 현지시각 2월 1일 오전 9시 30분 빈과일보가 전했다.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가 2월달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폭력시위가 재발하여 민건련 등 친중 정당의 지구당 당사나 정부 관련 건물에 방화하는 등의 과격시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캐리 람 행정장관의 국정연설이 2월 16일 입법회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입법회에 난입하려 한 일부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2명의 시위대가 뇌출혈로 사망하자 여론은 다시금 격양되었다. 집권여당 민건련이 "사망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일이나 경찰의 행위는 정당방위"라는 논평을 발표하며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사망자를 추도하고 경찰을 규탄하는 목적의 시위가 2월 22일 약 170만 명의 대규모로 열렸다. 통합 공무원 노조가[18] 3월달 부터 전면적인 총파업을 선언했다.

3월 1일 일부를 제외한[19]모든 통합노조소속 홍콩 전역의 공무원들이 총파업을 시작했다. 통합 공무원 노조가 개정된 선거법 하에 치뤄지는 모든 선거에 관련된 업무에 대해 이행거부를 선언하였다. 시위가 다시 격화됨에 따라 홍콩 행정부가 중국과 인접한 북구로의 임시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구룡반도와 홍콩섬 일대의 행정업무가 사실상 마비되었다. 전문가들의 예상에 따르면 이러한 행정마비가 지속될 시 중국과 홍콩 행정부가 다시는 홍콩 전역을 통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했다. 4월 16일 캐리 람 행정장관이 협상을 제의했으나 범민주파 진영 및 시위대는 선거법의 개정 취소 및 완전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여 협상이 결렬되었다. 홍콩 행정부가 남부지대의 장악력을 일부를 제외하곤 사살상 잃어버렸다는 소식이 빈과일보에 의해 전해졌다.

중국공산당 내에서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신임 총서기로 선출될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미국 CNN이 전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홍콩과 대만은 중국의 정당한 강역이며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현지시간 5월 11일 오전 10시경 발표하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는 러시아에 제재에 동참할 것을 촉구함과 동시에 중국 제재 회피 수단이 될 암호화폐의 규제에 대한 첫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5월 중순부터 중국공산당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소규모 시위가 광둥성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자유 아시아 방송이 전했다. 6월 7일 중국의 주요 도시중 하나인 상하이에서 소규모 시위가 발생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정치적 혼란 및 자금 부족을 이유로 2022년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개최권을 반납했다.

21년 후반기

7월 9일 왕치산 국가부주석이 중공 총서기 대행직에서 사퇴했으며 중공 중앙위원회는 신임 총서기 대행으로 리커창 국무원 총리를 선거하였다. 범 시진핑파로 분류되는 왕치산의 사퇴는 시진핑의 당내 권력 완전상실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많다. 일부 언론들[20] 사이에서 7월 말부터 아직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유지하고 있는 시진핑이 상황 타계를 위해 쿠데타를 일으킬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으나 미국 CIA는 "그런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했다" 라며 일축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8월달 들어서 7% 미만으로 떨어졌으며 올해 4분기에는 5%도 불안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OECD가 발표하였다.

9월 18일, 중국 광저우시에서 공산당 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고 자유 아시아 방송이 전했다. 자유 아시아 방송측에 따르면 오랜 경제침체와 코로나 19 확산 방지 실패, 그리고 정치투쟁으로 인해 중국내에 공산당 정부에 대한 민심이 매우 악화되었으며 특히 무역업으로 먹고사는 광둥성 일대에 코로나 19로 인한 대봉쇄는 매우 큰 타격을 주었기에 이번 시위가 일어났다고 한다. 광둥성 당서기 리시는 이례적으로 광둥성 인민들 앞에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하며 사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사태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큰데 그것은 바로 주요도시중 하나인 광저우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해외언론에 일파만파 퍼지는 데도 중국 당국의 반응이 무시하는 걸 넘어 아예 없다는 것이다. 본래 같으면 군경을 동원한 강경진압을 해도 모자랄판에 이런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현재 중국공산당의 지방통제력이 중앙의 정치투쟁으로 인해 붕괴직전에 몰려 군경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각자도생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해석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2020년 2월말 인민해방군 투입시도때 부터 서서히 세를 불려왔던 홍콩 내부의 분리독립 여론이 큰힘을 얻고 있는 추세이며 기존 중국 내부에서의 자치를 주장하던 민주파 세력도 본토파와 뜻을 같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홍콩 내부에서 분리독립 여론이 높아지자 10월 10일 캐리 람 행정장관은 조기총선과 함께 여러 사회개혁 조치 및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으나 빈과일보에 따르면 이미 홍콩 내부에서는 독립여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11월 19일 예정된 날짜보다 1달을 앞당겨서 조기 입법회 선거를 치뤘다. 선거결과 전제파가 선거위원회 선출의석 40석, 직능의석 30석을 싹쓸이하며 건제파 73석, 범민주파 17석[21]이라는 선거결과가 나왔으나 실상은 지역구 20석중 단 3석만을 친중파가 가져감으로써[22] 실질적으로는 패배했다. 입법회 선거 3일 후인 11월 23일 범민주파 야당들이 힘을 합쳐 '임시정부 수립 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홍콩 행정부는 에 대한 반역이라며 비난했으나 물리적인 방해는 없었다. 11월 25일에 홍콩 임정 수립준비위가 임시 규약을 발표하였으며 29일에는 정부 조직도를 발표하였다. 11월 30일에는 구 입법회 의원들과 구의원들을 모아서 임시입법회를 소집하였고 임정 수립준비위 위원장으로 전 민주당 대표인 우치와이를 선출했다.

12월 1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자금 모집을 시작한다고 우치와이 위원장이 밝혔다. 12월 3일 임시 규약을 임시약법으로 격상시켰다. 중국정부가 홍콩의 독립시도에 대해 매우 엄중히 대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12월 6일 당일에 달러당 9위안선이 붕괴되면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현지시각 12월 10일 오후 7시경 홍콩 임시정부 수립 준비위원회 위원장 우치와이가 세계인권선언 72주년을 맞아 홍콩 공화국 임시정부을 설립을 선언한다고 발표하였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임정수립 지지를 표명하였다. 12월 11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하나의 중국을 파괴하는 제국주의 반역집단에게는 죽음만이 기다릴 뿐" 이라며 매우 강경한 어조의 성명을 발표하였으나 정작 미국이 남중국해 일대로 7함대를 파견하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12월 12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임시정부 수립 축하와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으며 임정과의 수교의사를 밝혔다.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 또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스페인을 제외한[23] 유럽 연합이 임시정부 수립을 지지했다. 12월 13일 한국, 일본, 인도가 임정수립 지지선언을 발표하였다. 12월 23일에는 논평을 유보하였던 스페인이 임정수립 지지를 선언하였으며 24일에는 브라질이 지지를 선언하였다. 12월 30일부터 31일까지 임정수립을 축하하는 시민들의 축제겸 시위가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렸다.

22년 전반기

2022년 1월 1일 홍콩 임정이 새해인사를 발표하였으며 같은 달 8일에 우치와이 임정수립위 위원장을 임시정부 주석으로, 클라우디아 모 임정수립위 비서장을 입법위원회[24] 위원장으로 선거하였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분리주의자들의 경거망동"이라고 비난하였다. 1월 13일 홍콩 임시정부가 자체 치안조직인 자경단의 창설을 선언하였다. 이에 자경단에 가입하려는 홍콩시민들이 홍콩 임시정부 시민안전부 사무실 앞으로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빈과일보가 전했다. 1월 28일 홍콩 임정이 홍콩 전역에 대한 수복을 선언하였다. 2월 13일 우치와이 주석과 린줘팅 시민안전부 장관은 홍콩 섬 전역에 대한 수복이 완료되었다고 선언하였다.

홍콩 행정부가 3월 3일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이뤄지고 있는 홍콩 임정의 홍콩 수복시도가 불법임을 발표하였으며 홍콩 '애국시민'들의 궐기를 촉구하였으나 시민들의 조롱만을 받았다. 3월 11일 홍콩 자경단이 구룡반도로 진입하여 17명의 삼합회 깡패들을 체포하였다고 발표하였다. 홍콩 본토인과 젊은층이 주로 거주하며 민주파의 지지율이 거의 100%에 달하던 홍콩 섬과는 다르게 구룡 일대에는 중국 본토출신 노동자들도 상당수 거주하여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3월 말부터 4월 6일까지 진행된 구룡해방작전의 결과 구룡성구 및 쿤통구 일부를 제외한 구룡반도 전역을 수복하는데에 성공했으며 일부 미수복지구 또한 10일까지 수복이 성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삼합회 및 친중 성향의 정치깡패 300여명을 체포했다고 홍콩 임정이 발표했다. 4월 22일 홍콩 임정이 신계 진입을 선언했다.

5월 9일 홍콩 자경단이 쿠이칭, 사텐, 시궁, 다푸 남부등 신계 남부지역에 대한 수복을 선언하였다. 신계원거민[25] 집단이 임시정부 지지를 선언하였으며 홍콩 임정은 이들의 자치권을 보장하기로 결정했다. 홍콩 행정부 임시청사가 위치하고 있는 북구와 인접한 타이포구 일대까지 임정의 영향력이 미치자 홍콩 행정부의 여러 인사들과 건제파 정치인들이 국경을 넘은것으로 보고되었다. 5월 25일 북구 전역이 홍콩 임시정부 산하에 놓이게 되며 사실상 홍콩 전역을 임시정부가 수복하였다. 27일 우치와이 임정 주석이 홍콩 전역 수복을 선언하였다. 6월 5일 선전시의 정부관료가 홍콩을 찾아 중국과 홍콩의 국경인 변경금구에 대해 논의하였다, 합의결과 종전처럼 홍콩 자경단과 중국 무경이 경비를 서며 거주민을 제외한 해당구역 내의 민간인 및 정규군의 출입을 금하기로 결정하였다. 6월 21일 우치와이 주석이 1달뒤 정식 입법회 선거 실시를 선언하였다.

22년 후반기

7월 2일 온건 친중파에 해당하는 자유당의 펠릭스 청, 존 창 등이 홍콩 임정 입법회 선거에 참여를 선언하였다. 이에 대해 홍콩 임정내 강경파인 본토파는 반발하였으나 중소기업가 출신이 많은 자유당의 특성상 임정의 자금확보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선거 참여를 허가했다. 7월 4일 친중화민국 성향의 보수 노동조합인 홍콩 구룡 공단연합총회가 선거 참여를 선언하였으며 대만의 중국국민당이 이들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였다. 7월 5일 홍콩 공회연합회가 선거 참여를 선언하였다. 이에대해 지난 자유당 참가때 보다 반발이 거셋으나 결국 중공과의 관계 일체 단절과 임정 시책 협조를 조건으로 선거 참여를 허가하였다. 7월 7일부터 홍콩 전역에서 입법회 선거 운동이 시작되었다. 한편 건제파들도 임정 입법회 선거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 홍콩 행정부는 유감을 표명했으며 특구 입법회 내의 자유당, 공련회 의원들은 총사퇴 했다.

7월 21일 입법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권역별 중선거구제로 홍콩 섬에서 10명, 구룡반도에서 15명, 신계에서 27명을 선출하였으며 민주파(진보파) 27석[26], 본토파(보수파) 19석[27], 건제파(친중파) 및 기타 6석[28]의 결과가 나와 민주파(진보파)의 우치와이 주석이 연임에 성공하였다. 우치와이 주석은 2기 우치와이의 목표로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 국가와의 수교, 금융업의 재활성화, 자유 무역항으로써의 입지 재건등을 발표하였다. 8월 3일 스티븐 로 전 경무차장이 변경금구 일대에서 자신의 가족들 및 몇몇 측근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중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홍콩 자경단에 의해 체포당해 구금당했다. 6일 뒤 크리스 탕 보안장관이 자수하였다. 8월 11일 중화민국(대만) 정부와 홍콩 임정의 협상 및 합의 끝에 양국의 수교가 확정되었다. 다음날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분리주의자들의 헛짓거리, 하나의 중국을 무너뜨리려는 망동."이라며 양국을 강하게 비난했다. 8월 17일 양국의 대사가 파견되었으며 차이잉원 중화민국 총통이 7천만 신 타이완 달러(한화 약 30억원)에 달하는 경제지원을 발표하였다.

9월 9일 미국 정부가 홍콩 임정과의 수교를 발표하였다, 또한 홍콩에 대해 1억 미국 달러(한화 1,240억원)에 달하는 경제지원안이 미국의회를 통과해 바이든 대통령의 허가를 받았다. [29] 중국 당국이 미국을 향해 분노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내부의 극심한 정치투쟁으로 인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9월 12일 영국과 일본이 홍콩 임정과의 수교를 선언한 가운데 중국이 간만에 동중국해 일대에서 무력시위를 감행했다. 9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과 홍콩 임정간의 수교를 선언했다. 또한 대만과의 재수교도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10월 1일 중국의 국경절을 기념하여 천안문 광장에서 열병식이 감행되었다. 그러나 리커창 총리와 왕양 정협 상무위 주석등의 반시진핑파와 장쩌민 전 주석은 참여하지 않았으며 외국 귀빈들 또한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최룡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참석하지 않은채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10월 10일 쌍십절에 미국과 대만이 전격적인 재수교 방안을 발표하였으며 다음날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분노를 표했다.

11월 3일 유럽연합이 회원국 전원과 홍콩간의 수교를 선언한 가운데 일본 정부가 대만과의 재수교 방침을 밝혔다. 나흘 뒤인 7일에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가 대만과의 재수교를 선언했으며 영연방 국가들에게 홍콩 임정과 대만과의 수교를 독려하였다.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만과의 재수교를 선언하였다. 11월 30일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소형 전함 7척이 대만해협 일대를 배회하며 중화민국(대만)의 영해 일대를 일부 침범하자 대만 해군이 3발의 포격을 실시하였다. 중국 당국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에 의하면 군내 일부 강경파들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2월 11일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인도 4개국이 홍콩과의 동시수교를 선언하였다. 12월 21일 유럽연합 회원국 전원과 캐나다 정부가 대만과의 재수교(혹은 수교)를 선언하였다.

2023년 ~ 2024년

23년 전반기

1월 1일 우치와이 임정주석이 신년사를 발표했으며 신년 목표로 유엔 옵저버 가입과 타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 등을 제시하였다. 중국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 주석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현지시각 오후 8시 16분 중국 CCTV가 전했다. 해외 전문가들에 의해 중국 정치투쟁에서 친시진핑파가 사실상 패배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지시각 1월 17일 오후 1시 경 중국 내에서 명목상 야당 포지션인 민주당파 정당들이[30] 시진핑 국가주석의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성명을 발표했다. 중공 중앙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집단인 이들이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난할 지경인 상황에서 사실상 시진핑이 실각한 것으로 보인다. 2월 19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실질권력인 중국/중공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에서 사임했다. 군부에서도 시진핑 주석이 신임을 잃은것으로 보인다. 21일 임시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리커창 임시총서기가 취임했다.

3월 5일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라 불리는 양회[31]가 개최되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에 연임 및 홍콩·대만 문제 해결이 주요안건으로 떠올랐다. 시진핑 주석 연임에 관한 전인대 투표결과 찬성 12표, 반대 2963표, 기권 5표로 연임안이 부결되었으며 신임 국가주석 및 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리커창 총리가, 신임 국무원 총리로는 왕양 정협 상무위 주석이 선출되었으며 그외에도 전인대 상무위 주석에는 후춘화 부총리가, 정협 상무위 주석에는 쑨춘란 부총리가, 국가부주석에는 원자바오 전 총리가 선출됨으로써 사실상 친시진핑 세력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3월 13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공식적으로 퇴임하였다. 4월 12일 홍콩 임정이 정부 임시규약을 대체할 임시헌법 반포를 선언했으며 이에따라 예정보다 1달 빨리 6월 15일 입법회 총선거 실시를 선언하였다. 한편 중국 정치위기가 사실상 종료됨에 따라 홍콩 내에서 차이나포비아(중국 공포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5월 7일 홍콩 임정 입법회 내에서 에드워드 렁 의원 및 5명이 중국으로 부터 홍콩을 지키기 위한 영국 및 영연방에 의한 신탁통치에 관한 안건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새로운 중국 지도부에 의해 망명한 홍콩 특구 행정부가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고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가 전했다. 리커창 국가주석이 에드워드 렁 의원의 영국 신탁통치 발언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5월 21일 중국에서 시진핑 전주석의 복귀를 지지하는 집회가 산시성(섬서성) 시안시에서 일어났으나 당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진압당했다. 6월 15일 제2대 입법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기존과는 달리 전국구 정당득표 비례대표로 200석을 선출하였으며 선거결과 민주파(진보파) 83석[32], 본토파(보수파) 72석[33], 기타 및 무소속 41석[34]의 의석배분이 이루어졌다. 우치와이 주석이 연임에 실패하고 본토파의 클라우디아 모가 3대 주석으로 선출되었으며 클라우디아 모 주석은 국방력 증대와 세계로 뻗어나가는 홍콩을 국정지표로 선언했다.

23년 후반기

7월 4일 영국 및 영연방에 의한 신탁통치안이 입법회를 통과하였으며 이에대한 국민투표 안건 또한 통과되었다. 7월 25일 신탁통치 안건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찬성 82.3%, 반대 17.5%, 무효 0.2%로 승인되었으며 다음날 클라우디아 모 주석이 해당 안건을 최종 승인했다. 영국 정부와 영연방이 이에대해 환영의 뜻을 전했다. 중국 정부가 이에대해 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리커창 국가주석이 홍콩에 중국내의 자유국(가칭) 지위와 완전 자유선거 실시보장 등을 제의했으나 홍콩 임정은 이를 거부하였다. 클라우디아 모 주석이 자경단을 홍콩 보안대로 격상시켰다. 8월 3일 리커창 중국 국가주석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전화회담을 가졌다고 영국 BBC가 보도했다. 8월 15일 중국 정부가 경제제재 해제 및 홍콩에 외국군대 주둔 금지(유엔평화군 제외)와 홍콩 거주 중국인들의 안전을 조건으로 홍콩의 주권을 인정 할 수도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8월 21일 미영양국이 대만과 홍콩의 독립인정을 전제조건으로 경제제재를 해제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9월 1일 중국 정부가 미영양국의 요구를 전격수용 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이로써 중국 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사실상 포기했다. 9월 11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다. 9월 13일 리커창 중국 국가주석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2024년 홍콩 반환투표를 골자로 한 제2차 중영공동선언에 합의하였다. 이에따라 미국 및 유럽연합, 영국은 15일부로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순차적으로 해제하기 시작해 17일에 모든 경제제재를 해제하였다. 홍콩에서 제2차 중영공동선언을 환영하는 집회가 열렸다. 제2차 중영공동선언에 따라 반환까지 홍콩 특구정부와 홍콩 임정의 공동통치가 확정되었으며 이에따라 홍콩 행정부가 홍콩으로 복귀하였다. 10월 5일 특구정부와 임정은 홍콩 통합위원회를 설립했다. 양측의 위원 각각 10명씩과 유엔 감독위원 6명, 중국과 영국측 감독위원 각각 2명과 위원회 주석 1명, 총 21명으로 구성되나 실질적으로는 홍콩 임정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경향이 강하다.

11월 7일 리커창 국가주석이 대만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로써 대만은 공식적으로 독립국이 되었다. 그러나 리커창 주석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중국인들이 많아보이며 실제로 11월 11일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고 미국 CNN이 보도하였으며 성공 여부는 현재로선 불명이다. 11월 16일 중국 당국이 쿠데타 시도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공식 발표상 쿠데타는 실패하였으며 11월 3번째 주부터 상당히 많은 군부인사들이 물갈이 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이 경질되었으며 신임 국방부장으로 둥쥔 현 해군사령원(해군참모총장)이 임명됬다. 홍콩 통합위가 홍콩 보안대의 무장 수준을 올리는 것을 결의했다.

24년 전반기

1월 1일 클라우디아 모 임정 주석겸 홍콩 통합위원회 주석이 정부 홈페이지에 신년사를 게재했다. 민주건항협진연맹이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 이로써 한때 홍콩 최대이자 최고의 보수정당이던 민건련이 창당 32년 만에 문을 닫았다. 1월 13일 대만에서 진행된 정부총통 선거에서 민주진보당 소속 천치마이가 총통으로 당선되었으며 당일 진행된 입법위원 선거에서 역시 민진당이 승리하였다. 중국으로 귀화한 레지나 입 前 신민당 대표는 홍콩 행정부를 비난했으나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다. 친서방 정책을 표방하는 리커창 정권의 입장에서도 그저 눈엣가시에 불과한 모양이다. 2월 5일 중국 내부의 군부 숙청이 종료되었다. 리커창 국가주석이 야당의 점전직인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3월 3일 대만이 유엔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 공식적으로는 기존 상임이사국이었던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의 재가입이 아닌 중화민국(대만)/Republic of China(Taiwan)이라는 이름으로 아예 새로 가입하는 것이다. 이에대해 불만을 가지는 목소리도 있지만 범람진영과 범록진영을 가리지 않고 다들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3월 15일 대만의 가입안이 통과됨에 따라 대만이 53년만에 다시 유엔의 회원국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클라우디아 모 주석과 통화하였다. 4월 29일 북한이 디폴트를 선언하였다.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 당시 시진핑 정권의 협력국이던 북한에게도 강경한 제재가 뒤따랐고 이후 들어선 리커창 정권이 친서방 행보를 보이며 북한을 홀대하자 버티고 버티던 북한이 결국 쓰러진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였다. 중국 리커창 국가주석은 "조선(북한)의 천문학적인 부채를 우리가 완전히 부담하기는 무리"라며 선을 그었으나 "전통적인 혈맹의 관계로써 일부 부채를 청산해 줄 것"이라며 약 20억 달러에 해당하는 부채를 청산해 주었다.

5월 3일 북한 내부에서 정치투쟁이 시작된 것 같다는 자유 아시아 방송의 보도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언제라도 북측이 무기를 내려놓고 핵합의를 존중한다면 동포들의 부채를 떠맡을 자신이 있다."라고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이는 집권후 2년간 취한 대북 강경책에 비해 매우 이례적인 행보이다. 민건련에 이어 홍콩 제2의 보수정당이던 홍콩 경제민생연맹이 해산되었다. 많은 언론사들이 집중한 민건련의 해산과는 달리 매우 초라하게 치뤄졌다. 중국과 홍콩, 중국과 대만간의 대표부가 설치되었다. 6월 16일 홍콩 통합위원회가 영국으로의 재반환을 결정짓는 최종 주민투표를 7월 20일에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24년 후반기

7월 1일 주민투표를 20일 앞두고 홍콩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재반환 찬성 70.5%, 중국 잔류 15.1%, 기타 및 무응답 14.4%로 나타났다. 홍콩의 영국 재반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7월 20일에 실시되었다. 주민투표 결과 영국으로의 재반환 69.8%, 중국 잔류 15.4%의 압도적인 표차로 최종적으로 영국으로의 재반환이 결정되었다. 홍콩 통합위원회가 영국으로의 재반환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홍콩 특구입법회의 압력으로 인해 8월 4일 캐리 람 행정장관이 사임하였다.(사실상 불신임) 그러나 중국 정부가 이에대해 아무런 반대도 승인의사도 표명하지 않으면서 사임했지만 법률상으로는 행정장관직을 유지중인 어중간한 상태가 되었다.

9월 15일 완차이구에 위치한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리커창 중국 국가주석,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클라우디아 모 홍콩 임정 주석, 캐리 람 홍콩 특구 행정장관등이 참여한 가운데 홍콩 재반환식이 시작되었다. 홍콩 전역에서 양자형기와 오성홍기가 내려가고 유니언 잭과 구 영국령 홍콩기가 다시 게양되는 진풍경이 펼쳐진 가운데 리커창 국가주석이 공식적으로 홍콩 주권 이전에 대한 문서에 서명을 하고 캐리 람 행정장관이 홍콩의 주권을 다시 영국에 넘긴다는 선언을 하며 공식적으로 홍콩특별행정구는 소멸하였다.

이로써 5년 3개월 7일간 지속되오던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5대요구 사항

  1.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의 완전한 철회(Withdraw)
  2. 홍콩 시위대에 대한 폭도 지정 철회
  3. 홍콩 경찰의 시위대 무력진압에 대한 정식 사과 및 독립적 조사위원회 설치
  4. 체포된 시위대에 대한 전면 석방 및 불기소
  5.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및 홍콩 입법회 보통선거/평등선거 실시

홍콩 민간인권전선과 야권이 내걸었던 5대 요구 사안

홍콩 시위대는 시위에 나서면서 해당 5개의 요구사항을 내세웠다. 그러나 홍콩 행정부가 이를 묵살함으로서 일말의 협상 가능성도 사라진 시위는 극의 극으로 치닫게 되었다.

시위상징

구호

초기에는 중국으로에 송환에 반대한다는 반중송(反中送)이 자주 쓰였으나 이후 홍콩 시위의 성격이 단순 법안 반대시위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격상됨에 따라 여러가지 구호가 쓰이게 되었다.

광복홍콩 시대혁명

光復香港 時代革命
광복홍콩 시대혁명 · 광복향항 시대혁명
Free Hong Kong, Revolution Now: Free HK, Rev Now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구호로 뜻을 한국어로 풀이하면 '홍콩의 광복을 위한 이 시대의 혁명' 정도가 된다. 에드워드 렁 본토민주전선 총비서가 제안하였으며 이후 홍콩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구호로 자리잡아 현재까지도 홍콩에서 자주 쓰이는 표어이다.

오대소구 결일불가

五大訴求, 缺一不可
오대소구, 결일불가
Five Demands, Not One Less

다섯가지 요구중 하나도 포기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위의 다섯가지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 전까지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이다.

홍콩 독립

香港獨立
홍콩 독립
Hong Kong Independence

홍콩 민주화 운동이 격화됨에 따라 본토파를 중심으로한 급진 독립파가 쓰기 시작한 구호로 시위 초반에는 급진 독립파만의 구호였으나 이후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투입 시도가 발각된 이후부터는 범민주파 진영 전부가 외치는 대중적인 구호가 되었다.

노래

Do You Hear the People Sing?


Do You Hear the People Sing
試問誰還未發聲 | 발언하지 않은 자 누구인가

시위 초기에 많이 쓰였던 곡으로 위의 광둥어 버전이 아닌 영어 원곡으로도 많이 불렸으며 이외에도 여러개의 광둥어/중국어 버전이 있다.

영광이 다시 오길


영광이 다시 오길
願榮光歸香港 | Glory to Hong Kong

Dgx Music라는 음악 유튜브 채널에서 만든 곡으로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제치고 주된 시위곡으로 자리잡았으며 홍콩 독립 이후에는 홍콩의 국가로 쓰이고 있다.

불굴행진곡


불굴행진곡
不屈進行曲 | March of the Indomitable

영광이 다시 오길과 마찬가지로 위의 Dgx Music에서 만들었으며 현재 홍콩공화국 국군의 군가로 불리고 있다.

깃발

흑양자형기

黑洋紫荊旗
흑양자형기
Black Bauhinia Flag

홍콩특별행정구의 깃발이자 홍콩의 상징인 양자형화 깃발의 붉은 배경을 검은색으로 바꾼버전으로 색상만 검게 바꾼 버전, 꽃잎이 시든 버전, 꽃잎이 말라죽은 버전, 말라죽은 꽃잎에 피가 묻은 버전 총 4개가 존재한다. 위의 예시는 꽃잎이 시든 버전으로 홍콩의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용사기

龍獅旗
용사기
Dragon and Lion flag[35]

구 영국령 홍콩 시대의 깃발과 영국령 홍콩의 문장을 푸른 바탕에 세겨넣은 홍콩 독립의 상징기를 통틀어 일컽는 말로 전자는 '차라리 영국의 식민지 시대가 나았다'라는 뜻과 '식민지 시대의 민주주의가 그립다'라는 뜻을 지니며 후자는 '홍콩 독립'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후자의 도안은 도안을 살짝 수정하여 현재 홍콩공화국의 국기로 사용중이다.

반응

국제기구

유엔

  •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이 2020년 3월 3일 중국의 홍콩 무력진압 시도를 비판했다.
  • 중국과 중국의 사실상 지지국인 러시아가 유엔 상임이사회 회원국이기 때문에 더 적극적인 지지는 어려울 듯 하다.
  • 긴급특별총회에서 홍콩 경찰의 유혈진압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 & 국제패럴림픽위원회

  •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국제패럴림픽위원회는 홍콩 국가대표팀의 차기 올림픽 및 동계올림픽 참여를 불허하였다.
  •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국제패럴림픽위원회가 중국의 정치적 불안과 인권탄압을 이유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패럴림픽 개최를 취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2021년 6월 25일 중국은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했으며 개최권은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넘어갔다.[36]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홍콩 사태로 인해 각국의 경제가 피해를 보고 있으며 이런 불법폭동을 지지하는 회원국을 제재 할 수도 있다." 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홍콩 시위대 지지국가

미국

  • 미국은 2019년 6월 10일(현지 시간) 국무부의 범죄인 인도법안에 대한 우려성명을 발표했으며 다음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 의해 공식적으로 중국에 대한 비판과 시위대에 대한 지지성명을 발표하였다.
  •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시위대 지지를 선언하고 미국 의회도 홍콩 민주화 및 인권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시위대를 지지하고 있다.
  • 2021년 정권이 민주당 조 바이든에게로 넘어갔으나 바이든 대통령 또한 대중제재를 강화시키고 홍콩 임시정부를 적극 지지하며 수교를 맺는 등의 행보를 보였으며 현재까지도 홍콩 민주화 세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국가중 하나다.

영국

  • 영국은 홍콩과 가장 밀접히 관련된 국가이자 중영공동선언의 당사국으로서 이번 시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 시위 직후부터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시위를 지지하고 있으며 테레사 메이 총리와 제레미 헌트 외무장관 등의 정치적 거물들이 공개적으로 시위 지지선언을 하였다. 특히 마지막 홍콩 총독 크리스 패튼이 홍콩 행정부를 비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 보리스 존슨 신임 총리 또한 한결같이 시위대 지지를 선언하였으며 나아가서 미국 정부의 대중제재에 적극 협조하고 홍콩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등 현재 미국과 함께 홍콩 민주화 세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국가중 하나다.

영연방

  • 영연방은 영국 중심의 국제기구로 영국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들이 많은 만큼 영국과 입을 맞춰 시위대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무장관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였으며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중국공산당 정부를 비판했다. 또한 벤쿠버에서 홍콩에 연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 머리스 페인 호주 외무장관이 홍콩 범죄인 인도법에 대해 비판하였다. 그리고 호주 일부 대도시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시위가 열렸다.

유럽연합

  • 유럽연합 대외관계청(외교부)은 홍콩 시위대의 저항권 사용을 지지하며 공개적으로 중국공산당을 비판하고 홍콩 시위대를 지지했다.
  • 독일 외무부가 독일- 홍콩 범죄인 인도조약 파기까지 검토하고 있고 밝혔으며 앙겔라 메르켈 연방총리는 홍콩 행정부와 중국공산당에게 항의 의사를 전달했다.
  • 스웨덴에서 중국 부패사범에 대한 중국의 범죄인 인도 요구를 거부했다.
  • 프랑스 유럽·외교부가 홍콩 경찰의 무력진압과 중공 당국의 비민주적 홍콩 국가안전법 입법시도를 규탄했다.
  • 홍콩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스페인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회원국들은 2021년 12월 13일에, 스페인은 12월 23일에 지지를 발표하며 홍콩 민주화 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

  • 시위 초반 외교부는 20일 홍콩 시위와 관련해 "당사자 간에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기대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으나 야권 및 민간에서는 시위대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 그러나 2020년 중공군의 홍콩 투입시도가 발각되고 서방국가들의 대중제재가 강해지자 우리 정부 또한 SWIFT 퇴출등의 강경제재 조치에 동참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이에 따른 피해또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 홍콩 공화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외교부 성명을 통해 2021년 12월 13일에 일본, 대만, EU와 함께 임정 지지성명을 발표하여 확실히 민주화 세력을 지지하였다.

일본

  • 2019년 6월 13일 고노 다로 외무대신이 홍콩을 응원하였으며 다음날 아베 총리는 각의를 열어 공식적으로 시위 지지를 결의하였다. 또한 같은달 28일에 있었던 중일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경고하였다.
  • 2020년 인민해방군의 투입 시도가 발각되었을 때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비판성명을 발표하였으며 이후 SWIFT 퇴출등의 강경제재 조치에 동참하였다. 또한 센카쿠 열도에 대한 영유권이 일본에 있음을 확실히 하였다.
  • 2021년 홍콩 공화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12월 13일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직접 지지성명을 발표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홍콩에 평화를 기원하므로써 민주화 세력을 강력히 지지하였다.

중화민국 (대만)

  • 차이잉원 중화민국 총통은 일국양제에 대하여 결코 대만의 선택사항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으며 국민당 측의 한궈위 가오슝 시장도 일국양제에 대한 거부 선언을 하였다. 또한 중국의 홍콩에 대한 자유권 침해 정황이 알려지자 대만내의 반중여론이 크게 올라갔다.
  •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 장관이 트위터에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으며 차이잉원 총통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공식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또한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투입 시도가 발각되자 SWIFT 퇴출과 동중국해 무력시위를 감행하는 등 미국에 뒤이어 가장 강경한 행보를 보였다.
  • 민주진보당과 국민당이 이례적으로 힘을 합쳐 홍콩 시위 지지와 대만 주권 수호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으며 홍콩 공화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양당모두 지지성명을 발표하였고 정부차원에서는 지지성명 발표와 동시에 이례적으로 수교의사까지 내비쳤다.

인도

  • 원래 인도는 사실상 입장이 없는 중립국에 가까웠으나 중공군의 홍콩 투입시도 발각 이후부터 미국과 서방세계와 입을 맞추어 SWIFT 퇴출에 동참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외교부 논평으로 홍콩 임시정부의 수립을 지지하였다.

홍콩 행정부 지지국가

중국

  • 중국 정부는 당연하게도 시위 초반부터 홍콩 행정부를 지지하였으며 홍콩 시위대를 폭도, 깡패, 바퀴벌레 등으로 매도하였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 주석 등은 홍콩 행정부에 대한 지지와 서방에 대한 비판성명을 연이어 발표하였고 이를 통해 중국 내부의 여론을 격양시켜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시도로 보이며 결과적으로 시진핑의 종신집권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홍콩에 대한 무력시위까지 감행하므로써 '하나의 중국'이 깨질 수 없는 절대불변의 법칙임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도를 넘어 홍콩에 대한 중국군 투입 시도로 까지 번지자 오히려 홍콩 내부의 반발과 서방 세계의 제재가 심해지며 궁지에 몰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로인한 정치 혼란이 2020년 중국 정치위기로 까지 번지자 오히려 내부 분열로 인해 홍콩에 대한 대처를 잘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친시진핑파는 정권 유지를 위해 반시위대, 반서방 기조를 강화한 것으로 보이나 반시진핑파는 향후를 대비해 서방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는 모양이다.
  • 홍콩 공화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극도로 분노하며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하나의 중국을 파괴하는 제국주의 반역집단에게는 죽음만이 기다릴 뿐" 이라며 매우 강경한 어조의 성명을 발표하였으나 정작 미국이 남중국해 일대로 7함대를 파견하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후 정치위기가 반시진핑파의 승리로 귀결되자 경제제재 중단을 조건으로 홍콩의 영국으로의 재반환과 대만의 국가인정에 동의함으로써 홍콩과 대만에 대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사실상 포기하였다.

북한

  • 북한은 중국과 혈맹이라는 그 특성상 중국을 지지할 것으로 여겨졌으나 오히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비슷한 태도로 나오고 있다. 이는 북중관계가 자신들이 선전하는것 처럼 그렇게 돈독하지 않다는 것의 증거로 여겨지고 있다.
  • 그러나 북중정상회담 이후 북한정부는 중국 정부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했으며 홍콩 시위대를 폭도라고 비난하고 중국 당국의 강경진압을 촉구하였다. 또한 인민해방군의 홍콩 투입시도가 있었을 때는 오히려 이번 시위의 원인이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오만과 내정간섭에 있다고 서방세계를 비난하였다.
  • 그러나 중국 정치위기가 끝나고 비교적 서방에 우호적인 리커창 정권이 들어서며 홍콩 시위가 시위대와 서방의 승리로 귀결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닫고 있다.

러시아

  • 러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고 있으나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외무부 성명을 통해 홍콩내 정치혼란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라며 일부 시위대의 폭력사용은 옳지 못하다." 라며 홍콩 시위대를 비판했다. 그러나 홍콩 공화국 임시정부가 설립되자 슬그머니 임정을 인정했다.

파키스탄

  • 파키스탄은 전통적으로 인도와 앙숙인 만큼 인도가 홍콩 시위 지지를 선언하자 역으로 홍콩 행정부 지지를 선언하였으나 이후 상황이 홍콩 시위대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발을 뺐다.

캄보디아

  • 중국과 매우 돈독한 관계를 맺고있는 캄보디아 특성상 중국과 홍콩 행정부를 지지했으나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투입 안건이 드러난 이후 미국의 국제제재를 우려해 지지성명을 번복했다.

라오스

  • 라오스는 북한 다음으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큰 나라중 하나인 만큼 중국 정부의 입장을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지지했으나 이후 리커창 정권이 홍콩의 영국 재반환에 동의하자 입장을 번복하였다.

시리아

  • 아사드 정권이 중국으로부터 큰 지원을 받고있는 만큼 중국 지지성명을 발표하였으나 내부 혼란으로 인해 민주화 운동이 시위대의 승리로 귀결되었음에도 별다른 성명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 반면 미국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반군, 그중에서도 쿠르드 민병대는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였다.

베네수엘라

  •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은 강경한 반미, 반서방을 표방하는 권위주의적 좌익 포퓰리즘 정권인 만큼 친중색채가 매우 강했고 북한과 마찬가지로 대중 경제의존도가 매우 높은 만큼 홍콩 시위대를 폭도라고 매도하며 강경하게 비난했고 중국의 무력진압 시도 역시 서방세력에 대항하는 중국의 정당방위라며 중국을 두둔했다.
  • 한편 마두로 정권과 대립하는 과이도 과도정부는 홍콩 시위 지지선언을 발표했다.

영향

정치적 영향

  • 홍콩 시위로 인해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이던 시진핑 정권이 붕괴되었고 공산당 내의 1인 권력집중 현상이 완전히 사라졌다. 또한 홍콩 시위의 영향을 바로 직격으로 맞은 중국 시민들의 정치적 의식이 한층 더 성숙해졌으며 중국의 정치가 한층더 개혁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띄게 되었다. 또한 베트남, 라오스, 태국등의 타 독재국가의 국민들도 독재체제에 반발하는 경향이 강해지며 결과적으로 동남아 일대의 정치개혁을 초래하게 되었다.
  • 한국에서는 반중색채가 강하던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반등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불안불안하던 북한의 경제가 붕괴되고 결국 내부 정치분규와 북한 주민들의 반정부여론 상승으로 인해 북한이 자진해서 한국·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됨으로서 북한의 비핵화와 국가연합 남북한 국가연합 창설이 현실화 되었다.
  • 한국을 제외한 해외에서는 주로 집권여당이 코로나 19로 인해 떨어지 지지율 반등을 위해 대중 강경책에 주력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집권여당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결과를 만들어냈으나 하술할 경제위기로 인해 금방 하락하고 말았다.

경제적 영향

  • 코로나 19로 인한 대봉쇄에 이어 대중 경제제재로 인해 대중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 일본, 뉴질랜드, 호주 등의 국가는 매우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이는 2022년 바이든 행정부의 우방국간 경제불록 설치로 겨우 해결이 되었으며 결국 중국의 경제 장악력이 떨어지고 반대로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외교적 영향

  • 상술한 정치, 경제적 이유로 인해 중국의 외교적 영향력은 크게 후퇴하였으며 그 반대급부로 미국의 외교적 영향력은 크게 확대되었다. 또한 미중패권경쟁의 승부가 미국의 잠정적인 승리로 결정남에 따라 아시아와 중남미 국가들의 상당수가 친미화 되었다.

같이보기


  1. 시위대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으나, 인민해방군 투입 모의 사건의 여파로, 민주당(1994)이 분리독립으로 입장을 전향하면서 '완전한 독립'으로 의견이 모이게 된다.
  2. 1년 후 홍콩공화국 건국.
  3. 반대도범조례수정안운동
  4. 반송중대유행
  5. 관점에 따라 임시정부 수립일인 2021년 12월 10일로 보기도 한다
  6.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
  7. 단 이는 총상이 아닌 진압 과정중 추락사로 인한 사망이다
  8. 시위 진압이 아닌 공개 진입이다
  9. 학생 수업거부, 노동자 총파업, 소상공인 철시
  10. 실제로 도로 청소와 철도 복구만 하기는 했다
  11. 한국의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에 해당한다
  12. 2019년 12월 10일은 화요일이었다
  13. 정부통령 선거
  14. 국회의원 선거
  15. 자유당 소속 의원 4명은 기권
  16. 자유당 소속 의원 4명 불참, 무소속 1인 기권
  17. 민주당, 공민당, 인민역량, 공공단업연맹, 홍콩본토, 데모시스토
  18. 정식명칭 전홍콩 공무원 권리보호 및 증진연합
  19. 전기, 수도, 가스 관련 공무원
  20. 주로 황색언론
  21. 범민주파 정당들의 선거 불참으로 전체 무소속 개인출마
  22. 자유당 2석, 공회련 1석
  23. 카탈루냐, 바스크 등 내부의 분리독립 문제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24. 홍콩 공화국 입법회 설치 이전 관선의원으로 구성된 입시입법기관
  25. 영국의 홍콩 점령 이전부터 신계일대에 거주하던 원주민, 주로 광둥계인 다수 홍콩인들과는 달리 객가혈통인 경우가 많다
  26. 민주당 13석, 공민당 11석, 공공단업연맹 2석, 무소속 1석
  27. 홍콩본토 12석, 본토민주전선 5석, 입헌민주동맹(신민주동맹과 열혈공민의 선거연합) 1석, 무소속 1석
  28. 공련회 2석, 홍콩구룡자유포럼(자유당과 공련총의 선거연합) 2석, 무소속 2석
  29. 우연스럽게도 이날은 마오쩌둥의 기일이자 북한 정권의 수립기념일이다
  30. 실질적으로는 구색정당이자 중국공산당의 위성정당
  31.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32. 민주당 42석, 공민당 27석 공단련 12석, 사민련-진보 무소속 연대 2석
  33. 홍콩본토 47석, 본토민주전선 21석, 신민주동맹 4석
  34. 열혈공민 21석(친 본토파), 공련회 10석, 홍콩구룡자유포럼 4석, 무소속 7석
  35. 영국 식민지 시대의 깃발은 옛 깃발(old flag)라고 불린다.
  36. 그러나 올림픽까지 1년도 남지 않은 현재 알마티에서 준비를 끝마치고 올림픽을 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