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민국 (아침해의 원유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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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600px;" | '''새로운 시대에 밝아오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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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다시 부활한 대초원의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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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민국''', 통칭 '''금나라''' 혹은 '''금국'''은 북만주 지역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동쪽으로 러시아 차르국, 서쪽으로 중화민국과 접해있으며 남북으로 각각 대한국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또한, 지역적인 역사 및 특징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다문화적인 지역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중세에는 여러개의 부족들로 분열되어 있다가 1618년 후금을 건국, 중국침공을 시도하였으나 조명연합군에 의해 누르하치가 죽고 전세도 불리해지면서 결국 다시 내분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ref>이때 무주공산이 된 남만주에 한국의 영향력이 잔류하였고, 조선 후기쯤으로 가면 공식적으로 주변국들로부터 남만주 일대가 조선의 영토로 인정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ref>. 이후 1700년대에 다시 아이신기오로 가문의 주도로 통일이 되었었으나 조선을 공격할 수준은 되지 못했고, 결국 이를 보안하기 위해 연해주 및 몽골 일대로 원정과 정복전쟁을 펼쳐 중흥기를 이룩했었다. 그러나 1689년 러시아 탐험대를 겨우 격퇴한 이후 강경화되던 국가의 여론이 결정적으로 동방전교회를 믿게 된 만주인 기독교도들의 반역모의가 적발되면서 완전히 쇄국 정책으로 들어섰고, 이후 이 쇄국의 풍조는 금 문종의 병세가 약화된동안 왕비 예허나라 힝전이 실권을 장악, 조선과 중국으로부터의 관계까지 경직시키면서 절정에 달했다가, 1800년대 중반 한국의 국서를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한국군의 침공이 일어났고, 이 침공에서 패배해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후 정국을 역전시키기 위해 예허나라 힝전은 순나라와의 관계를 밀착시켜 일본과 한국을 모두 격퇴할 계획을 구상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제 1차 동아시아 전쟁에서 순금 연합의 패배를 기점으로 금나라 덕종의 아관파천 등이 일어나면서 예허나라 힝전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후일 러시아에서 돌아온 덕종은 국호를 대청제국으로 바꾸고, 근대화 계획인 광서개혁을 실시하였으나,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택한 친러 외교가 한러일 전쟁으로 무의미해지면서 1908년, 대청제국은 대한제국에 정식으로 병합되었고 만주라는, 한국의 일개 지역으로서 불리게 된다.

2024년 1월 25일 (목) 00:45 판

대금민국
大金民國 | Republic of Manchuria
국기[1] 국장
오족공화
五族共和
민주화 이전 민주화 이후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대금민국
상징
국가
만주 찬가
국화
보춘화
역사
[ 펼치기 · 접기 ]
1618년 후금 건국
1896년 대청제국 선포
1907년 청조멸망
1945년 한국의 내전으로 통제력 약화
1948년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건국
1954년 소련과의 전쟁 발발
1975년 개혁개방 정책 시작
1985년 만주 민주화 운동을 통한 다당제 및 선거 확립
2000년 신징 올림픽
지리
수도
신징시
최대도시
신징시
면적
약 970,000km2
위치
북만주 일대 및 부속도서
주변국
대한국, 중화민국, 러시아 차르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인문환경
[ 펼치기 · 접기 ]
총 인구
약 5600만명
공용어
중국어, 한국어, 러시아어 (법정 공용어), 만주어
공용 문자
한글, 한자, 키릴 문자 (법정 문자), 만주 문자
민족
만주인 40%
러시아인 30%, 한국인 10%,몽골인 9%,그 외 11%
국교
국교 없음 (정교분리)
종교 분포
무교 51%, 불교 26%, 기독교 20%,그 외 3%
군대
대금국민군
정치 및 경제
[ 펼치기 · 접기 ]
정치 체제
수상제, 이원집정부제, 양원제
정부 수반
수상
국가 원수
(수상)
할트마깅 바트톨가 (아침해의 원유관)
행정 수반
(수상)
할트마깅 바트톨가 (아침해의 원유관)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중 61위
(결함있는 민주주의)[2]
여당
민족사회당
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GDP 180억 8500만$
1인당 GDP 5,838$
GDP(PPP)
전체 GDP 157억$
1인당 GDP 5411$
통화
대금민국 루블 (рубль)
수도 신징시의 전경

개요


새로운 시대에 밝아오는 희망
2000년 민족사회당 신년덕담 中

다시 부활한 대초원의 사냥꾼. 대금민국, 통칭 금나라 혹은 금국은 북만주 지역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동쪽으로 러시아 차르국, 서쪽으로 중화민국과 접해있으며 남북으로 각각 대한국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또한, 지역적인 역사 및 특징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다문화적인 지역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중세에는 여러개의 부족들로 분열되어 있다가 1618년 후금을 건국, 중국침공을 시도하였으나 조명연합군에 의해 누르하치가 죽고 전세도 불리해지면서 결국 다시 내분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3]. 이후 1700년대에 다시 아이신기오로 가문의 주도로 통일이 되었었으나 조선을 공격할 수준은 되지 못했고, 결국 이를 보안하기 위해 연해주 및 몽골 일대로 원정과 정복전쟁을 펼쳐 중흥기를 이룩했었다. 그러나 1689년 러시아 탐험대를 겨우 격퇴한 이후 강경화되던 국가의 여론이 결정적으로 동방전교회를 믿게 된 만주인 기독교도들의 반역모의가 적발되면서 완전히 쇄국 정책으로 들어섰고, 이후 이 쇄국의 풍조는 금 문종의 병세가 약화된동안 왕비 예허나라 힝전이 실권을 장악, 조선과 중국으로부터의 관계까지 경직시키면서 절정에 달했다가, 1800년대 중반 한국의 국서를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한국군의 침공이 일어났고, 이 침공에서 패배해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후 정국을 역전시키기 위해 예허나라 힝전은 순나라와의 관계를 밀착시켜 일본과 한국을 모두 격퇴할 계획을 구상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제 1차 동아시아 전쟁에서 순금 연합의 패배를 기점으로 금나라 덕종의 아관파천 등이 일어나면서 예허나라 힝전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후일 러시아에서 돌아온 덕종은 국호를 대청제국으로 바꾸고, 근대화 계획인 광서개혁을 실시하였으나,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택한 친러 외교가 한러일 전쟁으로 무의미해지면서 1908년, 대청제국은 대한제국에 정식으로 병합되었고 만주라는, 한국의 일개 지역으로서 불리게 된다.

  1. 오족협화기
  2. 7.00점
  3. 이때 무주공산이 된 남만주에 한국의 영향력이 잔류하였고, 조선 후기쯤으로 가면 공식적으로 주변국들로부터 남만주 일대가 조선의 영토로 인정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