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차르국 (아침해의 원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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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아침해의 원유관
아침해의 원유관은 임진왜란 축소로 인해 뒤바뀐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세계관입니다.
청화대에 이화문이 꽂혀있는 이 세계의 국가, 사회, 정치 및 문화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대한국

일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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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차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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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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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타이완민주주의인민공화제국

대한제국

대한 공화국

예케 몽골 울루스

대청제국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러시아 차르국
Россійская царство | Russian Tsar state
국기[1] 국장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노라!
Съ нами Богъ!
왕정 복고 이전 동시베리아 전쟁 이후
극동 공화국 러시아 차르국
상징
국가
하느님, 황제를 지켜주소서!(Боже, Царя храни!)
국화
로즈마리, 캐모마일
국장
쌍두독수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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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 제국 멸망
1922년 로마노프 왕가 망명
1923년 러시아국 건국
1932년 제정복귀, 러시아 차르국 건국
1939년 방공협정 체결
1941년 동시베리아 전쟁 참전
1945년 러시아 차르국의 항복
1951년 러소전쟁
2020년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총리 등극
지리
수도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
최대도시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
면적
90,000,000km²
위치
연해주 및 그 부속도서
주변국
대금민국, 대한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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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인구
약 2000만명
공용어
러시아어 (법정 공용어), 일본어, 한국어
공용 문자
키릴 문자 (법정 문자), 한글, 한자, 가나 문자, 만주 문자
민족
러시아인 95%
고려인 3%, 그 외 2%
국교
국교 없음 (정교분리)
종교 분포
그리스도교 80%, 무종교 10%, 불교 5%, 그 외 2%
군대
차르의 군대
정치 및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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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정교분리, 권위주의적 민주주의
정부 수반
내각총리
국가 원수
(러시아 차르국 차르)
알렉산드르 드미트리예비치 게오르기[2]
민주주의 지수
163개국중 29위
(완전한 민주주의)[3]
여당
러시아 통합민주당
경제 체제
자본주의 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GDP 7,302억$
1인당 GDP 31,045$
GDP(PPP)
전체 GDP 1조 5,103억$
1인당 GDP $70,344
통화
러시아 차르국 루블 (Россійская царство рубль)
위치
수도 블라디보스토크의 전경

하바롭스크의 전경

개요


차르는 퇴장하고 그와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고통과 죽음에 내던져진다. 차르의 노력은 축소되고 행동은 정죄받으며 기억은 폄하된다. 그러나 멈춰서서 다른 적합한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윈스턴 처칠, 세계의 위기 中

옛 제국은 끝났으나, 새 시대의 빛은 동쪽의 변방에서 다시금 온다.

러시아 차르국, 통칭 제 2차 러시아 제정혹은 극동러시아 동아시아의 연해주 지역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동쪽으로 일본, 서쪽으로 대금민국과 소련에 접해있는 지형을 가지고 있다.

현존하는 극동에 속한 지역중에서 백인 인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국가로, 그 뒤를 만주인, 고려인, 한국인 및 일본인 인구가 따르고 있다.

문화적으로 한자 문화권의 특징과 과거 러시아의 문화가 혼재되어있는 양상을 띄고 있고, 여기에 일본인 인구가 남기고 간 문화의 특징을 고려하면 불교, 신토와 관련된 문화도 간간히 남아있다는 게 사회 전반에서 보인다. 다만, 종교의 경우 정교회가 압도적인 성향을 띄고 있어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종교로서 정교회를 믿고 있고, 세속주의의 영향으로 무종교가 보이기도 한다. 불교 신자들의 비중도 꽤 큰 편인지라, 전체 인구의 약 5퍼센트 정도는 확실한 불교 신자다. 대부분은 연해주 공동자치령 및 괴뢰국 시절에 일본인 이민자들이 유입시켰다.

러시아 차르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국방군을 보유한, 선진국의 최소치에 해당되는 국가로서 인정받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동양의 유럽, 눈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홍보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지서방, 반소 성향을 가진 정당들과 주변국들과의 영토 분쟁 등의 문제가 가끔 있지만 오늘날에도 동아시아의 질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서방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 중이다.

역사

1917년 적백내전의 시작 이후부터 완충지대 역할을 맡은 방공국가의 필요성을 느낀 협상국 층게 의해 러시아의 극동 영토에 건국이 고려되었으며, 이후 대한제국 측의 금관작전으로 로마노프 황가의 인원들과 백군 주요인물들의 신변이 일부 확보되면서 1920년 적백내전이 완전히 소련의 승리로 끝날 조짐이 보이자 정식으로 연해주 자치령에 백러시아 망명정부의 뒤를 이을 트란스 아무르 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출범하였다.

그러나 말이 독립국이지, 국제정치적인 위치에서의 그 실체는 만약 제정 러시아가 살아있었을시 1980년 중에 반환 예정인 연해주 자치령에 영구히 발을 붙이고 싶어했던 한국과 일본이 짜고 만든 괴뢰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에게 기대를 걸고 있던 영국을 위시한 서방의 지원 등으로 인해 어느정도 정상적인 국가의 꼴은 갖출 수 있었으며, 한국의 시베리아 출병 당시 이를 원조하여 소련과 소규모 교전을 벌이는 등, 나름 대외정책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1920년대 건국 직후에는 여러 지원들이 겹쳐들어오면서 유의미한 성장을 이룰 수는 있긴 했으나 정치적으로 영국이 지원하는 헌정파가 운영하던 내각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최대 지원국들인 한국과 일본의 불황이 시작되면서 다시 정국이 흔들리는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었고, 이는 소련발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격화되면서 더욱 더 심해졌다.

그러던 중, 무능한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소련 체제로는 갈 수 없다는 사상들을 시작으로 1920년대 후반부터 로마노프 황가를 다시 왕좌로 복귀시키자는 의견이 서서히 대두되었다. 이윽고 주요 지원국 중 하나인 한국에서 김창암이 집권하여 주변국의 제정화를 정책 중 하나로 천명하는 과정에서 한일 양국 정부에서는 영국의 영향력이 약해진 틈을 타 황정파를 완전히 밀어 연해주에서의 세력을 공고히 하기로 합의했고, 이후 해당 2개국의 입김이 상당히 들어간 왕정의 복귀에 대한 투표가 실시된 뒤, 4표 차이로 차르정이 다시 복귀하였다. 이 이후부터 트란스아무르 공화국이라는 국명은 러시아 차르국으로 바뀌었고, 당시 가장 나이가 많은 황족 후계자이자 로마노프 황가의 차녀였던 타티니야 로마노바가 제 1대 러시아 차르국 차리나로 즉위하였다.

동시베리아 전쟁 당시에는 추축국에 가입하거나 한국을 도와 괴뢰국인 사하 왕국을 지원하는 등 반서방적 행보 또한 보였었으나, 결과적으로 소련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하고 한국의 해동성맹이 해체되자 러시아 차르국의 멸망은 기정사실화 된 듯 하였다. 하지만 영국 왕실이 관련되어 있던데다 극동에 영국의 간접적인 영향력이라도 유지되길 바란 처칠이 필사적으로 트루먼을 설득하여 차르국을 유지시킴과 동시에 극동에서의 대공산주의 냉전의 첨탑으로 쓰면 되지 않냐는 의견을 주장했고, 그의 마지막 계획이었던 이 전략이 성공하면서 러시아 차르국은 1951년 소련과의 전쟁이라는 대가를 치렀지만 서방에게 친선을 홍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도 정치적인 혼란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전쟁 당시 권한이 강해진 군대가 5월 16일에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러시아의 군사 의회 시대가 개막했다. 해당 쿠데타로 집권한 콘스탄틴 로자예프스키는 이후 스스로 내각총리에 등극한 뒤 빠른 산업화와 개발독재에 기반한 경제발전을 실행시켰고, 결과적으로 그의 장기집권 기간동안에는 막대한 경제성장을 일궈 일면 '오호츠크해의 기적'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콘스탄틴 로자예프스키는 독재자로서 수많은 민주주의 운동들을 탄압했고, 결국 이 사태는 그가 크리스마스 연회에서 저격당하고, 3일 뒤 그의 사망 소식이 전재지자 촉발된 군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로 군사내각 시대는 끝을 맞이했다.

이후 다시 헌정이 복귀한 러시아 차르국의 의회는 쌓아놓은 산업력을 기반으로 대외 이미지 또한 홍보하는 정책 등을 실시했고, 이는 1980년대의 경제호황 및 1980년 경제 성장으로서 말미암은 하계올림픽의 개최지로서의 선정과 더불어 러시아 차르국의 국위를 높여주었다.

하지만 러시아 차르국의 정치는 아직 그만큼 선진화되지 못한 상태였고, 이것이 경제와 관련해서 호황만이 계속되자 분위기에 휩쓸려 개혁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 정치권의 경질화를 낳게 되었다. 결국 당시 베이징 증권거래서에서 시작된 중화민국발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성장가도를 달리던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가 본격적으로 침체되면서, 자연스럽게 러시아 차르국에도 암흑기가 닥쳐왔다. 다행히 당시 재무장관의 강경조치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재앙은 막아내었으나, 이 사태를 기점으로 러시아 차르국의 정계가 일부 우경화되기도 하는 등 아직까지는 영향이 남아있다고 판단받는 사건이다.

상징

국호

러시아 차르국의 국호는 차르가 군림하는 국가이되, 통치를 하는 제국과는 다르다는 의미로 새롭게 해석한 구 국호인 '차르국'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동시베리아 전쟁 이전에는 러시아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종전 이후에는 이렇게 불리는 경우도 꽤 드물어졌다고 한다.

줄여서 차르국이라고도 불리며, 중화인민공화국, 타이완에서는 '구 제정 러시아'라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이름이 사용된다.

국기


쌍두독수리 삼색기
Двуглавый орёл Триколор
지위 공식 국기
채택시기 러시아 차르국 (1936년)
근거 법령 <러시아 헌법> (1936년 ~ )
색상 붉은색 (#C23729)
푸른색 (#061B79)
흰색 (#FFFFFF)
노란색 (#ffce00)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флаг России — трехцветный двуглавый орел.。
러시아의 국기는 쌍두독수리 삼색기이다.
- 러시아 헌법 제141조 1항

국기는 러시아 제국의 국기이며, 왕정복고 이전엔 단순히 황실 가문의 깃발이었다가 이후에 새로히 지목되어 국기의 지위를 얻었다. 해당 국기 말고 구 러시아 제국의 다른 국기들 또한 상황에 따라서 사용된다.

국장


쌍두독수리 엠블렘
Двуглавый орёл ерб
지위 공식 국장
채택시기 러시아 차르국 (1936년 ~ )
근거 법령 <러시아 헌법> (1936년 ~ )
사용처
  • 외국·국제기구 또는 국내 외국기관에 발신하는 공문서
  • 1급 이상 상당 공무원의 임명장
  • 훈장과 훈장증 및 표창장
  • 국가공무원 신분증
  • 국공립 대학교의 졸업증서 및 학위증서
  • 재외공관 건물
  • 정부소유의 선박 및 항공기
  • 화폐
  • 그 밖에 각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국가표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문서, 시설 또는 물자
  • 황실과 관련된 사항

국장은 로마노프 황실의 문장인 쌍두독수리로, 1936년에 헌법 개정과 함께 국장으로서 공식화되었다. 해외 군주국들에게는 로마노프 황가의 상징으로 인정받는다. 황실과 관련된 물건이나 국가와 관련된 물건에 심심치 않게 부착된 것을 볼 수 있다.

황실

사회

러시아 차르국의 사회는 기존에는 꽤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측면이 존재하였다. 전신인 러시아 제국도 개방적이라고 볼 수 있는 국가는 아니였으며, 건국 직후부터 한국과 일본의 간섭을 계속해서 받아온 것의 영향으로 각각 일본의 군사식 국민양성 정책, 그리고 일본보다는 군주의 권력이 강한 한국의 군주에 대한 유교적 충성 등을 도입하여 전반적으로 집단주의적인 경향을 보여왔었는데, 이 풍조는 지금은 보이지는 않아도 상당수가 남아 있다고 학자들에게 평가받고 있다.

정치

경제

외교

러한관계

러중관계

러일관계

러미관계

러소관계

원래는 최악의 외교관계였으며, 적백내전 이래 수교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문화

전반적인 문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동아시아적 색채가 상당히 섞인, 특히 일본과 한국의 오랜 지역적 간섭으로 인해 그 특색이 더 강해진 유럽문화를 보여주고 있으며,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이 성공하기 이전까지는 슬라브권 국가들의 문화 중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진 문화로도 손에 꼽혔다. 소련이 최신적인 러시아 문화의 집결체라면 러시아 차르국은 구 러시아 제국 시절의 문화적 유산을 이어받았다고도 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아직까지 세계에서 러시아 제국이 가졌던 문학적, 과학적 위상을 어느정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언론, 대중매체

교육

대중매체에서의 러시아 차르국의 모습

전반적인 매체에서

대체역사에서


  1. 러시아 제국기
  2. 러시아 차르국 제 3대 차르 게오르기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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