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일으킴이 어려우니 선열들을 생각하고, 나라를 지킴이 쉽지 않으니 얕은 꾀로 행동하지 말라.
중화민국 국가인 중화민국 국기가 中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시종일관하자, 청천백일만지홍.
중화민국(中华民國), 이하 북경중국(北京中华)은 동아시아에 존재하는 공화정 국가다. 현존하는 아시아 공화국 중 가장 오래된 국가로, 국제사회에는 자국이 신해혁명 이후 계승된 중화민국 정부의 실질적 후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화민국의 전신은 1912년 당시 신해혁명으로 붕괴한 왕조 대순과 송 일대의 군벌들이 몇백년 만의 통합을 택했던 것이 그 시작으로, 그 일전에는 순나라와 송나라라는 두개의 왕조가 중국에 존재했다. 그러나 이후 아편전쟁을 기점으로 서구 열강의 무자비한 침탈이 시작되며 양 왕조는 이내 분노한 중국 민중들에 의해 역사속으로 자취를 감췄고, 이후에는 수많은 체제와 정부들을 거치며 시대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현재 중화민국 정부의 사실상 전신이라 볼 수 있는 중화민국 국민정부는 1926년에는 북벌에 성공하여 명나라 이후 몇백년만에 명목상으로마나 중국에 통일국가를 세우는 데 성공했으며, 1930년대부터 시작된 장시사변과 몽골 출병을 시작으로 대륙 침탈 야욕을 보이던 일본과 한국을 이후 동아시아 전역에서 발발한 전쟁에서 격파, 뒤이어 국공내전 당시 동남의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화북 지방을 사수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현재의 중화민국, 혹은 중국 양경정부가 수립됐다.
정치적으로는 훈정 체제시절 이후에 변화를 겪었으나, 국민대회를 통해 총통을 선출하는 기구적 권위민주주의 체제가 장기적으로 유지되어 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혁명기부터 지도정당이였던 중국 국민당 또한 강력한 위세를 자랑하고 있으며, 중화민국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국민당과 정부 인사들의 권위적인 유착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중화민국은 UN의 창립국이자 상임이사국이고, 공식적으로 중화민국을 이은 정통 정부로서 인정받고 있으며, G8에 에 속한 세계 5위의 경제력을 가진 강대국이다. 문화적으로는 한자 문화권의 종주로서 동아시아에서 큰 상징성을 지녔으며, 군사적으로도 동아시아에서 손에 꼽히는 강대국 중 하나로 여져지고 있으며[5],
상징
국호
정식 명칭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며, 약칭은 중국(中國)이다. 표준중국어 발음은 중궈(Zhōngguó, [ʈʂʊ́ŋ.kwǒ]). 중화민국은 중화민궈(Zhōnghuá Mínguó, [ʈʂʊ́ŋ.xwǎ mǐn.kwǒ])라고 발음한다.
'중국(中國)'이라는 단어는 시경의 大雅民勞篇 중 “惠此中國, 以綏四方”이라는 구절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때 '중국'이라는 말은 주나라의 수도를 일컫는 말로 쓰였다. '중원(中原)', '중화(中華)'라고도 했다. 이는 '가운데 지역'이라는 의미로 주변에 비해 발달된 문명을 가졌던 스스로를 동이, 서융, 남만, 북적 등 주변 '오랑캐'와 구분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영어에서는 이 나라를 차이나(China) 혹은 리퍼블릭 오브 차이나(Republic of China)라 하고 다른 유럽계열 언어에서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명칭을 쓴다. 학계에서는 '차이나'라는 명칭이 진나라를 뜻하는 친(Chin)이 산스크리트어로 치나(Cīna)로 변형된 것으로 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치나'라는 명칭이 포루투갈 상인들을 거쳐 유럽전역으로 퍼짐으로서 대부분의 유럽언어들이 중국을 차이나, 치나, 키나 등으로 부륵 되었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한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에서는 중국이라는 말보다는 이전 중국의 왕조 중 하나인 당(唐)이나 순(順), 송(宋)으로 주로 호칭하였으며 한국의 경우에는 70년대까지 일본의 경우에는 일부 경우에 한해서는 현대까지도 이러한 명칭들이 쓰인다. 한편 중국이라는 국호가 확립되기 이전에는 위의 산스크리트어 '치나'에서 비롯된 支那(지나/시나)등도 많이쓰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사장된 표현이며[6] 특히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과 대한이 중국을 비하할 목적으로 지나라는 명칭을 사용한 전적이 있기에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지나/시나라는 표현은 매우 모욕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국기
청천백일만지홍기 青天白日滿地紅旗
지위
공식 국기
채택시기
중화민국 1928년 12월 29일
설계자
<중화민국 헌법 제1장 제6조>
근거법령
하얀색 (#ffffff) 붉은색 (#fe0000) 군청색 (#000095)
중화민국 국기는 붉은 바탕에 좌측 상방에 파란 바탕에 하얀 태양이다. 中華民國國旗定為紅地,左上角青天白日。
중화민국 헌법 제1장 제6조
중화민국의 국기는 청천백일만지홍기로, 1928년에 쑨원과 루하우동이 설계했고 이후 공식 국기로서 체택되었다.
국장
중화민국 국휘 中華民國國徽
지위
공식 국장
채택시기
중화민국 (1928년)
근거 법령
<중화민국 헌법 제1장 제7조> (1928년 ~ )
사용처
외국·국제기구 또는 국내 외국기관에 발신하는 공문서
1급 이상 상당 공무원의 임명장
훈장과 훈장증 및 표창장
국가공무원 신분증
국공립 대학교의 졸업증서 및 학위증서
재외공관 건물
정부소유의 선박 및 항공기
화폐
그 밖에 각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국가표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문서, 시설 또는 물자
중화민국의 국장은 1928년에 제정되었고, 국기와 같이 청천백일(靑天白日)을 사용한다. 여기서 청천백일이 가지는 의미는 대략 두가지로, 백색의 태양은 혁명 정신을 뜻하며 태양에서 뻗어나오는 12개의 빛줄기는 하루 24시간을 2시간씩 12개로 표현하고 1년 12개월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국민들이 끊임없이 정진하고 자강불식(自強不息)할 것을 상징한다. 파란색과 하얀색은 삼민주의를 두 가지 색으로 표현한 것으로 번영과 민주주의를 뜻한다.
사회
민족 구성
자연환경
정치
경제
행정구역
외교
중중관계
국공내전과 건국 이래 여태까지 최악의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중세시대부터 시작된 정통성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7], 2000년대 초반부터는 각각 태평양 의정서 기구와 상하이 안보 조약 기구로 견제를 시작하면서 두 중국의 관계는 통 진전을 보이지 못하며 악화일로를 달렸고, 결국 2021년 중국 공산당 정부가 태평양 의정서 동맹 신청국이었던 티베트를 침공하며 양국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중한관계
중화민국과 한국의 관계는 신해혁명 이후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만주를 삼키는 데 집중하고 있던 한국은 딱히 중국에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이 일본의 21개조 요구를 옹호하고 이 요구에 숫가락을 얹으려는 시도가 나오면서부터 중한관계에 금이 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1920년대부터는 화북과 북중국으로도 진출할 마음을 품은 한국이 일본과 손을 잡고 침략전쟁을 일으키며 급격히 나빠졌다. 이후 1960년대가 되어서야 한국의 우선적인 사과로 국교가 정상화 될 수 있었고, 현재는 태평양 의정서 동맹의 3대 과두지도국 중 하나로서 외교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중소관계
문화
중화민국은 쉽게 말해 '원본 유교'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유교가 냉전기에 기존 성리학적 정서에 대한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유화책을 거치면서 젊은 층에게도 접근성이 낮아진 데 반해, 변화가 잘 가해지지 중화민국의 유교는 비교적 보수적인 편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 덕에 정말 오래된 유교적 전통을 찾기에 최고의 연구장소로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다만, 위치한 지역이 당나라의 체제와 더 유사성을 보였던 과거 순나라의 영토다보니, 유교적으로 따져들면 오히려 한국보다 더 부족한 면들도 있고, 문화대개신 당시에 중화인민공화국 측은 유교 유산이 많이 파괴된지라, 결국 한국이 졸지에 유교적인 측면에서는 소중화의 위치가 아니냐는 평가가 들려오고 있다. 다만, 위치한 수도가 북경이고 문화재 보존에 힘을 쓴 중화민국인 만큼 유교와 관련된 유물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오랜 역사와 문화유적에 기반한 강력한 소프트 파워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접경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이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많은 문화재가 불탄 데 비해 중화민국 측은 오히려 문화재를 보존, 연구 및 발굴해내면서 세계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양의 유물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 중 하나가 중화민국에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
현대에도 중화풍 영화는 나름 수요가 있는 장르로 여겨지며, 서브컬쳐와 애니메이션도 나름 발전된 작업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중화사상과 근대사에 기반한 애국주의 색채가 짙고, 검열과 수위법의 제한으로 인해 일본이나 한국에 비하면 제약이 많은 편이라서 사회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미 군사적 규모 방면에선 잠재적 적국과 국경을 바로 맞대고 있다는 특성상 한국, 일본, 러시아 차르국을 돌파했다.
↑단 Sino-centrism(중화사상), Sino-Japanese War(청일전쟁)등 영어권에서는 고유명사에 한해서 아직 유효한 표현이다.
↑현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 기반은 대부분 구 송나라의 영토로 이루어진 데 반해, 중화민국의 영토는 대부분 화북 일대의 순나라의 영토로 이루어져 있어서 애초에 문화적 차이가 비슷하면서도 꽤 심한 편이다. 게다가 사상적인 측면으로도 국민성이 굉장히 다른 편이고, 면적 자체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더 넓지만, 북경 등의 중국에서 예로부터 정통성이 있다 여겨진 지역들은 중화민국의 영유권 아래에 있는지라 이 점에서 양국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심각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