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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패배 이후 ====
==== 총선 패배 이후 ====
이클루아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216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대신 정치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212년 11월 이클루아를 중심으로 [[프랑수아계]]를 이끌어낸다.
이클루아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216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대신 정치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212년 11월 이클루아를 중심으로 [[프랑수아계]]를 이끌어냈고, 213년 이클루아가 당수가 되면서 주류로 부상한다.


==== 민주당 당수 시절 ====
==== 민주당 당수 시절 ====
213년 1월 요루비치 사루카나 당수가 이클리우스로 귀화하기 전 [[앵본제일당]]을 추종했다는 이유로 과거사 논란이 불거졌고 민주당 윤리위원회 측은 그를 제명시키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후
213년 1월 요루비치 사루카나 당수가 이클리우스로 귀화하기 전 [[앵본제일당]]을 추종했다는 이유로 과거사 논란이 불거졌고 민주당 윤리위원회 측은 그를 제명시키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후 조르주 멜리아 총리가 임시당수를 맡았고 그 해 6월 멜리아 임시당수도 사퇴하면서 당수가 공석이 된다. 그러던 중 임시의원총회를 열어 이클루아를 당수로 내정하자는 의견이 생겨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해서 이클루아는 민주당의 당수가 될 기회를 주게 되었다.
 
이후 이클루아가 민주당의 당수가 되자 "갑작스런 내정에 일단 감사드린다. 하지만 우리 당의 상황은 당수의 실각으로 심각한 상태지만, 앞으로 우리 당을 안정시켜 국민들과 함께하는 정당, 진정한 민주정당으로 거듭나길 노력하겠다"고 말해 차기 민주당의 비전을 "개혁·변화·혁신"을 강조한 이클루아 계획을 발표한다.


== 총리 재임시 ==
== 총리 재임시 ==

2020년 7월 27일 (월) 19:3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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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클리우스 민주당의 당수
이클리우스 민주연방의 제3·4대 연방총리대신
프랑수아 안네소피 드 이클리우시아
François Anne-Sophie de Icliusia
성명 프랑수아 이클루아 (François Iculua)
국적 이클리우스 민주연방
출생일 IY 187년 5월 (33세)
거주지 이클리우스 시티센트럴타운시 피오플리아현
출생지 이클리우스 시티센트럴타운시 라플라티아현
가문 프랑수아가 (안네소피 가문)
학력 이클리우스 왕립소학원 (졸업)
왕립중학원 (졸업)
이클리우스 왕립고등학원 (기술과학과, 졸업)
이클리우스 왕립대학 (정치사회과, 졸업)
이클리우스 정치대학원 (졸업)
가족 아버지 사르코지
어머지 임마누엘
여동생 율리아
남동생 루이스
슬하 1남 2녀
배우자 프랑수아 드 라티몽
종교 신성교
경력 신성교 제5대 총회장
라나프 내각 국정대변인
이클리우스 공화국 제5대 사회부장관
이클리우스 민주당 제2대 당수
이클리우스 민주연방 총리 (제3·4대)
정치 활동
이클리우스 민주연방의 제3·4대 연방총리대신
재임
기간
216년 4월 ~ 현재
소속
정당
이클리우스 민주당
전임 알렉산드르 라나프
대통령 프랑수아 드 라티몽
이클리우스 민주당의 당수
재임
기간
213년 6월 ~ 현재
전임 요루비치 사루카나
조르주 멜리아 (임시당수)

프랑수아 안네소피 드 이클리우시아 (François Anne-Sophie de Icliusia) 혹은 프랑수아 이클루아 (François Iculua)는 이클리우스 민주연방의 제3·4대 총리, 이클리우스 민주당의 제2대 당수, 前 신성교 회장이다.

이클리우스 민주당 내에서 프랑수아 재단, 이클루아 내각 인사, 구 프랑수아가와 함께 프랑수아계를 이끌고 있으며 205년 민주당에 입당했다가 쫒겨난 후 210년까지 신성교의 회장을 맡았고, 210년 3월 민주당에 다시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한다. 213년 6월 민주당의 제2대 당수가 되면서 민주당을 이끌었으며 216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됨과 동시에 총리가 되었다. 이후 220년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재선에 성공하였다.

생애

187년 5월 이클리우스 시티주 센트럴타운시 피오플리아현에서 안네소피 가문의 1남 2녀 중 1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클루아에게 학교를 보내기 위해 제대로 된 학교를 찾다가 이클리우스 왕립소학원을 발견했고 이클루아를 왕립소학원으로 진학시킨다. 이클루아는 왕립소학원 진학 중 물리, 수학, 사회 등에 만점을 받아 전교 3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했으며 이후 이클리우스 왕립중학원, 이클리우스 왕립고등학원을 졸업한다. 이후 15살에 어머니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조르주 멜리아의 연설을 듣고 감동을 받아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왕립대학 진학 중에는 정치사회과에 들어가 이클리우스의 정치와 정치 구조, 이클리우스의 정치사를 배웠다. 왕립대학 졸업 후 정치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고 정치대학원에 졸업한 끝에 18살의 나이에 이클리우스 민주당에 입당하였지만 당원윤리위원회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이클루아의 가입을 불허해 그녀를 당사 밖으로 쫒아낸다. 당에서 쫒겨난 이후 어머니와 신성교 성당에 가면서 교주의 축복을 받았고, 급기야 알렉스 라펠릭스 회장이 물러나고 그녀를 회장으로 추대한다. 이클루아는 신성교를 이끌면서 종교 개혁을 추진했으며, 208년 유엔에이와 함께 아프라코 봉사 활동을 전개하여 아프라코 개발도상국이자 빈민국으로 불리는 콩구아에 1억 2천 달러와 9만 7천개의 물품을 지원하였다.

210년 정계 입문을 위해 신성교 회장에서 은퇴한 후 다시 한번 민주당에 입당하였고, 같은 해 알렉산드르 라나프의 내각에 국정대변인을 맡았으며 211년에는 라나프 내각의 이클리우스 사회부의 장관을 맡는다. 212년 4월 총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사회부 장관에서 사퇴해 이클리우스 시티 제13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보수당 오스카르 테리아 후보에게 1만 표차로 낙선한다. 213년 1월 요루비치 사루카나 민주당 당수가 과거사 논란으로 인하여 국내에서 추방을 당했고 이클루아는 사루카나 당수의 제명에 대한 공감을 표했으며 6월에는 조르주 멜리아 임시당수가 사퇴하고 이클루아를 당수로 추대하면서 민주당의 당수가 된다. 이후 216년 총선 민주당이 압승하면서 다수당이 찬성함에 따라 총리가 된다.

종교 활동

신성교 회장

정치 활동

212년 이클리우스 총선

212년 4월 이클루아는 8월 총선 출마를 위해 사회부 장관을 사퇴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클루아는 이클리우스 시티 제13선거구에 출마하면서 선거 운동을 벌였다. 그러던 중 방송인 출신 보수당의 오스카르 테리아 후보와 맞붙으면서, 208년 총선에 이후 4년 만에 민주-보수 후보 간의 리턴매치가 성사되었다.

212년 8월 총선 결과 이클루아는 테리아 후보에게 패했지만, 민주당은 연방의회의 전 의석 734석 중 394석을, 연방상원에서도 전 의석 296석 중 179석을 흭득하여 압승하였다.

총선 패배 이후

이클루아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216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대신 정치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212년 11월 이클루아를 중심으로 프랑수아계를 이끌어냈고, 213년 이클루아가 당수가 되면서 주류로 부상한다.

민주당 당수 시절

213년 1월 요루비치 사루카나 당수가 이클리우스로 귀화하기 전 앵본제일당을 추종했다는 이유로 과거사 논란이 불거졌고 민주당 윤리위원회 측은 그를 제명시키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후 조르주 멜리아 총리가 임시당수를 맡았고 그 해 6월 멜리아 임시당수도 사퇴하면서 당수가 공석이 된다. 그러던 중 임시의원총회를 열어 이클루아를 당수로 내정하자는 의견이 생겨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해서 이클루아는 민주당의 당수가 될 기회를 주게 되었다.

이후 이클루아가 민주당의 당수가 되자 "갑작스런 내정에 일단 감사드린다. 하지만 우리 당의 상황은 당수의 실각으로 심각한 상태지만, 앞으로 우리 당을 안정시켜 국민들과 함께하는 정당, 진정한 민주정당으로 거듭나길 노력하겠다"고 말해 차기 민주당의 비전을 "개혁·변화·혁신"을 강조한 이클루아 계획을 발표한다.

총리 재임시

취임식

나는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 국가 발전에 노력하기 위해
민주연방 헌법을 수호하며 총리로서의 국정 활동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언한다.

I declare that I will defend the Constitution of Democratic Federation of Icliusia. and faithfully carry out state affairs activities as prime minister in order to strive for the freedom and welfare of the people and the development of the nation.
- 이클리우스 민주연방 헌법 제72조

이클루아는 216년 4월 제3대 민주연방 총리가 되었고, 취임식은 이클리우스 광장에서 진행하였다. 이클루아는 이클리우스 최초의 최연소 여성 총리, 신성교 출신 총리, 프랑수아가 출신 총리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이클루아는 29살로 어나더어스에서 화제가 되었다. 또 이클루아는

국정 방향

이클루아 내각의 국정 방향은 "혁신·변화·전진"을 강조하면서 여야 통합을 주장했다.

이클루아 내각의 대통령 후보자로 프랑수아 드 라티몽

정치 활동

소속 정당

논란 및 사건사고

선거 이력

이력

둘러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