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홀군

이도철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5월 20일 (월) 21:22 판 (→‎교통)
서웅특별자치도
기초자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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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내홀군 휘장.png 서웅특별자치도 내홀군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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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웅특별자치도의 자치군
파일:내홀군 휘장.png 내홀군
內笏郡

Kantono Neholo
군청 소재지 내홀군청로 1[1] (내홀읍)
광역자치단체 서웅특별자치도
하위 행정구역 3읍 3면
면적 ()
인구 170,990명
언어 에스페란토, 한국어, 일본어, 우타리어
군수 이도철
군의회
10석
7석
6석
4석
도의원
4석
1석
국회의원
정혜경
(건마·내홀)
상징 군화 물망초
군목 측백나무
군조 독수리
군가 우리들의 언어[2]

개요

서웅특별자치도의 북부에 위치한 군.

신라의 정복 이전에는 서웅섬의 원주민인 우타리족의 언어로 《커다란 강》이라는 뜻의 네포르(Népor)라 불렸고, 현재 사용하는 이름인 《내홀》은 신라의 정복 이후 경덕왕이 전국의 지명을 한자어화하는 과정에서 이 《네포르》를 음차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외에도 조선시대까지 내발(內發), 나홀(那忽), 태강(太江)과 같은 여러 이름이 쓰이다가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영토가 되면서 나에보로(苗幌)로 개명, 1945년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다시 대한민국의 영토로 반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내홀(內笏)》이라는 이름이 정착되었다.

2006년 1월 1일 조례 제97호의 제정을 통해 읍면자치제(邑面自治制)가 도입된 군이다. 이에 따라 서웅특별자치도는 내홀군 지역에 한정하여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의 복층식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아닌 3층식 지방자치단체를 가지는 지역이 되었다.

제4공화국(유신군정) 말기인 1978년 12월에 발발하여 1979년 4월까지 이어진 서웅도 공산주의자 봉기(徐熊島共産主義者蜂起)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며, 반란이 진압된 이후 원주민인 우타리족과 일본계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규모의 학살이 일어났던 지역으로 역사 및 인문학계에서의 인지도가 높다. 이 때문에 내홀군에는 추모공원을 비롯하여 당시 학살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각종 추모시설이 존재한다.

상징

지리

여느 서웅특별자치도에 속한 시군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온화한 온대기후이며, 고산지대도 존재하지 않기에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다. 연평균기온은 15,5℃ 서울에 비하여 약 3℃정도 높다. 최한월인 1월-2월의 평균기온은 내홀읍을 기준으로 했을때 7,0℃인데, 이는 대한민국의 모든 기상관측소에서 기록된 최한월의 평균기온가운데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수치이다.

서웅시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군의 동쪽에는 적산(的山)이라는 서웅산의 기생화산과 적산을 중심으로 한 야트막한 산맥이 존재한다. 적산은 약 5년-10년을 주기로 꾸준히 분화를 일으키고 있는 활화산으로, 평소에도 분화구의 인근에서는 강한 산성을 띈 유독성기체가 상시적으로 분출되고 있어 곳곳에 입산금지구역이 지정되어 있다.

역사

인구

2024년을 기준으로 17만 990명. 대구광역시 달성군, 울산광역시 울주군,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인구가 3번째로 많은 군으로, 광역시에 소속된 군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군이다. 꽤 최근에 들어서야 개발이 시작된 지역이라고는 하나, 바로 아래에 서웅도의 최대도시인 서웅시와 진선시가 위치해있다는 점 덕분에 개발이 시작된 이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인구상의 특이점으로는 토착민족계의 인구가 서웅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다는것. 2024년 조사를 기준으로 군내의 원주민계 인구는 총 19271명으로 내홀군 전체 인구에서 11,3%를 차지하고 있으며, 남쪽의 등리군과 함께 서웅도에서 토착민계의 인구비율이 10%를 넘는 단 둘뿐인 지역이자, 토착민계의 인구수가 서웅도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다.

이것에는 사연이 있는데, 일치시기였던 1870년에 《신국토인문명화법(新國土人文明化法)》이 시행됨과 동시에 섬 전체에 고루고루 분포하던 원주민 인구가 현재의 역천면 지역에 있었던 토인보호구역(土人保護區域)으로 강제이주를 당했기 때문. 한국령으로 넘어온 이후 무려 20% 후반대에 달했던 원주민 인구는 이후 탄압과 차별, 학살 등을 겪으면서 1980년대 초 8%까지 떨어졌다가 군사독재의 종식과 지방자치제도의 시행이후 다시 10%의 선을 회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교통

철도

[[[서웅순환철도공사]]가 운영하는 북환선(北環線)이 지나며, 이 구간에서 운행되는 보통열차가 주민들의 발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의 영토이던 시기에는 내홀역에서 분기하여 건마군 방향으로 이어지는 내건선(內乾線)이 계획되어 1940년 1월 착공되었으나, 곧 태평양전쟁이 발발, 전쟁이 일본의 패배로 종결되고 서웅섬이 한국의 영토로 넘어가면서 건마군 구간은 삽도 뜨지 못하고 풍천면과 청갑면의 경계지역까지만 얼추 공사가 진행된채 건설이 중단되었다.

현재 내홀군에서는 조례를 통해 내건선 철도의 부지 및 잔존시설을 개발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보존하고 있어, 당시 건설되다가 버려진 철도의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다. 또한 내홀군 측에서는 내건선의 건설재개를 중앙정부 및 서웅도 지방정부를 향해 주문하고 있으나, 자금문제와 노선의 핵심이라 할수 있는 건마군 측에서의 무관심으로 인해 진전이 없는 상황.

그 외에는 내홀역에서 분기하여 상기한 적산까지 이어지는 적산삼림철도(赤山森林鐵道)가 존재한다.

관광

생활문화

정치

하위행정구역

기타

  1. 세계 외적 정보: 아직 확정되지 않음.
  2. 조례상 지정되어 있으나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철의 노동자나 국제가 등의 노동가요가 사실상의 군가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