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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국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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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국 Polska | State of Polan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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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국장 | |||||||||||||||||||||||||||||||||||
Bóg, Honor, Ojczyzna 하느님, 명예, 조국 | ||||||||||||||||||||||||||||||||||||
상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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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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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LD | ||||||||||||||||||||||||||||||||||||
.pl | ||||||||||||||||||||||||||||||||||||
국가 코드 | ||||||||||||||||||||||||||||||||||||
616, PL, POL | ||||||||||||||||||||||||||||||||||||
국제전화코드 | ||||||||||||||||||||||||||||||||||||
+48 | ||||||||||||||||||||||||||||||||||||
차량 통행 방향 | ||||||||||||||||||||||||||||||||||||
오른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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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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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국가 상징
국호
국기
폴란드 국기 Plaga Polski | |||
지위 | 폴란드의 국기 | ||
채택일 | 1919년 | ||
설계자 | 레흐 (건국시조) | ||
근거법령 | 폴란드국 헌법 제1장 제28조 2항 | ||
비율 | 5:8 |
폴란드국의 국기는 상단부 흰색과 하단부 붉은색으로 배치된다. Flaga Rzeczypospolitej Polskiej jest u góry biała, a u dołu czerwona. |
폴란드국 헌법 제1장 제28조 2항 |
중화민국의 국기는 청천백일만지홍기이며 루하오둥과 쑨원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1928년 12월 17일 국민정부 시절에 공식적인 국기로 채택되었다. 청천백일만지홍기는 중국의 국부 쑨원이 창시한 삼민주의 사상을 파란색, 빨간색, 흰색의 세가지 색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파란색은 청명과 순수, 자유 그리고 민족을, 빨간색은 희생과 유혈, 박애, 한족을 중심으로 하는 다민족국가인 중국과 삼민주의의 민생을 상징하고, 백색은 정직, 이타, 평등, 민생을 각각 상징하고 있다. 좌측 상단의 청천백일기의 태양에서 뻗어나오는 12개의 빛줄기는 하루 24시간을 2시간씩 12개로 표현하고 1년 12개월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국민들이 끊임없이 정진하고 자강불식(自強不息)할 것을 상징한다.
역사와 상징
폴란드 국기는 백색과 적색을 위아래로 배치한 이색기로, 폴란드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건국시조 레흐(Lech)가 석양을 맞으며 하늘을 나는 흰독수리(흰꼬리수리)를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폴란드 국장의 흰독수리 역시 연원이 같다. 시대가 흐르면서 19세기에 아예 나라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갈갈이 찢긴 후 독립운동을 펼칠 때 백색은 공화국의 존엄함을, 적색은 자유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공식적으로 국기로 채택된 것은 1919년에 폴란드 제2공화국이 건국되었을 때이다. 이색기 배색의 특성상 위아래를 뒤집으면 인도네시아 또는 모나코 국기가 된다. 종횡비율이 저 두 국기와는 약간 다르기에 엄밀히 말하면 동일하지는 않지만, 멀리서 보면 거의 동일한 비율로 보이기 때문에 후술할 폴란드볼 등의 인터넷 밈에서는 종종 드립의 대상이 되곤 한다. 폴란드와 인도네시아는 지정학적 위치상 거의 엮일 일이 없던 국가였으나, 공교롭게도 한국의 국방사업과 관련해서 두 국가간에 외외의 접점이 발생했다. KF-21 보라매와 관련해서 공동개발국 지위를 지닌 인도네시아, 대한민국-폴란드 방산계약으로 폴란드와 대한민국이 엮였기 때문. 실제로 방산계약과 관련해 방한한 폴란드 대표단이 KF-21 보라매의 인도네시아 국기를 두고 '국기가 거꾸로 달려 있다'#는 농담을 한 바 있다. 반면 단순한 농담 수준을 넘어 보라매 사업과 관련해 인도네시아가 무성의한 태도로 논란이 되자 한국에서는 진짜로 국기를 뒤집고 인도네시아 대신 폴란드를 참여시키라는 여론이 주류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가 쓰는 국기에서는 상단에 국장이 포함된다.
국장
폴란드 국장 Godło Polsk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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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 폴란드 국장 | ||
채택일 | 2023년 7월 9일 | ||
사용처 | 국가기관 국가문서 여권 훈장 해외공관 |
폴란드국의 국장은 상단부 흰색과 하단부 붉은색으로 배치된다. Flaga Rzeczypospolitej Polskiej jest u góry biała, a u dołu czerwona. |
폴란드국 헌법 제1장 제28조 1항 |
폴란드의 국장은 1295년에 지정되었고 본격적으로 현대의 국장 모습은 1990년에 제정되었다. 붉은 방패에 금색 왕관을 쓰고 있는 흰 흰꼬리수리가 있다. 흰 흰꼬리수리는 폴란드를 건국한 첫 시조가 흰 흰꼬리수리를 찾은 이후 폴란드를 상징하는 새가 되었는데, 레흐는 행운의 새로 생각했었으며 전설에 의하면 흰 흰꼬리수리의 둥지를 발견한 장소에서 도읍을 정해 피아스트 왕조를 건립했다고 한다. 폴란드 국장은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상징으로도 쓴다.
국가
돔브로프스키의 마주레크 Mazurek Dąbrowskiego | |||||||
지위 | 폴란드국 국가 | ||||||
채택일 | 1930년 3월 24일 | ||||||
작사 | 유제프 루핀 비비츠키 | ||||||
작곡 | 알 수 없음 | ||||||
[ 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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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경제

냉전 이후 다른 동유럽 국가들에 비교할때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발전된 축에 속한다. 폴란드는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와 함께 비셰그라드 그룹(Visegrád Group)이라 하여 지역협력기구를 창설했는데, 이 네 나라는 옛 공산권에서 체제 전환을 경험한 국가들 중 가장 성공적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성장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 역시 비교적 성공한 사례들 중 발트 3국은 인구가 적은 편이고,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은 천연자원 위주 경제인 반면, 비셰그라드 그룹은 인구도 적지 않고 제조업 위주 경제구조로 지속가능한 발전과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여겨진다. 중진국 함정 탈출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 기준으로도 서유럽/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소득수준이 낮은 편이다. 대략 한국의 절반 정도. 비셰그라드 그룹 중에서도 명목 소득이 가장 낮다. 주변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유럽연합으로 묶인 덕에 국민들의 노동 이주가 쉬우며, 소득 수준이 높은 서유럽, 중부유럽, 북유럽 등지로 가서 일하고 있다. 그래도 중국보다 조금 낫고 멕시코와 비슷하던 시절도 있었던 데에 비하면 엄청나게 따라잡은 것이다. 사실상 헝가리와 함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옛 동구권 국가들처럼 출산율이 1.3명대에 불과해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그래서 2020년대가 되면 노동력 부족 현상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로 인해 옆 나라인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들이고 있으며 동남아 등 아시아계 이민자들도 받아들이는 추세. 유럽 연합에 속하지만 유로를 쓰지는 않는다. Złoty(즈워티)라는 화폐를 사용하며, 폴란드어에서 즈워티는 황금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치

2015년에 법과 정의당 정권이 들어선 후로는 유럽연합과의 갈등이 심각해졌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서 관계가 크게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그 이후 법과 정의당의 낙태금지법 강행과 유럽연합 탈퇴 시도까지 일어나 현재는 정치적으로 많이 혼란스럽다.
문화

외교

외교적으로 동구권 붕괴 이후에 빠르게 서방 진영으로 노선을 바꿔 유럽연합과 NATO에 가입했으며, 오늘날에는 유럽 안보의 핵심을 담당하는 국가이다. 지리적 위치가 나토의 최전선이고, 인구와 경제력도 새롭게 서방권에 편입된 동부 유럽 국가들 중 양호한 편이다.
주민
민족 구성이 굉장히 단일화되어 있는 바, 인구의 97% 이상이 폴란드인으로 분류되어 단일민족국가에 해당한다. 원래 전간기의 폴란드 제2공화국 시대까지만 해도 상당한 다민족국가였다. 폴란드 전역에 살던 유대인과 독일계 폴란드인은 물론이고, 동부 지역에는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러시아계 폴란드인들이 폴란드인보다 더 많았다. 이외에 일부 립카 타타르, 루신인 등 여러 소수민족도 거주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다음과 같은 큰 변화를 겪었다. 일단 폴란드 땅 전역에 살고 있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전간기만 해도 인구가 300만명이 넘어 당시 폴란드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동안 대부분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하거나 생존자들도 대부분 해외로 이민을 떠나며 폴란드 땅에서는 거의 다 사라졌다. 한편 독립 이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 획득한 동부지역 영토는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리투아니아인이 살던 지역이라 이들과 민족분쟁이 끊이질 않았는데, 전후에 소련에게 이 지역을 통째로 다시 빼앗기며 본의 아니게 이 소수민족 인구도 다 사라졌다. 그 대신 보상으로 받은 것이 패전국 독일의 영토였던 오데르 강 이동 지역과 동프로이센 남부 지역으로, 이 일대의 원주민이던 독일인을 전부 다 독일 본국으로 추방하고 그 빈 자리에 지금의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 리투아니아 수바우키 지역 등 소련이 빼앗아간 동부 영토에서 살던 폴란드인을 대량이주시켰다. 이렇게 결과적으로 현재 폴란드 영토에는 사실상 폴란드인만 남게 되어 구성 민족의 동질성이 매우 높아진 사례가 되었다. 종교적으로도 인구의 90%가 가톨릭을 믿는다.
언어
서슬라브어파에 속하는 폴란드어를 쓰며, 동슬라브어파에 속하는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와는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격변화가 복잡한 것도 유명하다. 발음과 독음이 난해하기로 유명해서 외국인이 스펠링만 보고 발음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기본 영어를 아는 사람이 발음 그대로 읽으면 되는 스페인어나 기초지식이 약간 있으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독음이 가능한 독일어와는 다르다. 지역적으로는 서슬라브어파 소수언어인 실레시아어(실롱스크어), 카슈브어, 게르만어파 소수언어인 빌라모비체어를 쓰는 사람이 있다. 동부에는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루신어를 쓰는 사용자도 존재한다. 주요 외국어로는 영어, 러시아어, 독일어 순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러시아어는 공산주의 시절 이래 가장 널리 교육해서 지금도 중장년층 이상은 상당수가 러시아어를 안다. 하지만 러시아어가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벨라루스와는 달리 러시아어를 쓰면 싫어한다 카더라. 반러감정이 꽤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인접 강대국의 언어인지라 러시아어를 배우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폴란드 내에 러시아계 폴란드인들이 있다보니 러시아어 사용이 생각보다 존재하는 편이다. 또한 냉전 이후에 잠시 러시아어를 배우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배우는 사람이 늘어났다.#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 및 벨라루스 서부와의 접경지대는 러시아어가 모어인 이들도 거주한다. 2010년대에 이르러 고령층을 비롯한 국민의 상당수가 영어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청년층은 발음도 괜찮다. 그리고 독일어 역시 잘 통하는 편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프랑스어도 배우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으로도 가입하였다.
지리
서쪽에는 독일, 남쪽의 체코와 슬로바키아, 동쪽으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북쪽에는 발트 해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주, 리투아니아와 접경하고 있으며 유럽 한복판에 있는 국가이다. 국토 총면적은 31만 2679㎢로 유럽연합 6위이며, 인구는 2020년 기준 약 3785만 명으로 유럽연합 내에서 5위이다. 인구는 유럽에서 폴란드 다음으로 많은 루마니아나 네덜란드와도 2배, 2천만 명에 근접한 차이를 보이는 등 유럽의 주요국에 속한다.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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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총 16개 주로 구성되어 있다. 주 밑으로는 군, 군 밑으로는 코뮌이 있고, 군 개념에는 시도 들어간다. 주의 중심지인 주도는 보통 1개 포비아트로 되어 있지만, 루부스키에나 쿠야프스코포모르스키에처럼 주정부와 주의회 소재 포비아트가 동시에 주도 역할을 하는 곳도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는 17개 주로 구분되었는데, 1975년에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49개로 세분화한 것이 1998년까지 사용되다가 1999년에 현재의 16개 주로 다시 조정되었다. 각 주에는 폴란드 총리가 임명하는 주지사(Wojewoda)와 주의회에서 선출하는 주총리(Marszałek)가 공동으로 주를 이끈다. 주지사는 전반적인 국가 행정과 관련된 사항을 관장하고, 주총리는 지방정부 관련 사항을 관장한다.
독일어 명칭
사회
교통
LOT [[[폴란드 항공]]에서 바르샤바-인천 직항 노선이 개설되었다. (2016년 개설) 버스 회사인 Solaris (구 네오플란) 가 있는 곳이며 폴란드 버스회사인 MPK에서 Citaro, MAN보다 네오플란 N4016/N4020/N4026/N4021/N4416/N4420/N4426/N4421이나 솔라리스사의 Urbino12/Urbino15/Urbino10.5/Urbino18가 널리 쓰이고 있다. 철도는 폴란드의 철도 환경에 나오듯 18,000km 넘게 소유하고 있다. 준고속철도 격인 EIP가 운영 중이고 본격적인 고속철도 스펙의 철도도 건설 추진 중이다. 도시철도는 바르샤바 지하철이 있다.
관광

아직까지 한국인에게 관광으로 잘 알려진 나라는 아니다. 여행사를 통한다면 바르샤바, 크라쿠프 지역과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볼거리도 있긴 하고 물가도 북쪽 국가들 중 그나마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인기 TV 프로그램 방영후 관심이 높아진 크로아티아 또는 체코처럼 어느 순간 유행을 타고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2018년 기준, 폴란드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4만 4007명이라고 한다. 등산이 매우 희귀한 취미에 속한다. 폴란드는 국토의 90% 가량이 평야지대이다.(그래서 농업이 발달하기도 했지만 역사적으로 침략도 쉽게 받았다.) 고지대는 남부 끄트머리에 있는, 카르파티아 산맥의 일부인 하이 타트라 지역이 전부이다. 이 지역의 자코파네(Zakopane)는 폴란드 내에서 가장 붐비는 휴양지로 꼽히며, 주변에 모르스키에 오코(Morskie oko)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하이 타트라가 유럽에선 상당히 높은 산맥인지라, 이 지역에 있는 폴란드 최고봉 리시(Rysy) 산은 높이가 2503m나 되며, 다른 2000m가 넘는 고봉들도 많다. 하지만 전체 국토에서 이 산지가 차지하는 면적이 매우 작기 때문에 대부분의 폴란드인들은 살면서 산을 볼 일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등산 인구가 매우 적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예지 쿠쿠츠카라는 전설적인 산악인이 나오기도 했다. 냉전 시절에는 폴란드인들이 등산을 하러 소련이나 불가리아 등으로 여행을 가는 경우도 있었다.
치안
범죄조직은 1990년대 경제 혼란기에 프리슈큐프와 보워민 지역에 대규모 폴란드 마피아가 날뛰었다. 그러나 대규모 소탕작전으로 두 조직은 해체됐고, 지금은 자잘한 갱단들이 있는 정도이다. 동유럽 국가들 중 비교적 치안이 안정적이며, 소매치기나 날치기 같은 경범죄도 별로 없다. 일단 상술했듯이 관광으로 잘 알려진 나라는 아닐뿐더러, 동유럽계인 소매치기들은 관광객들이 훨씬 많은 서유럽, 남유럽으로 원정을 가곤 하는 입장이라 동유럽계 소매치기들 입장에선 폴란드에 있어 봤자 돈이 안 되니 서유럽, 남유럽 놔두고 굳이 폴란드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폴란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스트립 클럽으로, 폴란드의 스트립 클럽들은 관광객들을 유인한 뒤 마약이 탄 술를 먹여 강도와 납치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동양인은 물론 영국, 미국, 독일에서 온, 생각없이 술 마시고 도박이나 밤문화를 즐기러 온 남성 관광객들이 주 타겟이 되며, 당연히 잘못 걸리면 납치나 폭행 같은 강력범죄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특히 마약이 든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으면 지갑에 있는 현금과 카드를 몽땅 빼앗기고, 또한 카드의 경우 여러분이 비밀번호 두드리는 것을 기억해서 POS기에 긁어내어 싹싹 털어가기 때문에, 몇백만원은 물론이고 몇천만원의 손해를 본 사람들도 있다. 또한 마약을 하고 깨어날 경우 끔찍한 숙취를 경험할 수 있으며, 이상한 골목이나 숙소에 버려진 체 깨어나는 공포 영화에나 볼 장면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호기심에 스트립 클럽에 갈 일이 있다면, 뺏겨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적당한 현금을 준비하고, 앞의 현금만 사용하고 카드는 절대 사용하지 말도록 하자. 위에서 말한 납치를 당하지 않더라도, 카드를 위조하거나 카드를 여러번 긁은 뒤 결제가 재대로 안 되었다는 둥 하면서 이중으로 결제하는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안에서 주는 술이나 음료는 절대 마시면 안 된다. 단순히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나이트 클럽 삐끼들을 생각해 낚여서 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스트립 클럽에 잘못 들어온 경우 분위기가 딱 봐도 이상하니 안에서 허튼 생각 하지 말고 밖으로 나오도록 하자. 안에 일하는 매춘부들도 온 몸에 문신을 해 있고 우락부락한 인상을 가진 경우가 많으며, 여러분 취향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매춘부들이 손님에게 술을 강제로 마시게 하거나 폭행하며, 위에서 나온 마약을 탄 위스키나 보드카를 10잔 넘게 강제로 마시는 것 자체가 공포이며, 저런 걸 마시고 사망한 영국이나 독일 남성들도 있다. 심지어 이런 일들이 2020년대에도 일어나고 있고, 한국의 버닝썬 같은 사건을 여러분이 당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마천루
세계 최고층 구조물이 있던 나라였다. 바로 1973년에 완공된 바르샤바 라디오 송신철탑. 하지만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런저런 아쉬움만 가득했고 1991년 일련의 실수로 무너졌으며, 이후로 재건계획이 세워졌지만 인근 주민들의 민원으로 백지화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름은 "바르샤바"라지만, 실제 위치는 바르샤바에서 멀리 떨어진 콘스탄티누프. 2010년 이후로 높이 200m 이상 마천루를 미친듯이 짓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라가 멸망당하고, 2차대전 이후로는 소련의 위성국 신세에다, 민주화 이후에는 바로 옆 나라인 독일의 성장에 주눅든 폴란드 국민들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마천루 건설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유럽연합 역내국 중에서 200m 이상 마천루 발주를 가장 많이 한다. 2030년까지 폴란드에 지어지는 높이 200m 이상 마천루만 20여 동이다. 주로 수도인 바르샤바에 짓지만 폴란드 침공의 원인인 그단스크, 폴란드 최대의 관광도시 크라쿠프 세 군데가 주도하고 있다.
군사

종교
그리스도교
가톨릭
폴란드인들은 유럽에서 알아주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다. 폴란드는 국교가 없는 세속 국가이지만, 2014년 기준 총 인구의 85.8%가 가톨릭을 믿어서 바티칸(100%), 이탈리아(83%), 리투아니아(77.2%), 크로아티아(86.3%), 포르투갈(81~88%), 아일랜드(78.3%) 등과 함께 가톨릭이 주류인 곳이다. 서기 966년에 가톨릭을 받아들였고, 지금까지 가톨릭 신앙은 폴란드의 문화 정체성 자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그리고 역대 교황 중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폴란드 마워폴스카 주 바도비체(Wadowice) 출신이다.
폴란드는 단순히 가톨릭의 교세가 큰 나라인게 아니라, 국민들의 종교성과 신앙심도 매우 깊은 국가이다. 일반적인 서유럽 국가들의 정기적 성당 출석율이 고작 10~20%인데, 폴란드는 1달에 1번 이상 정기적으로 성당에 출석하고 고해성사까지 정기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인구의 70~80%에 달하고 계속 유지된다. 영성체하는 사람들의 수와 사제 수도 는다고 한다. 또 '하느님을 믿거나 매우 독실하게 믿는다'고 답한 사람도 인구의 94%나 된다. 2010년대 들어서 성당 출석율이 줄어드는 듯 보이지만, 이는 국민들의 신앙심이 약해져서가 아니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교적을 폴란드에 남겨둔 채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 서유럽으로 노동 이민을 갔기 때문이다.
세속화 경향이 더 강한 영국은 계속해서 줄어드는 영국인 신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영국으로 오는 폴란드 출신 외국인들과 이민자들 덕택에 가톨릭 교세는 유지한다. 이 정도면 비서구 개발도상국 지역에서 한창 성장 중인 그리스도교 신자의 열렬한 종교성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수준이다. 이런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폴란드 가톨릭 교회는 현재 유럽 교회 가운데서 가장 '비유럽적'이다.
유럽 전역을 휩쓰는 성소자(聖召者) 부족 사태가 폴란드에는 없다. 사제와 수도자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은 다른 유럽 지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크라쿠프 교구에서는 신학교가 꽉 찼으니 성소자들은 다른 교구나 수도회를 알아보거나 1-2년 뒤에 입학할 것을 권고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폴란드의 성소자 부족 사태는 가톨릭보다는 오히려 폴란드 정교회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으며, 가톨릭 교회 중에서도 동방 가톨릭 교회만큼은 성소자 부족 사태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에서는 소련 붕괴 전까지 정교회에 대한 경원시 풍조가 현재 많이 사라졌다. 폴란드 정부와 가톨릭 교회가 동반 우경화하면서 정교회의 사회보수주의에 주목하고 이를 긍정 평가하는 시각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폴란드에서 가톨릭이 강세인 이유는 아일랜드와 비슷한데, 오랜 외세 침략과 시련의 역사 속에서 가톨릭이 국민적인 단합의 상징과 폴란드인들의 정체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와 민족 정체성이 섞이는 현상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는 영국과의 투쟁 속에서 '성공회=침략자 영국인의 종교, 가톨릭=아일랜드인이 믿어야 할 종교'로 인식하고 가톨릭을 국가 정체성으로 삼았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는 '가톨릭=서유럽인들의 종교, 정교회=러시아인이 믿어야 할 종교'로 생각했다. 이러다 보니 폴란드 문학이나 폴란드 영화에서 가톨릭은 꽤 중요한 키워드다. 별로 상관없는 상황에서도 가톨릭 관련 내용이나 인물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폴란드에는 지상파 방송이 5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것이고, 각 교구마다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고 한다. 이런 교회와 일반 매체들에서 교황의 동정을 날마다 보도한다. 교황청에서 조그만 메시지나 성명서를 발표하더라도, 폴란드 매체는 반드시 보도한다. 그리고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가톨릭 교회를 변호하려고 한다. 구약성경의 예언서를 읽을 때, 고난받는 예언자의 모습을 보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떠올리곤 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현 교황인 프란치스코에 대한 관심도 지대한데, 참고로 교황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폴란드어판 위키백과에서는 한국어 위키백과, 심지어 영어 위키백과에도 없는 프란치스코(교황)/한국 방문이 따로 독립된 위키 문서로 만들어질 정도다. 이게 문서로 만들어진 위키백과는 이탈리아어 위키백과와 함께 폴란드어 위키백과뿐이다. 폴란드에서는 이것을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한국이 동북아시아에서 가톨릭 신자가 많은 걸 보고 좋아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 교황이 사회 및 교회 내 문제에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반면에 교회와 일반 매체는 교황의 이런 자세에 이견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오히려 가톨릭 교회와 교황을 분리해서 보고자 하는 시각이 상대적으로 강해졌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난민과 타 종교 등 여러 문제에 대한 입장이 폴란드 가톨릭 교회 및 그와 유착하고 있는 여당 법과 정의당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난민에 대한 포용적 입장을 거듭 호소해온 현 교황과 달리 폴란드 가톨릭 교회의 상당수 주교와 사제들은 난민 수용에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여성의 교회 운영 참여 확대 등 교회 내 성별 문제에도 상대적으로 논의 자세가 유연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달리 훨씬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현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실정이다.
게다가 폴란드에서는 이미 90년부터 전통 가톨릭 단체들이 진출한 상황이었는데, 교회법상 합법적인 단체들부터 성 비오 10세회는 물론이고 교황공석주의자 단체까지 여러 전통 가톨릭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고, 근래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 반감을 품은 천주교 신자를 중심으로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런 전통 가톨릭 단체들의 존재는 제도권 폴란드 가톨릭 교회에 오른쪽으로 작용하는 압력 구실을 하여 가뜩이나 보수적인 폴란드 가톨릭 교회의 우경화를 촉진하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폴란드 전통 가톨릭 운동은 성 비오 10세회만 해도 60여 성당과 공소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활발하다. 성 비오 10세회는 폴란드인 사제를 80년대부터 서품하기 시작했으며, 동유럽관구 사무소도 바르샤바에 있다. 폴란드 성 비오 10세회 지부는 2000년 독자적으로 성모 기사회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폴란드에는 크고 작은 성당들이 최소 1100곳 이상 분포해있다. 이는 유럽 내에 있는 성당들 중 국가 단위로 가장 많은 것으로 한국의 교회보다는 많지 않아도 그만큼 많다. 특히 서쪽과 북쪽보다 슬로바키아에 인접한 남쪽에 많다는 것을 알수 있다.
한편 폴란드 내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인식되는 곳은 실롱스크주 쳉스토호바(Częstochowa)의 야스나 구라(Jasna Góra) 성당이다. 이곳에는 폴란드 최고의 성물인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Obraz Matki Boskiej Częstochowskiej)'라는 성화가 모셔져 있는데, 이 성화를 직접 보러 전 세계에서 매년 수백만 명이 야스나 구라 성당을 찾아 온다. 2011년 한 해 80개국에서 320만 명이 이곳을 찾았고, 그 중 14만 3983명은 폴란드에서 직접 발로 이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 성화의 제작 연도는 추정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1430년에 후스파에 의해 파손된 후 그 위에 손상된 부분을 다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녀 헬레나가 326년에 예루살렘에서 발견했다고 전해지며, 이후 콘스탄티노플과 베우스(Bełz)를 거쳐 14세기 경에 오폴레 공작이 쳉스토호바로 모셔왔다고 한다. 이 성화는 여러차례 기적을 일으켜 야스나 구라 성당과 폴란드를 지켜주었다고 믿어진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대홍수'로 신음할 때, 연방을 침공한 스웨덴군이 쳉스토호바까지 내려와 1655년 야스나 구라 성당을 포위하자 수도자들과 지원자들 250명이 스웨덴군 4천을 막아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것이 검은 성모상이 일으킨 기적이라고 믿었으며 더 나아가 대홍수 시기 전쟁의 양상까지도 바꿔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국왕 얀 카지미에슈 2세는 이듬해 1656년 4월 1일에 르부프(리비우)의 성당에서 검은 성모 마리아를 폴란드의 여왕이자 수호성인으로 "대관"했다.
현재 성화의 얼굴에는 흉터 2개가 있는데, 이 흉터에는 전설이 전해진다. 1430년 후스파가 야스나 구라를 약탈할 때 이 성화도 가지고 가려 했다. 하지만 마차를 끄는 말들이 도통 움직이질 않자 열받은 일당 중 하나가 이 성화를 땅에 메다 꽂고는 칼질을 두어 번 했는데, 3번째 칼질을 하려던 순간 땅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었다고 한다. 이후 수많은 화가들이 이 흉터를 없애보려 했지만, 그때마다 이 칼자국이 다시 드러나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공산국가 시절에도 가톨릭의 힘은 막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불교를 장려한 라오스와 함께 공산권에서 몇 안 되는 종교 장려 국가로 분류되었을 정도.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 되었을 당시에도 폴란드는 엄연히 공산주의 국가였다. 폴란드 공산정부는 국가 무신론을 제창했지만, 교황이 폴란드에 오면 귀빈으로 모시는 등 가톨릭을 통해 민중들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또한 폴란드의 가톨릭은 공산국가 시절에 민주세력의 주요 일원으로서 탈공산화 및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폴란드에 사는 튀르크 혈통의 타타르인들 중에서는 혼혈이 이뤄지면서 가톨릭을 믿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립카 타타르'라고 불리며 킵차크 칸국의 토크타미시가 망명할 때 따라 들어온 사람들인데 18세기까지도 수니파 이슬람 문화를 유지하며 살았다. 2차대전 이후로는 이들의 거주지였던 동부 폴란드가 대부분 러시아로 귀속되면서 폴란드 내 타타르인들은 수가 매우 줄어서 현재는 공식적으로 3천 명 정도로 파악된다. 현재도 립카 타타르인 대다수는 이슬람교 신앙과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지만, 무슬림이란 정체성이 희박한 경우에는 폴란드에 동화되어 가톨릭을 믿고 폴란드식 이름을 쓴다. 이들은 그리스 로도스 섬의 터키계 그리스인, 몰도바의 자치공화국인 가가우지아의 가가우즈인, 러시아 영내의 튀르크계 소수민족들(추바시인, 야쿠트인, 하카스인, 크랴셴인 등)과 같이 그리스도교를 믿는 튀르크계 민족이라 할 수 있다.
물론 2010년대 들어서 세계적인 탈종교화 경향에 이끌려 폴란드의 가톨릭 교세 또한 점진적으로 약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정치·사회 전반에 가톨릭 신앙의 영향력은 강하고, 법과정의당 집권 이후 더욱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낙태를 금지하는 폴란드 헌법재판소 결정을 계기로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성당을 습격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신성모독죄가 아직도 현행법이다. 걸리면 최대 징역 2년형일 정도. 사실 2017년 기준으로 유럽 국가 12개국을 포함한 총 71개국이 신성모독죄를 법에 명기했다고 한다.
동방 가톨릭 교회
한편 가톨릭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면서도 전례는 정교회식으로 하는 동방 가톨릭 교회 신자들도 소수나마 존재한다. 폴란드에서 동방 가톨릭 성당이 있는 지역으로는 쿠리우프카가 대표적이다. 폴란드 민주화 이후에는 콥트 가톨릭, 마론파, 시리아 가톨릭 등 중동의 동방 가톨릭 교회가 폴란드의 가톨릭과 교류하는 일도 잦아졌다.
개신교
폴란드 내에서 개신교를 보는 시선은 조금 복잡 미묘하다. 역사적으로 폴란드와 사이가 좋지 않은 스웨덴과 독일, 특히 프로이센의 종교였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처럼 부정적인 시각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소수 종교로서 최소한 이해는 해주자는 시각도 공존한다. 폴란드에서 개혁교회는 약 2천여 명 정도가 믿고 있다(2007년 조사 기준). 대부분이 옛 독일령 지역이 아닌 원래부터 폴란드였던 중앙부에 신자가 분포해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시대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난 신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때 폴란드에도 루블린, 자모시치를 중심으로 종교개혁 열풍이 불어서 폴란드인 귀족들이나 시민 상당수가 개신교로 넘어간 적도 있었으나, 대홍수 당시 폴리투 내 개신교 귀족들의 지원을 받은 스웨덴군이 폴란드 성당들을 대대적으로 약탈한 이후 개신교 신도들이 잠재적인 매국노 취급을 받게 되면서 점차 사멸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폴란드 분할 이후 프로이센 치하에서 개신교를 믿는 마주리아 방언 사용자들이 사실상 독일인에 완전히 동화되어 극소수만 남고 사멸해버린 경우도 있다. 반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옛 독일령 지역에 있던 루터교회들은 폴란드로 넘어간 뒤로는 사라지거나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되는 등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폴란드인들이 무조건 개신교를 독일색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폴란드의 루터교인들도 나치 독일의 만행에 분노해서 레지스탕스를 이끌다 수용소에 끌려가 죽은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들 중에는 목사도 있었다. 이들은 폴란드의 루터교회 신자들에게는 순교자로 추앙받으며, 가톨릭을 믿는 대다수 폴란드인들과 정교회를 믿는 폴란드인들에게도 침략자의 종교에서 배출한 폴란드의 애국열사라는 드라마틱함 때문에 종교를 초월하여 위대한 순국선열로 추앙받는다. 현재 폴란드의 루터교 신자 수는 약 5만 명 정도로 신자 대부분이 치에신과 실롱스크에 몰려있으며 교단 명칭도 직설적으로 루터 교회라 부르지 않고 아우크스부르크 고백 교회라고 부른다. 폴란드의 민주화를 기점으로 폴란드 그리스도교계가 영미권이나 다른 구 영국 식민지 지역의 성공회와 교류하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성공회 자체가 폴란드를 포함한 유럽 대륙 본토에서는 존재감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폴란드에는 성공회 교세가 거의 없다. 주로 폴란드 체류 영국인을 위한 성공회 성당이 존재하긴 한데 전통 가톨릭 성향 가톨릭 신자보다 숫자가 적을 정도로 미미하다. 사실 서유럽에서도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하면 정교회나 심지어 전통 가톨릭보다도 교세가 약한 교단이 성공회다.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서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잉글랜드와 거리상 가까운 프랑스 북부 쪽이 가톨릭 신자보다는 적지만 그나마 성공회 신자가 많은 편이다. 성공회 신자들의 인구 자체로만 따지면 오히려 유럽보다는 다른 대륙들의 구 영국령 국가들이 훨씬 많은데, 미국과 영연방 왕국들을 제외한 다른 구 영국령 국가들의 성공회 신자들을 합쳐도 서유럽의 성공회 신자들보다 더 많다. 무슬림 인구가 중동보다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 더 많은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정교회
가톨릭 신자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동유럽 쪽에 있다 보니 정교회 신자는 그나마 조금(50만 정도) 있으며, 독립 교회가 설립되어 바르샤바 대주교가 폴란드 전체 대주교를 겸임한다. 10만을 간신히 넘는 개신교보다는 정교회 신자가 훨씬 많은 편.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폴란드에서 자국 개신교 신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하게 "너 독일빠지?" 하는 것처럼 정교회 신자는 "너 러시아빠지?" 하는 시선도 아직 조금 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에도 정교회는 동쪽 변방의 농노들이 믿는 종교라는 인식이 강해서 이미지가 영 거시기했는데,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이미지가 나빠진 것이다. 폴란드의 정교회 신자 대다수는 소수민족인 우크라이나계(카자크 포함)나 벨라루스계 주민들이지만 토착 폴란드인 정교회 신자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러한 정교회 신자들은 대체로 러시아(정확히는 폴란드와 국경을 맞댄 칼리닌그라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의 접경지대에 많다. 특히 벨라루스와의 접경지대에 있는 비아위스토크가 폴란드 내에서 정교회 신자가 많기로 유명하다. 러시아 치하에서는 수도인 바르샤바가 폴란드에서 정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으나, 폴란드의 독립에 따른 폴란드 가톨릭의 부흥과 공산국가 시절 국가 무신론의 영향으로 바르샤바를 포함한 폴란드의 중심지에서 정교회의 힘은 급격히 약해졌다. 이 때문에 바르샤바는 폴란드 정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명목상으로만 간신히 유지하고, 앞서 말한 러시아(칼리닌그라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의 접경지대가 폴란드 정교회의 실질 중심지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로 인해 폴란드 내에서 정교회는 러시아 식민지 시절보다 위상이 크게 추락한 상황이다. 유대교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폴란드 내 정교회 신자들은 폴란드 제2공화국 시절에는 가톨릭 신자로, 폴란드 인민 공화국 시절에는 무신론자로 위장하여 비밀리에 정교회 신앙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다르지만(전자는 반러 성향, 후자는 국가 무신론) 두 국가 모두 정교회를 심하게 탄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술한 이유에 따라 폴란드에서 반정교회 감정이 과거보다 많이 완화된 후에는 정교회 신자로 커밍아웃하는 폴란드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까지 폴란드 정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기도 했으며, 2018년 정교회 분열 당시에는 폴란드 정교회가 러시아 정교회를 옹호하기도 했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폴란드 정교회 평신도들 중에는 반러 성향인 이들도 있다. 냉전 시절에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 폴란드 정교회를 탄압했음은 사실상 소련의 의도를 따른 것이었다. 우크라이나계 폴란드인과 벨라루스계 폴란드인은 우크라이나 본토인 및 벨라루스 본토인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인과는 엄연히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러 성향인 폴란드 정교회 신자들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가톨릭 강요 및 정교회 탄압과 소련의 국가 무신론을 모두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폴란드 정교회 평신도들 중 친러 성향인 이들은 주로 러시아(칼리닌그라드)와의 접경지대에 거주하는데 이들은 러시아계 혈통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바르샤바의 프라가 지구에도 폴란드 정교회를 믿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거주한다. 여담이지만 폴란드는 슬라브계 국가중에서 정교회와의 접점이 거의 없다. 물론 슬라브 국가들 중에서 가톨릭 국가도 있지만 이들은 초반에는 정교회를 믿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식이었지만 이쪽은 처음부터 가톨릭이었다. 다만 이와 별개로,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정교회 국가와의 접촉 자체는 매우 많았다. 본 문단의 상술한 내용을 봐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폴란드 내에서 정교회는 최대 소수 종교이기도 하다. 폴란드의 역사와 정체성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오리엔트 정교회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믿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가 대표적이다. 오늘날 폴란드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은 대개 폴란드 인민 공화국 시절을 전후하여 이주해온 케이스이고, 전근대 르비우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아르메니아 가톨릭 신도들은 사실상 사멸한 상태이다. 폴란드 민주화 이후에는 폴란드의 그리스도교계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뿐만 아니라 시리아 정교회, 콥트 정교회,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등 다른 오리엔트 정교회와 교류하는 일도 많아졌다.
불교
불교는 극소수지만 여기에도 신자들이 존재한다. 의외로 한국불교가 널리 퍼져 있는데, 숭산스님이 미국 다음으로 해외포교를 많이 한 곳이 바로 폴란드였다. 수도 바르샤바에는 도암사(구 관음선종 동유럽 본사)가 있으며, 폴란드 출신 승려 우봉선사(본명 야콥 펄, 현재는 입적)도 배출되었다. 불교 전래 자체는 1910년대부터 전래되었지만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은 1991년부터이다. 가장 널리 퍼진 종파는 티베트 불교로 25개 도시에 법당이 있고 10개의 도시에 소모임이 있으며, 그 다음인 관음선종은 6개 도시에 법당이 있고 12개 도시에 모임이 있다. 참조 링크 다른 가톨릭 주류 국가들에 불교가 거의 없는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
이슬람교
상술한 폴란드의 타타르인들이 주로 신봉하는데, 아무래도 폴란드의 타타르인들이 언어, 문화적으로 폴란드화가 엄청나게 진행된 탓에 이슬람교 세는 약하다. 타타르인 대다수가 이슬람교 신앙을 유지할뿐더러 오히려 이슬람교가 최대 소수종교인 러시아와는 대조적이다. 폴란드 내 무슬림 대다수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부터 대대로 살아온 립카 타타르인이지만 러시아령 폴란드 시절에 러시아 본토에서 이주해온 볼가 타타르인의 후손들도 있다. 다만 후자의 경우 대부분 전자 내지는 가톨릭을 믿는 일반 폴란드인에 동화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폴란드 내 타타르계 무슬림들 중 볼가 타타르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절대다수가 소련이나 러시아 연방에서 이주해온 경우다. 구소련권 출신인 타지키스탄이나 아제르바이잔 출신 무슬림들도 적잖이 존재하는데, 우버기사 상당수나 혹은 모스크에 보이는 무슬림 인구 상당수가 이 두 국가 출신이다. 다시 말해서 폴란드의 무슬림 체류자 상당수가 러시아어 사용자이기도 하다. 바르샤바에는 아예 러시아군 소속이었던 무슬림들이 묻힌 타타르 묘지도 존재한다. 이런 구소련 국가 출신 무슬림들이 아랍인이나 남아시아 출신 무슬림들에 비해 훨씬 더 자주 보이는 편이다. 유럽 난민 사태 당시 아랍 무슬림 난민 인구를 막은 폴란드이지만 타지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무슬림 체류자 인구가 적지 않기 때문에 바르샤바 같은 대도시에서는 무슬림들을 보기 어렵지 않은 편이다.
유대교
폴란드 유대인은 11세기 말부터 현 폴란드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0세기 후반부터 무슬림 통치 하 스페인의 유대인 상인들이 폴란드 영지를 방문하기 시작했으며, 11세기 말 십자군 전쟁 즈음해서는 유대인들이 폴란드 왕국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주요 정착지는 폴란드 왕국의 첫 번째 수도였던 그니에즈노였다. 폴란드 왕국은 십자군 전쟁 시기에는 다른 나라들의 유대인 박해와 비교하여 관용적인 대(對) 유대인 정책을 견지했으며, 유대인 상인의 유용성을 인정한 볼레스와프 3세(재위 1102 - 1138년) 치세에 이르러서는 유대인의 폴란드 이주가 가속화되어 폴란드 전역에 유대인이 정착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고, 미에슈코 3세 치세에는 동전에 히브리어가 새겨지기도 할 정도로 유대인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이렇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형성 전 이미 폴란드 주요 도시에 유대교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기존 주민이 영주와 농민으로 양분되어있던 폴란드에서 상인·기술자 등 중간계급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런 폴란드 유대교의 낙관적인 상황은 독일 기사단국의 확장과 로마 가톨릭 교회 성직자 일부의 반유대주의 부추김으로 위기에 빠지기도 했으나, 폴란드 왕국의 역대 통치자들은 (자신들이 가톨릭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반(反) 유대주의에 반대하여 관용적인 대(對) 유대인 정책을 유지했으며, 14세기 말에는 편입된 리투아니아의 유대인에게도 기존 폴란드 유대인과 동일한 권리를 보장하였다. 유대인의 폴란드 이주도 계속되어 1492년부터 16세기 전반부 사이에는 스페인 유대인 일부가 폴란드로 이주했다. 유대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에도 내내 폴란드 최대 소수 종교였는데 이 때는 리투아니아로부터 리트박 유대인이 유입되기도 했으며, 폴란드 분할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멸망한 뒤에도 폴란드의 유대교 세는 약화되지 않았다. 여러 외침 속에 대체로 폴란드에 충성한 유대인들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왕들은 거듭해서 유대인의 권리를 옹호했으며, 1764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유대인 수는 75만여 명으로 당시 전(全) 유럽 유대인 숫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폴란드 분할이 끝난 뒤에 유대교의 위치는 전보다 위태로워지게 되었지만 유대인의 수는 감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19세기 말 러시아에서 반유대주의에 따른 포그롬으로 많은 러시아계 유대인들이 그나마 덜 위험한 러시아령 폴란드나 안전한 독일령 폴란드로 이주하였으며, 독일령 폴란드 서부에는 폴란드 분할 전부터 이미 독일계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령인 크라쿠프 대공국에는 오스트리아인, 헝가리인, 체코인 등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여러 민족에 제각기 (종교만 빼고) 동화된 유대인들이 이주하기도 했다. 전간기 끝 무렵인 1939년 당시 폴란드 유대인은 약 350만여 명으로 폴란드 인구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로 인해 폴란드의 유대인들이 폴란드계·리투아니아계·러시아계·독일계를 막론하고 대거 목숨을 잃었을뿐더러 그나마 남은 생존자들도 전후(戰後)에 지속적으로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지로 이주하면서 현재는 폴란드 내 입지가 거의 사라졌다. 게다가 러시아와의 역사적 악연 때문에 폴란드 내에서 이미지가 영 좋지 못했던 정교회보다도 교세가 약해졌으며, 그로 인해 정교회가 폴란드의 최대 소수 종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400여 년 이상 유대교가 폴란드 최대 소수 종교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폴란드 내 유대인 대다수는 폴란드계 유대인이지만 실롱스크, 포즈난, 그단스크 등 구 독일령 지역은 소수의 독일계 유대인도 거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접경지대인 폴란드령 갈리치아는 우크라이나계 유대인들도 있다.
무신론
교육
대학은 다른 유럽국가들과 유사하게 학사 3년과 석사 2년으로 이뤄지며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석사학위까지 취득한다. 종합대학 체제보다는 경제대학, 생명과학대학, 공과대학 등 독립된 단과대학 형태가 많다. 비세그라드 그룹 국가 내 대학들이 거의 그러하듯이 공산주의 경제 체제에서 벗어나자마자 적극적으로 외국 학생들을 유치하기 시작했으며 의외로 상당히 많은 대학들이 영어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국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폴란드 대학들에 다니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 대표적인 대학으로는 크라쿠프에 있는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와 바르샤바에 있는 바르샤바 대학교가 있다. 최근 경제발전과 외국인 투자 흐름 속에 국제학교들도 속속 들어서고 있는데 수도인 바르샤바에 영미계 국제학교가 몇 군데 존재하며, 최근에는 브로츠와프에도 국제학교들이 설립되고 있는데 LG 주재원의 자녀들 또한 브로츠와프에 있는 국제학교들로 들어가는 경우들이 제법 있다. 학교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한국계 학생의 숫자가 비교적 다수에 속하고 졸업생 진학 대학 명단에 한국 대학들을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다. 영국계 학교라고 못 박혀 있지 않는 한 대부분 IB프로그램을 도입한 것도 한 가지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