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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 38(民國三十八)은 가장 대표적인 대체역사 소재 중 하나인 중화민국국공내전 승리를 가정한 세계관 입니다.
민국 38년(1949년)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여러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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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연방
ပြည်ထောင်စု မြန်မာနိုင်ငံတော်‌ | Union of Burma
국기 국장
ညီညွတ်ရေး, ဒီမိုကရေစီ, ဓနသဟာယ
화합, 민주, 연방
상징
국가 세상이 끝날 때까지
국화 파다욱
국조 버마공작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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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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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양곤
최대 도시
면적 676,578km2 | 세계 40위
내수면 비율 3.06%
접경국 중화민국 (민국 38) 중화민국
라오스 (민국 38) 라오스
태국 (민국 38) 태국
인도 인도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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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인구 61,706,358명(2022년) | 세계 25위
인구 밀도 91.2명/km2
민족 구성 버마족 (68.2%)
샨족 (9.3%)
카렌족 (7.1%)
라카인족 (4.2%)
중국계 버마인 (3.1%)
인도계 버마인 (2.5%)
몬족 (2.3%)
기타 (3.3%)
출산율 2.09명 (2021년)
기대수명 70.93세 (2021년)
언어 공용어 버마어
지역어 샨어, 몽어, 라후어, 리수어, 로힝야어
공용문자 버마 문자
종교 국교 상좌부 불교[1]
분포 상좌부 불교 87.9%, 기독교 6.2%, 이슬람교 4.3%, 기타 1.6%
군대 버마 연방군
인간개발지수 0.583(2020년) | medium | 세계 147위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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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행정구 7개 관구[2], 7개 자치주[3]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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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단일국가, 의원내각제, 공화제, 양원제, 대륙법계
민주주의 지수 6.36점, 결함있는 민주주의 (2021년)
(167개국 중 63위, 아시아 19위)
대통령
(국가원수)
윈 민
정부
요인
부통령 겸
민족의회 의장
두와 라시 라
연방 총리
(정부수반)
아웅 산 수 치
인민의회 의장 만 윈 카잉 탄
여당 틀:민주주의민족동맹
신임과 보완 틀:사회자유동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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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시장 경제
GDP
(PPP)
$6,254억 4,076만(2022년 IMF 기준) | 세계 37위
1인당 $10,139(2022년 IMF 기준) | 세계 107위
GDP
(명목)
$2,676억 8,218만(2022년 IMF 기준) | 세계 47위
1인당 $4,338(2022년 IMF 기준) | 세계 108위
국부 $1,800억 3,270만(2020년) | 세계 72위
무역 수출 $2,180억 5,600만(2020년)
수입 $2,360억 7,100만(2020년)
외환보유액 $1030억 2,500만(2020년)
신용 등급 무디스 Caa1
S&P B-
Fitch B
화폐 공식 화폐 버마 짯(ကျပ်, K)
ISO 4217 MM
국가
예산
1년 세입 $662억 5,220만(2020년)
1년 세출 $517억 4,380만(2020년)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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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6:30 (버마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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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1967년 5월 16일
유엔 가입 1948년 4월 19일
무비자입국 양측 모두 60일
주한버마대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대로28길 12
ccTLD
.bm
국가 코드
104, BMR, BM
국제전화코드
+95
차량 통행 방향
오른쪽

개요

버마 연방(ပြည်ထောင်စု မြန်မာနိုင်ငံတော်‌) 혹은 줄여서 버마(ဗမာ)은 동남아시아에 위치해 있는 연방제 공화국이다.
1948년 영국으로 부터의 독립 이후 1948년 4월 16일에 초대총선이 치뤄졌다. 그러나 심각한 수준의 민족갈등과 정치갈등으로 인하여 쿠데타까지 일어나는 막장상황으로 인하여 발전이 지지부진 한 상황이였다. 그러나 제2공화국의 수립 이후 빠른 발전이 이루어졌고 버마사회개혁운동을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임 대통령은 윈 민이며 연방총리는 아웅 산 수치이다.

버마의 수도이자 최대도시인 양곤
버마의 제2도시인 만달레이

국가 상징

국명

공식적인 국호는 버마 연방(ပြည်ထောင်စု မြန်မာနိုင်ငံတော်‌, Union of Burma)이며 대부분 버마(ဗမာ, Burma)라는 약칭으로 부른다. 버마는 버마 연방 인구의 68%를 차지하는 버마족을 의미하고 연방은 연방 체제를 의미한다. 그러나 버마인구의 68%가 버마족이란 뜻은 반대로 버마인구의 32%는 다른 민족이란 뜻이고 상당수의 소수민족 정당과 단체는 버마라는 국호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국명을 '미얀마'로 변경하자는 국민투표가 실시되기도 했으나 반대 87%, 찬성 12%, 무효 1%로 부결되었다.

국기


연방기
ဖက်ဒရယ်အလံ
지위 공식 국기
채택일 1948년 1월 4일
근거 법령 버마 연방 국기법
비율 9:5

버마 연방의 국기는 연방기이며 1948년 독립과 함께 채택되었다. 버마의 국기는 붉은 바탕과 왼쪽 상단에 청색 바탕에 5개의 작은 백색 별이 있는 형태로 별의 의미는 국민의 단결을 상징하며 붉은 바탕은 국민들의 용기를, 청색은 평화를, 백색은 순결을 상징한다. 이전에는 공작을 넣은 깃발을 사용하기도 했다.

국장


연방 국장
ဖက်ဒရယ်လက်နက်
지위 공식 국장
채택일 1948년 1월 4일
사용처
  • 국가기관
  • 국가문서
  • 여권
  • 훈장
  • 해외공관

버마 연방의 국장은 연방 국장으로 국장 가운데에는 파란색 바탕에 흰색 원이 그려져 있으며 월계수 사이에는 붉은색 미얀마 지도가 그려져 있다. 국장 양쪽에는 두 개의 미얀마의 전통적인 사자상인 친제가 그려져 있다. 국장 전체에는 미얀마의 전통적인 꽃 문양이 장식되어 있으며 국장 위에는 하얀색 별이 그려져 있다.

국가


세상이 끝날 때까지
ကမ္ဘာမကျေ

지위 공식 국가
채택일 1948년 1월 4일

버마 연방의 국가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로 사야 틴(1892-1950)이 제작하였고, 1947년에 국가로 제정되었다. 이 노래는 서양식 스타일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8년에 제정된 미얀마 헌법에 따르면 미얀마 국내에서는 서양식 스타일에 노래 전에 미얀마식 스타일의 노래가 연주되기도 한다.

역사

종전과 독립

버마 독립 당시 국기 게양식[4]

1945년 9월 13일 제2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종결되고 버마에는 종전의 지배자인 영국군인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점령기 동안 항일 투쟁을 했던 아웅 산 장군의 반파시스트 인민자유동맹(AFPFL)과 버마 공산당을 중심으로 반영 운동을 전개했다. 이미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빨빠진 호랑이로 전락하고 있는 영국은 더 이상 식민지를 유지할 여력이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아웅 산이 직접 런던으로 와 담판을 벌이자 1948년 1월 4일 영국정부는 공식적으로 버마를 포기하고 독립을 시켜주기에 이른다. 4월 16일 치뤄진 초대 총선에서 AFPFL가 압승을 거두고 AFPFL을 비롯한 여러개의 정파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새로운 정부를 구성한 아웅 산과 AFPFL은 버마 연방 초대 연방 총리에 취임했고 소수민족들의 자치권과 정치자유를 인정하는 의원내각제 연방국가 버마 연방이 탄생하게 되었다.

제1연방과 10.21 사태

버마의 초대 인민의회 (하원)

1948년 공식적으로 버마 연방이 출범했으나 당시 버마 내 상황은 혼란하기 그지없었다. 영국 식민통치 기간동안 영국정부가 행한 소수민족과 버마족간의 이간질 정책으로 인하여 버마족과 소수민족 사이에는 깊은 감정의 골이 생겨버렸다. 버마의 국부인 아웅 산 장군의 주도로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버마식 대타협을 통해 연방국가가 세워졌어도 독립을 원하는 소수민족과 버마족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세력간의 다툼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엇으며 심지어 버마의 국부인 아웅 산도 암살당할 뻔한 숱한 위기들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버마는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었고 미중 양국의 지원과 기술자 파견등으로 차츰차츰 경공업을 발전시키는 등의 성장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1962년 경제정책 및 토지개혁과 관련하여 AFPFL내에서 분란이 일어나고 버마의 정치가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졌다. 거대 여당이였던 AFPFL에서 분란이 일어나 AFPFL내의 우파가 버마인민통일전선을 결성하여 단체로 탈당하고 좌파가 사회주의 계획당을 창당해 탈당하자 재총선이 실시되었으나 어떤 정당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자 버마는 무정부 상태에 돌입한다. 여러 정파가 정국의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물밑에서 협상과 파기를 이어나갔다. 현재 버마 연방의회에는 원내정당이 5개 밖에 없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20여개의 소수민족정당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즉 현재 소수민족연대의 자리를 그들이 매꾸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동서를 막론하고 고만고만한 정당이 많다는 것은 연정의 구성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렇게 정국이 혼란이 빠지고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자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의 당수인 네 윈이 쿠데타를 일으키기에 이른다. 당시 아웅 산은 발에 난 종기로 인하여 고향인 낫마욱에서 치료를 받던 중이였고 무정부 상태였기 때문에 양곤의 반군은 순식간에 수도를 점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쿠데타 전날인 10월 20일에 대규모 호우주의보가 발령되어 대부분의 의원들은 양곤에 없었고[5] 군사반란 소식을 들은 의원들은 급하게 중부지역의 만달레이로 모여서 우 누를 임시총리로 선출하였다. 우 누 총리는 버마 연방군에 출동명령을 내려 양곤을 포위시켰고 중국에 파병요구를 하여 중국군 특수부대와 버마군이 함께 양곤으로 진입, 시가전이 벌어졌다. 결국 쿠데타군은 진압되었으며 네 윈은 즉결 처형되었다.

자유운동과 제2연방 그리고 현재

버마 자유운동 당시 양곤시내

10.21 사태는 버마에 큰 충격을 남겼다. 특히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자인 네 원과 쿠데타에 호응한 일부 버마 공산당원들로 인해 반 좌파적인 기조가 버마전역을 뒤덮었다. 결국 버마내에서 공산당과 극좌 사회주의자의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인민의회와 민족의회에서 고속으로 통과시켰고 버마는 이제 극단적인 반 좌파 운동의 늪에 빠지게 된다. 버마 공산당은 불법화 되었으며 좌파인사들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이 이루어졌다. 물론 버마의 국부인 아웅 산이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AFPFL내의 좌파인사들은 그 정치적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으나 민간의 친소파, 공산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나락으로 보내버렸다. 또한 AFPFL내의 좌파인사들도 이런 정치적 탄압을 거들고 좌익의 거두 아웅 산은 정계를 은퇴하면서 버마는 말그대로 좌파의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탄압에 AFPFL내 진보세력은 반발하였고 마침 1968년 68혁명의 기운이 아시아로 상룩하자 젊은층을 중심으로한 일명 버마 반정부 운동이 일어났고 결국 반공법이 폐지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이당시에 좌파세력에서도 무분별하게 특정정파 (반공주의자, 사회주의 계획당)을 지지한것에 대한 반성이 있었고 결국 좌우파 간의 합의하에 방어적 민주주의를 골자로 한 신헌법을 통과되어 제2연방이 선포되었다. 또한 AFPFL도 당내 우파 중심의 국민통일당과 좌파중심의 NLD로 분당되면서 버마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고 이후 내각의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버마사회개혁운동으로 버마가 민주주의 국가임을 각인시켰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치

의원내각제 국가로 명목상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지만 실권자인 정부수반은 연방 총리이다. 내각제 국가중에서는 특이하게도 부통령이 존재하는데 부통령의 경우는 사실상 하는 일은 거의 없으나 상원(민족의회)의장을 겸한다. 정당구도는 진보주의 성향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와 보수주의 성향의 국민통합당이 대립하는 형상이다. 그러나 양당의 전신은 모두 아웅산 장군의 반파시스트 인민자유동맹이기 때문에 양당의 사이는 좋은 편이며 국민통일당의 경우에도 세계의 보수정당 중에서는 가장 왼쪽에 있는 정당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입법부

버마 연방의회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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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연방의회
2019.11.08 - 2022.11.08
여당

민주주의민족동맹
125석 · 218석
신임과 보완

사회자유동맹
23석 · 40석
야당

국민통일당
63석 · 136석

소수민족연대
16석 · 31석

버마 공산당
7석 · 15석
무소속 2석 · 1석
재적 217석 · 425석
공석 0석
좌측은 민족의회(상원) 의석 수, 우측은 인민의회(하원) 의석 수

버마 연방의 입법부는 연방의회로 상원인 민족의회과 하원인 인민의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방의회는 중선거구제로 선출하며 인민의회는 소선거구제로 선출한다.

외교

한면관계

광복 이후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으며 현재에도 수많은 교류가 오가는 중이다.

중면관계

우방국으로 상호안보조약기구 회원국이다.

버마 - 아세안 관계

버마는 아세안의 회원국이며 버마와 타 아세안 국가들의 관계 또한 매우 우호적이다.

각주

  1. 버마 연방 헌법 제361조 (연방은 대다수 국민이 공언하는 신앙으로서 불교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한다)에 의하여 국교로 지정, 단 불교신앙을 강제하진 않음
  2. ပြည်နယ်, 버마족들이 주로 거주하는 행정구역.
  3. 버마족 이외의 소수민족들이 주로 거주하는 행정구역.
  4. 좌측의 신사는 버마 총독 휴버트 랜스, 그 옆에는 버마의 초대 대통령 사오 쉐 타익
  5. 네 윈 또한 이를 알았으나 만약 여기서 더 지체한다면 쿠데타 시도가 발각될 가능성도 있었으므로 그대로 감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