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리아 왕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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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0일 (일) 23:25 기준 최신판

나일리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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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리아 왕국
Kingdom of Nailia
кเภﻮ๔๏๓ ๏Ŧ ภคเLเค
나일리아 반도 통일 이후 강역
제2차 키오피-나일리아 전쟁 직후 최대 강역
클레이시아 전쟁 패전 당시 강역
나일리아 왕국 강역의 변천사[1][2]
기원전 367년 ~ 1781년 10월 14일
(약 2,148년)
나일리아 반도 통일 이전 10.14 나일리아 쿠데타 이후
고대 나일리아 나일리아 제국
위치 클레이시아 전역 (전성기 기준, 982~1342)
수도 나일리아 (B.C. 367 ~ 984)
그레이터리시움 (984 ~ 1507)
나일리아 (1507 ~ 1781)
정치 체제 절대군주정 중앙집권체제 → 전제군주정 지방분권체제 → 전제군주정
국가 원수 국왕
면적 16,239,691㎢[3]
언어 중세 가이아어 → 중세 나일리어 → 엘리시스어
민족 나일리족
엘리스족 (~ 15세기)
가이아족 (~ 16세기)
국교 없음 (정교분리)
사실상 나일리교 (~ 5세기)
주요 황제 나일리아 1세
로베르토 1세
인테르 1세
토리노 1세
토리노 9세
필리피프 5세
주요 사건 B.C. 367년 나일리아 반도 통일
476년 남·서클레이시아 진출
945년 키오피-나일리아 전쟁
982년 제2차 키오피-나일리아 전쟁
1342년 9월 26일 엘리시움 왕국의 독립
1489년 3월 18일 나일리아 전쟁
1495년 6월 29일 클레이시아 전쟁
1781년 10월 14일 10.14 나일리아 쿠데타
현재 국가[4] 엘리시움 엘리시움
위클리 위클리
나일리아 나일리아

개요

나일리아 왕국(Kingdom of Nailia, кเภﻮ๔๏๓ ๏Ŧ ภคเLเค)은 기원전 367년에 성립되어, 1781년 10월 14일 10.14 나일리아 쿠데타가 일어나기까지 존속했던 국가이다.

나일리아라는 공동체 자체는 이보다 한참 이전인 기원전 9세기 초엽부터 존재했으며 (고대 나일리아), 고대 나일리아 시기에는 도시국가였기에 '나일리아 왕국'의 시작은 기원전 367년 리베리아를 멸망시키고 도시국가에서 벗어나 왕정을 건립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 이후 다사다난한 전쟁들이 많았지만[5] 나일리아 왕국은 1781년 10월 14일 제국시대제정 체제로 전환하기까지, 그러니까 대충 세어봐도 약 2,000년 가량을 존속했던 국가이다.[6]

역대 최초의, 그리고 앞으로도 유일할 클레이시아 전역을 통일한 국가이다. 고대 가이아클레이시아의 고대 시대를 이끌었다면, 나일리아 왕국은 중세 ~ 고전후 시대까지 클레이시아 지역을 이끌었던 국가다. 약 2000년 간 존속하고, 300년 동안 클레이시아 전역을 통일한 채로 전성기를 유지하며 이후 엘리시움의 '팍스 엘리시움' 시대가 오기 전까지 클레이시아 역사상 최고의 영광을 이뤘다고 여겨지는 국가다.[7]

역사

나일리아 왕국의 대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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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184년을 존속한 역사가 방대한 국가답게 나일리아 왕국의 역사는 분량도 많고 인기도 많은 유명한 역사다.

나일리아 반도 통일

기원전 367년 나일리아 반도 세계에서 강력한 도시국가였던 리베리아를 무너뜨리고 넓은 면적을 수복하면서 단일국가인 '나일리아 왕국'을 성립한다. 이후 북쪽으로 도시국가 원정을 지속하면서 357년에는 렉실리아를 제외한 반도 통일에 성공하며 영향력을 넓혀갔다. 계속해서 저항하던 나일리아 반도 북부의 렉실리아마저 기원전 320년 전쟁 끝에 정복에 성공했다.

나일리아 왕국은 나일리아 왕조 지휘 아래 더 넓은 영토를 원했고 실제로 북쪽 도시국가들을 개척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이미 나일리아가 위치한 클레이시아의 동남부는 물론이고 남서부, 북서부까지 가이아 왕국이 싸그리 정복한 상태였기에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8] 이러한 팍스 가이아(Pax Gaia)는 무려 원기 4세기, 그러니까 당시 시점으로부터 약 600년 뒤까지 이어졌다. 그동안 왕조는 두 번[9], 국왕은 11번[10] 바뀌었다.

4세기 말, 가이아 제국이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다. 349년 제2차 서이스톨리아 전쟁에서의 완패를 기점으로 키오피 왕국이 서쪽으로 계속해서 진격하면서 가이아 제국이 이스톨리아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었고, 이는 가이아의 종말뿐만이 아니라 나일리아 왕국의 영토 확장과도 연결되는 아주 중요한 도화선이 되었다.

가이아 정복 이후

471년, 키오피 왕국이 바다를 건너 가이아 제국을 침공한다. 가이아 제국이 철수했던, 바로 그 이스톨리아 지역에서 키오피 왕국은 상상도 못할 만큼의 강력한 함대를 이끌면서 순식간에 클레이시아 전역을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그 사이를 틈타 나일리아 왕국은 인테르 1세 치하 아래 서쪽으로 아주 조금씩 공격하기 시작하며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476년 시점에서 나일리아 왕국은 클레이시아 서부·남부 일대 전역을 가져오게 되었고, 가이아 정복을 통해 북부·동부 일대를 차지한 키오피 왕국과 함께 클레이시아의 패권을 양분할 체제로 이어가게 된다.

영토 확장 이후 로베르토-인테르 왕조 치하의 나일리아 왕국은 국왕 중심의 철저한 절대군주정 중앙집권체제를 갖추고,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국왕은 각 지방을 다스리는 관리를 거느리고 군대 통수권과 행정권을 획득하였으며, 나일리교 시그니아[11]의 수장이자 총대주교 역할도 담당했다. 동명의 수도인 나일리아는 조약을 맺은 남이스톨리아 국가들과 활발한 무역을 진행하며 세계 최대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성장은 아틸란트 왕조 시기에도 계속되었다. 나일리족들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달시키면서 웨스티시아, 이스톨리아는 물론이고 적인 키오피 왕국에까지 문화를 퍼뜨렸다. 반면 적인 키오피 왕국은 클레이시아 관리하랴, 이스톨리아 관리하랴 바빴고 당연하다시피 지방 행정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몇몇 지역에선 독립의 움직임까지 보이기 시작했고, 가이아족은 무려 쿠데타까지 계획했다.

키오피 왕국과의 두 차례의 전쟁

토리노 1세를 필두로 한 토리노 왕조 시대의 나일리아 왕국은 로베르토-인테르 왕조아틸란트 왕조 시대 활발한 무역과 문화 전파로 성장을 이뤘던 과거와는 필연히 달랐다. 즉위한 918년부터 토리노 1세는 국방비를 대폭 증대하고 군사력을 확대하였으며, 특수군단을[12] 설립하며 전쟁을 대비했다.

940년, 나일리아 왕국은 지금의 보헤미안 북부 일대와 그레이터리시움 서부 지역 침공을 시작으로 키오피-나일리아 전쟁을 일으킨다. 이스톨리아의 독립 저항에 바빴던 키오피 왕국은 갑작스런 나일리아 왕국의 침공에 대비하지 못했고, 결국 945년 1차 전쟁에서 나일리아 왕국이 보헤미안 북부, 그레이터리시움, 센트럴 스테이트 지역을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키오피 왕국의 패배 요인은 이러했다. 전쟁에 집중하고 있던 사이 이스톨리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농민들의 봉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전쟁을 포기하면 클레이시아 지역을, 그렇다고 전쟁에 몰두하면 이스톨리아 지역을 빼앗기는 상황에서, 군사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본토인 이스톨리아를 지키는 편이 나았기에 전쟁을 깔끔하게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키오피 왕국은 나일리아 왕국이 한 번 더 침공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첫 번째 전쟁을 끝나고 나일리아 왕국은 두 번째 전쟁을 위해 기사 출신이었던 토리노 1세를 필두로 철저한 작전들을 계획하기 시작한다. 장장 60대가 되어가는 나이에도 밤을 새며 침공을 준비했고, 마침내 982년 제2차 키오피-나일리아 전쟁을 일으키고야 만다. 전쟁은 커녕 폴리네시아족과 아르메노족의 독립부터 임시방편으로 방어하고 있던 키오피 왕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전쟁이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키오피 왕국이 클레이시아 지역에서의 전면 철수를 선언하며, 나일리아 왕국은 클레이시아 전역을 차지하게 된다.

팍스 나일리아 체제

클레이시아 전역을 차지한 나일리아 왕국은 왕국 자체의 역사는 물론이고 나일리족 공동체 역사상 최전성기를 일궈낸다. 이 시기를 팍스 나일리아(Pax Naili)라고 한다. 고대 가이아키오피 왕국의 전례를 보고 대륙간 진출은 일절 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5명의 현제[13]를 중심으로 자국의 영토를 성장시키는 데에 집중했다. 절대적인 중앙집권체제에서 벗어나 20주 체제의 지방 분권 체제를 확립했고, 아케론을 둘러싼 노던웨스 지역을 신도시라고 명명하며 크게 발전시키는 정책을 벌였다. 또한 행정수도를 그레이터리시움에서 센트럴 스테이트로 옮기면서 수도 집중화 문제도 해결하였다.

이런 나일리아의 전성기는 클레이시아 전역을 수복한 채로 300년 이상을 유지하며 영토를 유지한 채로 근세의 대항해시대에 안정적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스톨리아와의 해상 무역을 통해 외교적으로도 입지를 갖췄으며, 본토와 멀리 떨어져있는 클레이시아의 섬들도 정복하면서 외교적인 영향력을 증폭시키기 시작한다.

엘리시움 왕국 독립 이후

이러한 팍스 나일리아 체제를 깨트린 건 엘리스족들이었다. 14세기 중엽인 1342년, 엘리스족은 지금의 아케론 지역에 독립된 왕정인 엘리시움 왕국을 건립하게 되고, 당시 아케론을 포함한 노던웨스 지역에 신도시 건설 계획을 준비하고 있던 나일리아 왕국의 격한 견제로부터 저항하면서 독립국가로서의 존재를 확립했다.

엘리시움 왕국은 점차 세력을 넓혀가면서 아케론 전역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나일리아 왕국이 건설하고 있던 신도시를 바탕으로 왕정은 점점 힘을 키우기 시작했고, 루이스 3세루이스 4세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더 발전한 중앙집권체제 전제군주국이 형성되었다. 반면 나일리아 왕국은 레트로폴리스 원정에서 크게 패배하며 팍스 나일리아 종결 후 정체기를 맞게 된다.

나일리아 전쟁클레이시아 전쟁

 자세한 내용은 나일리아 전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클레이시아 전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힘을 키운 엘리시움 왕국은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을 펼치기 시작한다. 1489년 3월 18일 나일리아 전쟁을 일으키며 1489년 7월 4일 지금의 리트보아, 보리스트빌, 알로스키 지역을 탈환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바로 6년 뒤인 1495년 6월 29일 클레이시아 전쟁을 발발시킨다. 12년 간 지속된 전쟁에서 엘리시움 왕국은 그야말로 '자이언트 킬링'을 실현하면서 노스트리아, 센터에리어, 케이커스 지역을 전부 가져오고 나일리아 왕국을 다시 나일리아 반도로 돌려보내게 된다.

이렇게 나일리아 왕국은 총 500년 간 유지했던 클레이시아의 패권국 자리를 엘리시움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나일리아는 다시 1,800년 전의 나일리아 반도로 돌아가게 되었다.

왕정 말기, 제국의 시작

왕정 말기에는 필리피프 왕조가 나일리아를 다스렸다. 전쟁으로 지역들을 많이 뺏긴 시점에서 수도 나일리아를 더 발전시키는 데 집중했고, 좁아진 영토에 맞춰 지방 자치 제도에서 다시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로 체제를 변경했다.

그러나 이는 얼마 가지 않았다. 디아블로 1세10.14 나일리아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왕권을 잡고, 식민제국인 나일리아 제국을 건립하며 나일리아 왕국의 역사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나일리아 제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정치

역대 국왕


나일리아 왕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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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10대 11대 11대
밀란트 3세 밀란트 4세 밀란트 5세 로베르토 1세
12대 13대 14대 1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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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21대 22대 23대
토리노 1세 토리노 2세 토리노 3세 토리노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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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 9세 필리피프 1세 필리피프 2세 필리피프 3세
32대 33대
필리피프 4세 필리피프 5세
나일리아 왕정 · 나일리아 제정 · 나일리아 공화정
  • 나일리아 왕조
    • 나일리아 1세 (B.C. 367 ~ 311)
    • 나일리아 2세 (B.C. 311 ~ 246)
    • 나일리아 3세 (B.C. 246 ~ 189)
    • 나일리아 4세 (B.C. 189 ~ 114)
    • 나일리아 5세 (B.C. 114 ~ 36)
    • 나일리아 6세 (B.C. 36 ~ 51)
  • 밀란트 왕조
    • 밀란트 1세 (51 ~ 123)
    • 밀란트 2세 (123 ~ 176)
    • 밀란트 3세 (176 ~ 232)
    • 밀란트 4세 (232 ~ 297)
    • 밀란트 5세 (297 ~ 367)
  • 로베르토-인테르 왕조
    • 로베르토 1세 (367 ~ 392)
    • 로베르토 2세 (392 ~ 441)
    • 인테르 1세 (441 ~ 516)
    • 인테르 2세 (516 ~ 572)
    • 인테르 3세 (572 ~ 619)
    • 로베르토 3세 (619 ~ 672)
  • 아틸란트 왕조
    • 아틸란트 1세 (672 ~ 717)
    • 아틸란트 2세 (717 ~ 793)
    • 아틸란트 3세 (793 ~ 856)
    • 아틸란트 4세 (856 ~ 918)
  • 토리노 왕조
    • 토리노 1세 (918 ~ 990)
    • 토리노 2세 (990 ~ 1046)
    • 율리누스 1세 (1046 ~ 1102)
    • 토리노 3세 (1102 ~ 1167)
    • 토리노 4세 (1167 ~ 1224)
    • 토리노 5세 (1224 ~ 1296)
    • 토리노 6세 (1296 ~ 1355)
    • 토리노 7세 (1355 ~ 1417)
    • 토리노 8세 (1417 ~ 1488)
    • 토리노 9세 (1488 ~ 1496)
  • 필리피프 왕조
    • 필리피프 1세 (1496 ~ 1557)
    • 필리피프 2세 (1557 ~ 1608)
    • 필리피프 3세 (1608 ~ 1661)
    • 필리피프 4세 (1661 ~ 1718)
    • 필리피프 5세 (1718 ~ 1781)

사회

언어

초기부터 가이아 정복 시기까진 패권국이었던 고대 가이아를 따라 중세 가이아어를 사용하였으며, 이후 중세 가이아어를 살짝 변형한 중세 나일리어를 쭉 사용하다가, 클레이시아 전쟁 이후로는 엘리스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되 나일리어와 엘리스어를 통용해 사용했다.

종교

 자세한 내용은 나일리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기본적으로 나일리아 왕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정교분리 국가다. 그러나 헌법상으로만 지정되지 않았을 뿐이지 5세기까진 사실상의 국교는 나일리교였다. 나라의 규모가 넓어지며 다민족 국가가 되면서 나일리교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문화

 자세한 내용은 나일리아/문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영토 확장으로 다민족국가가 되기 전까지는 나일리아 왕국은 온전히 나일리족나일리교 문화만 존재했다. 반도 통일 이후 평화를 바탕으로 나일리족들은 흔히 이르는 '클레이시아 문화'의 기초를 닦았다.

철학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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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움의 역사
ђเรՇ๏гא ๏Ŧ єLאรเย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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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나일리아 반도 통일부터 제국 건립 이전까지만을 포함한다. 그 이후의 역사에 대해선 나일리아 제국리스본 점령하 나일리아 참고.
  2. 상당히 많이 간략화해놓은 버전으로, 자잘한 전투들을 모두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3. 클레이시아의 총면적이다.
  4. 전성기 기준
  5. 나일리아 왕국은 큰 전쟁을 4번이나 치뤘고, 전쟁이 끝날 때마다 영토 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키오피-나일리아 전쟁에선 이스트식스를 제외한 센터에리어 지역과 아이스리카 지역을 탈환하고, 제2차 키오피-나일리아 전쟁에서는 클레이시아 전역을 가져왔으며, 나일리아 전쟁에선 노던웨스 지역을, 바로 6년 뒤 발발한 클레이시아 전쟁에서는 나일리아 반도를 제외한 클레이시아 전역을 엘리시움 왕국에게 탈환당했다.
  6. 정확히는 2,148년이다.
  7. 외교적 영향력과 객관적인 군사력에서 비교하면 엘리시움을 따라올 나라가 없지만, 유일한 클레이시아 통일 국가라는 점에서 고평가된다.
  8. 당시 가이아의 영향력은 역사상 고대 가이아나일리아를 한번도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할 정도였다.
  9. 나일리아 왕조-밀란트 왕조-로베르토-인테르 왕조
  10. 나일리아 1세-나일리아 2세-나일리아 3세-나일리아 4세-나일리아 5세-나일리아 6세-밀란트 1세-밀란트 2세-밀란트 3세-밀란트 4세-밀란트 5세-로베르토 1세
  11. 절, 교회, 성당의 개념이다.
  12. 현대의 특수부대와 비슷한 개념이다. 제1특수군단과 제2특수군단으로 분리되었으며, 주로 기습이나 정찰, 첩보임무 등을 담당하였다.
  13. 토리노 2세-율리누스 1세-토리노 3세-토리노 4세-토리노 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