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색의 교향곡: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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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5일 (목) 22:36 기준 최신판

서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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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색의 교향곡(Ashed Symphony)
나는 어릴 적부터 거짓말을 할 때면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
이제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릴 적에는 이것 때문에 거짓말을 들켜 혼난 적이 더러 있었다. 아빠가 아끼는 물건 하나를 망가뜨려서 몰래 숨겼다거나, 숙제를 다 끝내지 않았음에도 진즉 다 끝났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슈퍼 아주머니에게 맞은 적 없다고 둘러대거나.
……응?
아, 그렇다. 우리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그 가난에 끔찍하게도 적합한 질나쁜 삶을 살았다.
우리집이 처음부터 가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내가 기억은커녕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어린 시절, 아빠는 미래가 유망한 중견기업의 CEO였다. 젊을 때부터 사업 재능이 남달랐던 아빠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계획과 실천을 아끼지 않았고, 그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한 치의 의심이나 망설임도 없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창업을 시작한 아빠는 그 시작보다도 더 일찍 성공의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사회는 아빠의 사업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아빠는 ‘성공한 청년’이라는 타이틀을 어깨에 얹고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작게나마 아빠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마다 아빠의 곁을 지켜 주던 창업 동료 중 한 명이었다. 두 사람은 일이 잘 풀릴 땐 기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속상해서 언제나 시간을 함께했고, 그런 두 사람의 동료애가 애정으로 발전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토끼 같은 자식을 낳았다. 은혜 은에 길 영 자를 써서, 서은영이라는 이름으로 짓게 되었다. 훗날 나의 누나가 된다.
7년이 지난 후, 둘째를 낳았다. 은혜 은에 넉넉할 우 자를 써서, 서은우. 바로 나였다. 나와 누나는 부모님이 우리에게 탄생 다음으로 처음 내려준 선물처럼 언제나 은혜를 길고 넉넉히 베풀라는 가르침을 끼니처럼 들으며 자랐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이 있다. 심지어는 CEO로.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도 있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이 있다. 아빠의 삶은 이렇게나 잘 풀려도 되는 건가 싶으리만치 순탄하게만 흘렀다. 그래, 물론 아빠가 창업을 하기 이전까지의 삶은 어땠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싶다. 흐릿한 기억 속에 할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이 내 시야 위에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내려다 보고 있던 것으로 보아, 적어도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나 잘 풀려도 되는 건가 싶다. 삶이 순탄하기만 하다면 그것이 비로소 삶인가. 바로 그것이 유토피아라고 부를 만하지 않겠는가. 모두가 알다시피, 안타깝게도 유토피아는 실현할 수 없는 모순에 가깝다. 그리고 더욱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삶 또한 그랬다.
삶의 균형을 0으로 맞추려는 누군가의 장난이라도 보는 것만 같았다. 아빠의 삶은 지금껏 가파른 상승 곡선이었으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래, 기점이 된 그 어느 순간.
아빠의 창업은 분명 도전적이었지만, 그것은 결코 홀로 이루어낸 업적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아빠의 사업을 옆에서 아낌없이 돕고 함께했던 동료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엄마였다. 또 다른 한 명은 아빠와 공동 창업주가 되어, 아빠와 아저씨는 서로를 보좌하며 지금의 기업을 세울 수 있었다.
그 시점에서,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전에, 아빠는 알아차렸어야 했다.
아빠는 사업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지만 사람을 보는 안목은 다소 부족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아저씨에게 보통의 재능을 뛰어넘을 만큼 사람을 가지고 노는 재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아빠가 그 아저씨를 만난 건 인생 최대의 업적이자 실수다.
아빠와 아저씨의 사업이 성장해 가면서, 두 사람은 더욱 더 많은 부를 손에 쥐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사업의 모든 수익은 두 사람이 거의 절반씩 나눠 가졌지만 말이다. 그를 감안해도 분명 보통의 직장인과 비교하면 ‘재벌’이라고 부를 만한 정도지만, 아저씨에게는 그마저도 부족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저씨는 아빠를 불렀다. 최근 한창 사업을 추진 중인 한 지방에 다소 문제가 생겨서, 아무래도 CEO인 우리가 직접 지부를 방문해야 할 것 같다고. 그 시점에서 두 사람의 신뢰도는 더할 나위 없었기 때문에, 아빠는 아저씨의 그 말만 듣고 정황을 직접 살펴볼 생각도 없이 먼 지방으로 내려갔다.
혼자 남은 아저씨는 때를 노리는 사냥꾼처럼 그 틈을 노렸다. 사업을 투자해 주던 주주들을 모아 긴급 주주회의를 열었고, 거기서 아빠가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말했다는 거짓을 늘어놓았다. 아저씨는 사람을 가지고 노는 재주가 있다. 아저씨가 철저한 계획에 의해 말을 하면 그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 정재계에 오래 몸을 담은 주주들이라도 누구든 아저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저씨의 말에 주주들은 사업 총책임자의 이름에서 아빠의 이름 석 자 ‘서백호徐百護’를 제명했다.
몇 주 간의 출장을 마치고 아빠가 지방에서 돌아왔다. 돌아온 아빠는 자신의 업무에 복귀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입구 프론트가드에서부터 가로막혔다. 가드는 아빠에게 권한이 없으니 돌아가라는 영문 모를 소리만 늘어놓았고, 자신의 사원증을 드밀어 보여 주어도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다. 단지 의아한 것은 가드나, 안내원이나, 다른 누구에게서도 아빠를 전 대표라고 부르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는 것이다.
아빠는 다소 뒤늦게 정황을 파악했다. 공동 창업주였던 아저씨가 자신이 지방 출장을 간 사이 사업을 통째로 먹기 위해 간사한 구슬림으로 자신의 권한 전부를 손쉽게 제명했고, 자신이 외치는 항의는 그들에게 전혀 들리지 않았다는 것. 그 지방 출장마저, 자신의 권한을 빼앗기 위한 권모술수였다는 것. 아마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에게 접근한 목적이 종국에는 이를 위함이었다는 것.
그 후로부터 아빠는 사업을 성공시켰던 때만큼이나 빠르게 몰락했다.
그나마 손에 가졌던 돈은 모두 도박으로 탕진했다. 아마 아빠도 내색은 않았지만 그 많은 부가 그리웠나 보다. 덕분에 우리집은 빠르게 가난해져 갔다. 나중에는 곰팡이 피지 않은 벽지를 찾기 힘들고 벌레와 동거해야 하는 냄새나는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도박이 질리거나 더 이상 도박에 쓸 돈이 없어졌을 쯤에는 술을 입에 달고 살았다. 젊을 적부터 술을 좋아했던 아빠였다. 하지만 고급진 와인이나 위스키를 즐기던 아빠가 이제는 초록색 소주병을 들고 다닌다. 그때쯤부터는 아빠가 술에 취해 있지 않았던 때를 더 보기 힘들었다.
배신과 도박으로 쌓인 스트레스는 술을 빌미삼아 가정 폭력으로 해결했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엄마였다. 그렇잖아도 좁은 집에서 아빠는 어린 나에게 있어 더욱 크게 다가오는 체구로 엄마를 실컷 두들겨 패며 소리를 쳤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상처투성이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리기 바빴다. 두 사람의 귀청이 터질 듯한 목소리와 듣기 불쾌한 둔탁한 타격 소리가 좁은 집안을 한가득 채웠다. 그때가 내 나이 다섯 살의 일이었다.
여섯 살이 되었다. 우리집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달라지지 않았다. 아빠는 여전히 늘 술에 취한 상태로 누구든 찾아 패기 바빴고, 엄마는 그런 아빠로부터 나와 누나를 지키며 아빠의 폭력에 무력하게 당하기만 했다.
그때까지 어른은 강한 줄로만 알았다. 어떤 일이 닥쳐도 강하게 받아칠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몰락한 아빠도 폭력이라는 무력으로 가정을 무너뜨리고 있었으니 강하다는 것의 기준은 어떻든 상관없다. 세상에는 무력적으로 강한 사람이 있고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이 있는 법이다. 나의 경우엔 아빠가 전자였고, 엄마가 후자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엄마는 어른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어른은 강하다는 나의 어린 생각이 틀렸던 것이다. 엄마는 어른이지만 약한 사람이었다. 어른도 강하지만은 않은 사람이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슬슬 여섯 살 꼬맹이가 자신의 삶을 비관하게 될 지경에 이르렀을 쯤, 눈 앞의 참상은 그런 도화선에 불을 지피기 충분했다.
좁디 좁은 방 한가운데서, 엄마가 천장에 목을 매단 채 축 늘어져 있었다.
고작 여섯 살이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엔 다소 어려운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의 그런 꼴을 보고 엄마가 새로운 놀이를 연구하고자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폭력의 아픔은 잘 알면서, 죽음은 잘 알지 못했다.
뒤늦게 상황을 마주한 누나가 절망했다. 아빠의 신경을 거스르는 줄도 모르고 온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누나의 모습은 전에 없을 정도로 슬퍼 보였다. 그 당시의 나는 잘 몰랐지만, 누나의 그런 모습을 보니 어쩐지 슬퍼져 같이 울었다.
마지막으로 마주한 아빠는 처음엔 다소 놀란 듯했지만, 이내 귀찮다는 듯도 싶고 후련하다는 듯도 싶었다. 그리고는 정성스럽지 못한 손길로 천장의 끈으로 매달려진 움직이지 않는 엄마의 몸을 어딘가로 치웠다. 지금에야 생각하는 거지만, 그때 장례가 치러졌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아빠의 가장 쉽고 만만한 화풀이 대상이 사라졌다.
안타깝게도 그 타겟은 이제 2차 성장기에 접어드는 누나에게로 향했다.
처음엔 엄마가 당했던 것보다는 다소 약한 수위의 폭력이 행해졌지만, 몇 달도 채 안 되어 날이 갈수록 그 수위는 엄마가 당했던 것과 거의 비슷할 정도가 되었다. 누나의 몸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성한 곳없이 보이는 곳마다 상처와 멍 투성이였고, 집에 의료 도구 따위 있을 리가 없어서 그 잔혹한 꼴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누나는 이미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었다.
일곱 살이 되었다. 우리집에서는 엄마라는 구성원 한 명이 사라지고, 아빠의 폭력 대상이 엄마에서 누나가 되었다는 것 정도를 빼면 역시나 달라진 게 없었다. 나는 아빠의 폭력이 시작될 때면 언제나 누나의 보호에 따라 옷장에 숨거나 집 앞 현관에 나와서 둔탁한 타격 소리와 누나의 비명, 아빠의 화풀이용 고함을 듣곤 했다. 귀를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듣기 싫었지만, 소리에마저 달아나면 나를 위해 주는 단 한 사람 누나에게서 달아나는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그게 내가 나를 보호해 준 누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답례였다.
그때 누나의 나이가 열네 살이었다. 일 년 전부터 그러했듯이, 누나는 또래가 당연히 누려야 할 중학교 입학과 중학생의 생활을 갖지 못했다. 또래들의 일과가 학교에 등교하여 수업을 들으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일 때, 누나의 일과는 아빠의 올바르지 못한 폭력을 온전히 받아내는 것이었다.
고작 일 년이지만, 성장기의 아이들은 짧은 시간 동안에 괄목할 정도로 성장한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그렇다. 그 당시의 나는 일 년 전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는 사실도 알았고, 나에게만은 다정하고 나만은 보호하려던 누나가 그 모든 비극을 견디기엔 너무 어리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니 예상 못 했던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직접 닥쳤을 때 오는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 어느 날 아침이었다. 누나가 누워 있어야 할 자리에 누나는 없고 대신 작은 쪽지 하나가 놓여 있다. 내용을 보기도 전부터 나는 그 존재만으로 섬뜩함을 느꼈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쪽지를 집어 내용을 읽었다. 일곱 살의 나는 한글을 완전히 배우지는 못했어도 그 내용 정도는 전후 맥락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미안해, 은우야.’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누나는 없다. 숙취에 잠든 아빠가 일어나기 전에 집 앞까지 뛰쳐나가 누나를 찾았다.
일 년 전과 똑같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하지만 일 년 전과 다른 점은, 그때와 달리 누나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누나는 엄마처럼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을까, 혹은 단지 이 비극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한 걸까.
그런 깊은 생각에 빠지기에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렸고, 당장 당면한 비극이 컸다.
아빠가 일어났다. 아빠는 방바닥의 쪽지를 읽으며 헛웃음을 쳤고, 조금은 울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지금도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아빠는 전보다 술을 더 많이 마셨다. 술에 취해 몸을 비틀거릴 때가 되면 아빠는 악마가 된다. 그리고 그 악마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제 나밖에 없다. 엄마도 누나도, 이제는 다양한 형태와 이유로 이 집에 없다. 나는 집이라는 지옥에 아빠라는 악마와 단둘이 살았다.
자연히 폭력의 대상은 내가 되었다. 일곱 살의 어린 몸이라고 폭력이 조금은 약해지는 일조차 없이 아빠의 폭력은 언제나 멀리서 방조했던 그대로였다. 단지 그것을 몸소 담아내니 앞서 엄마와 누나가 겪은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아팠다. 몸 속 깊은 곳에서 온몸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비명 같았다.
폭력에 노출되면서 나는 거의 방임되었다. 전에는 엄마나 누나가 어디서인지 항상 조금이나마 먹을 것을 가져와서 아빠 몰래 나에게 먹이고 자신들도 조금은 먹곤 했다. 그러나 이젠 먹을 것을 챙겨 줄 사람이 없다. 그리고 나에게는 엄마나 누나처럼 먹을 것을 챙길 능력이 없다.
며칠에 한 번, 아주 가끔, 집 밖으로 외출이 허락되는 날이 있다. 정확히는 허락보다 명령에 가깝다. 집에 사둔 술이 떨어져 아빠가 내게 술 심부름을 시키는 탓이었다.
손에 지폐 몇 장을 들고 근처 가까운 슈퍼로 갔다. 팔과 다리에 흉측하게 남은 폭력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 초가을임에도 긴 팔 긴 바지를 입었다. 그럼에도 목덜미나 얼굴에 남은 흔적마저 감출 순 없었으리라. 그런 꼴을 한 어린아이가 겁에 질린 듯 쭈뼛거리며 술병 몇 개를 위해 꼬깃꼬깃한 지폐를 내밀고 있자니, 슈퍼 아주머니도 할 말이 많은 듯 보였지만 별 수없이 내게서 돈을 가져가고 술병을 주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슈퍼의 아주머니는 동네 작은 슈퍼라는 이유로 술과 담배를 사러오는 미성년자들을 엄격하게 걸러내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가끔은 참다 못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어디서 맞은 거냐고 물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친구와 장난치다 이런 거라거나, 계단에서 굴러 넘어져서 이런 거라고 둘러대곤 했다.
어느 날부터는 아빠가 더 이상 술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술 심부름을 가면 슈퍼 아주머니가 몰래 빵을 하나씩 챙겨주곤 해서 허기를 달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빠가 그걸 눈치챘는지 어쨌는지 아무튼 술 심부름을 가지 않은 지 오래 지났다.
그토록 몇 주, 몇 달. 나는 여덟 살이 되었다.
그쯤에는 폭력의 아픔을 이겨낼 정도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배가 너무 고프면 아파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굶주려 요동치는 배를 무릎과 함께 두 팔로 부여잡은 채 옷장 속에 쪼그라 들어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나의 생살이라도 뜯어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내 몸에 남은 영양분을 다시 내 입으로 옮길 뿐인 헛수고다. 그때의 나는 그런 것보다 그럴 용기가 없었을 뿐이지만.
배가 고팠다. 배가 고파 아빠가 폭력을 위해 내 손목을 잡고 나를 짐짝처럼 내동댕이치는 것에 조금도 저항하지 못했다. 그리고 맞았다. 몇 번이나 온몸의 다양한 곳을 맞았다. 수단도 다양해서 맨주먹, 술병, 정체 모를 막대기 등에 나는 폭력을 당했다.
배가 고픈 와중에도 아팠다. 아프고 배가 고팠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아픔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전에는 이런 적이 없다. 눈앞이 뿌옇게 되면서 귀에 들리는 소리도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아빠가 때리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 아프지 않고 어쩐지 온몸이 편안해졌다.
아, 죽는구나.
여덟 살이라도 본능에 기인한 감각은 알 수 있다. 나는 그대로 죽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적의 나는 부잣집에서 자랐던 탓에 더해 자존심이 강하고 드셌다. 그것이 남아 생지옥과 같은 비극에서도 고작 아빠의 폭력과 방임 같은 걸로 내 생명이 꺼지는 것에 화가 났다.
의식이 흐릿해지고 죽음으로 다가가는 와중에도 화가 났다. 그 분노는 곧 생존에 대한 열망으로 바뀌었다. 살고 싶다. 나는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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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 않아.죽고 싶지 않아.
그 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살고 싶다는 강한 열망 뒤에 나는 의식을 잃었다. 무의미한 열망 끝에 죽음에 다다른다고 생각했건만, 얼마 뒤 나는 다시 의식을 찾았다.
의식을 찾았으나, 몸은 찾지 못했다.
다시 눈을 뜬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고, 어쩐지 아픔도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뇌에서 기분을 좋게 만드는 호르몬을 잔뜩 만들어 내고 있는 듯 기분까지 좋았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뇌의 전기적 신호에 따른 몸의 반응이었다. 내 눈에 담긴 시각 정보는 그런 전기적 신호 따위보다 훨씬 위대한 것이었다.
감정. 놀라움과 공포가 뒤섞인 감정. 몸의 반응이 아닌, 정서의 반응.
나는 복부가 잔혹하게 헤집어진 채 바닥에 축 늘어진 아빠의 시체를 손으로 헤집으며 그 살점과 내장을 뜯어먹고 있었다.
사람의 몸 안에는 피가 아주 많이 있다. 그 사실도 처음 알았다. 바닥은 아빠가 흘린 피로 아빠의 몸보다 훨씬 큰 웅덩이가 생기며 젖어갔고, 아빠의 몸이며 그걸 헤집는 나의 손과 팔, 그리고 입가까지 눈에 닿는 어디든 시뻘겋지 않은 곳이 없었다.
무서웠다. 목을 매단 엄마도, 폭력에 상처와 멍 투성이가 된 몸도 봐온 나지만, 이렇게까지 잔혹하게 넝마가 된 사람의 몸을 본 적은 없었다. 더욱이 무서운 것은, 아빠의 몸을 그렇게 만든 주체가 어쩌면 나라는, 직접적인 근거는 없으나 정황이 말해 주는 추측 가능한 사실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에 감각을 링크한 기분이었다. 내장과 몸을 헤집으며 손에 닿는 역겹고 끈적거리는 감촉, 걸쭉한 피의 질감, 입 안에서 혀와 치아로 굴려지고 으깨지는 사람의 살. 그 모든 것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는 내 눈. 모든 것이 느껴지는데, 움직일 수가 없다. 꿈 속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고 마치 시나리오처럼 정해진 대로만 움직여지는 것처럼, 지금의 내가 그러했다. 몸 속에 갇혀 있는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정작 그 몸은 즐거운 듯 웃으며 아빠의 몸을 고깃덩이로 뜯어내 입 안으로 넣었다.
감정은 무뎌진다고 했다. 엄마의 죽음이나 누나와의 이별에서 느낀 나의 슬픔이 그러했다. 또한 당장 눈 앞에 놓인 공포가 그러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젠 될 대로 되라고 마음 먹었을 쯤 내 몸이 움직여졌다. 흥분한 듯 달아올랐던 기분도 그때쯤 사그라들었다. 처음으로 내 의지대로 피투성이가 된 나와 아빠와 방바닥을 번갈아 보았다.
이제는 당장 놓여진 상황이 아닌 그 전이나 후가 두려워졌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왜 아빠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제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사람을 죽였으니까 경찰에 잡혀 감옥에 가려나.
엄마나 누나가 아빠에게 맞을 때면 항상 그 전에 나를 옷장 속에 가두듯 숨겨 주었다.
나는 그 안에서 피투성이가 된 내 몸을 끌어안았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이제 아빠에게 맞지 않아도 되잖아. 다 괜찮을 거야…….
손톱을 물어뜯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거짓말을 할 때면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