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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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대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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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7대 황제
숭영제 | 崇榮帝
존호 효경정순헌유명건황제
(孝敬定順獻裕明乾皇帝)
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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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르 에르켐세그
출생 1963년 5월 22일
조선성 평양도급시 풍경궁
(現 조선성 평양광역시 풍경궁)
재위 대한국 황태자
1980년 5월 6일 ~ 2000년 12월 31일
대한국 황제
2001년 1월 1일 ~ 2019년 12월 31일
대한국 상황[1]
2020년 1월 1일 ~
연호 숭영(崇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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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국 제7대 황제. 휘는 경(璥), 자는 우일(于一). 연호는 숭영(崇榮).

생애

어린 시절

황태자 시절

치세

퇴위 후

평가

황태자는 그 존엄한 지위에 걸맞는 품행과 덕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보수성향 친황실 언론 대한신보 1987년 9월 12일자 사설 중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의 평가는 좋지 못한 편이다. 황태자 시절부터 사냥이냐 요양을 핑계로 별궁에서 기거하며 공식 석상에서 자주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곳에서 동생 명친왕과 함께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이 발각되었다. 또한 1988년 배우자인 효연상황후와의 결혼 과정에서도 석연찮은 정황과 황후의 자격 문제가 불거졌기에 한국에서 힘을 전혀 못쓰던 공화주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정치적 힘을 떨치기 시작한 때도 숭영제의 성년 전후이다. 하지만 1991년 원자 탄생 이후 공식석상에 꼬박꼬박 모습을 드러냈고 태자비 또한 과거의 논란을 딛고 조용히 육아에 전념하는 등 개심한 모습을 보여주며 90년대 내내 태자 부부를 향한 비판 여론은 크게 수그러들었다. 생전 양위를 생각치도 않던 익종 황제가 전격적으로 선위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별 문제가 없어보였던 치세 초기를 지나 2010년대에 들어서자 여러 문제점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의문스러운 기관 궁내성 정보부의 권한이 크게 확대되었고 정치권 인사와 황실 일원, 재계가 상호 유착하여 부동산, 광물 산업을 통해 이권을 취해놓고 면책을 받는등 부패한 모습도 폭로됐다. 막대한 자금을 통한 여론 조작이 시행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으나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은 전 황태자 이표가 연루되어 국민 대다수가 기함할 사건이 터지면서 현재까지도 크게 부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사건 이후에는 장녀를 황급히 황태녀로 책봉하고 황제로 즉위시켜 본인을 향한 비난을 피하려 하는 동시에 친상황파 추밀원 의원들을 대동해 황제를 통제하려 하는 등 황제로서의 권력은 끝까지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의 행위가 모두 드러난 2022년 현재 재위중인 장녀에 의해 사실상 권력이 박탈되었고 법궁도 떠나 평양의 별궁 풍경궁으로 이주하는 등 반쯤 유폐된 채 생활하고 있다. 세간에서는 딸에게 일격을 맞고 감정적으로 토라진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오는 중이다.

  1. 익종 황제가 태상황 호칭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 호칭을 사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