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피 왕국 관련 둘러보기 틀
[ 펼치기 · 접기 ]
틀:알바키아의 역사
틀:멘부르크의 역사
틀:페로시마의 역사
틀:라트비아의 역사
폴리네시아의 역사
ђเรՇ๏гא ๏Ŧ ק๏Lאภєรเค
[ 펼치기 · 접기 ]
아르메노의 역사
ђเรՇ๏гא ๏Ŧ คг๓єภ๏
[ 펼치기 · 접기 ]
틀:제노바-오슬리아의 역사
틀:리스보니아의 역사
엘리시움의 역사
ђเรՇ๏гא ๏Ŧ єLאรเย๓
[ 펼치기 · 접기 ]
위클리의 역사
ђเรՇ๏гא ๏Ŧ ฬเςLเא
[ 펼치기 · 접기 ]
키오피 왕국
Kingdom of Kiopi
кเภﻮ๔๏๓ ๏Ŧ кเ๏קเ
건국 초기의 강역
대남 제도 해전 이후 최대 강역
남서이스톨리아 대반란 이후 말기 강역
223년 ~ 1085년
(약 862년)
건국 이전 리스본 제국의 침공 이후
셀레우로스 왕국 남중 제국
라트비아 왕국
페로시마 왕국
레스코피아 왕국
위치 전성기 기준
남서이스톨리아, 남중이스톨리아 전역
클레이시아 일대[1]
스푸트니 제도, 베스트 제도 일부
대남 제도의 대부분 지역
수도 리시니아 (223 ~ 317)
알리칸 (317 ~ 1014)
리시니아 (1014 ~ 1085)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국가 원수 국왕
입법 키오피 귀족원
키오피 민회
면적 약 18,500,000km²[2]
언어 센트리아어
민족 남중족
엘리스족, 나일리족, 가이아족 (~982)
폴리네시아족, 제노바족, 아르메노족 (~1014)
국교 없음 (정교분리)
사실상 센트리아교
주요 황제
주요 사건 223년 셀레우로스 왕국으로부터의 독립
235년 셀레우로스 전쟁
267년 남중이스톨리아 진출
475년 가이아 정복
634년 대남 제도 해전
945년 키오피-나일리아 전쟁
982년 제2차 키오피-나일리아 전쟁
1012년 남서이스톨리아 대반란
1084년 리스본 제1제국의 키오피 침공, 멸망
현재 국가[3]
[ 펼치기 · 접기 ]

개요

키오피 왕국(Kingdom of Kiopi, кเภﻮ๔๏๓ ๏Ŧ кเ๏קเ)은 223년부터 1085년까지 클레이시아이스톨리아 전역에 걸쳐있던 초강대국이다.

키오피 왕국은 223년 셀레우로스 왕국으로부터 독립한 작은 도시국가로부터 시작하여, 셀레우로스 왕국을 무너뜨리고 남중이스톨의 페로시마, 알바키아 등을 무너뜨리고 가이아 제국과 함께 클레이시아-남이스톨리아 세계를 양분할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5세기부터 가이아 제국과 전쟁을 벌이더니 475년 클레이시아까지 원정을 떠나 클레이시아 북동부 일대까지 장악하는 초강대국으로 발전하여, 클레이시아 남서부의 나일리아 왕국과 함께 클레이시아-남이스톨리아 세계를 다시 양분할한다. 이후로도 대남 제도 해전 등 여러 전쟁을 통해 이스톨리아에서의 영향력을 크게 넓혔다.

그러나 945년 키오피-나일리아 전쟁에서의 참패를 기점으로, 982년 제2차 키오피-나일리아 전쟁에서도 패배하며 클레이시아에서 철수하였다. 이후 1012년부터 1014년까지 진행된 남서이스톨리아 대반란으로 인해 남서이스톨리아 지역에서도 철수, 결국 1084년 리스본 제1제국에게 직격타로 침공을 당하면서 멸망하였고 남중 제국, 라트비아 왕국, 페로시마 왕국, 레스코피아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역사

 키오피 왕국의 대외 전쟁
[ 펼치기 · 접기 ]

800년이라는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역사를 가졌지만, 그에 비해 수많은 전쟁과 변천을 겪은 국가다.

독립 초기, 셀레우로스 전쟁과 남중이스톨 장악

키오피 왕국의 건국 초기 강역

3세기 초, 지금의 페로시마, 알바키아, 멘부르크 등이 수복하고 있는 남중이스톨리아 남부는 셀레우로스 왕국이 패권을 잡고 있었다. 셀레우로스 수뇌부는 외족인 셀레우로스족을 기반으로 성장하였으며, 이는 피지배족인 남중족의 반란을 불러왔고 능선을 타고 키오피 왕국도 223년 독립하여 작은 국가로 성장했다.

키오피 왕국은 민병대 체제로 빠르게 군사력을 증진시켜갔고, 다른 독립국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셀레우로스 왕국을 군사력 방면에서 압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235년 셀레우로스 전쟁을 일으키며 지배를 당하던 신세에서 벗어나 고대 이스톨리아 세계의 신흥 국가로 입지를 다졌다.

이후 페로시마 제1왕국, 알바키아 왕국 등까지 무너뜨리고 남중이스톨리아 세계를 평정한 키오피 왕국은 클레이시아남서이스톨리아가이아 제국과 함께 클레이시아-남이스톨리아 세계를 양분할하여 평정하고야 만다.

가이아 제국과의 전쟁

끝도 없이 성장하던 키오피 왕국의 가장 큰 걸림돌은 서쪽의 가이아 제국이었다. 4세기부터 키오피 왕국은 무너지는 가이아 제국을 보고 견제를 지속하였으며, 349년 가이아는 아예 제2차 서이스톨리아 전쟁과 키오피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아예 남서이스톨리아에서 철수하고야 만다.

독립에 성공한 폴리네시아와 아르메노는 폴리네시아 제1왕국아르메노 통일국을 세우지만 10년도 채 가지 못하고 다시 키오피 왕국이 장악하고야 만다.

그러나 가이아 제국은 이 시기까지는 무너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스톨리아에서 철수한 이후인 2차 루나 시대에 황제 중심의 완전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면서 무너져가는 경제와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을 견뎌냈다.

가이아 정복, 초강대국으로 성장 - '팍스 키오피'

이스톨리아에서 철수한 가이아 제국은 가이아가 철수한 지역에서 키오피 왕국이 클레이시아 지역을 향한 대침공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고, 그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방치해버렸다. 키오피 왕국은 계획대로 475년 클레이시아 동부의 모든 해안선에 총공세를 개시했고, 견제는 커녕 군사 준비조차 하지 않고 있던 무방비 상태의 가이아 제국은 단 8개월 만에 클레이시아 전역을 탈환당하게 되었다.[4]

결국 가이아 제국은 이전의 전성기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영토의 동가이아 제국으로 대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마저도 키오피 왕국과 바로 맞닿아있어 위성국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마저도 523년 자멸하였다.

가이아 정복 이후의 키오피 왕국은 수백 년 간 클레이시아-남이스톨리아 세계를 평정하는 가히 최강대국으로 군림하였다. 물론 나일리아 왕국도 존재했으나, 남서-남중이스톨리아까지 전부 수복하던 키오피 왕국의 아성에는 범접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중론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키오피 왕국 이후로 이렇게까지 클레이시아와 이스톨리아 세계를 평정하던 국가는 없었다.식민 제국 시대에도 클레이시아 지역은 엘리시움의 아성으로 인해 제2차 이스톨리아 전쟁 당시의 열강들도 건드릴 수 없었으며, 근세에는 대항해시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시기에는 한 강대국이 세계를 평정하는 구조가 아닌, 여러 열강들이 각자도생하던 시기였다.[5]

즉, 키오피 왕국은 전시대는 막론하고 근현대사의 그 어떤 국가도 따라올 수 없는 막강한 국제적 영향력을 가진 국가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런 아성으로 인해 고대의 끝이 가이아 제국의 멸망인 것처럼, 중세의 끝도 키오피 왕국의 멸망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가이아 정복 이후로도 여러 섬들로의 원정을 지속하여 최대한 영향력을 넓혀나갔고, 634년에는 대남 제도 해전을 통해 거의 대부분의 대남 제도 일대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6] 그 외에도 전시대 가이아 제국이 정복했던 스푸트니 제도베스트 제도 일부까지 수복에 성공했다.

두 차례의 전쟁

남서이스톨리아 대반란

리스본 제1제국의 침공, 멸망 및 분열

정치

역대 국왕

행정 조직

각주

  1. 리트보아, 그레이터리시움, 센트럴 스테이트, 이스트식스, 위클리아, 아이스리카, 시베리츠
  2. 추정치이며 2천만 km²를 넘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3. 전성기 기준
  4. 엄밀히 말하면 '전역'까지는 아니다. 키오피 왕국이 북동부 전선을 신경쓰던 중 남부의 나일리아 왕국도 영토를 빠르게 확장하여 남서부 지역을 장악하였기 때문이다.
  5. 대항해시대부터 시작된 남이스톨리아의 수많은 국가들이 있을 수 있던 이유도 키오피 왕국이 멸망하여 수많은 국가들로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6. 리스본 제1제국이 수복하고 있던 섬 2개를 제외하고 그 넓은 대남 제도를 모두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