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아래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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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아래서}}
{| class=" wikitable " style=" margin-rigth: auto; margin-left: auto; border: 0px; width: 100%;
| style=" border: 0px; border-top: 2px solid #000; border-bottom: 2px solid #000; text-align: center; " | [[파일:An Der Sonne.png|link=태양 아래서|1600px|center]] <span style= " font-size: 20pt; font-family: 'KoPub Dotum'; line-height: 200%; ">'''태양 아래서'''</span>
|}
<div style=" margin-top: -14px; ">
{| class=" wikitable " style=" margin-rigth: auto; margin-left: auto; border: 0px; width: 100%;
| style=" border: 0px; border-top: 2px solid #000; text-align: left; " | <span style=" font-size: 35px; ">&ldquo;</span>
| style=" border: 0px; border-top: 2px solid #000; line-height: 170%; font-size: 12pt; height: 5em; " | <span style=" font-family: Tahoma; ">Mit einem Worte : wir wollen niemand in den Schatten stellen, aber wir verlangen auch unseren Platz '''An Der Sonne'''.</span> <br /> <span style=" font-family: KoPub돋움체; ">한 마디로 그 누구도 그늘로 몰아내고 싶지는 않지만 '''양지바른 곳'''에 우리만의 공간을 요구한다.</span>
| style=" border: 0px; border-top: 2px solid #000; text-align: center; height: 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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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order: 0px; border-bottom: 2px solid #000; text-align: right; " |
| style=" border: 0px; border-bottom: 2px solid #000; text-align: right; font-size: 11pt; font-family: KoPub돋움체; " | - 베른하르트 폰 뷜로 {{여백|2em}}
| style=" border: 0px; border-bottom: 2px solid #000; text-align: rigth; " | <span style=" font-size: 35px; ">&rdquo;</span>
|}</div>
<div style=" margin-top: -14px; ">
{| class=" wikitable " style=" margin-rigth: auto; margin-left: auto; border: 0px; width: 100%;
| style=" border: 0px; border-top: 2px solid #000; border-bottom: 2px solid #000; font-size: 16pt; line-height: 170%; " | '''세계 지도'''</span><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An Der Sonne' World Map2.png]]</div>
|}</div>
<div style=" margin-top: -14px; ">
{| class=" wikitable " style=" margin-rigth: auto; margin-left: auto; border: 0px; width: 100%;
| colspan=" 3 " style=" border: 0px; border-top: 2px solid #000; text-align: cent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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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order: 0px; border-right: 1px solid #000; line-height: 170%; font-family: KoPub돋움체; height: 1000px; vertical-align: top; " width=" 30% " | <span style=" font-size: 14pt; ">'''팍스 게르마니카'''</span><br />
{{여백|0.5em}}첫 번째 전쟁에서 패권을 무너트리고, 두 번째 전쟁에서 패권을 얻고, 세 번째 전쟁에서 패권을 지켰다. 신이 함께하리 이는 신성하리라. <br />
{{여백|0.5em}}독일은 세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기존의 제국주의 세력, 새로운 군부 세력, 마지막으로 위협적인 사회주의 세력까지 모두 박살이 났다. 하지만 다시금 피를 흘릴 때가 찾아온다. 아시아에서 권위주의가 부상하고, 남미에서는 다시금 사회주의가 부상한다. 그렇게 팍스 게르마니카 시대의 끝이 다가온다.<br />
 
 
<span style=" font-size: 14pt; ">'''세계 전쟁'''</span><br />
{{여백|0.5em}}뒤늦게 통일된 민족 국가를 구성한 독일은 그 차이가 무색하게 빠르게 영국을 쫓았다. 그들의 야욕은 발칸 반도에서의 총성과 함께 발사되었다. 불리한 싸움을 시작하였으나, 그들은 크리스마스를 파리에서 보냈다. 영국의 세계 패권은 무너지고, 프랑스의 자존심은 부서지고, 러시아의 영토는 빼앗겼다. 독일은 양지를 얻었다.<br />
{{여백|0.5em}}또 다시 발칸 반도에서 총성이 울렸고, 이중제국이 무너졌다. 이중제국과 함께 미합중국의 주식 시장이 무너졌고, 세계 경제가 무너졌다. 그렇게 천천히 자라나던 혼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복수에 불탄 군부와 배고픔에 찌든 노동자가 새 세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복수는 피를 낳았다.<br />
{{여백|0.5em}}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참혹한 전쟁이 세상을 훑고 지나갔다. 복수에 찬 이들의 바람과 달리 독일은 시체를 밟고 올라섰다. 무너진 세계 정치를 뒤로하고 그들은 패권을 거머쥐었다.<br />
{{여백|0.5em}}제2차 세계 대전은 그 참혹함으로 인해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란 이름으로 별칭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전쟁과 같은 평화를 만났다. 두 번째 대전에서 독일의 동맹으로 참전한 제3인터네셔널 사회주의 국가들과 대립하게 되니 이를 차가운 전쟁이라 한다. 차가운 전쟁의 기간 동안 양측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면서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상태를 수십년간 유지했다.
| style=" border: 0px; border-right: 1px solid #000; border-left: 1px solid #000; font-family: KoPub돋움체; height: 1000px; vertical-align: top; " width=" 30% " | {{여백|0.5em}}비록 서로가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있다고 해도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고, 그렇기에 사소한 사건이 전쟁으로 번지기엔 충분했다. 발칸 반도에서의 총성에 이은 가장 큰 총성이었다. 다시금 악몽이 재현되었고, 더 오래 지속되었다.<br />
 
 
<span style=" font-size: 14pt; ">'''연합'''</span><br />
{{여백|0.5em}}제3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독일의 주도 하에 범세계적인 국제기구인 연합이 구성되었다. 과거 신성 동맹이나 상설중재법원과 같은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한 협력 기구에서 발전된 형태였다. 이사국과 회원국의 의결 기관인 이사회와 총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로 구성되어있다.<br />
{{여백|0.5em}}국제통치령은 정치적·경제적 상황에 따라 해당 국가 혹은 지역의 일정 권리를 대리하는 개념이다. 뵈멘-메렌과 같이 스스로 국방이 필요 없다 판단한 경우에서부터 일본과 같이 패전국으로써 국방과 국정 등이 이양당한 경우 등 다양한 경우로 국제통치령이 될 수 있다.<br />
 
 
<span style=" font-size: 14pt; ">'''자유협정'''</span><br />
{{여백|0.5em}}새 천 년이 밝으면서 아시아에서는 권위주의 국가인 인도가 부상하고 남아메리카에서는 사회주의 국가인 아르헨티나가 부상했다. 그들은 각각 인도-태평양 공동체, 제4인터네셔널을 중심으로 하여 조금씩 독일과 그 동맹국을 위협했다. 2018년 베를린에서 독일을 포함한 9개국이 모여 정치·경제·군사적 동맹을 맺으니 이가 자유협정이다. 총 82개국이 가입되어 있다.<br />
 
 
<span style=" font-size: 14pt; ">'''인도-태평양 공동체'''</span><br />
{{여백|0.5em}}마지막 세계 전쟁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인도는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그들은 맨파워를 바탕으로 힘을 길렀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국제 협력을 명분으로 인도-태평양 공동체를 창설하였다. 초기에는 협력이라는 명분을 따랐으나 새 천 년이 밝아오며 인도-태평양, 더 나아가 독일의 패권에 대항할 세력으로 떠올랐다. 총 28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 style=" border: 0px; border-left: 1px solid #000; height: 1000px; vertical-align: top; font-family: KoPub돋움체; " width=" 30% " | <span style=" font-size: 14pt; ">'''제4인터네셔널'''</span><br />
{{여백|0.5em}}제3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에 맞서 싸운 사회주의의 이념은 몰락한 듯 보였다. 그러나 남아메리카를 뒤흔든 경제 위기 속에 패배한 사회주의자들이 결집하여 다시금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어 내었다. 남아메리카 혁명 전쟁은 완전히 남아메리카를 사회화시켰고, 이들은 제4인터네셔널의 이름을 내걸었다. 이후 그들은 다른 대륙으로까지 사회주의 혁명을 전파하고 있다. 총 15개국이 가입되어 있다.<br />
 
 
<span style=" font-size: 14pt; ">'''참고'''</span><br />
{{여백|0.5em}}제1차 세계 대전이 고작 1년만에 종결되었기에 마땅한 기술의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되어서야 급격한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고, 차가운 전쟁과 제3차 세계 대전은 더욱 급진적이었다. 작중 배경인 2020년의 기술력과 생활상은 현실 1960년 대에 머물고 있으며, 1세계의 사회적인 분위기는 현재 서구의 분위기와 유사하다. 19세기의 기술이 오래 남아 대표적으로 발전된 비행선이 현대까지 하늘을 떠다니며 유람선의 역할을 하고 있고, 거함거포주의는 약화되었으나 전함이 해군력에 포함되어 있다. 우주 개발은 진행되지 않았다. 프레온 가스의 사용으로 인한 오존층이 파괴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시에 녹색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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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 3 " style=" border: 0px; border-bottom: 2px solid #000; text-align: center; " |
|}</div>
<div style=" margin-top: -14px; ">
{| class=" wikitable " style=" margin-rigth: auto; margin-left: auto; border: 0px; width: 100%;
| style=" border: 0px; border-top: 2px solid #000; border-bottom: 2px solid #000; text-align: center; line-height: 170%; font-size: 14pt; " | '''[[태양 아래서 타임라인|<span style=" color: #000; ">타임라인</span>]]'''
|}</div>
 
{| class="wikitable" style="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450px; "
{| class="wikitable" style="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450px; "
| colspan=" 2 " style=" background-color: #000000;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1px solid #000000; " | '''{{large|An Der Sonne}}<br />태양 아래서'''
| colspan=" 2 " style=" background-color: #000000;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1px solid #000000; " | '''{{large|An Der Sonne}}<br />태양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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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과 그 [[동맹국]]들이 승전하고 기존의 [[영국 (태야 ㅇ아래서)|영국]]의 패권은 무너졌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곳곳에 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졌으며, [[세계 공황]]으로 친독일 세력은 약화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2차 세계 대전]][[민족주의]][[군국주의]]로 무장한 [[프랑스 제4공화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로 발생해 [[참호전]]이라는 양상을 개전하였다.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승전하였으나, [[미합중국 (태양 아래서)|미합중국]]과 세계를 양분하였다. 결국 다시 전쟁이 발발하였고, [[제3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3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인도]][[미합중국 (태양 아래서)|미합중국]]-[[일본 제국 (태양 아래서)|일본]]이 주축으로 전쟁을 이끌어 나갔다. [[제3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3차 세계 대전]]은 기존의 전쟁보다 엄청난 수준의 피해를 입힌체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승전으로 마무리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과 그 [[동맹국]]들이 승전하고 기존의 [[영국 (태양 아래서)|영국]]의 패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의 붕괴로 인해 발생한 [[대공황]]으로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미정립된 패권은 흔들렸고,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떠올랐다. 네오불랑주의자들에 의해 구성된 [[프랑스 제4공화국]]과 [[유제프 피우수트스키]][[폴란드-리투아니아]]를 주축으로 [[제2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다. 수 년간의 전쟁은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승리로 종료되었으나, [[제3인터네셔널]]의 부상으로 인해 이들과 세계를 양분한 체 [[차가운 전쟁]]이라 불린 시기를 거쳤다. 수십년의 [[차가운 전쟁]]은 결국 [[제3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3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고, 역사상 최대의 피해를 낸 전쟁이 되었다.


[[제3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3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팍스 게르마니카]]라 불리는 일련의 평화시기를 지난다. 그러나 [[제3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3차 세계 대전]] 과정에서 아시아 지역에서 큰 공을 세운 [[인도]]가 급격히 성장하여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헤게모니를 위협하고 있으며, 뿌리 뽑히지 못한 사회주의가 남아메리카에서 다시 꽃을 피워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 [[팍스 게르마니카]]의 존제 의의에 위기를 가하고 있다.
[[제3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3차 세계 대전]]이 종료된 이후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은 비로소 [[팍스 게르마니카]]라 불린 세계 패권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차가운 전쟁]]과 [[제3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3차 세계 대전]]의 동맹이었던 [[인도 (태양 아래서)|인도]]의 부상이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헤게모니를 위협하고 있으며, 뿌리 뽑지 못한 사회주의가 남아메리카에서 다시 꽃을 피워 [[아르헨티나 (태양 아래서)|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 [[팍스 게르마니카]]의 존제에 위기를 가하고 있다.


== 주요 국가 ==
== 주요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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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px solid #000000; " | [[독일 (태양 아래서)|<span style=" background-color: #00377F; color: #FFFFFF; ">독일</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0052BF; color: #FFFFFF; ">과 그 동</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006DFF; color: #FFFFFF; ">맹국</span><br>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px solid #000000; " | [[독일 (태양 아래서)|<span style=" background-color: #00377F; color: #FFFFFF; ">독일</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0052BF; color: #FFFFFF; ">과 그 동</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006DFF; color: #FFFFFF; ">맹국</span><br>
[[인도|<span style=" background-color: #003F07; color: #FFFFFF; ">인도</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007F0C; color: #FFFFFF; ">와 그 동</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00BF0F; color: #FFFFFF; ">맹국</span><br>
[[인도 (태양 아래서)|<span style=" background-color: #003F07; color: #FFFFFF; ">인도</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007F0C; color: #FFFFFF; ">와 그 동</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00BF0F; color: #FFFFFF; ">맹국</span><br>
[[아르헨티나|<span style=" background-color: #7F0000; color: #FFFFFF; ">아르헨</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BF0000; color: #FFFFFF; ">티나</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BF0000; color: #FFFFFF; ">와 그 </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FF0000; color: #FFFFFF; ">동맹국</span><br>
[[아르헨티나 (태양 아래서)|<span style=" background-color: #7F0000; color: #FFFFFF; ">아르헨</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BF0000; color: #FFFFFF; ">티나</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BF0000; color: #FFFFFF; ">와 그 </span><span style=" background-color: #FF0000; color: #FFFFFF; ">동맹국</span><br>
[[국제통치령|<span style=" background-color: #8200BF; color: #FFFFFF; ">국제통치령</span>]]
[[국제통치령|<span style=" background-color: #8200BF; color: #FFFFFF; ">국제통치령</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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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vertical-align: top; " width=" 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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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태평양 공동체]]
*[[인도-태평양 공동체]]
** [[인도|{{large|인도}}]]
** [[인도 (태양 아래서)|{{large|인도}}]]
** [[튀르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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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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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태양 아래서)|멕시코]]
** [[아라비아 (태양 아래서)|아라비아]]
** [[이스라엘 (태양 아래서)|이스라엘]]
** [[미연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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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인터네셔널]]
*[[제4인터네셔널]]
** [[아르헨티나|{{large|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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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리비아]]
** [[아메리카 코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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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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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리비아]]
** [[중앙아메리카]]
** [[인도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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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가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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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태양 아래서)|일본]]
** [[일본 (태양 아래서)|일본]]
** [[아마존]]
** [[아마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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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px solid #000000; font-size: 15pt; " | <div class="mw-customtoggle-FV" style="margin-left:auto; padding: 6px -1px 11px; padding-left: 7px; margin-right: auto; width: 100%; background-color:#FFFFFF; color:#000000;"><br />자유협정<br /><br /></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px solid #00000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Freiheitvereinbarung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px solid #000000; font-size: 12pt; " | 세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독일은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1960년 대의 자유화로 기존 권위주의 체제에서 탈피한 독일은 그들의 이념을 전 세계에 관철시킬 일만 남았었습니다. 독일의 헤게모니에 저항할 국가는 존재치 않았고, 수많은 국가들이 자유화되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 대에 들어 권위주의 정부를 지닌 인도의 부상은 독일로 하여금 그들의 헤게모니와 이념에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상과 같이 인도의 이념은 수 십 년 간 독일이 세계에 뿌린 자유주의 질서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더불어 코뮌에 의한 브라질의 해체는 독일로 하여금 3차 대전을 연상케하였습니다.
<br />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 퍼진 위협 아래 독일은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 동맹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습니다. 2018년, 베를린에서 9개국이 자유협정이라 불리는 조약에 서명하면서 자유협정이 설립됩니다. 수많은 자유주의 국가들이 협정에 동참하였고, 권위주의와 사회주의로부터 그들의 국가와 이념을 지키기 위해 연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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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id="mw-customcollapsible-FV" style="background:none; border:none;">
{| style=" margin-right: auto; margin-left: auto; vertical-align: top; width:100%;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독일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Deutsch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1871년의 통일 이후 독일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들의 공업력은 영국을 바로 뒤에서 뒤쫓고 있었고, 그들의 해군 증강은 영국으로 하여금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1차 대전에서 그들은 슐리펜 계획을 성공시키면서 승전합니다. 독일은 미완성된 패권을 거머쥐었고, 2차 대전을 거치며 확고해졌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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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3차 대전에서 사회주의자들의 공격을 격퇴하면서 세계는 비로소 독일의 패권을 받아들였습니다. 팍스 게르마니카라 불린 일련의 평화가 이를 증명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자유화된 독일은 이제 그들의 이념을 전 세계에 전파했고, 자유주의와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인력과 자원, 거대한 영토를 바탕으로 성장한 인도와 그 동맹국들과 남아메리카에 뿌리 내린 사회주의의 붉은 위협이 팍스 게르마니카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독일은 세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유럽을 장악해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위협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독일-헝가리-우크라이나-러시아-러시아-이집트-동아프리카-남서아프리카-대한 9개국이 베를린에 모여 자유협정을 창립하였습니다. 정치-경제-군사-외교 공동체인 자유협정은 새로운 위협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헝가리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Magyar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이중제국이 해체되면서 헝가리는 갑작스럽게 독립을 얻었습니다. 독립 직후 이루어진 전쟁에서 그들은 크로아티아를 잃었으나, 2차 대전에서 발칸 반도를 수호하면서 보스니아까지 진출합니다. 3차 대전에서도 그들은 독일을 지원하며 승전하였고, 독일의 질서에 편승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이중제국의 해체와 함께 헝가리는 그들만의 정치를 만들 기회를 얻었습니다. 긴 논의 끝에 작센코부르크고타가의 분가인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가가 위원회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위원회는 당주인 페테르 아고슈트(Péter Ágost, 페드로 아우구스토)를 헝가리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했습니다. 그러나 페테르 2세는 헝가리어를 못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의회의 권력이 강화되었습니다. 1960년의 자유주의 운동 이전에 이미 헝가리는 자유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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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2차 대전 이후 헝가리는 불가리아와 발칸 반도의 영향력을 두고 경쟁했습니다. 그러나 3차 대전으로 그리스가 다시 부상하면서 불가리아의 영향력은 감소하였습니다. 헝가리는 건국 이후로 계속해서 독일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 중 한 국가로써 참여하고 있습니다.
|-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800px; margin-bottom: 10pt;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우크라이나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Ukraine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우크라이나는 수백년 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리가 조약은 우크라니아를 독립시킴과 동시에 독일의 위성국으로 만들었습니다. 해트만 정부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원한 체제가 아니였으나, 헤트만 체제는 계속해서 살아남았습니다. 2차 대전에서 우크라이나는 폴란드-리투아니아에 맞서 동유럽을 수호했습니다. 3차 대전에서 그들은 러시아의 국토를 유린함으로써 과거 수백년의 지배 시기를 복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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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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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헤트만 체제는 우크라이나가 중부유럽 동맹의 일원으로써 얻는 막대한 경제적 이득으로 인해 안정적으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스며들었습니다. 1960년 독일의 자유주의 운동이 우크라이나로 뻗치면서 기존의 권위주의적인 헤트만 체제는 자유화되었습니다. 자유화된 체제는 그들은 더이상 불만을 갖지 않았고, 정치적 안정은 경제적 성장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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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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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인도의 부상이 자유세계에 위협으로 다가오자, 우크라이나는 8개국들과 함께 창립국으로써 자유협정을 창립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독일을 따르며 자유세계를 수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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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margin-top: -10.5pt;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러시아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Rossiya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모스크바 대공국에서부터 출발한 러시아는 영국과 패권 경쟁을 할 정도로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차 대전에서 독일에게 처참히 패하여 유럽 영토를 대부분 잃고 혼란에 빠집니다. 내전 이후에는 코뮌이 들어섰으며, 3차 대전에 참전했다 다시 독일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패전 이후 독일에 충성하며 다시금 강성해졌습니다. 엄청난 길이의 국경은 러시아를 인도-태평양 공동체에 대항하는 최전선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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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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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3차 대전 이후 잠시 동안의 군정으로 자유주의가 러시아 정치에 스며들었습니다. 로마노프가가 다시 왕위에 올랐고, 내각제가 자리잡았습니다. 독일의 경제 블록 안에서 그들은 광활한 영토와 인구를 무기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중심으로 시베리아 지역 또한 순조롭게 개발되고 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러시아는 두 차례나 독일에 패배하면서 마침내 독일의 질서에 편승했습니다. 그들은 인도-태평양 공동체에 대항하는 최전선으로써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margin-top: -10.5pt;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쿠르디스탄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Kurdistan‎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쿠르디스탄은 16세기 오스만과 이란에 의해 지배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지배는 오스만이 붕괴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1920년 대, 쿠르드인들은 오스만이 아르메니아와 그리스에 의해 패퇴를 거듭하자 독립을 선포하며 오스만 전쟁에 참전하여 승전하였습니다. 쿠르디스탄은 비로소 독립국가가 되었으며, 2차 대전과 3차 대전을 통해 이라크를 합병하는 등 현재의 영토에 이르렀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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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쿠르디스탄은 바르잔지가 왕위에 오르면서 군주국이 되었고, 말리크는 강한 권력을 지녔었습니다. 1960년 대의 자유주의 운동의 여파에도 권위주의적인 체제를 유지하였으나, 1980년 대, 독일에 의해 사실상의 혁명이 발생하면서 자유주의 입헌군주제 국가가 되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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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사실상의 혁명을 통해 자유주의 국가가 된 쿠르디스탄은 1990년 대의 독일의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 중 하나로 참여하며 아라비아의 견제를 위해 독일과 우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margin-top: -10.5pt;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이집트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Miṣr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이집트는 오스만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무함마드 알리는 이집트의 지배권을 차지하고는 여러 개혁을 진행하며 이집트를 근대화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이집트에 강력한 영향력을 투사하였고, 대영제국이 붕괴될 때까지 이집트는 영국에 종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파리 조약 이후 영국의 영향력은 줄어들었고, 독일의 개입으로 이집트는 완전한 독립을 얻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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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하지만 독립 이집트도 독일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의 군국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사회는 자유화된 독일로 하여금 외교적 압박을 발생시켰습니다. 이집트는 독일의 압박에 저항하며 자국 내 자유주의 운동을 탄압해왔으나 자유주의 운동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독일은 수에즈 운하를 통해 개입하기에 이릅니다. 압도적인 무력에 이집트 정부는 꼬리를 내렸고, 이집트는 독일이 무력으로 자유화를 이룩한 첫 국가가 되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새로 세워진 자유주의 정부는 친독일적인 행보를 보이며 권위주의 체제에 대해 위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인도와 그 동맹국이 급부상하면서 악화되었고,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으로 참여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슬람 세계의 자유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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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margin-top: -10.5pt;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동아프리카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Ostafrika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베를린 회의 이후 독일은 독일령 동아프리카를 설립했습니다. 독일은 효과적인 식민 통치로 동아프리카를 모범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독일령 동아프리카는 파리 조약으로 인해 독일령 중앙아프리카가 됩니다.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와 더불어 독일령 동아프리카는 독일령 중앙아프리카의 중심지로 작용했습니다. 3차 대전 이후 독일령 중앙아프리카는 여러 국가들이 분리 독립하면서 해체됩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독일령 중앙아프리카의 해체 이후에도 동아프리카는 독일 본국에 그들의 충성을 증명했습니다. 명목상 독일 황제는 그들의 국가원수이며, 독일인에 한해서 무제한 이민을 받고 있는 등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일 본국의 자유주의 운동의 결과에 따라 자유주의가 남서아프리카와 더불어 가장 빠르게 스며들었고, 남서아프리카와 함께 아프리카 내의 독일 패권을 수호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현대에 아프리카는 신흥 세력들의 세력 싸움터가 되고 있습니다. 동아프리카 정부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이는 그들이 자유협정 창립9개국이 되는데 일조했습니다. 그들의 서쪽과 남쪽에는 붉은 세력이 독일의 자유주의 패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margin-top: -10.5pt;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남서아프리카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Südwestafrika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남서아프리카는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브레멘 출신 상인에 의해 개척되기 시작해 풍부한 자원으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독일 본토에서 수많은 독일인이 정착하여, 남서아프리카는 독일의 식민지 중 가장 많은 독일인 정착민을 보유한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인 정착민들과 원주민들 간의 갈등은 증가했으며, 이는 헤레로 나마 집단학살 사건을 발생시켰습니다. 1차 대전에서 남서아프리카 식민지군은 포르투갈의 앙골라를 점령했고, 이는 빈트후크 조약에서 포르투갈령 앙골라를 독일령으로 합병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남서아프리카는 독일령 중앙아프리카에 합병되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3차 대전 이후 독일령 중앙아프리카가 해체됨에 따라 남서아프리카 또한 독립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높은 비율의 독일인 인구 수는 정부로 하여금 친독일적인 행보를 보이게 했습니다. 더불어 독일 본토에서 발생한 자유주의 운동은 남서아프리카에도 이루어져 주도적인 자유화를 이룩하였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동아프리카와 함께 남서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독일 패권을 수호하고 있으며,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으로써 존속하고 있습니다.
|-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margin-top: -10.5pt;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대한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Daehan.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00000; " | 1910년, 대한은 일본에 의해 합병되었습니다. 일본의 강제적인 합병과 강압적인 통치는 대한인으로 하여금 불만을 품게하였고, 1920년 대의 반란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반란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들은 일본 내에서 내지에 준하는 위치를 얻었습니다. 수십년의 기간 동안 그들은 내지에 동화되었고, 일본에 부역했습니다. 3차 대전으로 일본이 패망하면서 그들은 독립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독일에 의해 군정이 세워졌고, 그들은 일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과거 망명정부의 인사들을 고용했습니다. 독일은 이왕가라 불린 조선의 왕조를 왕으로 옹립하고 대한국을 수립하였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일본이 국제통치령이 된 상황에서 독일은 동아시아의 동맹국을 원하였고, 대한이 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대한은 독일의 동아시아 반인도 세력의 전진기지가 되었으며, 빠르게 자유주의가 주입되었습니다. 십여년의 정치적 혼란 끝에 정치는 안정화되었고, 특유의 국민성은 경제적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1990년대, 대한은 독일의 의도대로 동아시아 자유주의의 최전선으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이 됩니다.
|-
|}
|-
|}
</div></div>
 
{| class=" 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px solid #000000; font-size: 15pt; " |  <div class="mw-customtoggle-IPC" style="margin-left:auto; padding: 6px -1px 11px; padding-left: 7px; margin-right: auto; width: 100%; background-color:#FFFFFF; color:#000000;"><br />인도-태평양 공동체<br /><br /></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px solid #00000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Indo-Pucific Community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px solid #000000; font-size: 12pt; " | 제3차 세계 대전에서 인도는 아시아에서 일본의 야욕을 격퇴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와 중국으로까지 그들의 군화 아래에 두었습니다. 미국 항복 이후 독일의 군대가 일본을 유린하면서 전쟁은 종료되었으나 한반도에 자유주의 국가를 세우는 것을 본 인도는 독일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br />
인도는 독일에 대한 불만을 잃어버리지 않은체 팍스 게르마니카라 불린 일련의 시대를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 친독일적인 모습을 이용해 중국과 중앙아시아에 세워진 그들의 우방국들과의 경제 공동체인 인도-태평양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독일이 신경 쓰지 않은 그들의 공동체는 2010년 대에 들어 막대한 인구, 풍부한 자원을 통해 인도와 그들의 동맹국들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경제 공동체의 탈을 쓴 그들의 군사-정치-경제-외교 공동체는 이제 독일에 가장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
|}
<div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id="mw-customcollapsible-IPC" style="background:none; border:none;">
{| style=" margin-right: auto; margin-left: auto; vertical-align: top; width:100%;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인도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India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무굴 제국이 영국에 의해 멸망하면서 인도는 본격적으로 영국의 식민지배를 맞이했습니다. 천년만년 갈 것으로 예상했던 영국의 지배는 파리 조약 이후 무너져내렸습니다. 독립을 쟁취한 인도는 영국의 지배로 발생한 힌두-무슬림 갈등을 종식시키고 안정적인 체제 하에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곧 3차 대전에서 인도는 거대한 인력을 바탕으로 러시아와 일본의 야욕을 격퇴했습니다. 3차 대전을 통해 인도는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군정을 세우고 뒤이어 괴뢰 정부를 세웠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팍스 게르마니카 아래서 인도와 그 괴뢰국들은 거대한 영토와 압도적인 인구 수를 이용하여 급속도로 발전해왔습니다. 그들은 지역 경제 공동체라는 명목 하에 인도-태평양 공동체를 설립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급부상했습니다. 2010년 대에 들어 그들은 독일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부정하며 독일의 패권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그들의 동맹국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에까지 뻗치고 있습니다.
|-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중화연방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China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신해혁명 이후 중화는 혼돈에 빠졌습니다. 중앙 정부의 영향력은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지역 군벌이 활개를 쳤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중국을 침공하였고, 괴뢰 정부를 세웠습니다. 괴뢰 정부는 3차 대전에서 일본에게 부역했으며, 인도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인도는 우명무실해진 치공당을 내세워 중화에 중화연방을 설립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지방의 군벌들은 일본에 의해서도 완전히 진압되지 못한 상태였고, 3차 대전이 끝났을 무렵에는 하나의 국가와 같은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공당은 이들 군벌들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대신, 이들을 연방의 질서 하에 통제하기로 택합니다. 치공당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5개의 주요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화연방이 탄생하였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중화연방의 시작이 괴뢰 정부였다한들, 현재 중화인들은 연방체제에 만족하고 있으며, 동시에 친인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화연방은 인도의 인도-태평양 공동체의 2인자로써 새로운 패권과 편승을 원하고 있습니다.
|-
|}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튀르키스탄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Turkistan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튀르키스탄은 그레이트 게임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남하와 함께 튀르키스탄은 러시아에 합병되었습니다. 반백년 후, 러시아가 내전에 빠지면서 튀르키스탄은 여러 독립국가들이 생겨났고, 이는 영원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전에서 승리한 사회주의자들은 약속을 어기고 이들을 침공했습니다. 튀르키스탄은 러시아에 다시 합병되었습니다. 3차 대전에서 튀르키스탄 지역은 주요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수년간의 전쟁 끝에 인도군이 사회주의자를 몰아내고 이들을 해방시켜주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러시아 코뮌의 통치 아래서 이슬람교는 탄압 받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슬람교는 저항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이는 3차 대전에서도 마찬가지로 무슬림 의용군은 인도군을 도와 사회주의자들을 몰아냈습니다. 또한 저항 과정에서 범튀르크주의가 부상하면서 인도의 입맛에 알맞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인도는 이슬람교과 범튀르크주의를 이용하여 튀르키스탄을 건국합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이제 튀르키스탄은 인도와 중화연방과 함께 인도-태평양 공동체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하였습니다. 육로로 이어진 양국과 긴밀한 교류를 이루었고, 이는 삼국의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
|}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800px; margin-top: -10.5pt;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아라비아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Arabia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아라비아 지역은 이슬람의 발상지였으나, 근대에 들어 오랫동안 통일된 지배 세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부족들이 난립했으며, 이들 중 헤자즈, 네지드, 자발 샴마르가 주요 세력으로 존재했습니다. 한편, 아라비아 지역에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하던 오스만 제국은 오스만 전쟁으로 멸망했으며, 이는 아라비아의 통일에 대한 견제 세력이 없어짐을 의미했습니다. 그렇게 아라비아 반도는 헤자즈, 네지드, 자발 샴마르 세 세력이 통일을 위해 전쟁을 치루었고, 독일의 지원을 받은 헤자즈는 다른 두 세력 뿐만 아니라 오만과 예멘, 영국령 식민지들을 합병하면서 아라비아의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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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팍스 게르마니카 기간 동안 아라비아는 독일에 패권에 순응하여 근현대적 개혁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은 급진적이였고, 혼란을 불러왔습니다. 결국 반동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고 전제군주제 국가로 회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 시기는 인도가 급부상하던 시기였고, 아라비아의 반동주의자들은 인도와 협력관계를 가졌습니다. 현재 아라비아는 와하브파라 불리는 이들이 하심가 대신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며, 부족이 남아 있어 분권화된 행정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800px; margin-top: -10.5pt;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이스라엘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Israel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유대인들은 가나안에서 쫒겨난 이후 2천년을 떠돌아 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였고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어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수많은 학살에 직면했고 이는 그들만의 국가를 세우자는 시온주의의 등장을 야기했습니다. 그러던 2차 대전, 유대인들은 독일로부터 전쟁을 위한 자금을 기부받는 대신 마다가스카르에 그들만의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시온주의 세계대회는 이 제안을 수락했고, 2차 대전 이후 마다가스카르에는 이스라엘이 세워졌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마다가스카르의 이스라엘은 초기부터 강력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위기를 해결해줄 정권을 필요로 하였고, 권위주의 독재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더해서 유대인들의 토착민 학살은 국제사회로부터 큰 지탄을 받았고,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서구에 대한 불신과 서구에 대항할 새로운 동맹을 필요케 하였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눈에 인도는 새로운 동맹으로써 제격이였으며, 인도의 입장에서도 인도양에 대한 패권 확보를 위해 이스라엘은 최고의 위치를 지니고 있어 안성 맞춤의 동맹이였습니다.
|-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800px; margin-top: -10.5pt;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미연방국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F.S.A.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미국은 3차 대전에서 독일에게 대패하였습니다. 십여년간의 군정 이후 옛 미국의 영토에는 여러 미국들이 건국됩니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재건을 위해 싸웠고, 거대한 내전이 발발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옛 남부 맹방의 부활이 조지아의 미국에서 선포됩니다. 주변의 미국들도 이에 호응하였고, 곧 미연방국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북부의 사회주의자들과 미국의 안위를 놓고 십여년간 싸웠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상자에도 불구하고 내전은 종결될 기미를 보이지 못했고, 결국 워싱턴D.C.에서 내전의 종결과 워싱턴의 국제통치령화를 합의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미연방국은 건국이 내전 당시 국가들의 연합으로 출발한만큼 분권화된 국가였습니다. 미연방국은 내전 과정에서 인도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았고, 내전 종식 이후 인도와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이후 연합에 가입한 미연방국은 인도-태평양 공동체에 옵저버로 가입하는 등 인도와의 관계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
|}
|}</div></div>


== 분기점 ==
{| class=" 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 "
# 현실의 역사대로 [[제1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 프랑스군은 [[제17계획]]의 실패와 독일의 공세로 계속 패퇴하였다. [[조제프 조프르]]는 국경 지대를 포기하고 [[파리]]에서 반격할 계획을 구상하였으나 폐기하고 프랑스군은 산산히 부셔져 [[마른 전투]]에서 협상군은 대패를 당한다.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px solid #000000; font-size: 15pt; " | <div class="mw-customtoggle-CI" style="margin-left:auto; padding: 6px -1px 11px; padding-left: 7px; margin-right: auto; width: 100%; background-color:#FFFFFF; color:#000000;"><br />제4인터네셔널<br /><br /></div>
#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는 [[프레미셀]]의 요새에 포위된 10만 여명의 병력을 구출하는 데 성공하였고, 서부 전선에서의 빠른 승리에 따라 동부 전선에 수십만명의 독일군이 배치되어 공세를 가한다. 동맹국은 대규모 공세를 통해 [[상트페테르부르크]] 근방까지 진격하였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px solid #00000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Cuarto Internacional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px solid #000000; font-size: 12pt; " | 제3차 세계 대전에서 사회주의자들은 독일에 패배했습니다. 브리튼과 아메리카에서 세를 불리던 그들은 이제 조국을 잃고 내팽겨졌습니다. 그러나 미공화국이 먼로 독트린을 이으면서 남아메리카에 심어진 사회주의의 씨앗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 코뮌 정부가 세워지고 이윽고 남아메리카 코뮌 전쟁에서 반코뮌 연합이 패배하면서 남아메리카에는 사회주의 지상낙원이 세워졌습니다.
<br />
사회주의자들은 독일로부터 극심한 견제를 받아왔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아르헨티나의 제4인터네셔널을 중심으로 뭉쳤습니다. 제4인터네셔널은 남아메리카 뿐만 아니라 구 식민지 세계에 사회주의를 전파시켰고, 아메리카 본토에는 다시금 새로운 코뮌 정부가 세워졌습니다.
|-
|}
<div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id="mw-customcollapsible-CI" style="background:none; border:none;">
{| style=" margin-right: auto; margin-left: auto; vertical-align: top; width:100%;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아르헨티나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Argentina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아르헨티나는 목축업을 통해 남미의 프랑스라 불리는 등 발달하였습니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목축업을 주로 삼은 아르헨티나 경제는 몰락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인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로 발생하여 수십년간의 군부 독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3차 대전에서 패배한 사회주의자들이 아르헨티나에 망명했습니다. 이전의 칠레 사회주의자들이 망명하면서 아르헨티나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기반을 다지는데 성공했고, 이러한 상황에 서구 사회주의자들이 망명하면서 아르헨티나는 붉은 위협에 다다랐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결국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의 혁명이 일어나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코뮌군을 조직해 정규군을 물리쳤으며, 볼리비아의 코뮌 정부에 반발하여 발생한 남아메리카 혁명 전쟁에서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전하였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칠레와 우루과이를 합병하고 브라질을 분할시켰으며, 페루에는 코뮌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남아메리카는 완전히 사회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며, 혁명 전쟁의 승리와 함께 아르헨티나는 제4인터네셔널의 창립을 선언했습니다.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볼리비아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Bolivia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차코 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볼리비아는 국가적 재앙을 맞이했습니다. 정치적인 혼란과 경제적인 혼란이 같이 찾아왔으며, 이러한 상황을 대처할 능력이 없는 군부 독재가 계속되었습니다. 군부는 차코 전쟁의 복수를 명분으로 군비 확장을 통해 선군 정치를 진행했으며, 이는 볼리비아의 경제에 어떠한 이득도 되지 못하였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2-3차 대전을 거치며 볼리비아 내부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세를 불렸으며, 남아메리카의 여러 사회주의 조직과 협력을 이어나갔습니다. 비슷한 상황이던 아르헨티나에 코뮌이 들어섰습니다. 이를 계기로 남아메리카 혁명 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볼리비아 또한 국내외 사회주의 조직을 분쇄하고 차코 전쟁에서 잃은 영토를 반환받기 위해 참전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경제적 부담은 볼리비아에게 엄청난 부담이였고, 이는 곧 사회주의자들의 혁명을 의미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라파스에서 시작된 혁명은 곧 볼리비아 전역을 뒤덮었고, 군대 또한 군부에게서 등을 돌리면서 볼리비아는 남아메리카의 두번째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섰습니다. 볼리비아는 아르헨티나와 협력하여 지난 선군 정치를 통해 강대해진 군대를 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중앙아메리카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Centroamérica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중앙아메리카 지역은 긴 시간동안 수많은 정치·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수십년간 군부 독재와 내전에 시달렸습니다. 내전의 결과로 몇몇 국가들은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으며, 이들은 서로 새로운 중앙아메리카 연방공화국을 만들고자 연대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대에 위기감을 느낀 여러 독재 국가들은 그들끼리 또 다른 중앙아메리카 연방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연대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남아메리카에서 혁명 전쟁이 발발하자 이러한 여파는 중앙아메리카까지 이르렀습니다. 쿠바에서의 혁명을 시작으로 사회주의 국가와 독재 국가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그러나 독재 국가들은 전쟁이 지속될수록 내부의 사회주의자들에 의한 시위를 견뎌야 했고, 몇몇 국가는 혁명에 독재정부가 전복되엇습니다. 결국 남아메리카의 혁명 전쟁과 마찬가지로 중앙아메리카에는 사회주의자들이 승리하여 통합된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게 됩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중앙아메리카 코뮌은 아르헨티나의 제4인터네셔널의 창립 대회에 참가하여 창립국이 되었으며, 멕시코와 아메리카 일대의 사회주의 단체와의 연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margin-top: -10.5pt;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아메리카 코뮌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A.K.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대공황 이후 미국은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미공화국으로 바뀐 미국은 3차 대전에서 브리튼 코뮌과 같은 유럽 내 사회주의 국가와 동맹을 맺고 독일에 맞섰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독일의 승리로 끝났고, 독일의 군정이 미국에 세워졌습니다. 군정 이후 미국은 흔적도 없이 분열되어 끝없는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대호 주변에서는 다시 사회주의자들이 들고 일어섰고, 곧 아메리카 코뮌이 선포됩니다. 아메리카 코뮌이 선포되었을무렵, 미연방국이 남부를, 서부는 미합중국(서미위원회)가 통일했습니다. 미 코뮌은 미연방국과 끝없는 혈투를 치루었으나 결국 포기하고 워싱턴에서 종전조약을 맺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미 코뮌은 오대호 주변의 공업 지대에 영토를 두어 최대의 공업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쪽의 캘리포니아에 미코뮌으로의 통합을 원하는 미 태평양 코뮌이 존재하여 미코뮌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내전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제4인터네셔널 창립 대회에 미 코뮌은 대표단을 파견하였고, 창립국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내전 이후 아메리카 코뮌은 남미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으며 미연방국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margin-top: -10.5pt;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서아프리카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Ayqyrfa Brgh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프랑스 제4공화국이 들어서면서 프랑스령 서아프리카는 반정부 인사들을 이주시키는 수용소로 변했습니다. 본토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프랑스령 서아프리카로 강제 이주당했으며, 그들은 서아프리카의 무더운 날씨에 죽어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면서도 사회주의자 동지를 만들려 하였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제4공화국의 압제에 불만을 품던 원주민들에게 사회주의를 주입시키면서 효과를 거뒀습니다. 2차 대전에서 제4공화국이 항복하면서 프랑스령 서아프리카는 무정부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틈다 사회주의자들은 봉기를 일으키며 무주공산을 차지했습니다. 조약 이후 그들은 제3인터네셔널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으며, 서아프리카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세워지게 됩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3차 대전이 발발하며 제3인터네셔널이 몰락할 때 그들은 그저 바라보기만 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빈약한 경제 기반을 새우고자 노력했습니다. 서아프리카는 현대화되었으며, 충분한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남아메리카에서 혁명 전쟁을 지원하며 그들은 3차 대전에서의 죄를 씻고자하였고, 제4인터네셔널의 창립으로 이어졌습니다.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margin-top: -10.5pt; height: 80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인도차이나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Indochine Map.png]]</div>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인도차이나는 프랑스의 긴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 중 베트남은 반프랑스 운동이 가장 많았으며, 사회주의 세력이 큰 영향력을 지녔었습니다. 1차 대전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베트남 공산당은 봉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독일령 동아시아에 합병됐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독립 단체들은 저항해나갔습니다. 3차 대전 이후 범세계적인 탈식민지 시대가 열리면서 독일령 동아시아도 해체되었습니다. 인도차이나는 독립했으며, 자유주의 정부가 세워졌었습니다. 그러나 인도차이나 인민들은 친독일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도차이나 사회당의 혁명이 발생했습니다. 혁명의 결과로 인도차이나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인도차이나 코뮌은 필리핀의 사회주의를 지원하여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시키는 등 성립 이후 동남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팽창을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그들이 제4인터네셔널에 창립국으로 초대받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인도차이나는 계속해서 동남아시아에서 사회주의 확장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
|}</div></div>


== 기타 설정 ==
{| class=" 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 "
# 세 차례의 세계 대전을 승리한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은 [[팍스 게르마니카]]라 불리는 세계 패권을 이룩하였다. [[제3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3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의 건설을 주도했으며, 4개국의 상임이사국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유주의 국가들의 연합체인 [[자유협정]]의 의장국이다.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px solid #000000; font-size: 15pt; " | <div class="mw-customtoggle-IG" style="margin-left:auto; padding: 6px -1px 11px; padding-left: 7px; margin-right: auto; width: 100%; background-color:#FFFFFF; color:#000000;"><br />국제통치령<br /><br /></div>
# [[인도]]는 [[제1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 (태양 아래서)|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힌두-무슬림 간 갈등을 종식시키고 [[일본 제국 (태양 아래서)|일본 제국]]을 이은 아시아의 지역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제3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3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제국 (태양 아래서)|일본]]에 맞서며 아시아 전선을 주도하며 중국을 점령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연합]]의 상임이사국이 되었으며, 세계 2위의 강국이 되어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과 경쟁하고 있다. 권위주의-연방주의 국가들의 지역 연합체인 [[인도-태평양 공동체]]를 주도한다.
|-
# [[제2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2차 세계 대전]]으로 유럽 내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됨에 따라 사회주의자들은 [[아르헨티나]] 등과 같은 남아메리카로 망명한다. 이들은 점차 [[아르헨티나]] 내에 사회주의 세력을 구축하였으며, 군부 독재에 반대하며 혁명을 일으킨다. 수년의 내전 끝에 [[아르헨티나]]에는 코뮌 정부가 세워진다. 이후 [[아르헨티나]]는 [[칠레]]와 [[브라질]] 등 여러 국가와 전쟁을 벌이면서 남아메리카에 사회주의를 전파하였으며, 현재 [[제4인터네셔널]]을 세우고 다른 대륙에까지 사회주의를 전파하고 있다.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px solid #00000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Internationalgebiet.png]]</div>
# [[우크라이나]]는 독립 이후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과 동맹을 유지하며 영토를 넓혔다. 그들은 유럽 최대의 곡물 생산국가이자,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에 이은 유럽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연합]]의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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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경쟁국가이던 [[프랑스 제4공화국|프랑스]]는 3조각으로 분열되어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선다. 브리튼 제도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과거의 영광을 잃고 4개의 켈트 국가와 1개의 앵글로색슨 국가로 분열되었다.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left; border: 0px solid #000000; font-size: 12pt; " | 제3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이 설립되고 나서 황폐화된 일본에는 최초의 국제통치령이 새워졌습니다. 국제통치령은 연합의 감독하에 통치되고 있습니다.
# [[오스만 전쟁]]의 결과로 수립된 [[쿠르디스탄]]은 [[제2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이라크]]를 합병하고 중동의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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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튀르키스탄]]과 [[중화연방]]은 [[제3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3차 세계 대전]] 이후 [[인도]]에 의해 계획되어 수립되었다. 그들은 연방제 국가로 [[인도]]와 마찬가지로 권위주의적인 정부를 지녔다. 양국 모두 [[인도]]의 [[인도-태평양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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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3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태양 아래서)|일본]]에 최초로 [[국제통치령]]이 세워진다. [[국제통치령]]은 주권을 제한받으며, [[연합]]에 의해 관리되는 곳으로 [[일본 (태양 아래서)|일본]]과 [[아마존]]처럼 국가 수준의 정부가 세워지기도 하지만, 보통은 분쟁 지역에서 분쟁의 최소화를 위해 [[다레다바]]와 같이 세워지기도 하며, [[중화 국제통치령]]과 [[라고스]], [[징가푸어]]처럼 타국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요청에 의해 세워지기도 한다.
<div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id="mw-customcollapsible-IG" style="background:none; border:none;">
{| style=" margin-right: auto; margin-left: auto; vertical-align: top; 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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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45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뵈멘-메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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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Böhmen-Mähren Map.pn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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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체코는 2차 대전 이후 외부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국방력을 줄여나갔고 3차 대전 이후 연합이 설립되면서 무의미해진 그들의 국방을 연합에게 대리하는 국제통치령이 되었습니다. 뵈멘-메렌 국제통치령은 독일을 포함한 그 주변국에게 국방을 대리하고 국경을 개방하고 이를 감시하는 위원회가 존재하고 있으나, 그들의 정치와 관련된 문제는 그들과 그들의 인민이 스스로 결정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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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라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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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Lagos Map.pn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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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3차 대전 이후 탈식민지 시대가 오면서 독일령 중앙아프리카는 해체되면서 아프리카에는 십수개의 신생국들이 생겨났습니다. 라고스 또한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라고스는 그들의 주권을 스스로 지키기에는 그들의 국력이 부적합하다는 것을 깨닳았고, 연합에게 그들의 국방을 대리하며 국제통치령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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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height: 45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디레다바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Dire Dawa Map.pn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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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오가덴 지역을 두고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간의 전쟁에서 소말리아가 승리함으로써 오가덴 지역을 획득합니다. 전쟁에서 큰 격전지 중 하나인 디레다바는 양국이 합의하에 이를 중립지역으로 결정하였고, 연합에게 연합군의 주둔을 요청했습니다. 연합은 이를 수락했고 디레다바에는 국제통치령이 세워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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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margin-top: -10.5pt; height: 45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징가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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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Singapur Map.pn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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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대영제국 해체를 거치며 징가푸어는 독일령이 되었고, 3차 대전 이후 해방되었습니다. 그들은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물류 요충지였으나, 그들은 작은 국토 면적과 적은 인구로 인해 주변국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연합에게 국제통치령화를 요청했고, 그들의 영토에는 연합의 군대가 주둔하며 그들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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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margin-top: -10.5pt; height: 45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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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Japan Map.pn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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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일본은 3차 대전에서 독일에게 패배했습니다. 전쟁 도중 일본의 저항을 본 독일은 일본의 기틀을 없애기로 결정했습니다. 류큐와 에미시가 떨어나간 일본은 연합이 관리하는 첫번째 국제통치령이 되었습니다. 천황제는 폐지되었고 역사적인 모든 것은 소멸되었습니다. 작위적인 경계로 이루어진 지역과 그를 통치하는 연합의 위원회만이 남았습니다.
|}
| style=" vertical-align: top; " |
{| class="wikitable " style=" border: 2px solid #000000; width: 100.7%; margin-top: -10.5pt; height: 450px;  "
|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font-size: 13pt; height: 4%; " | 아마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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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FFFFFF; text-align: center; border: #000000; height: 20%; " | <div style=" margin: -4.0px -9.0px ">[[파일:Amazon Map.pn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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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border: #000000; " | 남아메리카 혁명 전쟁 이후 브라질은 완전히 해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네셔널은 아마촌까지 영향력을 뻗치지 못했고, 아마촌은 무법지대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분별한 벌목이 벌어졌고, 이로 인한 환경 파괴를 우려한 연합은 아마촌에 국제통치령을 설치하고 연합군을 주둔시켰습니다.
|}
|}</div></div>


== 영향, 모티브 ==
== 영향, 모티브 ==

2022년 10월 8일 (토) 00:06 기준 최신판

태양 아래서
Mit einem Worte : wir wollen niemand in den Schatten stellen, aber wir verlangen auch unseren Platz An Der Sonne.
한 마디로 그 누구도 그늘로 몰아내고 싶지는 않지만 양지바른 곳에 우리만의 공간을 요구한다.
- 베른하르트 폰 뷜로  
세계 지도
팍스 게르마니카

 첫 번째 전쟁에서 패권을 무너트리고, 두 번째 전쟁에서 패권을 얻고, 세 번째 전쟁에서 패권을 지켰다. 신이 함께하리 이는 신성하리라.
 독일은 세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기존의 제국주의 세력, 새로운 군부 세력, 마지막으로 위협적인 사회주의 세력까지 모두 박살이 났다. 하지만 다시금 피를 흘릴 때가 찾아온다. 아시아에서 권위주의가 부상하고, 남미에서는 다시금 사회주의가 부상한다. 그렇게 팍스 게르마니카 시대의 끝이 다가온다.


세계 전쟁
 뒤늦게 통일된 민족 국가를 구성한 독일은 그 차이가 무색하게 빠르게 영국을 쫓았다. 그들의 야욕은 발칸 반도에서의 총성과 함께 발사되었다. 불리한 싸움을 시작하였으나, 그들은 크리스마스를 파리에서 보냈다. 영국의 세계 패권은 무너지고, 프랑스의 자존심은 부서지고, 러시아의 영토는 빼앗겼다. 독일은 양지를 얻었다.
 또 다시 발칸 반도에서 총성이 울렸고, 이중제국이 무너졌다. 이중제국과 함께 미합중국의 주식 시장이 무너졌고, 세계 경제가 무너졌다. 그렇게 천천히 자라나던 혼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복수에 불탄 군부와 배고픔에 찌든 노동자가 새 세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복수는 피를 낳았다.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참혹한 전쟁이 세상을 훑고 지나갔다. 복수에 찬 이들의 바람과 달리 독일은 시체를 밟고 올라섰다. 무너진 세계 정치를 뒤로하고 그들은 패권을 거머쥐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그 참혹함으로 인해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란 이름으로 별칭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전쟁과 같은 평화를 만났다. 두 번째 대전에서 독일의 동맹으로 참전한 제3인터네셔널 사회주의 국가들과 대립하게 되니 이를 차가운 전쟁이라 한다. 차가운 전쟁의 기간 동안 양측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면서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상태를 수십년간 유지했다.

 비록 서로가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있다고 해도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고, 그렇기에 사소한 사건이 전쟁으로 번지기엔 충분했다. 발칸 반도에서의 총성에 이은 가장 큰 총성이었다. 다시금 악몽이 재현되었고, 더 오래 지속되었다.


연합
 제3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독일의 주도 하에 범세계적인 국제기구인 연합이 구성되었다. 과거 신성 동맹이나 상설중재법원과 같은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한 협력 기구에서 발전된 형태였다. 이사국과 회원국의 의결 기관인 이사회와 총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로 구성되어있다.
 국제통치령은 정치적·경제적 상황에 따라 해당 국가 혹은 지역의 일정 권리를 대리하는 개념이다. 뵈멘-메렌과 같이 스스로 국방이 필요 없다 판단한 경우에서부터 일본과 같이 패전국으로써 국방과 국정 등이 이양당한 경우 등 다양한 경우로 국제통치령이 될 수 있다.


자유협정
 새 천 년이 밝으면서 아시아에서는 권위주의 국가인 인도가 부상하고 남아메리카에서는 사회주의 국가인 아르헨티나가 부상했다. 그들은 각각 인도-태평양 공동체, 제4인터네셔널을 중심으로 하여 조금씩 독일과 그 동맹국을 위협했다. 2018년 베를린에서 독일을 포함한 9개국이 모여 정치·경제·군사적 동맹을 맺으니 이가 자유협정이다. 총 82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인도-태평양 공동체
 마지막 세계 전쟁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인도는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그들은 맨파워를 바탕으로 힘을 길렀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국제 협력을 명분으로 인도-태평양 공동체를 창설하였다. 초기에는 협력이라는 명분을 따랐으나 새 천 년이 밝아오며 인도-태평양, 더 나아가 독일의 패권에 대항할 세력으로 떠올랐다. 총 28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제4인터네셔널

 제3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에 맞서 싸운 사회주의의 이념은 몰락한 듯 보였다. 그러나 남아메리카를 뒤흔든 경제 위기 속에 패배한 사회주의자들이 결집하여 다시금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어 내었다. 남아메리카 혁명 전쟁은 완전히 남아메리카를 사회화시켰고, 이들은 제4인터네셔널의 이름을 내걸었다. 이후 그들은 다른 대륙으로까지 사회주의 혁명을 전파하고 있다. 총 15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참고
 제1차 세계 대전이 고작 1년만에 종결되었기에 마땅한 기술의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되어서야 급격한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고, 차가운 전쟁과 제3차 세계 대전은 더욱 급진적이었다. 작중 배경인 2020년의 기술력과 생활상은 현실 1960년 대에 머물고 있으며, 1세계의 사회적인 분위기는 현재 서구의 분위기와 유사하다. 19세기의 기술이 오래 남아 대표적으로 발전된 비행선이 현대까지 하늘을 떠다니며 유람선의 역할을 하고 있고, 거함거포주의는 약화되었으나 전함이 해군력에 포함되어 있다. 우주 개발은 진행되지 않았다. 프레온 가스의 사용으로 인한 오존층이 파괴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시에 녹색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An Der Sonne
태양 아래서
장르 대체역사 밀리터리
연재 기간 2021년 2월 17일 ~ 현재
제작자 Enzo
제작 환경 네이버 웨일 브라우저
리버티 스킨
데스크톱
저작권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An Der Sonne 혹은 태양 아래서Enzo의 4번째 대규모 세계관이다. 최초의 독뽕 대체역사 대규모 세계관인 승리의 왕관의 후계 설정이며, 단일 국가까지 포함하여 6번째 독뽕 세계관이다.

세계

세계지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과 그 동맹국들이 승전하고 기존의 영국의 패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붕괴로 인해 발생한 대공황으로 독일의 미정립된 패권은 흔들렸고,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떠올랐다. 네오불랑주의자들에 의해 구성된 프랑스 제4공화국유제프 피우수트스키폴란드-리투아니아를 주축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다. 수 년간의 전쟁은 독일의 승리로 종료되었으나, 제3인터네셔널의 부상으로 인해 이들과 세계를 양분한 체 차가운 전쟁이라 불린 시기를 거쳤다. 수십년의 차가운 전쟁은 결국 제3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고, 역사상 최대의 피해를 낸 전쟁이 되었다.

제3차 세계 대전이 종료된 이후 독일은 비로소 팍스 게르마니카라 불린 세계 패권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차가운 전쟁제3차 세계 대전의 동맹이었던 인도의 부상이 독일의 헤게모니를 위협하고 있으며, 뿌리 뽑지 못한 사회주의가 남아메리카에서 다시 꽃을 피워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 팍스 게르마니카의 존제에 위기를 가하고 있다.

주요 국가

독일과 그 동맹국

인도와 그 동맹국
아르헨티나와 그 동맹국
국제통치령


자유협정

세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독일은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1960년 대의 자유화로 기존 권위주의 체제에서 탈피한 독일은 그들의 이념을 전 세계에 관철시킬 일만 남았었습니다. 독일의 헤게모니에 저항할 국가는 존재치 않았고, 수많은 국가들이 자유화되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 대에 들어 권위주의 정부를 지닌 인도의 부상은 독일로 하여금 그들의 헤게모니와 이념에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상과 같이 인도의 이념은 수 십 년 간 독일이 세계에 뿌린 자유주의 질서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더불어 코뮌에 의한 브라질의 해체는 독일로 하여금 3차 대전을 연상케하였습니다.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 퍼진 위협 아래 독일은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 동맹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습니다. 2018년, 베를린에서 9개국이 자유협정이라 불리는 조약에 서명하면서 자유협정이 설립됩니다. 수많은 자유주의 국가들이 협정에 동참하였고, 권위주의와 사회주의로부터 그들의 국가와 이념을 지키기 위해 연합했습니다.

독일
1871년의 통일 이후 독일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들의 공업력은 영국을 바로 뒤에서 뒤쫓고 있었고, 그들의 해군 증강은 영국으로 하여금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1차 대전에서 그들은 슐리펜 계획을 성공시키면서 승전합니다. 독일은 미완성된 패권을 거머쥐었고, 2차 대전을 거치며 확고해졌습니다.
3차 대전에서 사회주의자들의 공격을 격퇴하면서 세계는 비로소 독일의 패권을 받아들였습니다. 팍스 게르마니카라 불린 일련의 평화가 이를 증명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자유화된 독일은 이제 그들의 이념을 전 세계에 전파했고, 자유주의와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인력과 자원, 거대한 영토를 바탕으로 성장한 인도와 그 동맹국들과 남아메리카에 뿌리 내린 사회주의의 붉은 위협이 팍스 게르마니카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세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유럽을 장악해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위협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독일-헝가리-우크라이나-러시아-러시아-이집트-동아프리카-남서아프리카-대한 9개국이 베를린에 모여 자유협정을 창립하였습니다. 정치-경제-군사-외교 공동체인 자유협정은 새로운 위협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헝가리
이중제국이 해체되면서 헝가리는 갑작스럽게 독립을 얻었습니다. 독립 직후 이루어진 전쟁에서 그들은 크로아티아를 잃었으나, 2차 대전에서 발칸 반도를 수호하면서 보스니아까지 진출합니다. 3차 대전에서도 그들은 독일을 지원하며 승전하였고, 독일의 질서에 편승했습니다.
이중제국의 해체와 함께 헝가리는 그들만의 정치를 만들 기회를 얻었습니다. 긴 논의 끝에 작센코부르크고타가의 분가인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가가 위원회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위원회는 당주인 페테르 아고슈트(Péter Ágost, 페드로 아우구스토)를 헝가리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했습니다. 그러나 페테르 2세는 헝가리어를 못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의회의 권력이 강화되었습니다. 1960년의 자유주의 운동 이전에 이미 헝가리는 자유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헝가리는 불가리아와 발칸 반도의 영향력을 두고 경쟁했습니다. 그러나 3차 대전으로 그리스가 다시 부상하면서 불가리아의 영향력은 감소하였습니다. 헝가리는 건국 이후로 계속해서 독일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 중 한 국가로써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수백년 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리가 조약은 우크라니아를 독립시킴과 동시에 독일의 위성국으로 만들었습니다. 해트만 정부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원한 체제가 아니였으나, 헤트만 체제는 계속해서 살아남았습니다. 2차 대전에서 우크라이나는 폴란드-리투아니아에 맞서 동유럽을 수호했습니다. 3차 대전에서 그들은 러시아의 국토를 유린함으로써 과거 수백년의 지배 시기를 복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헤트만 체제는 우크라이나가 중부유럽 동맹의 일원으로써 얻는 막대한 경제적 이득으로 인해 안정적으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스며들었습니다. 1960년 독일의 자유주의 운동이 우크라이나로 뻗치면서 기존의 권위주의적인 헤트만 체제는 자유화되었습니다. 자유화된 체제는 그들은 더이상 불만을 갖지 않았고, 정치적 안정은 경제적 성장으로 나타났습니다.

인도의 부상이 자유세계에 위협으로 다가오자, 우크라이나는 8개국들과 함께 창립국으로써 자유협정을 창립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독일을 따르며 자유세계를 수호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모스크바 대공국에서부터 출발한 러시아는 영국과 패권 경쟁을 할 정도로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차 대전에서 독일에게 처참히 패하여 유럽 영토를 대부분 잃고 혼란에 빠집니다. 내전 이후에는 코뮌이 들어섰으며, 3차 대전에 참전했다 다시 독일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패전 이후 독일에 충성하며 다시금 강성해졌습니다. 엄청난 길이의 국경은 러시아를 인도-태평양 공동체에 대항하는 최전선으로 만들었습니다.
3차 대전 이후 잠시 동안의 군정으로 자유주의가 러시아 정치에 스며들었습니다. 로마노프가가 다시 왕위에 올랐고, 내각제가 자리잡았습니다. 독일의 경제 블록 안에서 그들은 광활한 영토와 인구를 무기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중심으로 시베리아 지역 또한 순조롭게 개발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두 차례나 독일에 패배하면서 마침내 독일의 질서에 편승했습니다. 그들은 인도-태평양 공동체에 대항하는 최전선으로써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쿠르디스탄
쿠르디스탄은 16세기 오스만과 이란에 의해 지배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지배는 오스만이 붕괴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1920년 대, 쿠르드인들은 오스만이 아르메니아와 그리스에 의해 패퇴를 거듭하자 독립을 선포하며 오스만 전쟁에 참전하여 승전하였습니다. 쿠르디스탄은 비로소 독립국가가 되었으며, 2차 대전과 3차 대전을 통해 이라크를 합병하는 등 현재의 영토에 이르렀습니다.
쿠르디스탄은 바르잔지가 왕위에 오르면서 군주국이 되었고, 말리크는 강한 권력을 지녔었습니다. 1960년 대의 자유주의 운동의 여파에도 권위주의적인 체제를 유지하였으나, 1980년 대, 독일에 의해 사실상의 혁명이 발생하면서 자유주의 입헌군주제 국가가 되었습니다.
사실상의 혁명을 통해 자유주의 국가가 된 쿠르디스탄은 1990년 대의 독일의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 중 하나로 참여하며 아라비아의 견제를 위해 독일과 우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집트
이집트는 오스만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무함마드 알리는 이집트의 지배권을 차지하고는 여러 개혁을 진행하며 이집트를 근대화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이집트에 강력한 영향력을 투사하였고, 대영제국이 붕괴될 때까지 이집트는 영국에 종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파리 조약 이후 영국의 영향력은 줄어들었고, 독일의 개입으로 이집트는 완전한 독립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독립 이집트도 독일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의 군국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사회는 자유화된 독일로 하여금 외교적 압박을 발생시켰습니다. 이집트는 독일의 압박에 저항하며 자국 내 자유주의 운동을 탄압해왔으나 자유주의 운동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독일은 수에즈 운하를 통해 개입하기에 이릅니다. 압도적인 무력에 이집트 정부는 꼬리를 내렸고, 이집트는 독일이 무력으로 자유화를 이룩한 첫 국가가 되었습니다.
새로 세워진 자유주의 정부는 친독일적인 행보를 보이며 권위주의 체제에 대해 위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인도와 그 동맹국이 급부상하면서 악화되었고,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으로 참여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슬람 세계의 자유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동아프리카
베를린 회의 이후 독일은 독일령 동아프리카를 설립했습니다. 독일은 효과적인 식민 통치로 동아프리카를 모범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독일령 동아프리카는 파리 조약으로 인해 독일령 중앙아프리카가 됩니다.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와 더불어 독일령 동아프리카는 독일령 중앙아프리카의 중심지로 작용했습니다. 3차 대전 이후 독일령 중앙아프리카는 여러 국가들이 분리 독립하면서 해체됩니다.
독일령 중앙아프리카의 해체 이후에도 동아프리카는 독일 본국에 그들의 충성을 증명했습니다. 명목상 독일 황제는 그들의 국가원수이며, 독일인에 한해서 무제한 이민을 받고 있는 등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일 본국의 자유주의 운동의 결과에 따라 자유주의가 남서아프리카와 더불어 가장 빠르게 스며들었고, 남서아프리카와 함께 아프리카 내의 독일 패권을 수호했습니다.
현대에 아프리카는 신흥 세력들의 세력 싸움터가 되고 있습니다. 동아프리카 정부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이는 그들이 자유협정 창립9개국이 되는데 일조했습니다. 그들의 서쪽과 남쪽에는 붉은 세력이 독일의 자유주의 패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남서아프리카
남서아프리카는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브레멘 출신 상인에 의해 개척되기 시작해 풍부한 자원으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독일 본토에서 수많은 독일인이 정착하여, 남서아프리카는 독일의 식민지 중 가장 많은 독일인 정착민을 보유한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인 정착민들과 원주민들 간의 갈등은 증가했으며, 이는 헤레로 나마 집단학살 사건을 발생시켰습니다. 1차 대전에서 남서아프리카 식민지군은 포르투갈의 앙골라를 점령했고, 이는 빈트후크 조약에서 포르투갈령 앙골라를 독일령으로 합병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남서아프리카는 독일령 중앙아프리카에 합병되었습니다.
3차 대전 이후 독일령 중앙아프리카가 해체됨에 따라 남서아프리카 또한 독립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높은 비율의 독일인 인구 수는 정부로 하여금 친독일적인 행보를 보이게 했습니다. 더불어 독일 본토에서 발생한 자유주의 운동은 남서아프리카에도 이루어져 주도적인 자유화를 이룩하였습니다.
동아프리카와 함께 남서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독일 패권을 수호하고 있으며,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으로써 존속하고 있습니다.
대한
1910년, 대한은 일본에 의해 합병되었습니다. 일본의 강제적인 합병과 강압적인 통치는 대한인으로 하여금 불만을 품게하였고, 1920년 대의 반란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반란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들은 일본 내에서 내지에 준하는 위치를 얻었습니다. 수십년의 기간 동안 그들은 내지에 동화되었고, 일본에 부역했습니다. 3차 대전으로 일본이 패망하면서 그들은 독립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독일에 의해 군정이 세워졌고, 그들은 일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과거 망명정부의 인사들을 고용했습니다. 독일은 이왕가라 불린 조선의 왕조를 왕으로 옹립하고 대한국을 수립하였습니다.
일본이 국제통치령이 된 상황에서 독일은 동아시아의 동맹국을 원하였고, 대한이 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대한은 독일의 동아시아 반인도 세력의 전진기지가 되었으며, 빠르게 자유주의가 주입되었습니다. 십여년의 정치적 혼란 끝에 정치는 안정화되었고, 특유의 국민성은 경제적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1990년대, 대한은 독일의 의도대로 동아시아 자유주의의 최전선으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이 됩니다.

인도-태평양 공동체

제3차 세계 대전에서 인도는 아시아에서 일본의 야욕을 격퇴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와 중국으로까지 그들의 군화 아래에 두었습니다. 미국 항복 이후 독일의 군대가 일본을 유린하면서 전쟁은 종료되었으나 한반도에 자유주의 국가를 세우는 것을 본 인도는 독일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도는 독일에 대한 불만을 잃어버리지 않은체 팍스 게르마니카라 불린 일련의 시대를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 친독일적인 모습을 이용해 중국과 중앙아시아에 세워진 그들의 우방국들과의 경제 공동체인 인도-태평양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독일이 신경 쓰지 않은 그들의 공동체는 2010년 대에 들어 막대한 인구, 풍부한 자원을 통해 인도와 그들의 동맹국들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경제 공동체의 탈을 쓴 그들의 군사-정치-경제-외교 공동체는 이제 독일에 가장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인도
무굴 제국이 영국에 의해 멸망하면서 인도는 본격적으로 영국의 식민지배를 맞이했습니다. 천년만년 갈 것으로 예상했던 영국의 지배는 파리 조약 이후 무너져내렸습니다. 독립을 쟁취한 인도는 영국의 지배로 발생한 힌두-무슬림 갈등을 종식시키고 안정적인 체제 하에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곧 3차 대전에서 인도는 거대한 인력을 바탕으로 러시아와 일본의 야욕을 격퇴했습니다. 3차 대전을 통해 인도는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군정을 세우고 뒤이어 괴뢰 정부를 세웠습니다.
팍스 게르마니카 아래서 인도와 그 괴뢰국들은 거대한 영토와 압도적인 인구 수를 이용하여 급속도로 발전해왔습니다. 그들은 지역 경제 공동체라는 명목 하에 인도-태평양 공동체를 설립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급부상했습니다. 2010년 대에 들어 그들은 독일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부정하며 독일의 패권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그들의 동맹국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에까지 뻗치고 있습니다.
중화연방
신해혁명 이후 중화는 혼돈에 빠졌습니다. 중앙 정부의 영향력은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지역 군벌이 활개를 쳤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중국을 침공하였고, 괴뢰 정부를 세웠습니다. 괴뢰 정부는 3차 대전에서 일본에게 부역했으며, 인도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인도는 우명무실해진 치공당을 내세워 중화에 중화연방을 설립했습니다.
지방의 군벌들은 일본에 의해서도 완전히 진압되지 못한 상태였고, 3차 대전이 끝났을 무렵에는 하나의 국가와 같은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공당은 이들 군벌들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대신, 이들을 연방의 질서 하에 통제하기로 택합니다. 치공당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5개의 주요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화연방이 탄생하였습니다.
중화연방의 시작이 괴뢰 정부였다한들, 현재 중화인들은 연방체제에 만족하고 있으며, 동시에 친인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화연방은 인도의 인도-태평양 공동체의 2인자로써 새로운 패권과 편승을 원하고 있습니다.
튀르키스탄
튀르키스탄은 그레이트 게임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남하와 함께 튀르키스탄은 러시아에 합병되었습니다. 반백년 후, 러시아가 내전에 빠지면서 튀르키스탄은 여러 독립국가들이 생겨났고, 이는 영원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전에서 승리한 사회주의자들은 약속을 어기고 이들을 침공했습니다. 튀르키스탄은 러시아에 다시 합병되었습니다. 3차 대전에서 튀르키스탄 지역은 주요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수년간의 전쟁 끝에 인도군이 사회주의자를 몰아내고 이들을 해방시켜주었습니다.
러시아 코뮌의 통치 아래서 이슬람교는 탄압 받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슬람교는 저항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이는 3차 대전에서도 마찬가지로 무슬림 의용군은 인도군을 도와 사회주의자들을 몰아냈습니다. 또한 저항 과정에서 범튀르크주의가 부상하면서 인도의 입맛에 알맞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인도는 이슬람교과 범튀르크주의를 이용하여 튀르키스탄을 건국합니다.
이제 튀르키스탄은 인도와 중화연방과 함께 인도-태평양 공동체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하였습니다. 육로로 이어진 양국과 긴밀한 교류를 이루었고, 이는 삼국의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아라비아
아라비아 지역은 이슬람의 발상지였으나, 근대에 들어 오랫동안 통일된 지배 세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부족들이 난립했으며, 이들 중 헤자즈, 네지드, 자발 샴마르가 주요 세력으로 존재했습니다. 한편, 아라비아 지역에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하던 오스만 제국은 오스만 전쟁으로 멸망했으며, 이는 아라비아의 통일에 대한 견제 세력이 없어짐을 의미했습니다. 그렇게 아라비아 반도는 헤자즈, 네지드, 자발 샴마르 세 세력이 통일을 위해 전쟁을 치루었고, 독일의 지원을 받은 헤자즈는 다른 두 세력 뿐만 아니라 오만과 예멘, 영국령 식민지들을 합병하면서 아라비아의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팍스 게르마니카 기간 동안 아라비아는 독일에 패권에 순응하여 근현대적 개혁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은 급진적이였고, 혼란을 불러왔습니다. 결국 반동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고 전제군주제 국가로 회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 시기는 인도가 급부상하던 시기였고, 아라비아의 반동주의자들은 인도와 협력관계를 가졌습니다. 현재 아라비아는 와하브파라 불리는 이들이 하심가 대신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며, 부족이 남아 있어 분권화된 행정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가나안에서 쫒겨난 이후 2천년을 떠돌아 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였고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어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수많은 학살에 직면했고 이는 그들만의 국가를 세우자는 시온주의의 등장을 야기했습니다. 그러던 2차 대전, 유대인들은 독일로부터 전쟁을 위한 자금을 기부받는 대신 마다가스카르에 그들만의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시온주의 세계대회는 이 제안을 수락했고, 2차 대전 이후 마다가스카르에는 이스라엘이 세워졌습니다.
마다가스카르의 이스라엘은 초기부터 강력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위기를 해결해줄 정권을 필요로 하였고, 권위주의 독재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더해서 유대인들의 토착민 학살은 국제사회로부터 큰 지탄을 받았고,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서구에 대한 불신과 서구에 대항할 새로운 동맹을 필요케 하였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눈에 인도는 새로운 동맹으로써 제격이였으며, 인도의 입장에서도 인도양에 대한 패권 확보를 위해 이스라엘은 최고의 위치를 지니고 있어 안성 맞춤의 동맹이였습니다.
미연방국
미국은 3차 대전에서 독일에게 대패하였습니다. 십여년간의 군정 이후 옛 미국의 영토에는 여러 미국들이 건국됩니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재건을 위해 싸웠고, 거대한 내전이 발발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옛 남부 맹방의 부활이 조지아의 미국에서 선포됩니다. 주변의 미국들도 이에 호응하였고, 곧 미연방국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북부의 사회주의자들과 미국의 안위를 놓고 십여년간 싸웠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상자에도 불구하고 내전은 종결될 기미를 보이지 못했고, 결국 워싱턴D.C.에서 내전의 종결과 워싱턴의 국제통치령화를 합의했습니다.
미연방국은 건국이 내전 당시 국가들의 연합으로 출발한만큼 분권화된 국가였습니다. 미연방국은 내전 과정에서 인도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았고, 내전 종식 이후 인도와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이후 연합에 가입한 미연방국은 인도-태평양 공동체에 옵저버로 가입하는 등 인도와의 관계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제4인터네셔널

제3차 세계 대전에서 사회주의자들은 독일에 패배했습니다. 브리튼과 아메리카에서 세를 불리던 그들은 이제 조국을 잃고 내팽겨졌습니다. 그러나 미공화국이 먼로 독트린을 이으면서 남아메리카에 심어진 사회주의의 씨앗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 코뮌 정부가 세워지고 이윽고 남아메리카 코뮌 전쟁에서 반코뮌 연합이 패배하면서 남아메리카에는 사회주의 지상낙원이 세워졌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독일로부터 극심한 견제를 받아왔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아르헨티나의 제4인터네셔널을 중심으로 뭉쳤습니다. 제4인터네셔널은 남아메리카 뿐만 아니라 구 식민지 세계에 사회주의를 전파시켰고, 아메리카 본토에는 다시금 새로운 코뮌 정부가 세워졌습니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는 목축업을 통해 남미의 프랑스라 불리는 등 발달하였습니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목축업을 주로 삼은 아르헨티나 경제는 몰락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인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로 발생하여 수십년간의 군부 독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3차 대전에서 패배한 사회주의자들이 아르헨티나에 망명했습니다. 이전의 칠레 사회주의자들이 망명하면서 아르헨티나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기반을 다지는데 성공했고, 이러한 상황에 서구 사회주의자들이 망명하면서 아르헨티나는 붉은 위협에 다다랐습니다.
결국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의 혁명이 일어나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코뮌군을 조직해 정규군을 물리쳤으며, 볼리비아의 코뮌 정부에 반발하여 발생한 남아메리카 혁명 전쟁에서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전하였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칠레와 우루과이를 합병하고 브라질을 분할시켰으며, 페루에는 코뮌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남아메리카는 완전히 사회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며, 혁명 전쟁의 승리와 함께 아르헨티나는 제4인터네셔널의 창립을 선언했습니다.
볼리비아
차코 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볼리비아는 국가적 재앙을 맞이했습니다. 정치적인 혼란과 경제적인 혼란이 같이 찾아왔으며, 이러한 상황을 대처할 능력이 없는 군부 독재가 계속되었습니다. 군부는 차코 전쟁의 복수를 명분으로 군비 확장을 통해 선군 정치를 진행했으며, 이는 볼리비아의 경제에 어떠한 이득도 되지 못하였습니다.
2-3차 대전을 거치며 볼리비아 내부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세를 불렸으며, 남아메리카의 여러 사회주의 조직과 협력을 이어나갔습니다. 비슷한 상황이던 아르헨티나에 코뮌이 들어섰습니다. 이를 계기로 남아메리카 혁명 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볼리비아 또한 국내외 사회주의 조직을 분쇄하고 차코 전쟁에서 잃은 영토를 반환받기 위해 참전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경제적 부담은 볼리비아에게 엄청난 부담이였고, 이는 곧 사회주의자들의 혁명을 의미했습니다.
라파스에서 시작된 혁명은 곧 볼리비아 전역을 뒤덮었고, 군대 또한 군부에게서 등을 돌리면서 볼리비아는 남아메리카의 두번째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섰습니다. 볼리비아는 아르헨티나와 협력하여 지난 선군 정치를 통해 강대해진 군대를 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중앙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지역은 긴 시간동안 수많은 정치·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수십년간 군부 독재와 내전에 시달렸습니다. 내전의 결과로 몇몇 국가들은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으며, 이들은 서로 새로운 중앙아메리카 연방공화국을 만들고자 연대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대에 위기감을 느낀 여러 독재 국가들은 그들끼리 또 다른 중앙아메리카 연방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연대했습니다.
남아메리카에서 혁명 전쟁이 발발하자 이러한 여파는 중앙아메리카까지 이르렀습니다. 쿠바에서의 혁명을 시작으로 사회주의 국가와 독재 국가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그러나 독재 국가들은 전쟁이 지속될수록 내부의 사회주의자들에 의한 시위를 견뎌야 했고, 몇몇 국가는 혁명에 독재정부가 전복되엇습니다. 결국 남아메리카의 혁명 전쟁과 마찬가지로 중앙아메리카에는 사회주의자들이 승리하여 통합된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게 됩니다.
중앙아메리카 코뮌은 아르헨티나의 제4인터네셔널의 창립 대회에 참가하여 창립국이 되었으며, 멕시코와 아메리카 일대의 사회주의 단체와의 연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코뮌
대공황 이후 미국은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미공화국으로 바뀐 미국은 3차 대전에서 브리튼 코뮌과 같은 유럽 내 사회주의 국가와 동맹을 맺고 독일에 맞섰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독일의 승리로 끝났고, 독일의 군정이 미국에 세워졌습니다. 군정 이후 미국은 흔적도 없이 분열되어 끝없는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대호 주변에서는 다시 사회주의자들이 들고 일어섰고, 곧 아메리카 코뮌이 선포됩니다. 아메리카 코뮌이 선포되었을무렵, 미연방국이 남부를, 서부는 미합중국(서미위원회)가 통일했습니다. 미 코뮌은 미연방국과 끝없는 혈투를 치루었으나 결국 포기하고 워싱턴에서 종전조약을 맺습니다.
미 코뮌은 오대호 주변의 공업 지대에 영토를 두어 최대의 공업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쪽의 캘리포니아에 미코뮌으로의 통합을 원하는 미 태평양 코뮌이 존재하여 미코뮌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내전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제4인터네셔널 창립 대회에 미 코뮌은 대표단을 파견하였고, 창립국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내전 이후 아메리카 코뮌은 남미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으며 미연방국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서아프리카
프랑스 제4공화국이 들어서면서 프랑스령 서아프리카는 반정부 인사들을 이주시키는 수용소로 변했습니다. 본토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프랑스령 서아프리카로 강제 이주당했으며, 그들은 서아프리카의 무더운 날씨에 죽어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면서도 사회주의자 동지를 만들려 하였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제4공화국의 압제에 불만을 품던 원주민들에게 사회주의를 주입시키면서 효과를 거뒀습니다. 2차 대전에서 제4공화국이 항복하면서 프랑스령 서아프리카는 무정부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틈다 사회주의자들은 봉기를 일으키며 무주공산을 차지했습니다. 조약 이후 그들은 제3인터네셔널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으며, 서아프리카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세워지게 됩니다.
3차 대전이 발발하며 제3인터네셔널이 몰락할 때 그들은 그저 바라보기만 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빈약한 경제 기반을 새우고자 노력했습니다. 서아프리카는 현대화되었으며, 충분한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남아메리카에서 혁명 전쟁을 지원하며 그들은 3차 대전에서의 죄를 씻고자하였고, 제4인터네셔널의 창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인도차이나
인도차이나는 프랑스의 긴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 중 베트남은 반프랑스 운동이 가장 많았으며, 사회주의 세력이 큰 영향력을 지녔었습니다. 1차 대전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베트남 공산당은 봉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독일령 동아시아에 합병됐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독립 단체들은 저항해나갔습니다. 3차 대전 이후 범세계적인 탈식민지 시대가 열리면서 독일령 동아시아도 해체되었습니다. 인도차이나는 독립했으며, 자유주의 정부가 세워졌었습니다. 그러나 인도차이나 인민들은 친독일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도차이나 사회당의 혁명이 발생했습니다. 혁명의 결과로 인도차이나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인도차이나 코뮌은 필리핀의 사회주의를 지원하여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시키는 등 성립 이후 동남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팽창을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그들이 제4인터네셔널에 창립국으로 초대받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인도차이나는 계속해서 동남아시아에서 사회주의 확장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국제통치령

제3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이 설립되고 나서 황폐화된 일본에는 최초의 국제통치령이 새워졌습니다. 국제통치령은 연합의 감독하에 통치되고 있습니다.
뵈멘-메렌
체코는 2차 대전 이후 외부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국방력을 줄여나갔고 3차 대전 이후 연합이 설립되면서 무의미해진 그들의 국방을 연합에게 대리하는 국제통치령이 되었습니다. 뵈멘-메렌 국제통치령은 독일을 포함한 그 주변국에게 국방을 대리하고 국경을 개방하고 이를 감시하는 위원회가 존재하고 있으나, 그들의 정치와 관련된 문제는 그들과 그들의 인민이 스스로 결정하고 있습니다.
라고스
3차 대전 이후 탈식민지 시대가 오면서 독일령 중앙아프리카는 해체되면서 아프리카에는 십수개의 신생국들이 생겨났습니다. 라고스 또한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라고스는 그들의 주권을 스스로 지키기에는 그들의 국력이 부적합하다는 것을 깨닳았고, 연합에게 그들의 국방을 대리하며 국제통치령이 되었습니다.
디레다바
오가덴 지역을 두고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간의 전쟁에서 소말리아가 승리함으로써 오가덴 지역을 획득합니다. 전쟁에서 큰 격전지 중 하나인 디레다바는 양국이 합의하에 이를 중립지역으로 결정하였고, 연합에게 연합군의 주둔을 요청했습니다. 연합은 이를 수락했고 디레다바에는 국제통치령이 세워졌습니다.
징가푸어
대영제국 해체를 거치며 징가푸어는 독일령이 되었고, 3차 대전 이후 해방되었습니다. 그들은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물류 요충지였으나, 그들은 작은 국토 면적과 적은 인구로 인해 주변국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연합에게 국제통치령화를 요청했고, 그들의 영토에는 연합의 군대가 주둔하며 그들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일본
일본은 3차 대전에서 독일에게 패배했습니다. 전쟁 도중 일본의 저항을 본 독일은 일본의 기틀을 없애기로 결정했습니다. 류큐와 에미시가 떨어나간 일본은 연합이 관리하는 첫번째 국제통치령이 되었습니다. 천황제는 폐지되었고 역사적인 모든 것은 소멸되었습니다. 작위적인 경계로 이루어진 지역과 그를 통치하는 연합의 위원회만이 남았습니다.
아마촌
남아메리카 혁명 전쟁 이후 브라질은 완전히 해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네셔널은 아마촌까지 영향력을 뻗치지 못했고, 아마촌은 무법지대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분별한 벌목이 벌어졌고, 이로 인한 환경 파괴를 우려한 연합은 아마촌에 국제통치령을 설치하고 연합군을 주둔시켰습니다.

영향, 모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