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펼치기 · 접기 ]
자체 제작 세계관
참여 세계관 공동 연재 세계관

[ 국가 목록 ]
[ 세계관 소개 ]
[ 문서 목록 ]


민국 38(民國三十八)은 가장 대표적인 대체역사 소재 중 하나인 중화민국국공내전 승리를 가정한 세계관 입니다.
민국 38년(1949년)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여러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민국 38
民國三十八 | Minguo 38
革命尚未成功 同志仍須努力
혁명아직 성공하지 않았으니 동지들계속하여 노력하라
분량 장편
장르 대체역사, 정치, 국가중심, 이상주의
현황 연재 중
연재기간 2021년 3월 13일 ~ 2021년 9월 18일(1차 연재)
2022년 6월 28일[1] ~ 현재(재연재)
연재자 틀:신단
저작권

개요

중국을 구하라
중화민국의 국부, 쑨원(孫文)
중국이 제국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망국노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노예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 장제스(蔣介石)

신단(舊Country)이 연재하고 있는 장편 대체역사 세계관으로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와 그로인해 현실과 달라진 현대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상세

1936년 12월 12일, 본래라면 시안사건이 일어났어야 했을 그날에 장제스는 다이리의 의견을 수락하여 장쉐량을 체포했다. 그 때문에 시안사건은 장쉐량의 반역 모의 사건으로 끝이나게 되었고 국민정부 내에서 친공산당적 행보를 보이던 장쉐량은 그대로 구금되게 되었다. 시안사건이 없어졌으니 1936년의 국공합작도 사라졌고 결국 장제스는 제6차 초공작전을 실시, 마오쩌둥은 국민혁명군의 폭격에 의해 사망하고 만다.

지도자가 사라진 중국공산당은 유일하게 남은 동앗줄인 소련을 붙잡았고 소련은 장궈타오를 중국공산당의 새로운 지도자로 임명하여 기존의 근거지인 옌안에서 친소파 군벌인 성스차이의 근거지인 신장 일대로 공산당을 이동시켰다(제2차 대장정).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1937년 7월 7일에 일본제국이 중국에 선전포고 하여 원역사 처럼 중일전쟁이 발발하나 국민당을 믿지 못한 소련측이 왕징웨이를 억류시켰고 푸이가 국민정부에 합류함에 따라 원역사와 같은 거물급 지도자를 포섭 할 수 없었던 일제는 명나라 황실의 후손인 주연린(朱永林, 주영림/가상인물)을 옹립하나 당연하게도 중국인들의 반응은 최악이었다.

이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미국이 대일전에 참여했고 독일이 패색을 띄면서 일본또한 점차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중국측이 천황제 폐지를 일본항복의 필수요소로 정함에 따라 일본은 결호작전을 시행했고 1945년 10월 15일에 경성이, 동년 12월 26일에 도쿄가 함락되며 전쟁은 종결되게 된다.

전후 다시 발발한 국공내전에서 국부군은 이미 몰락작전의 시행으로 중국 전역을 통제하고 있었고 산업이 풍부한 만주가 아닌 당시로써는 사막지대에 불과하던 신장에 박혀있던 중공군은 저우언라이나 덩샤오핑과 같은 국내파를 무시하고 전면전을 감행, 당연히 패주되어 소련이나 프랑스로 도피하였다. 시간이 흐르며 중국은 일본의 분단으로 인해 공석이 된 아시아의 제1국가 자리를 차지하여 동북·동남아 일대에서의 패권을 공고히 하였고 1975년 장제스의 사망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작중 시점인 2024년 1월 1일에 중국은 총통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국민당의 한궈위(총통)-시진핑(부총통)과 사회당-민주당 연합의 리커창(총통/사회당)-왕쉬제(부총통/민주당)의 대결이 예정되어 있다.

연표

  • 1911년
    • 10월 10일:신해혁명이 일어나 중국의 군주제가 종말을 고하다.
  • 1912년(민국 원년)
    • 1월 1일:중화민국이 건국을 선포하였다.
    • 2월 12일:선통제가 퇴위를 선언하고 청나라 소조정이 성립되었다.
    • 8월 24일:쑨원-위안스카이 회담이 시작되었다.
    • 9월 25일:쑨원-위안스카이 회담이 종료되었다.
  • 1913년(민국 2년)
    • 3월 20일:중화민국의 정치인 쑹자오런이 저격당했다, 쑹자오런은 같은달 22일에 사망하였다.
    • 4월 26일:위안스카이가 선후대차관 사건을 일으켰다.
    • 10월 10일:위안스카이가 중화민국 대총통에 취임했다.
  • 1914년(민국 3년)
    • 1월 10일:중화민국 국회가 위안스카이에 의해 강제해산 당했다.
    • 12월 29일:수정대총통선거법이 발표되었다.
  • 1915년(민국 4년)
    • 12월 11일:위안스카이가 황제로 추대되었으며 다음날인 12일에 홍헌제제가 선포되어 중화제국의 성립되었다.
    • 12월 15일:차이어 등이 호국군을 선포하고 호국전쟁을 일으켰다.
  • 1916년(민국 5년)
    • 3월 23일:위안스카이가 홍헌제제를 취소하여 중화제국이 폐지되었다.
    • 6월 7일:위안스카이가 중화민국 대총통 직에서 사임하고 리위안훙이 2대 대총통에 취임했다.
  • 1917년(민국 6년)
    • 7월:신한혁명당 소속의 신규식, 박은식 등이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하였다.
    • 7월 1일:장훈복벽이 일어났으나 같은 달 12일에 실패하였다.
    • 7월 14일:돤치루이가 총리에 복직하여 돤취루치 내각이 재성립 되었다.
    • 7월 17일:쑨원이 광저우에서 제1차 호법운동을 전개하였다.
    • 9월 1일:쑨원이 호법정부 대총통에 취임하였다.
    • 9월 29일:돤취루이 국무총리가 쑨원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다.
    • 10월 7일:쑨원이 돤치루이 토벌령을 내림으로써 호법전쟁이 본격화되었다.

기타

둘러보기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공산1968 선정 50대 세계관

34위


  1. 최초의 인물문서인 박정희 문서의 생성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