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 1914.7.28. - 1915.7.9.
프랑스인 소요 1916. ~ 1917.
제3차 발칸 전쟁 1916.9.22. ~ 12.12.
플로레알 27일의 쿠데타 1917.5.16. ~ 5.18.
제2차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1918.
캅카스 내전 1918.10.10. ~ 11.4.
포르투갈 왕정복고 1919.1.8.
수에즈 사태 1919.4. ~ 5.
인도 독립 1919.10.7.
대영제국 붕괴 1919.11. ~ 12.
오스만 전쟁 1920.4.11. ~ 11.3.
러시아 내전 1921.1.8. ~ 1928.10.3.
힌두 장교 쿠데타 1921.7.7. ~ 7.20.
네덜란드 혁명 1922.11.10. ~ 12.5.
네덜란드 코뮌 1922.12.5.
프랑스 코뮌 혁명 1923.5.1. ~ 7.9.
카이세리 쿠데타 1925.8.8.
아나톨리아 선포 1925.8.10.
프레사 델 포타레 1924.4.6.
리우 왕당파 혁명 1924.11.15.
포르투갈-브라질 1924.11.17.
1월 쿠데타 1925.1.2.
세르비아 전쟁 1924.2.1. ~ 1925.10.10.
오스트리아-헝가리 내전 1925.7.12. ~ 1925.10.10.
헝가리-세르비아 전쟁 1925.10.10. ~ 1926.1.10.
에르데이 전쟁 1925.12.20. ~ 1926.3.21.
빈 조약 1926.1.18.
검은 금요일 1926.4.6.
피우수트스키 쿠데타 1928.6.30.
폴란드 제2공화국 선포 1928.7.3.
프랑스 제4공화국 선포 1929.5.18.
안트베르펜 혁명 1929.8.1.
벨기에 내전 1929.8.21. ~ 9.14.
강철 조약 체결 1930.1.11.
베오그라드 동맹 1930.3.13.
제4차 발칸 전쟁 1931.6.29. ~ 11.18.
비아리스토크 점령 1932.11.11.
비아리스토크 합병 1932.11.24.
스페인 내전 1933.7.7. ~ 1935.12.4.
튀르키스탄 침공 1933.8.8. ~ 1933.11.10.
10월 쿠데타 1934.10.10.
폴란드-리투아니아 선포 1934.12.7.
군부동맹 1935.8.2.
리가 사건 1936.1.18.
제2차 세계 대전 1936.3.4. ~ 1941.9.18.
포니아토프스키 사건 1942.12.8. ~ 19.
마아양가 사건 1942.10.2 ~ 20.
이스라엘 건국 1943.4.6.
에게 해 학살 1944.2.19. ~ 4.10.
10월 3일 사건 1944.10.3.
핀란드 내전 1944.10.3. ~
빌냐 소요 1945.6.6. ~ 9.
발트 민족 무장사건 1945.6.7. ~ 1946.1.7.
벨라루스 서부 사태 1945.6.7. ~ 1947.
9월 쿠데타 1945.9.5.
발트 병합 1947.1.18.

An Der Sonne
태양 아래서
장르 대체역사 밀리터리
연재 기간 2021년 2월 17일 ~ 현재
제작자 Enzo
제작 환경 네이버 웨일 브라우저
리버티 스킨
데스크톱
저작권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An Der Sonne 혹은 태양 아래서Enzo의 4번째 대규모 세계관이다. 최초의 독뽕 대체역사 대규모 세계관인 승리의 왕관의 후계 설정이며, 단일 국가까지 포함하여 6번째 독뽕 세계관이다.

세계

세계지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과 그 동맹국들이 승전하고 기존의 영국의 패권은 무너졌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곳곳에 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졌으며, 세계 공황으로 친독일 세력은 약화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민족주의군국주의로 무장한 프랑스 제4공화국폴란드-리투아니아로 발생해 참호전이라는 양상을 개전하였다. 독일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승전하였으나, 미합중국과 세계를 양분하였다. 결국 다시 전쟁이 발발하였고, 제3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인도미합중국-일본이 주축으로 전쟁을 이끌어 나갔다. 제3차 세계 대전은 기존의 전쟁보다 엄청난 수준의 피해를 입힌체 독일의 승전으로 마무리되었다.

제3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팍스 게르마니카라 불리는 일련의 평화시기를 지난다. 그러나 제3차 세계 대전 과정에서 아시아 지역에서 큰 공을 세운 인도가 급격히 성장하여 독일의 헤게모니를 위협하고 있으며, 뿌리 뽑히지 못한 사회주의가 남아메리카에서 다시 꽃을 피워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 팍스 게르마니카의 존제 의의에 위기를 가하고 있다.

주요 국가

독일과 그 동맹국

인도와 그 동맹국
아르헨티나와 그 동맹국
국제통치령


자유협정

세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독일은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1960년 대의 자유화로 기존 권위주의 체제에서 탈피한 독일은 그들의 이념을 전 세계에 관철시킬 일만 남았었습니다. 독일의 헤게모니에 저항할 국가는 존재치 않았고, 수많은 국가들이 자유화되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 대에 들어 권위주의 정부를 지닌 인도의 부상은 독일로 하여금 그들의 헤게모니와 이념에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상과 같이 인도의 이념은 수 십 년 간 독일이 세계에 뿌린 자유주의 질서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더불어 코뮌에 의한 브라질의 해체는 독일로 하여금 3차 대전을 연상케하였습니다.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 퍼진 위협 아래 독일은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 동맹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습니다. 2018년, 베를린에서 9개국이 자유협정이라 불리는 조약에 서명하면서 자유협정이 설립됩니다. 수많은 자유주의 국가들이 협정에 동참하였고, 권위주의와 사회주의로부터 그들의 국가와 이념을 지키기 위해 연합했습니다.

독일
1871년의 통일 이후 독일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들의 공업력은 영국을 바로 뒤에서 뒤쫓고 있었고, 그들의 해군 증강은 영국으로 하여금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1차 대전에서 그들은 슐리펜 계획을 성공시키면서 승전합니다. 독일은 미완성된 패권을 거머쥐었고, 2차 대전을 거치며 확고해졌습니다.
3차 대전에서 사회주의자들의 공격을 격퇴하면서 세계는 비로소 독일의 패권을 받아들였습니다. 팍스 게르마니카라 불린 일련의 평화가 이를 증명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자유화된 독일은 이제 그들의 이념을 전 세계에 전파했고, 자유주의와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인력과 자원, 거대한 영토를 바탕으로 성장한 인도와 그 동맹국들과 남아메리카에 뿌리 내린 사회주의의 붉은 위협이 팍스 게르마니카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세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유럽을 장악해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위협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독일-헝가리-우크라이나-러시아-러시아-이집트-동아프리카-남서아프리카-대한 9개국이 베를린에 모여 자유협정을 창립하였습니다. 정치-경제-군사-외교 공동체인 자유협정은 새로운 위협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헝가리
이중제국이 해체되면서 헝가리는 갑작스럽게 독립을 얻었습니다. 독립 직후 이루어진 전쟁에서 그들은 크로아티아를 잃었으나, 2차 대전에서 발칸 반도를 수호하면서 보스니아까지 진출합니다. 3차 대전에서도 그들은 독일을 지원하며 승전하였고, 독일의 질서에 편승했습니다.
이중제국의 해체와 함께 헝가리는 그들만의 정치를 만들 기회를 얻었습니다. 긴 논의 끝에 작센코부르크고타가의 분가인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가가 위원회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위원회는 당주인 페테르 아고슈트(Péter Ágost, 페드로 아우구스토)를 헝가리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했습니다. 그러나 페테르 2세는 헝가리어를 못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의회의 권력이 강화되었습니다. 1960년의 자유주의 운동 이전에 이미 헝가리는 자유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헝가리는 불가리아와 발칸 반도의 영향력을 두고 경쟁했습니다. 그러나 3차 대전으로 그리스가 다시 부상하면서 불가리아의 영향력은 감소하였습니다. 헝가리는 건국 이후로 계속해서 독일과 친성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 중 한 국가로써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수백년 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리가 조약은 우크라니아를 독립시킴과 동시에 독일의 위성국으로 만들었습니다. 해트만 정부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원한 체제가 아니였으나, 헤트만 체제는 계속해서 살아남았습니다. 2차 대전에서 우크라이나는 폴란드-리투아니아에 맞서 동유럽을 수호했습니다. 3차 대전에서 그들은 러시아의 국토를 유린함으로써 과거 수백년의 지배 시기를 복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헤트만 체제는 우크라이나가 중부유럽 동맹의 일원으로써 얻는 막대한 경제적 이득으로 인해 안정적으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스며들었습니다. 1960년 독일의 자유주의 운동이 우크라이나로 뻗치면서 기존의 권위주의적인 헤트만 체제는 자유화되었습니다. 자유화된 체제는 그들은 더이상 불만을 갖지 않았고, 정치적 안정은 경제적 성장으로 나타났습니다.

인도의 부상이 자유세계에 위협으로 다가오자, 우크라이나는 8개국들과 함께 창립국으로써 자유협정을 창립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독일을 따르며 자유세계를 수호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모스크바 대공국에서부터 출발한 러시아는 영국과 패권 경쟁을 할 정도로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차 대전에서 독일에게 처참히 패하여 유럽 영토를 대부분 잃고 혼란에 빠집니다. 내전 이후에는 코뮌이 들어섰으며, 3차 대전에 참전했다 다시 독일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패전 이후 독일에 충성하며 다시금 강성해졌습니다. 엄청난 길이의 국경은 러시아를 인도-태평양 공동체에 대항하는 최전선으로 만들었습니다.
3차 대전 이후 잠시 동안의 군정으로 자유주의가 러시아 정치에 스며들었습니다. 로마노프가가 다시 왕위에 올랐고, 내각제가 자리잡았습니다. 독일의 경제 블록 안에서 그들은 광활한 영토와 인구를 무기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중심으로 시베리아 지역 또한 순조롭게 개발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두 차례나 독일에 패배하면서 마침내 독일의 질서에 편승했습니다. 그들은 인도-태평양 공동체에 대항하는 최전선으로써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쿠르디스탄
쿠르디스탄은 16세기 오스만과 이란에 의해 지배받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지배는 오스만이 붕괴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1920년 대, 쿠르드인들은 오스만이 아르메니아와 그리스에 의해 패퇴를 거듭하자 독립을 선포하며 오스만 전쟁에 참전하여 승전하였습니다. 쿠르디스탄은 비로소 독립국가가 되었으며, 2차 대전과 3차 대전을 통해 이라크를 합병하는 등 현재의 영토에 이르렀습니다.
쿠르디스탄은 바르잔지가 왕위에 오르면서 군주국이 되었고, 말리크는 강한 권력을 지녔었습니다. 1960년 대의 자유주의 운동의 여파에도 권위주의적인 체제를 유지하였으나, 1980년 대, 독일에 의해 사실상의 혁명이 발생하면서 자유주의 입헌군주제 국가가 되었습니다.
사실상의 혁명을 통해 자유주의 국가가 된 쿠르디스탄은 1990년 대의 독일의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 중 하나로 참여하며 아라비아의 견제를 위해 독일과 우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집트
이집트는 오스만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무함마드 알리는 이집트의 지배권을 차지하고는 여러 개혁을 진행하며 이집트를 근대화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이집트에 강력한 영향력을 투사하였고, 대영제국이 붕괴될 때까지 이집트는 영국에 종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파리 조약 이후 영국의 영향력은 줄어들었고, 독일의 개입으로 이집트는 완전한 독립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독립 이집트도 독일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의 군국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사회는 자유화된 독일로 하여금 외교적 압박을 발생시켰습니다. 이집트는 독일의 압박에 저항하며 자국 내 자유주의 운동을 탄압해왔으나 자유주의 운동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독일은 수에즈 운하를 통해 개입하기에 이릅니다. 압도적인 무력에 이집트 정부는 꼬리를 내렸고, 이집트는 독일이 무력으로 자유화를 이룩한 첫 국가가 되었습니다.
새로 세워진 자유주의 정부는 친독일적인 행보를 보이며 권위주의 체제에 대해 위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인도와 그 동맹국이 급부상하면서 악화되었고,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으로 참여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슬람 세계의 자유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동아프리카
베를린 회의 이후 독일은 독일령 동아프리카를 설립했습니다. 독일은 효과적인 식민 통치로 동아프리카를 모범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독일령 동아프리카는 파리 조약으로 인해 독일령 중앙아프리카가 됩니다.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와 더불어 독일령 동아프리카는 독일령 중앙아프리카의 중심지로 작용했습니다. 3차 대전 이후 독일령 중앙아프리카는 여러 국가들이 분리 독립하면서 해체됩니다.
독일령 중앙아프리카의 해체 이후에도 동아프리카는 독일 본국에 그들의 충성을 증명했습니다. 명목상 독일 황제는 그들의 국가원수이며, 독일인에 한해서 무제한 이민을 받고 있는 등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일 본국의 자유주의 운동의 결과에 따라 자유주의가 남서아프리카와 더불어 가장 빠르게 스며들었고, 남서아프리카와 함께 아프리카 내의 독일 패권을 수호했습니다.
현대에 아프리카는 신흥 세력들의 세력 싸움터가 되고 있습니다. 동아프리카 정부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이는 그들이 자유협정 창립9개국이 되는데 일조했습니다. 그들의 서쪽과 남쪽에는 붉은 세력이 독일의 자유주의 패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남서아프리카
남서아프리카는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브레멘 출신 상인에 의해 개척되기 시작해 풍부한 자원으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독일 본토에서 수많은 독일인이 정착하여, 남서아프리카는 독일의 식민지 중 가장 많은 독일인 정착민을 보유한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인 정착민들과 원주민들 간의 갈등은 증가했으며, 이는 헤레로 나마 집단학살 사건을 발생시켰습니다. 1차 대전에서 남서아프리카 식민지군은 포르투갈의 앙골라를 점령했고, 이는 빈트후크 조약에서 포르투갈령 앙골라를 독일령으로 합병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남서아프리카는 독일령 중앙아프리카에 합병되었습니다.
3차 대전 이후 독일령 중앙아프리카가 해체됨에 따라 남서아프리카 또한 독립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높은 비율의 독일인 인구 수는 정부로 하여금 친독일적인 행보를 보이게 했습니다. 더불어 독일 본토에서 발생한 자유주의 운동은 남서아프리카에도 이루어져 주도적인 자유화를 이룩하였습니다.
동아프리카와 함께 남서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독일 패권을 수호하고 있으며,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으로써 존속하고 있습니다.
대한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에 의해 합병되었습니다. 일본의 강제적인 합병과 강압적인 통치는 대한인으로 하여금 불만을 품게하였고, 1920년 대의 반란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반란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들은 일본 내에서 내지에 준하는 위치를 얻었습니다. 수십년의 기간 동안 그들은 내지에 동화되었고, 일본 제국에 부역했습니다. 3차 대전으로 일본 제국이 패망하면서 그들은 독립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독일에 의해 군정이 세워졌고, 그들은 일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과거 망명정부의 인사들을 고용했습니다. 독일은 이 왕가라 불린 조선의 왕조를 왕으로 옹립하고 대한국을 수립하였습니다.
일본이 국제통치령이 된 상황에서 독일은 동아시아의 동맹국을 원하였고, 대한이 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대한은 독일의 동아시아 반인도 세력의 전진기지가 되었으며, 빠르게 자유주의가 주입되었습니다. 십여년의 정치적 혼란 끝에 정치는 안정화되었고, 특유의 국민성은 경제적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1990년대, 대한은 독일의 의도대로 동아시아 자유주의의 최전선으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자유협정의 창립9개국이 됩니다.

인도-태평양 공동체

제3차 세계 대전에서 인도는 아시아에서 일본의 야욕을 격퇴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와 중국으로까지 그들의 군화 아래에 두었습니다. 미국 항복 이후 독일의 군대가 일본을 유린하면서 전쟁은 종료되었으나 한반도에 자유주의 국가를 세우는 것을 본 인도는 독일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도는 독일에 대한 불만을 잃어버리지 않은체 팍스 게르마니카라 불린 일련의 시대를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 친독일적인 모습을 이용해 중국과 중앙아시아에 세워진 그들의 우방국들과의 경제 공동체인 인도-태평양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독일이 신경 쓰지 않은 그들의 공동체는 2010년 대에 들어 막대한 인구, 풍부한 자원을 통해 인도와 그들의 동맹국들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경제 공동체의 탈을 쓴 그들의 군사-정치-경제-외교 공동체는 이제 독일에 가장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제4인터네셔널

제3차 세계 대전에서 사회주의자들은 독일에 패배했습니다. 브리튼과 아메리카에서 세를 불리던 그들은 이제 조국을 잃고 내팽겨졌습니다. 그러나 미공화국이 먼로 독트린을 이으면서 남아메리카에 심어진 사회주의의 씨앗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 코뮌 정부가 세워지고 이윽고 남아메리카 코뮌 전쟁에서 반코뮌 연합이 패배하면서 남아메리카에는 사회주의 지상낙원이 세워졌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독일로부터 극심한 견제를 받아왔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아르헨티나의 제4인터네셔널을 중심으로 뭉쳤습니다. 제4인터네셔널은 남아메리카 뿐만 아니라 구 식민지 세계에 사회주의를 전파시켰고, 아메리카 본토에는 다시금 새로운 코뮌 정부가 세워졌습니다.

분기점

  1. 현실의 역사대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 프랑스군은 제17계획의 실패와 독일의 공세로 계속 패퇴하였다. 조제프 조프르는 국경 지대를 포기하고 파리에서 반격할 계획을 구상하였으나 폐기하고 프랑스군은 산산히 부셔져 마른 전투에서 협상군은 대패를 당한다.
  2. 오스트리아-헝가리프레미셀의 요새에 포위된 10만 여명의 병력을 구출하는 데 성공하였고, 서부 전선에서의 빠른 승리에 따라 동부 전선에 수십만명의 독일군이 배치되어 공세를 가한다. 동맹국은 대규모 공세를 통해 상트페테르부르크 근방까지 진격하였다.

기타 설정

  1. 세 차례의 세계 대전을 승리한 독일팍스 게르마니카라 불리는 세계 패권을 이룩하였다. 제3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의 건설을 주도했으며, 4개국의 상임이사국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유주의 국가들의 연합체인 자유협정의 의장국이다.
  2. 인도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힌두-무슬림 간 갈등을 종식시키고 일본 제국을 이은 아시아의 지역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제3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에 맞서며 아시아 전선을 주도하며 중국을 점령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연합의 상임이사국이 되었으며, 세계 2위의 강국이 되어 독일과 경쟁하고 있다. 권위주의-연방주의 국가들의 지역 연합체인 인도-태평양 공동체를 주도한다.
  3.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유럽 내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됨에 따라 사회주의자들은 아르헨티나 등과 같은 남아메리카로 망명한다. 이들은 점차 아르헨티나 내에 사회주의 세력을 구축하였으며, 군부 독재에 반대하며 혁명을 일으킨다. 수년의 내전 끝에 아르헨티나에는 코뮌 정부가 세워진다. 이후 아르헨티나칠레브라질 등 여러 국가와 전쟁을 벌이면서 남아메리카에 사회주의를 전파하였으며, 현재 제4인터네셔널을 세우고 다른 대륙에까지 사회주의를 전파하고 있다.
  4. 우크라이나는 독립 이후 독일과 동맹을 유지하며 영토를 넓혔다. 그들은 유럽 최대의 곡물 생산국가이자, 독일에 이은 유럽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연합의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5.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경쟁국가이던 프랑스는 3조각으로 분열되어 독일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선다. 브리튼 제도 또한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과거의 영광을 잃고 4개의 켈트 국가와 1개의 앵글로색슨 국가로 분열되었다.
  6. 오스만 전쟁의 결과로 수립된 쿠르디스탄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이라크를 합병하고 중동의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7. 튀르키스탄중화연방제3차 세계 대전 이후 인도에 의해 계획되어 수립되었다. 그들은 연방제 국가로 인도와 마찬가지로 권위주의적인 정부를 지녔다. 양국 모두 인도인도-태평양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
  8. 제3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에 최초로 국제통치령이 세워진다. 국제통치령은 주권을 제한받으며, 연합에 의해 관리되는 곳으로 일본아마존처럼 국가 수준의 정부가 세워지기도 하지만, 보통은 분쟁 지역에서 분쟁의 최소화를 위해 다레다바와 같이 세워지기도 하며, 중화 국제통치령라고스, 징가푸어처럼 타국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요청에 의해 세워지기도 한다.

영향, 모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