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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8개월 전쟁은 네베세치 군도에서 두 파벌로 나뉜 국가들이 벌인 전쟁으로, 네베세치 군도에서의 첫번째 전쟁이다.
전쟁 전
엘라스에서 사크라티아군의 혁명이 발생하고, 코윈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발생했으며, 솔레브에서는 군사 정변(쿠데타)가 발생하여 사회주의 체계의 군정이 세워지는 등, 네베세치 군도는 1980년대에 들어 대격변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는데, 기존의 민주주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민주 동맹이 창설되면서 이에 위협을 느낀 사회주의 체계의 국가들은 진보 사회주의 연합을 창설했다. 둘은 이념과 체제의 차이, 그리고 창설 목적이[1] 다르기 때문에 창설 직후로도 크고 작은 외교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었다. 전쟁 당시의 노바니아 대통령이었던 피레스 보케이만은 군 출신으로 흔히 전쟁광으로 불리는 사람이었고,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필리아-노바니아 연합군을 창설하여 솔레브와의 전쟁을 준비했다. 그 와중에, 솔레브 연방군이 노바니아 국민이 탑승한 차량을 향해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2]
전개
초기 - 카즈네트 사건을 계기로 노바니아 정부는 자국민 보호라는 명목으로 필리아-노바니아 연합군을 운용하여 솔레브를 침공한다. 솔레브는 군정이 시작된지 5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라 지역 안정화도 미흡한 실정이었고, 솔레브 연방군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베니온 강 전투에서 솔레브 연방군이 완패하며 수도인 네베르스크까지 후퇴하였다. 카레스와 로스카, 코윈, 엘라스는 아직 참전하지 않은 상태였으나, 코윈이 솔레브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여 네베르스크로 병력을 파견하면서 카레스는 필리아의 지원 요청을 받아 참전, 로스카는 다른 지역으로 병력이 파견된 코윈이 차지한 네레브 섬을 침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크라티아군은 코윈의 지원 요청을 받아 네레브 섬으로 파견되었다.
중기 - 코윈의 공군력과 뛰어난 작전 능력으로 네베르스크 포위전은 진보 사회주의 연합의 압도적인 승리로 종료되었고, 네베세치 전역에 전선이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전선으로는 필리아-노바니아 연합군과 솔레브, 코윈의 솔레브 전선[3], 사크라티아군과 로스카의 코윈 전선이[4] 있다. 노바니아는 후퇴를 거듭하다가 솔레브의 항구 도시 시리온으로 철수하였다.
후기 - 코윈과 솔레브는 노바니아 본토까지 치고 올라왔으나, 캐리엇 섬 포위 작전에서 미국이 원조한 대함미사일에 상륙부대 대부분을 손실하면서 전선이 고착화되었다. 전쟁 7개월 차에는 사크라티아군이 네레브 섬을 포기했고 코윈 본토에서 방어 작전을 전개했다. 이후 1개월 간 전선의 변화는 없었고, 소모전이 지속되던 중 이바노프 페트로비치의 주도로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다.
종전
8개월 간의 전쟁을 끝내기로 협의하였습니다.
(중략) 코윈 공화국의 네레브 섬을 로스카 공국에게 양도하며...(중략)
노바니아와 코윈은 군비를 각각 10%, 5% 감축하기로 협의하였습니다.
노바니아는 솔레브에 3억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며...(중략)
네베르스크 종전협약에서 발췌.
종전협약 체결 이후, 미국은 민주 동맹을 향한 경제 및 군사 원조를 더욱 강화하였다. 이 전쟁으로 두 연합 간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