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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급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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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의 특별시
성경특별시 | ᠮᡠᡴ᠋ᡩᡝ᠋ᠨ
盛京特別市 | Seonggyeong Greater Metropolitan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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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휘장
시청 소재지 황고구 소릉남대로 85-1
지역 남만주
하위 행정구역 28구 4군
면적 3470km2
인구 21,635,247명(2023)
인구밀도 6235명/km2
시간대 UTC+8:30
시장
김시은(재선)
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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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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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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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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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번호

개요

가장 특별한 매력
Specially Attractive, Seonggyeong.

성경특별시, 또는 묵던(ᠮᡠᡴ᠋ᡩᡝ᠋ᠨ)은 대한국의 최대도시이다.

국내 최대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도시라 한국의 경제수도라고도 불리며 세계에서 다국적 대기업들의 본사가 가장 많이 위치한 도시이기도 하다.

1897년 이곳에 심양부가 설치된 이후 계속 심양으로 불려왔으나 효목경황후가 승하한 다음해인 1982년 1월 1일 청나라의 수도 시절 이름이었던 ‘성경(盛京)’으로 환원되었다. 아울러 이곳을 이르는 만주어 ‘묵던(ᠮᡠᡴ᠋ᡩᡝ᠋ᠨ)’ 또한 공식 병용 명칭으로 지정되었다.

상징

역사

고조선 초기 수도였던 장당경(藏唐京)이 이곳에 있었을 것이라 강하게 추정되고 있으나 아직 확실한 고고학적 증거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 1967년 탑동구에서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 유적과 기록상 장당경의 확고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고조선 이후에는 고구려의 땅이 되었으며 개모성이 들어섰다. 고구려 멸망 이후에는 안동도호부가 설치되었다가 발해 영토가 되면서 심주(瀋州)라고 명명되었다. 이시기부터 성경은 심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명나라때까지 심양이라 불렸다가 만족이 후금을 세우고 차지한 뒤 묵던(한식으로 성경)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1644년 청나라가 북경에 진주하여 수도로 삼은 이후인 1657년 봉천부(奉天府)로 개칭되었다. 1878년까지는 공식적으로 만족만이 드나들 수 있는 지역이었으나 이미 그이전부터 한족들은 물론 조선인과 러시아인들이 유입되고 있었다. 1899년 한노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사실상 한국령이 되었고 러시아인들 대다수는 쫓겨났다. 1905년에는 심양부로 다시 환원되었다.

1900년부터 1930년 사이 북방대개발 정책의 중심도시로서 하북과 몽골, 북만주로 향하는 철도의 교차점이 되었으며 경제, 문화적으로 크게 번성하기 시작했다. 1930년 추정인구가 780만여명이었을 정도. 1938년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5개월만에 인구가 1700만명 가량으로 폭등한다. 이후 심양은 한국의 전쟁 수행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도시로 기능하였다. 세조 황제와 황실은 장춘(현 황도)에 있었지만 정부요인들은 사실상 이곳에서 전시정부를 이끌었고 기존에 형성되었던 대규모 상공업 및 교통 기반시설을 통해 전쟁 물자를 빠르게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군수청 장관이었던 유진산의 지원으로 도시 전체가 대공요새화 되었으며 그덕에 1945년 종전될 때까지 심양은 단 한번도 공격받지 않았다. 1939년 10월 심양 공습 작전때 격추된 일본 공군의 전략폭격기가 무순시 민가에 떨어져 입힌 피해가 가장 큰 것이었을 정도. 2001년에서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1940년 심양 서부 혼하강변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로가 가동되었다. 핵분열 반응이 발견된지 불과 2년만이었다. 다만 한국의 핵개발은 미국보다 늦은 1949년에 완료된다.

전후에는 피란민들이 빠져나가며 인구가 다시 줄어들었지만 상당한 수의 조선반도 출신 인구가 그대로 체류하길 택했다. 조선반도의 전후복구가 완료되지 않았고 전쟁 기간동안 기반시설이 탄탄하게 완성된 심양에 머무르는 것이 나았기 때문이다.

지리

도시 구조

교통

경제

관광

생활 및 문화

정치

도시 행정

치수 정책

성경은 강수량에 비해 물 소비량이 많아 물 스트레스 지수가 상당히 높은 도시이다. 2천만명의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돗물 공급은 필수이며 하수처리의 문제도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다. 그럼에도 성경의 치수 정책은 전세계적으로 성공적 사례로 손꼽히고 있으며 다양한 수자원 이용기술이 도시 생활에 적용되고 있다.

성경이 끼고 있는 혼하는 서울의 한강이나 할빈의 송화강처럼 유량이 많고 거대한 강은 아니다. 혼하가 성경을 지나는 평균 폭이 500m에 불과하며 수심도 깊은 편이 아니라 유량은 한강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성경은 강수량도 서울의 절반 수준이라 수자원을 얻기에는 애로사항이 많다. 이에 1953년 발해성은 무순시 동부에 화방언제를 건설하여 화방저수지를 만들었고 지금도 이 저수지가 성경광역시의 주요한 수돗물 공급원이 된다. 하지만 이 화방언제의 저수량 자체도 2천만명의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모자르다. 따라서 정부는 1940년대부터 성경에 일찍이 분류식 하수 체계를 도입하여 하수와 빗물이 섞이지 않도록 했으며 1977년에는 백탑군(현 성경 백탑구)에 초거대 하수 재처리 시설을 건설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성경은 공업도시이기도 해서 막대한 양의 공업용수가 필요한데 정부는 성경의 하수처리수를 공업용수로 반드시 사용하도록 조치하면서 물 절약을 실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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