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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러시아 경찰 방어선 돌파를 시도하는 시민들
모스크바 시내에 휘날리는 러시아 국기[1] 진압을 위해 투입된 중무장한 국가근위대원들

개요

Оповестите всех мобов. Это последнее предупреждение. Разойдитесь немедленно, или мы откроем огонь. Разойдитесь немедленно.

모든 폭도에게 경고한다. 최종 경고다. 즉시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즉시 해산하라.


- 9월 17일, 모스크바에서 무장한 국가근위대원이 투입되기 전에 살포된 경고문

2018년 러시아 전국 폭동(2018 Russian Nationwide Riots)은 오랜 기간 정권을 잡은 채 강력한 통제 정책을 펼치고 있던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시작으로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를 거쳐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전국에 발생한 시위이자 폭동이다.

처음에는 평화적으로 시작된 시위가 경찰들의 무력 진압으로 인해 점차 격화되더니 주요 도시권에선 폭동으로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푸틴을 정치권에서 축출하는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정치는 혼란해졌고 치안에는 거대한 공백이 생기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 확보에 대응하면서 신냉전은 점차 그 끝을 향해 달려 가고 있었다.

배경

대침체로 인해 미국과 NATO의 패권이 러시아와 CSTO로 넘어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정부는 강력한 대외 영토 및 패권 확장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다. 2008년에는 조지아와 전쟁을 벌여 기전에 미승인 국가였던 남오세티야를 완전 독립시켰으며, 미국의 도태로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 된 러시아를 말릴 제지 수단이 없었고, 더욱이 석유 파동으로 인해 중동 유가가 폭등하면서 대부분의 화석 연료를 러시아에 의존해 수입하고 있던 유럽은 러시아의 군사력과 자원 차단에 대한 우려로 인해 위축되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대외가 그랬던 만큼 내부 역시 만만치 않은 상태였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에 의해 돌아가는 1인 독재 체계가 되어 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는 지역에는 국가근위대가 배치되어 압박했고, 시위라도 터졌다가는 무력 진압이 이어졌다.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점차 위축되었고 2011년 러시아 총선에서는 총합 투표율 146.47%라는 기구한 숫자가 나오면서 대부분의 의석을 통합 러시아가 차지하게 된다. 이로 인해 발생한 하얀 리본 혁명은 국가근위대에 의해 2012년이 되기도 전에 진압되었고, 언론들은 강력한 통제 아래 침묵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16년 총선은 총합 투표율 47.88%로 급락했다. 언론 통제는 여전히 가동 중이었고, 2017년에 접어들자 러시아의 정치 및 경제 상황이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했다. 미국이 조금씩 패권을 되찾아오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중국이 러시아의 패권을 조금씩 갈아 먹기 시작한 것이다. 푸틴은 본인에게 유리한 기사들만 내보내고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패권을 재확보하려고 했지만, 이로 인해 외교 관계가 악화되어 중국과의 수출입이 급감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 경제가 추락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되자 2018년, 시민들 사이에서 푸틴 1인 독재를 타도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는 2018년 9월 15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규모 시위로 이어지게 된다.

전개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전 광장에 모인 1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되돌려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평화 시위를 벌였다. 처음 배치된 경찰들은 시위대를 격하게 제지하지도 않고 오히려 시민들의 목소리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지만, 시위가 시작된지 3시간도 지나지 않아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들에 의해 시위가 강제 해산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언론만 제대로 통제하면 이 불길이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갈 염려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위 소식이 러시아 전역에 빠르게 번지자 모스크바와 이르추르크에서도 시위가 발생했다. 연이어 크라스노야르스크와 노보시비르스크에서도 시위가 시작되었고 경찰들은 최루탄과 물대포로 대응했다. 방어구로 중무장한 경찰들에 의해 형성된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시민들과 이를 제지하려는 경찰들의 충돌이 계속되면서 시위가 격화되기 시작했다.

새벽을 넘도록 계속된 시위는 점차 폭동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전역의 주요 도시권에서 푸틴을 규탄하는 시위가 연이어 발생했고 몇몇 폭도들은 화염병과 벽돌을 경찰을 향해 집어 던지며 저항했다. 9월 15일 하루에만 3천 명이 연행되었고 경찰은 17명이 부상을 입는 등 상황이 계속 악화되었다. 본격적으로 폭동이 곳곳에서 발생하자 크렘린 인근에는 연방군이 배치되었고 시위의 시작점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비상 계엄과 통행 금지가 선포되었다.

하루가 더 넘어갔음에도 시위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더더욱 확산되어,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는 소련의 부활을 외치는 극단주의 세력이 시민들과 함께 들고 일어나 무장 폭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각종 총기로 무장한 시민들이 경찰들을 향해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경찰 내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크라스노야르스크의 무장 폭동은 연이은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의 폭동의 계기가 되었다. 결국 모스크바에서는 무장한 국가근위대가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시작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9월 17일 2만 명이 경찰에 연행되었고 3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240명에 달하는 경찰들도 중상을 입었다.

평화 시위가 폭동으로, 그리고 거의 내전에 이른 상태가 되면서 러시아 정부는 모든 주요 도시권에 통행 금지를 선포하고 연방군을 배치할 것이라며 시민들을 압박했지만 오히려 무력 진압으로 시위가 더더욱 격화되면서 진압에 집중된 치안 병력에 의해 대부분의 지역에서 치안 공백이 발생했고 시내의 상점에서는 사재기가 발생, 거기에 기업들은 무기한 휴업에 들어가게 되면서 러시아의 경제는 순식간에 붕괴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연방군이 곳곳에 배치되고 계속 늘어나는 사상자를 감당하지 못한 러시아의 긴급 대응 시스템은 완벽히 무력화되기 시작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정부의 통제가 통하지 않기 시작했다. 결국 폭동과 약탈, 혼란이 3주 넘게 지속되어 10월에 접어들자,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성명문을 발표하게 된다.

영향

블라디미르 푸틴의 1인 독재 러시아가 막을 내렸다. 동시에 러시아 사회 대부분의 시스템이 재정비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인 혼란이 가속되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불황 등에 대한 정보가 러시아 국민들에게 한꺼번에 공급되었고 구시대적인 사회 시스템이 재정비되면서 중지되거나 대폭 수정되면서 러시아 국민들이 이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찰 등 치안 병력이 크게 위축되면서 러시아 내의 치안이 불량해졌다. 결론적으로 민주주의적 국가로서의 성과는 얻었으나 너무 오랫동안 진행된 독재로 인해 혼란이 더욱 가속되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이를 통해 얻은 민주주의적 성과도 적었다. 11월 20일에 처음으로 선거 4대 원칙을 준수하는 완전한 형식의 민주주의 투표가 이루어졌지만 후임으로 당선된 '알렉산드르 나보코프'는 통합 러시아 소속이었다. 정치권에서 '통합 러시아의 조작이 확실하니 다시 선거를 치뤄야 한다'는 의견과 '푸틴과 달리 명백한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는 후보를 끌어낼 수 없다'는 의견이 서로 충돌하면서 혼란은 더더욱 가중되었다.

또 오랜 폭동으로 인한 손실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경제는 더더욱 후퇴했고, 이로 인해 러시아의 생명줄인 에너지 기업들이 대규모 인사 이동과 정리 해고 등 인력 축소에 들어갔고 실업률이 폭증했으며, 그럼에도 후퇴한 경제를 버티지 못한 일부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을 기다리며 장기간 휴업에 들어갔다. 정부는 정부 예산 확보를 위해 과도한 국방 예산을 감축하려고 했지만 러시아 내부의 문제를 이용해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미국과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군부의 심한 반대에 경제가 매우 불안한 상태에 놓였음에도 군축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제 불황이 비단 러시아만의 문제만은 아니였던 것이, 유럽의 국가들은 겨울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러시아의 에너지가 끊겨버리는 대형 사태를 준비 없이 맞이해야 했다.

  1. 국가에서 배포하는 국기와 다르게 중앙의 파란색 띠가 하늘색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