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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유대학교
東流大學校
TORYU UNIVERSITY
교훈 Educationem vitae est gratia
교육은 평생의 은혜
상징 교조 수리부엉이
교목 사과나무
교색 ● 도유 씨 블루 (#080A28)
● 도유 샴페인 골드 (#F4BD45)
동물 오른손에 펜을 들고
왼손에 칼을 든 수리부엉이[1]
국가 월본 월본
분류 국립대학
개교 1946년 3월 1일[2]
총장 제17대 구연일 총장
법인 국립대학법인 도유대학교
주소 도유 도유수도시 도화본구 신우일2동 421
도신설 도신설군 광호시 우만래동 67
사리화 사리화군 초화정 녹본면 155
재학생 학부 16,451명 (2021.1 기준)
대학원 석사 9,620명(2021.1 기준)
박사 3,508명 (2021.1 기준)
교직원 2,085명 (2021.1 기준)

東流大學校
TORYU UNIVERSITY(TRU)

신우일에 맺힌 꽃봉오리, 월본의 수호화로 피어나리라
슬로건

개요

도유대학교월본 도유수도시에 위치한 4년제 종합 국립대학이다.

1946년에 사이수초대학과 여러 교육기관을 통합하여 설립되었다. 명목상으로는 1946년 신규 설립이지만, 사실상 1883년 설립된 구월본제국대학인 도유제국대학을 계승한다. 영문명은 TORYU UNIVERSITY이다. 월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고등교육기관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총 6명의 내각총리대신 및 월본 최대기업인 현성그룹창업주 등을 배출한 월본 내 최고 명문 대학이다.

역사

1946년, 국립도유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본래는 도유제국대학이 구월본제국대학의 일원으로서 1883년 건립되었으나, 도유제국대학은 미군정청에 의해 1945년 해체되었다. 참고로 도유제국대학은 제국대학 시절에도 월본 최고의 대학 입지를 지킨 구제국대학의 수장이였다. 그 아래로는 도유 대표 사립 대학 타이틀을 두고 경당대학교, 선화대학교, 기부사대학교가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미군정 시기에는 수옥학숙이나 시안대학 같은 군소학교가 굉장히 많았는데, 월본 정부는 도유 내 대표 국립 대학교를 만들기 위하여 국립도유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 제정을 통하여 기존의 도유제국대학의 건물, 물자를 합쳐 군소학교들을 통합·도유대학교를 건립하였다. 그래서 도유대학교는 기존의 도유제국대학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계승하지는 않지만, 실질적인 후신이라고 간주되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그렇게 인식한다. 현재 도유대학교는 다양한 학과를 만들고, 없애고, 통합하여 현재는 의대와 공대, 농대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임원

1946년 개교 이후 총 27명의 총장이 배출되었다. 그 총장은 교육부직속으로 차관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다. 이는 도유대학교가 교육부 직속 산하 기관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또한 총장 중 일부는 퇴임후 교육부장관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상징

표어

표어인 Educationem vitae est gratia는 라틴어로 교육은 생명의 은혜라는 뜻이다. 한국어로 잘 구슬려서 말하면, "교육은 평생의 은혜" 라는 뜻이 된다. 이는 교육이란 행위는 평생동안 갚지못할 귀중한 은혜라는 뜻으로, 평생 살아가는데에 있어, 스승의 가르침(교육)을 항상 가슴속에 지니고 다니라 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문 조형물

교조는 수리부엉이이다. 또한 정문에 역시 수리부엉이가 오른손엔 펜을, 왼손엔 칼을 들고 있다. 이는 신성한 장소인 이 교육의 장소인 도유대학교를 지킨다는 의미이고, 펜은 교육을 의미하고, 칼은 정의와 수호를 의미한다고 한다.

로고

로고는 다른 대학과는 달리 특이하게 사각형 로고를 채택하고 있다. 'D'를 나타내는 디자인이다. 로고에는 사방에 도유대학교에 관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도유찬가

비공식이긴 하지만 사실상 도유대에서도 밀어주는 것이다. 손중석 초대 총장이 작사·작곡하였다.

1절
공당 터 n년[3] 내일의 염원을 향해
가슴에 세계를 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
여기 도유에 터를 잡았도다
아아 도유 우리의 공당
배움의 전당 지식의 한틀[4]
소망을 품고 내일로 나아가는
도유1 대학[5]

2절
시안대학 n년[6] 개항의 큰 꿈을 안고
여기 큰 싹들이 자라나 월본 미래 그리려
여기 공당에 터를 잡았도다
아아 도유 우리의 공당
지식의 한체[7] 혁신의 역사
미래를 향해 월본은 크는구나
도유1 대학

후렴(2.5절)
아아 도유 우리의 월본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불
한 걸음에 우리의 진일보
도유 1대학

이름에 대하여

이름의 도유(東流)는 지역 주민들이 '동류'를 동류→동뉴→도ㅇㅎ뉴→도ㅎ뉴→도휴→도유로 발음하면서 연음화 된 것이다. 한때 도유대학교 명칭을 동류대학교로 바꾸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지역 주민들과 학교측에서 반대하여 무산되었다.

1964년까지의 이름은 도유1대학이었다. 도유찬가에 나오는 그 이름이 맞다. 당시는 도유1,2,3···과 같이 국공립 대학교를 분류하였는데 도유2는 현재의 선화대학교이며 도유3은 현재의 자인대학교이다. 정확히는 도유3공과대학이 자인대학교에 통합된 것이다. 도유대학은 도유1대학으로 지정된 만큼 상당한 영예를 안았다. 이 때문에 그 당시부터 앞서 서술하였듯이 교육부 차관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학부

도유캠퍼스에는 간호대학, 공과대학, 농과대학, 사범대학, 사회과학대학, 상과대학, 약학대학, 예술대학, 인문대학, 자연과학대학, 의과대학, 치과대학, 공공인재학부가 있으며 도신설캠퍼스에는 수의과대학, 한의과대학, 생활과학대학이 있다. 도신설캠퍼스는 지방분권 및 인프라 분산을 위하여 세워졌다. 사리화캠퍼스는 학교 소유의 실습용 토지 및 건물이다.

생활 및 문화

입시

평가

도유대학교의 입지는 단연 월본 최고이지만, 월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학 평준화 정책을 시행해왔기에 도드라지지 않는 편이다. 허나 도유대 의대의 연구실적 등이 세계구 수준으로 꼽히며 또 의학이라는 것은 당장 옆나라 한국부터가 학문의 최고봉으로 여겼고, 월본도 역시 그러한 흐름이기에 월본 내에서 가장 유명하다. 경당대 의대와 예전까지는 1,2위를 앞다투었지만, 언제부턴가 도유대학교가 최고봉에 올라서게 되었다. 또한 공대와 농대가 월본 내 정상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대는 우수한 연구 시설과 교수진을 보유하고 있으며, 농대 역시 사리화캠퍼스의 광활한 자연과 함께하는 실습 시설을 갖추고 있다.

사건 및 사고

1998년 도유대 학생총회 투표조작 사건과 1999년 김호상 박사 의문사 사건, 2000년 도유대 PS&PS 동아리 사건이 3년 연속 발생하면서 암흑의 3년을 보내게 된다. 특히 1998년의 사건과 1999년의 사건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도유대 학생총회 투표조작 사건은 1997년 당시 학생총회장이었던 서남태의 부정투표 의혹이 불거지자, 부정투표 사실에 대노한 학생들은 도유대학총진상규명위를 구성하였다. 진상규명위원장이었던 김원석은 서남태의 오랜 친구였으나 몇 년 전 모종의 이유로 사이가 급격히 틀어졌다고 알려져 있었다. 진상규명위가 당시 개표함을 수거하여 분석하던 중, 해가 넘어갔다. 문제는.. 새해가 밝은 1998년 1월 3일, 김원석이 피살당했다. 경무보안국은 서남태를 피의자로 지목하여 서남태에게 구속영장을 청구, 서남태의 자택에 대하여 압수수색을 진행하였다. 더 큰 문제는.. 서남태가 그대로 잠적해서 2019년 현재까지도 행방불명이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은 월본에서 아직까지도 미제 사건이다.

김호상 박사 의문사 사건은 전년도 사건에서, 김원석 진상규명위원장의 아버지였던 김호상 박사가 자택에서 의문사한채 발견되었단 것이다. 경무보안국은 초기에 자살이라고 추정하였으나, 타살의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면서 의심받게 되었다. 이 때에 당시 도유대학교 학생회 총무였던 전청천이 "내가 범인이다"라고 자수하였으나, 범행 과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점 등으로 경무보안국은 증거 불충분으로 전 씨를 석방하였다. 압박취조 끝에 전청천으로부터 서남태의 동생 서한태가 김호상 박사를 죽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나(전청천)에게 '너도 알고 있으니 공범이다. 네가 잘못을 뒤집어 써라. 그렇지 않으면 너(전청천)뿐만 아니라 가족이 위험할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다. 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서한태는 밀항 시도 중 체포, 도유지판은 징역 12년을 선고하였다. 전청천은 서한태로부터 해코지 당할 생각에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으나 꾸준한 정신과 치료를 통해 현재는 증상이 호전, 자신의 전공을 살려 도유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도유대 PS&PS 동아리 사건은 우선 PS&PS 동아리를 알 필요가 있다. 본디는 물상과학 동아리로 시작하였다가 사교적 느낌이 강해지면서 Physical Science & People Society 동아리가 탄생하였다. 문제는 이 동아리를 교내의 생명과학도들을 제외한 이공계 학부생들을 가입하도록 사실상 강요하였는데, 강요해서 가입하면 특별히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똥군기와 내리갈굼만이 있었을 뿐이다. 문제는 1999년 기계공학부 A 모 군(22)가 2년 선배인 B 모 군(24)에게 폭행을 입어 하반신 마비라는 사상 최악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A 군의 부모는 이 사실을 매스컴에 알렸으며 이로 인해 B 모 군은 학생회의 빠른 대처로 즉각 제명 및 퇴학처리 되었다. B 모 군은 재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형량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도유대 학생회와 법인 측에서는 이 일에 대하여 현재는 함구하는 분위기이지만, 이 사건을 교육 자료로 자주 언급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으로 인해 관련 교육이 한층 강화되면서 똥군기와 내리갈굼이 도유대는 대부분 없는 분위기이다. 아니, 원래 없어야 정상이었지만...

출신 인물

각주

  1. 정문 조형물
  2. 사실상의 전신인 월본도유제국대학은 1883년 1월 8일 개교했다.
  3. 해에 따라 바뀐다. 2022년이면 76이라는 식
  4. 큰 틀
  5. 건립 당시~1964 이름이다
  6. 이것도 해에 따라 바뀐다. 기준년도는 1911
  7. 큰 체